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호

동행 취재

“‘평화의 불’ 인연으로 부처님 마음 찾는 성지 순례”

‘108산사 순례기도회’ 中 불교성지를 가다

  • 글·사진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7-06-21 10: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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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묵혜자 스님 따라 108명 성지순례…“무지개 떴다”
    • 설두사 ‘평화의 불’ 봉안 예비법회…현지 큰 관심
    • 포대화상, 관세음보살 ‘고향’에서 깨달은 초발심
    • 외국 불자들 중 정성·예의·질서 모범…“코리아 넘버원”
    5월 22일 오전 중국 저장성 닝보시 설두사(雪竇寺, 방장 이장 스님)에 들어서자 108산사순례기도회(회주 선묵혜자 스님, 이하 기도회) 성지순례단 108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두산을 배경으로 53m 높이의 금빛 포대화상(동상)이 온화한 미소로 한국에서 온 불자들을 반겼다. 불상 규모도 규모이지만, 둥근 해는 마치 포대화상의 광배(光背)처럼 눈부시다. 햇빛에 반사된 포대화상은 설두산 초록 도화지에 영롱한 황금색 물감을 뿌린다.

    포대화상은 중국 오대(五代)시대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성씨와 이름의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세간에는 미륵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알려졌다. 긴 눈썹에 배가 불룩 튀어나온 모습으로 거처 없이 항상 긴 막대기에 포대 하나를 걸치고 다니며 동냥을 하고, 어려운 중생을 돌봐 ‘불교계의 산타클로스’로 통한다. 그래서일까. 순례단의 마음도 포근하다.

    기도회 순례단 108명은 형형색색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설두사 중앙광장에서 육법공양(六法供養)을 올렸다. 기도회 합창단의 찬불가 음성공양이 ‘미륵 성지’ 설두사에 울려 퍼졌다. 중국 남부 특유의 다습하고,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땡볕이 내리쬐었지만 기도회 도반(道伴·깨달음을 목적으로 같은 도를 수행하는 벗)들의 법회는 장엄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현지 중국인 관광객들은 “무슨 행사냐(这是什么事啊)”고 물으며 연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댔다.



    포대화상의 나눔·평화 정신

    이날은 ‘평화의 불 봉안을 위한 예비법회’가 열린 날. ‘평화의 불’은 히말라야에서 자연 발화해 3000년째 타오르는 ‘영원의 불’과, 세계 53개국에서 피워 올린 ‘유엔 평화의 불’이 합쳐진 불로, 석가모니 부처 탄생성지인 네팔 룸비니동산에서 밝혀왔다. 선묵혜자 스님(서울 도안사 주지)은 2013년 4월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람 바란 아다브 네팔 대통령이 채화해준 이 불씨를 직접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옮겨와 임진각과 한국의 명산대찰 등에 분등했다. 선묵혜자 스님과 성지순례단은 이 불을 포대화상의 고향 설두사에 봉안하기에 앞서 이날 예비법회를 연 것이다.



    선묵혜자 스님은 “포대화상의 무소유, 나눔, 평화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빚어진 한중(韓中) 양국 갈등을 해결하고, 불교문화교류에 앞장서야 한다”며 “다음에 설두사를 방문할 때는 ‘평화의 불’을 분등해 기도회와 설두사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법문을 이었다.

    행사에 앞서 순례단을 맞은 설두사 이장 스님은 선묵혜자 스님 등 대표단과 따로 만나 “‘평화의 불’이 설두사에 장엄하게 타오를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불교협회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며 “한국불교의 신행문화를 대표하는 108기도회와 설두사 간 문화교류와 종교 간 화합을 통해 양국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무지개가 떴다”

    이장 스님은 이날 순례단 전원에게 정심과 선물을 공양했고, 제자인 오성 스님을 한국의 종립 동국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해준 선묵혜자 스님과 도안사 측에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앞서 양측은 지난 2월에 만나 ‘평화의 불’ 봉안에 상당 부분 합의를 본 상태. 설두사 측은 조만간 108기도회를 초청해 대대적인 봉안 행사를 봉행키로 했다.

