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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불붙은 가야사

  •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불붙은 가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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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사학계 “권력이 역사해석에 개입해선 안 돼” 비판
  • ● 가야학계 “가야는 여전히 서럽다”, 고고학계 염화미소
  • ● 관련 지자체는 ‘축복’이라며 벌써부터 분주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불붙은 가야사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을 오래도록 지근(至近)에서 수행하다 그의 당선과 더불어 청와대에 입성한 A씨에게 어떤 배경에서 문 대통령이 최근 가야사 복원 문제를 들고나왔는지를 물었다. “오랜 생각에서 나온 구상”이란 답이 돌아왔다. 6월 2일자 동아일보 보도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복원 지시가 대선 후보 시절 부산경남 지역 공약으로 내건 ‘가야 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왜 가야사 복원을 들고나왔을까. 탄핵 정국이 빚어낸 소용돌이에 치른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문 대통령은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 말미에 가야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공약에 포함됐던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좀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런 언급에 앞서 문 대통령은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국면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이 “아, 가야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수위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대안 기능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주문한 것이다.

왜 문 대통령 자신도 뜬금없다 했을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니, 검찰 개혁이니,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청문회니 해서 정국이 한창 소용돌이를 치는 와중에 가야사를 들고나오기가 적절한 시점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에 담긴 다른 뜻은 없을까. 관련 보도를 보면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와 복원이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사업이며, 그런 까닭에 “가야사 연구 복원은 말하자면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꺼낸 다음 언급이 더 흥미를 돋운다. “가야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경북까지의 역사로 생각하는데, 사실 섬진강과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와 금강 상류 유역에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불붙은 가야사

[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 제공]

영·호남 가교라는 증거

이 말은 언뜻 허심하게 보이지만, 최신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가야 영역권 분포 양상과 일치한다. 가야 영역이 지금의 경남·북 외에도 호남 지역까지 미친다는 사실은 근래 드러났다. 전북 동부 지역에서 가야 흔적은 1982년, 전남대가 조사한 남원 월산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그 고분이 확인된 이래, 현재까지 남원 운봉고원과 금강 상류인 장수 진안고원 일대에 대가야 영향이 짙은 중대형 고분만 400기 정도나 확인된 상태다. 이 지역에서는 고분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제철 유적과 봉수대 유적도 활발히 확인되는 중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2005~2006년 순천대박물관이 조사한 순천 운평리 유적에서 대가야 고분이 발견되면서 광양만 일대 역시 한때 가야 문화권에 속했음이 드러났다. 이런 최신 고고학 발굴 정보를 토대로 하는 문 대통령의 언급은 아마도 그가 가야사 전공자의 도움을 받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청와대 관계자에게 이번 발언의 진의를 물은 까닭은 혹 누군가에게 ‘사주’ 받고 순간적으로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관계자 A씨는 이 사업이 문 대통령의 오랜 구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역사 프로젝트는 문 대통령이 영·호남 화합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실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가야사 발언은 호남 출신 중용으로 살짝 소외됐다고 느끼는 영남 지역 지지자들에 대한 선물의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이 사업은 대통령이 공론화한 직후부터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특히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왜 최고 권력자가 특정한 역사 연구를 주문하느냐, 학문은 학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동시다발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역사학계 “권력의 학문 개입”

이런 가운데 역사학계의 반대 분위기가 점점 조직화되는 조짐이 보인다. 한국고대사학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 6월 6일자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와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면서 “대통령이 학계에 ‘특정 시기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외국에도 예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그러겠나, 유럽이 그러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이런 항변은 이전 무수한 역사 프로젝트, 예컨대 독도 영유권 논리 개발이니 중국 동북공정 대항이니 하는 사업이 국가 혹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 

가야사 관련 릴레이 특집을 마련한 조선일보는 그 이튿날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시론을 실었다. 한데 제목이 벌써 ‘청와대 주인은 역사에서 손 떼라’다. 임 교수는 문 대통령의 이번 지시가 영·호남에 걸친 가야라는 고대사 조망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는 선의(善意)라고 하지만, “권력이 역사 해석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 외에도 역사학계 종사자 중 일부는 이와 흡사한 논조의 글을 언론 인터뷰나 기고문, 혹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매체 등을 통해 확산해가는 중이다.

사업 추진 방침과 관련한 역사학계의 이런 반응에서 유의할 대목이 있다.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역사관 논쟁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도 후보자는 국회가 여야 합의로 결성한 ‘동북아역사왜곡 대책 특별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소위 위대한 한국 상고사를 주장하는 재야사학 그룹을 노골적으로 편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임지현 교수의 시론만 봐도 후반부는 도 후보자의 이런 역사관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도 후보자가 하버드대가 추진한 고대 한국프로젝트나 국내 역사학계가 시도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지하는 데 ‘맹활약’했다고 비난한다. 물론 도 후보자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역사관에 역사학계가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야사 연구·복원 논란이 도 후보자 역사관 논란과 맞물릴 사안인지도 고민을 자아낸다. 어쩌면 두 사안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가야사 프로젝트가 실패작이었다는 사실도 일정 부분 그 계승일 수밖에 없는 이번 사업을 반대하는 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앞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하일식 교수는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많이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런 얘기가 나오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예산이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도 안 되고 대부분 토목공사나 이벤트로 쓰일 것이다. 이미 그런 비슷한 일을 많이 봐왔다. 물론 지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가야사 프로젝트가 토목 위주였고, 그렇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며, 대통령에 의한 이번 가야사 프로젝트 지시 또한 그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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