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호

정책 점검

‘묻지마 나눠먹기’ 이제 그만! 소외계층 복지에 제대로 사용해야

복권기금 법정배분제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입력2017-07-21 1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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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권위원회는 복권의 공익성을 강조하며 ‘복권은 행복나눔권’이라고 홍보한다. 복권기금이 소외된 이웃의 복지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돈이 ‘법정배분’이란 이름 아래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 법정배분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매주 토요일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에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2위를 장식하는 게 ‘로또당첨번호’다. 로또복권은 비록 ‘814만분의 1’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단돈 1000원으로 ‘인생역전’을 기대할 수 있어, 소시민에게 팍팍한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사무처는 올해 복권 판매 총액이 4조164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판매액 3조8855억 원보다 7.2% 늘어난 수치다. 내년엔 4조4038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더구나 내년 12월부터는 로또복권을 인터넷을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 경우 복권 판매는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

    복권은 카지노나 경마 등 다른 사행산업에 비해 중독성도 약하다. 주식보다 더 낮다는 분석도 있다. 외국에선 레저문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행성이 있는 사행산업인 것은 분명하다. 2000년대 초, 로또복권 출시 초창기에 1등 당첨금이 수백억 원대에 이르면서 로또 광풍이 일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해 로또복권만 4조 원 넘게 팔렸다. 이후 복권위원회사무처를 중심으로 강력한 사행심 억제정책을 펴면서 연 매출이 2조4000억 원대로 낮아졌다.



    누구를 위한 ‘행복후원권’?

    사행성이 있는 상품임에도 로또복권으로 대표되는 복권이 우리 국민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일확천금’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로또복권 1등 당첨금은 세금을 제하면 평균 10억 원 남짓으로 ‘인생역전’을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그 이유에 대해 현재 복권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는 ‘복권의 공익적 기능을 적극 알림으로써 복권에 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복권위원회사무처가 복권에 대한 국민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 71.1%가 복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복권수익금(복권기금)으로 소외계층을 지원해서’(41.6%)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복권을 구매함으로써 행운도 기대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도 준다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지갑을 열어 복권을 사는 것이다. 복권위원회와 나눔로또가 내건 슬로건도 ‘복권은 행복후원권’이다.

    다시 말해 복권위원회사무처와 복권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부’를 앞세워 복권이란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낸 사실상의 ‘기부금’은 지갑을 연 소비자들의 생각대로 제대로 사용되고 있을까.



    ‘로또’ 맞은 정부 기관과 지자체

    현재 복권판매액은 50%가 당첨금으로 지급되고, 운영비와 관리비 등으로 8%가 지출되며, 나머지 42%가 복권기금으로 조성된다. 쉽게 설명하면 로또복권 한 게임 판매금액 1000원 중 평균 420원이 복권기금으로 조성되는 셈이다. 이외에도 복권기금의 운용으로 생기는 수익금과 당첨자가 받아가지 않은 미수령 당첨금도 복권기금에 편입된다. 지난해 이렇게 조성된 복권기금이 1조6300억 원이 넘었고, 올해는 1조73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권기금은 복권사업으로 생긴 재원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기금이다.

    현재 복권기금은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23조 1항에 따라 법정배분사업에 35%,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사업에 나머지 65%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367억 원이, 올해는 5779억9700만 원이 법정배분사업에 배정됐다.

    법정배분 규정은 지난 2004년 제정된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명시됐다. 법률이 시행되기 전, 개별 법률에 근거해 복권을 발행하던 9개 기관(국가보훈처,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국토해양부, 산림청, 중소기업청,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득권을 인정해서다.

    과거 자체적으로 복권을 판매해 거둔 수익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였는데, 로또복권이 이렇게까지 대박을 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제주특별자치도만 해도 2001년 관광복권으로 거둔 수익이 203억 원이었는데, 올해 법정배분으로 받은 수익이 895억 원에 달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도 2001년 체육복권으로 얻은 수익이 191억 원이었는데, 올해 법정배분으로 받는 돈이 629억 원에 이른다. 미래창조과학부도 2001년 기술복권 수익이 319억 원이었는데 올해 법정배분으로 728억 원을 받는다. 다른 기관들 역시 최소 2배 이상 수익이 증가했다. 문화재청은 복권 발행 기관이 아니었음에도 언제부터인가 법정배분사업으로 지정돼 올해 8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배분받는다. 이들 기관이야말로 진짜 로또를 맞은 셈이다.

    이렇게 생긴 법정배분 규정이 복권기금 취지에 맞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서는 복권기금에 대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지원사업’ ‘국가유공자에 대한 복지사업’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다문화가족 지원사업’ ‘문화·예술 진흥사업’ ‘대통령령으로 정한 공익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정배분의 경우 예산 배분이 규정된 비율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런 원칙과 거리가 먼 사업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사업 초기부터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지방재정으로 당연히 집행해야 할 사업에 복권기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조차 그 예산이 복권기금에서 조달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문제 있다는 걸 알지만…”

    기획재정부는 2004년 4월 ‘복권 및 복권기금법’을 시행하며 5년 후에 기금 등의 자금 소요를 감안해 법정배분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법정배분비율을 없애거나 25%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관련 기관과 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1년에도 복권위원회사무처는 나눠먹기식 관행을 줄이겠다며 자금 소요에 따라 배분율을 20% 범위 안에서 가감할 수 있도록 하는 복권기금 성과 배분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성과평가 결과를 반영해 특정사업에 대해 배분액을 깎더라도 해당 기관이 다른 사업을 하겠다며 삭감분을 다시 요청하면 이를 받아줄 수밖에 없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법정배분비율 자체가 법률로 정해져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복권위원회는 지난해에도 법정배분제를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24일 열린 ‘복권 정책 포럼’에서 당시 복권위원장이던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복권산업 법정배분제도와 거버넌스 등 기금 운용방식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결론을 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복권위원회사무처는 “현재 법정배분사업의 문제점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으며, 앞으로 법정배분기관·관련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법정배분제도 개선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계획”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지역구 의식해 반대하는 정치권

    지난해 복권기금 법정배분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연구한 오영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평가제도팀장은 “매년 일정비율의 재원을 특정 기금·기관에 배분하면서 복권기금 사업 취지와 괴리돼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사업들 중에는 지역개발을 위한 일회성 건설에 지원하는 등 사업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성과도 낮은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오 팀장은 “원칙적으로 법정배분비율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며 “공익적 성격이 부족한 사업은 복권기금 대신 일반예산을 활용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법정배분을 받는 지자체와 기관들은 당장 돈줄이 끊기면서 재정 운용에 차질이 생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는 더 큰 장애물이다. 법정배분제를 폐지하려면 복권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정배분사업 상당수가 지자체 사업이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당장 지난해 법정배분제가 공론화되자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인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위 의원의 지역구는 제주도다.

    복권위원회 복권위원인 박찬우 세금바로쓰기납세자운동본부장은 “법정배분의 경우 일부 지자체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돈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일반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을 복권기금으로 진행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는 복권기금 본래 취지와 부합하지 않은 사업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또 “최근 들어 지자체에서도 본래 용도에 맞는 사업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법정배분제를 폐지할 경우 지자체에서 예산 부족으로 꼭 필요한 사업을 못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며 법정배분제 폐지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올해 12월이면 로또복권이 시작된 지 15년이 된다. 법령에 의해 복권기금이란 이름으로 수익금이 사용되기 시작한 지도 13년이 넘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복권기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복권기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물음은 복권을 왜 발행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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