    선 묵혜자 스님은 “부처님 탄생 성지에서 이운해 온 ‘평화의 불’이 중국의 5대 명찰이자 시진핑 주석의 원찰(願刹)인 설두사에 봉안되면 양국 평화 정착과 문화교류의 다리를 놓게 된다”며 “조만간 설두사 봉안을 계기로 북녘 땅에도 평화의 불이 봉안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장 스님은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저장성 불교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중국불교계 핵심 인사로 저장성 성장을 지낸 시진핑 주석은 1년에 한 번 이 절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편 이날 행사 중에는 순례단 모두가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쨍쨍한 햇볕이 내리 쬐는 한여름 날씨에 영롱한 무지개가 뜬 것. 순례단 누군가가 “무지개다” 하고 외치자 선묵혜자 스님과 순례단은 한동안 하늘을 가리키며 ‘때 아닌’ 무지개를 감상했다. 108기도회가 전국 산사를 찾을 때마다 무지개가 떠 선묵혜자 스님은 ‘무지개 스님’으로 불린다는 게 순례단의 전언. 이날 중국에서도 무지개를 본 것이다.  

    108기도회는 이날 설두사가 설립 중인 ‘저장 불교원’도 방문해 한국의 불교대학과 자매결연을 하도록 가교 노릇을 하기로 했다. 중앙과 지방정부 등에서 수천억 원을 투자해 짓는 불교원은 3000여 명이 기거하는 기숙사도 함께 짓고 있다는 가이드 설명에 중국의 불교 진흥책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海天佛國 푸퉈산

    108기도회 도반들은 5월 21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닷새의 성지순례 기간 가는 곳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한 두 손으로 초발심을 붙들었다.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불교 성지순례단들 속에서도 경건하게 법회에 참가하면서 예의와 질서를 잘 지켜 외국 불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5월 23일 항저우의 유서 깊은 항구 닝보(寧波)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푸퉈산(普陀山, 해발 284m)은 산시성 우타이산(五臺山, 문수보살), 쓰촨성 어메이산(峨眉山, 보현보살), 안후이성 주화산(九華山, 지장보살)과 함께 4대 불교성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푸퉈산은 남인도 관세음보살의 영지(靈地) 보타락가(普陀落迦, 범어 Potalaka의 음역)에서 그 명칭을 땄다.

    4대 불교성지 중 유일하게 섬인 푸퉈산은 해천불국(海天佛國)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천혜의 섬과 바다로 둘러싸여 그 자태를 뽐냈다. 보제사(普濟寺) 등 20여 개 사찰은 바다와 어울렸고, 33m 높이에 97개 동판으로 만들어진 남해관음대불은 바다를 내다보며 염화미소를 짓고 있었다.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바다에 접한 보타락가산에 도착한다는 구절이 나오고, 현장법사도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이 산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자는 관음보살상을 보며 강원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이 떠올랐다. 푸퉈산 관음보살상처럼 바닷가 절벽에 세워진 것도 그렇거니와, 1400년 전 의상대사가 이 곳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양양 홍련암에서 관음보살을 만난 것도 관음신앙의 강한 전파력을 설명한다. 해안가 사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연기설화(사찰 등의 건립 내역을 설명하는 설화)는 이곳 푸퉈산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당나라 때 일본의 한 스님이 우타이산에서 관세음보살상을 일본으로 모셔가는데, 푸퉈산에 도착했을 때쯤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없이 바다 동굴(조음동)에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때 어부 장씨 부인이 별실을 내어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스님은 이곳에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을 짓고 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복절도한 순례단

    그러나 서긍의 ‘고려도경(1124)’에는 ‘신라 상인이 우타이산(오대산)에 갔다가 그 상을 조각해 싣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바다로 나갔다가 좌초해 배가 나아가지 않자 관음상을 바위에 내려놓았다’고 전한다.

    순례단과 동행한 자광 스님(전 직지사 주지)은 순례단원과 둘러앉아 “관세음보살님은 지혜와 자비를 고루고루 나누시어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해주신다”며 “오늘 순례단을 위해 이렇게 햇볕을 가려준 것도 관세음보살님의 큰 자비”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현지 가이드는 “연일 30도가 웃도는 쾌청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구름이 끼고 서늘한 바람까지 분다”며 맞장구를 쳤다. 자광 스님은 순례단에게 따라 하라고 말한 뒤 “푸퉈산 관세음보살은 우리를 도와줘요.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제 곁에 있어주세요”라고 선창(先唱)하자, 순간 순례단은 포복절도했다. 



