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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들이 본 ‘프로야구 팬’

엘-롯-기 팬, 화끈 두산 팬, 젠틀 삼성 팬, 이탈 중

  • 남훈희|신동아 객원기자 brentnam11@gmail.com

엘-롯-기 팬, 화끈 두산 팬, 젠틀 삼성 팬, 이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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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맛이 가서…”

엘-롯-기 팬, 화끈 두산 팬, 젠틀  삼성 팬, 이탈 중

만원 관중을 이룬 서울 잠실구장의 LG-두산전.[동아일보 김종원 기자]

이들에게 입장권을 많이 팔았는지부터 물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A씨는 “많이 못 팔았다. 지금 구장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내외야 구분 없이 텅 빈 곳이 많을 거다. 오늘은 절반도 못 채울 것 같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암표상 B씨는 “작년부터 삼성 라이온즈가 맛이 가서 그렇다. 재작년까지는 평일에도 삼성 팬들이 잠실구장에 많이 왔다. 올해는 이승엽 은퇴 시즌인데도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어 B씨는 “10개 구단 팬 중에서 삼성 팬이 요즘 불행하다. 삼성이 다년 간 왕좌에 있다가 꼴찌권으로 밀리면서 상당수 삼성 팬이 우울증을 호소한다. 경기장에도 안 오고 TV중계도 안 보겠다고 한다. 이탈하는 팬이 늘고 있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이날 KBO가 공식 집계한 관중 수는 잠실구장의 2만6000여 좌석 중 절반을 간신히 넘은 1만4197명이었다. 치킨 매장에 모인 5명의 암표상은 대개 학력이 낮고,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했고, 웨이터 배달부 등으로 일하다 암표상이 됐는데, 이른 경우는 동대문야구장 시절 시작한 이도 있었다.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기계 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일을 못 하게 됐다. 나와서 빈둥대던 와중에 아는 고향 후배가 ‘야구장만 한 노다지가 없다’고 해 지금까지 왔다.” (A씨) 

암표상도 ‘직업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40대 초반의 암표상 C씨는 “우리를 ‘잡범’으로 취급할 때는 분노가 솟구친다. 암표를 팔아 먹고사는 게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야구 붐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요한 경기에선 입장권은 한정되어 있지만 보려는 사람은 많다. 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관람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다. 암표상은 수수료를 받고 구매를 대행해줌으로써 야구 관람을 더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준다. 일종의 에이전트인 암표상을 통해 한정된 입장권의 ‘정의로운 분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C씨)

A씨에 따르면, 잠실구장을 비롯해 전국 야구장에서 활동하는 암표상은 약 15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여성은 30명 정도다. KBO리그가 8구단 체제로 운영되던 시절에는 100명 정도였다고 한다. 2013년 NC 다이노스, 2015년 kt 위즈가 각각 경상남도 창원과 경기도 수원을 연고로 창단돼 10구단 체제가 되면서 작금의 150명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묵직한 두산, 점잖은 두산 팬”

잠실구장의 경우 ‘주중(화·수·목) 일반 경기’가 열릴 땐 20명 안팎의 암표상이 영업을 하고, ‘주말(금·토·일) 빅 매치’가 열릴 땐 40명 안팎의 암표상이 움직인다고 한다. 어쩌면 각 구단의 마케팅 부서만큼 흥행에 민감한 암표상이 정의하는 ‘빅 매치’란 무엇일까.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나 두산 베어즈, 이 중에서도 LG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 전국구 인기를 자랑하는 롯데 자이언츠나 KIA 타이거즈가 맞붙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암표상 B씨)

암표상들은 이구동성으로 롯데나 KIA가 잠실 원정경기를 오는 날이면 입장권 가격을 ‘엿장수 마음대로’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경기엔 부산과 광주에서 활동하는 암표상까지 대거 상경한다고 한다. C씨는 “입장권만 충분히 확보하면 잠실의 롯데-LG전, KIA-LG전은 그냥 돈을 쓸어 담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암표상의 소원은 LG, 두산, 롯데, KIA가 포스트시즌에 동반 진출하는 것이다.

구단별 팬 문화와 관련해 암표상 D씨는 “엘롯기+두산(LG, 롯데, KIA+두산) 대 나머지(삼성, 한화 이글즈, SK 와이번즈,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kt 위즈)로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D씨는 “엘롯기+두산 4개 구단의 팬 문화는 자주 만원 관중을 채워줄 정도로 구단에 대해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열정적이다. 나머지 6개 구단의 팬 문화는 이보다 약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덜 열정적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상위 4개 구단의 팬 문화도 서로 갈린다. D씨는 “두산이 묵직한 팀 컬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두산 팬은 비교적 젠틀한(점잖은) 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 이후 신규 여성 팬이 주로 두산을 중심으로 많이 유입됐다. 반면 LG 팬들은 한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화끈하게 타오른다. 열정 측면에서 LG 팬이 두산 팬을 압도한다”고 말한다. 치킨 집에 모인 암표상들은 대체로 “LG 팬이 가장 정체성이 강하고 열정적이며 이어 KIA 팬, 롯데 팬, 두산 팬 순”이라고 평가했다.

암표상 E씨는 “엘롯기는 원래 세 팀이 꼴찌를 도맡으면서 나온 말이다. 세 팀은 원래 경기력이 헬렐레하고, 세 팀의 팬은 원래 돈을 헤프게 쓴다. 우리 같은 암표상에겐 봉”이라고 말했다. 2016년 포스트시즌 LG-KIA 와일드카드전에서 암표 가격은 평소 암표 가격의 3배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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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희|신동아 객원기자 brentnam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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