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호

일자리 만들기

“경험과 전문성 있는 농협이 나서면 일자리 패러다임 바뀔 것”

협동조합 활성화로 좋은 일자리 창출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7-06-21 16: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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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가치 평가 금융서비스 지원 가능
    • 시장 권력은 공급자 아닌 소비자
    • 농협중앙회, 121조 자산에 3만5000여 직원
    • 한국택시·해피브릿지 협동조합 등 성공사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핵심은 ‘공공이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민간의 일자리는 어떻게 늘릴 것인가. 이에 대해선 사실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 대외 환경에 의해 돌아간다. 없던 일자리를 짧은 시일에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간 기업들도 정부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회사 경영 여건이 좋아지지 않는 한 뾰족한 수가 없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공의 영역에선 큰 변화가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 일자리의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했을 때 정일영 사장은 바로 1만 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았나’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지만 다른 공기업들도 저마다 나름의 대책을 내놓아 바뀐 환경을 새삼 실감케 했다.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사장단 회의 때 ‘전력그룹사 좋은 일자리협의회’를 열어 정기적으로 추진 상황과 이행 실적을 점검하기로 했다.



    농협도 5245명 정규직 전환 추진

    공기업은 아니지만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농협중앙회는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0)’ 기조에 맞춰 2만 명 이상의 비정규직 직원 가운데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협은 5월 24일 허식 부회장 주재로 범농협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정규직 전환 범위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역 농협·축협을 제외한 농협 전 계열사 소속 비정규직 직원 5245명의 정규직 전환을 1차로 추진하기로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자리의 질과 관련된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서 더 나아가 이 문제에도 집중하고 있다. 세계노동기구(ILO)는 ‘좋은 일자리(decent work)’를 ‘생산적이고 적정한 임금을 제공하는 기회, 직장에서의 안전과 가족에 대한 사회안전망 제공, 더 나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통합,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남녀 평등’ 등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단순히 임금 문제뿐 아니라 직업 안정성, 개인의 발전과 사회통합 등의 차원에서 취업 희망자의 마음을 얼마나 충족시키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눈을 좀 더 크게 떠서 봐도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의 개념 전환이 이미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자리 공급자인 기업 못지않게 소비자인 개개인이 일자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자리 분야에서도 시장 권력이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로 넘어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관심사인 경제 민주화는 시장체제를 경제(용역 및 재화) 공급자인 기업 및 정부 중심에서 그 수요자인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분배의 형평성 확보 차원을 넘어서는 시스템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협동조합

    따라서 단순히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수요자인 청년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시장이 향후 10년 이상 필요로 하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는 △지속가능성 △노동자의 자부심 △사회적 유대감 충족 △경제생활 유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업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있다. 예컨대 미래가치를 따져보는 일이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 부분에 대해 소홀했다. 금융공학의 핵심은 미래가치의 산정과 상품화다. 금융공학이 등장하고 나서 경제 시스템이 크게 바뀌었는데, 우리의 경제정책 시스템은 여전히 미래가치를 따지는 데 큰 관심이 없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 조건에 맞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미래가치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부심과 사회적 유대감 충족에 유독 민감한 청년 세대가 자본 중심의 주식회사에서 사람 중심의 협동조합형 기업에 눈을 돌릴 만하다.

    협동조합은 왕권국가 형태의 기업인 주식회사의 전횡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민주주의 국가 형태의 기업이다. 협동조합에는 권력(의결권) 독점이 없고, ‘로열 패밀리’나 세습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1인 1표의 원칙에 입각한 동등한 동료만이 존재한다.
    김병국 농협중앙회 이사는 “왕권국가가 한때 풍미하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지구상에 오직 민주주의 국가만이 번영하듯이 앞으로 진보한 시장경제체제하에서는 협동조합 기업이 번영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성공 사례를 보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도 적지 않다. 지식협동조합, 카셰어링협동조합, 출판협동조합, 택시협동조합 등 수많은 분야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2012년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지난해 4월까지 9000여 개가 등장했다.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사회 경제 구조를 질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요즘 서울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COOP’이라고 쓴 노란 택시는 기업형 협동조합인 한국택시협동조합 소속이다. 이 기업은 2015년 택시 노동자 180명이 2500만 원씩 출자해서 자산 45억 원으로 출범했다. 조합원 모두가 주인이며 동시에 노동자다. 법정매각에 나온 한 운수회사를 박 이사장과 택시 기사 등이 사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78명이었던 택시기사가 지금은 170여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고, 봉급도 140만 원에서 270만 원으로 올랐다. 기업주의 몫이 없어지고 자발적인 노동으로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엔 포항 광주 경주에도 택시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외식 프랜차이즈, 식자재 생산과 유통, 외식 컨설팅 등에 뛰어든 해피브릿지협동조합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주식회사 설립은 1999년이지만 2013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100여 명의 조합원과 직원, 490여 개 가맹점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철환 이사장은 주식회사 설립 당시부터 사람 중심 기업을 표방했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안정적’ 모델이 되려면 국가나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고, 특히 금융 시스템의 혁신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협동조합의 단점은 유망 사업을 찾을 때 의사결정이 느리고, 경영 전문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단점은 국가가 보완 필요