    “순례는 기도, 힐링, 역사 공부”

    선묵혜자 스님은 “이곳은 신라·고려시대 수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구로시오해류를 타고  한반도와 일본을 오가던 곳”이라며 “푸퉈산에 온 만큼 번잡한 생각 내려놓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일심광명(一心光明) 정진하여, 부처님의 가피(加被·부처나 보살이 사람들에게 힘을 줌)가 상서로운 빛처럼 사바에 비추기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자”며 법문을 마무리했다. 선묵혜자 스님 말처럼 인근 닝보에는 송대에 세운 고려사관(高麗使館) 유적이 남아 있다. 순례단은 한국에서 가져온 초를 공양한 뒤 선묵혜자 스님을 따라 “관세음보살”을 외며 관음대불 주변과 좌대 안 법당을 돌았다.

    푸퉈산에서 동남쪽으로 5.3km 떨어진 섬 뤄자산(洛迦山, 해발 97.1m)은 관음보살이 수행정진한 성지다. 그래서일까. 푸퉈산에서 바라본 뤄자산은 관음보살이 편안하게 연꽃에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뤄자산을 해상대와불(海上大臥佛)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푸퉈산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30분 뒤 도착한 뤄자산은 오백나한탑과 원통보전, 대웅전, 송자전 등 섬 전체가 불국토를 연상시켰다.

    순례단 김연수 보살은 “2008년부터 선묵혜자 스님과 산사 순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순례단 활동은 기도는 물론, 사찰 풍경과 문화재를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는 일석삼조 여행”이라고 말했다.

    108기도회 성지순례단은 이 밖에 상하이 옥불사(玉佛寺)와 항저우 영은사(靈隱寺)를 순례한 뒤 서호(西湖)를 관람하며 순례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 마음 찾는 길을 걸으며 부처님과 같아지기를 빌었고, 부처님 뜻에 따라 올곧고 바르게 이웃을 아우르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인톱뷰 | 선묵혜자 스님 “평화의 불, 북한에도 켜졌으면…”

    선묵혜자 스님은 “‘평화의 불’을 모시고 다니는 것은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고, 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이는 곧 가정과 이웃의 평화로 이어진다”며 “결국은 나라의 평화, 남북한, 세계의 평화로 연결되는 만큼 저마다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설두사 ‘평화의 불’ 봉안 예비법회를 무사히 마쳤다.  
    “지난 3월 초 설두사를 방문해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韓中) 간 갈등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해소하기 위해 ‘평화의 불’을 봉안하기로 했다. 이번 순례는 예비법회 성격인데, 민간 외교 차원에서 불교계가 나서서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 사상을 알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양국 평화가 정착되고 문화교류를 하는 데 다리를 놓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각국 성지순례를 통해 평화의 불을 나눌 생각이다. 인연 닿는 곳에 평화의 불을 모시고 평화 법회도 열고…중국을 넘어 북한에도 평화의 불이 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사순례가 중요한 이유
    5·9 대선에 앞서 각 정당에도 평화의 불을 전달했다.
    “나라의 평화와 남북 평화를 바라는 건 종교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연한 마음이다. 정치인들이 남북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의미에서 전달했다.”

    설두사 이장 스님은 ‘제자 유학을 도와줘 고맙다’고 하던데….
    “스님의 제자 오성 스님이 동국대 유학생이 됐다. 한국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해 우리가 그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줬다. 앞으로 수락산 도안사에 머물며 대학을 다닐 예정이다. 평화의 불 덕분에 나도 두 번째 외국인 제자를 맞게 됐다(웃음).”

    9년간의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성지순례가 최근 마무리됐다.
    “108산사순례기도회 상징은 포대화상이다. 예전 도선사 주지로 있을 때 꿈속에서 도선사 포대화상이 모셔진 자리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청담 스님을 뵌 적이 있다(청담 스님은 선묵혜자 스님의 스승이다). 산사순례를 다니면서 포대화상 저금통에 보시금을 거둬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포대화상을 모신 설두사에서 법회를 봉행하고 교류하는 것도 인연법(因緣法) 아니겠나. 불보살의 가피(加被)라고 생각한다.”

    기도회 도반들은 “선묵혜자 스님 외모가 포대화상을 꼭 닮아 우리는 스님을 포대화상이라고 부른다”고 귀띔했다. 

    108산사순례기도회 이후 전국 50여 사찰에서 산사순례기도회가 결성됐다. 스님이 한국 불교 신행문화에 큰일을 한 선지식(善知識)인데.
    “부처님 제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지금도 2차 108산사 순례자와 ‘53기도도량순례’ 순례자를 합쳐 3500여 명이 매달 순례한다. 순례는 현대인이 겪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산사 풍경을 보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사찰에 있는 유서 깊은 문화재도 보고 마음공부도 할 수 있다. 산사순례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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