    따라서 성공한 협동조합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를 갖춰나간다. 해피브릿지도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를 설립해 경영연구와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협동조합 가운데 하나인 스페인 몬드라곤은 4가지 성공 요인으로 △‘라군아로’라는 사회보장시스템 △몬드라곤 대학을 포함하는 교육 시스템 △공동기금을 모아놓는 인민은행 △사업 혁신을 위한 R&D 연구소를 꼽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협동조합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일자리 창출의 중요 수단으로 여긴다면 국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시스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이루는 4개 기둥인 지배·인력·재무·사업 구조에 대한 경영교육이나 협동조합기업에 맞는 관계형 금융 서비스를 통한 자금 지원 등의 수단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는 기관이 있다.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협동조합인 농협이 바로 그곳이다. 농협은 농업생산성 향상 등 지도사업, 농산물 유통·가공·소비 지원, 농업자금 신용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두고 있다.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의 조합원 수는 225만325명에 이른다. 자산규모 121조 원, 27개 계열사(지주 포함)를 갖고 있고,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연결기준 자산 374조원)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및 계열사 총 직원은 3만5289명에 달한다.

    김병국 농협중앙회 이사는 “협동조합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협동조합의 맏형 격인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김병원 회장 및 이사회가 시대정신에 맞는 협동조합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국민과의 상생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사회와 조합원을 위해

    협동조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 앞에서 농협의 역할을 농협중앙회 관계자에게서 들어봤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몇 가지를 제안했다.

    “협동조합은 기업이 갖는 미션 및 의사결정구조를 포함한 주요 지배구조 시스템이 인간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를 농협의 관련 부서가 컨설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구조는 농협이 갖고 있는 유통 및 금융 사업적 시스템과 교육 시스템을 통해 지원 가능할 것이다.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에서 임직원이 되는 것이 얼마나 미래가치가 있는지를 전파하면 인력구조의 문제도 해결된다. 재무구조 문제는 농협이 갖고 있는 금융 시스템의 일부를 농업금융에서 진일보한 협동조합지원금융으로 가꾸어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래 통일 한국의 경제시스템 통합에도 협동조합형 기업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서충주농협 조합장이기도 한 김병국 이사는 40년째 농협인으로 근무해왔다. 그는 농협이 일터로서의 매력뿐 아니라 협동조합의 오랜 노하우와 재정적 힘을 지닌 조직임을 강조했다. 그의 제언은 일자리 창출에 농협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단초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눈이 높고 의욕도 있지만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그들에게 인간적이며, 사회기여적인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에서 일해보길 권한다. 나도 한때 주식회사에 다니며 높은 급여를 받고 생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이윤 추구에 내몰리는 상황이 싫어 20대 말에 사표를 내고 농협에 들어갔다. 나 자신보다 지역사회와 구성원인 조합원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동료 간에도 인간적 관계가 가능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도 농협이나 협동조합에서 일한다면 소신과 열정을 갖고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농협은 협동조합 맏형

    농협은 대한민국 협동조합의 맏형이다. 취임 1년을 넘어선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특히 이전 회장들보다 협동조합 이념 교육을 크게 강화했다. 전 직원이 해마다 의무적으로 협동조합 이념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농협이 새롭게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김 회장은 농협이 단순히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데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농협이 스스로 젊은이에게 더 많은 일터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선 경험과 전문성을 발휘해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농협이 협동조합에 맞는 관계형 금융 서비스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실제 일자리 창출과 협동조합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NH농협은행은 농업금융, 농지 담보, 심사 신용평가에서 특화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곳이다. 일반 은행에서 주식회사를 상대로 한 대출심사 기준을 협동조합에도 들이대면 그것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NH농협은행이 협동조합의 미래가치를 평가해 금융 서비스를 지원한다면 협동조합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병원 회장은 농업 분야가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일자리도 부족해지는 상황임을 직시하고 농업 활성화를 위해 나섰다. NH농협은행이 은행 업무만 중시하거나 경제지주가 유통 등 경제사업에만 골몰해왔다면, 이제 농협은 농민에게 큰 부담이 되는 비료값을 파격적으로 인하하는 등 조합원 중심 정책을 통해 농가소득 5000만 원 달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국민과 상생하는 농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농업이 하향업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농가소득 5000만 원 달성 시대가 되면 어느 산업 못지않게 유망한 곳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농업에 투신해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농업을 업그레이드해주기를 당부한다. 과거에 어려웠던 농촌을 발전시킨 것도 농업협동조합이었다. 김병원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부터 농촌에 머물며 창농(創農) 등을 꿈꾸는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대학까지 학비와 창농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성과 일자리 창출 기여”

    이제는 농협이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나설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경험과 전문성 있는 농협이 나서면 일자리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협동조합을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협동조합금융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열정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가 인간 중심인 협동조합에 많이 진출해 기업의 주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갑과 을이 없는 사회를 협동조합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이 과연 청년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민간 일자리 창출의 물꼬를 틔울 수 있을까. 수만 개의 대기업 일자리 못지않은 안정적 일자리를 당장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무궁무진하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입안한 김용기 아주대 교수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 협동조합의 기여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은 이윤추구와 사회변화·기여라는 목적을 동시에 갖고 있으므로 공공기관이 아니어도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에도 기여할 것이다. 보육이나 요양 등 사회서비스와 관련해 정부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위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보다 더 전문성을 갖고 잘할 수 있는 이가 많다. 한국처럼 공공의 영역이 작은 나라에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제3섹터가 공공과 병행해가며 나아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자리 창출은 공공이건 민간이건 생산성이라는 기준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며 “조합원의 자발성이 강한 협동조합도 생산성이 높은 분야가 많이 있으므로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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