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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거리신화는 부동산투자 열풍이 함께 만든 결과”…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리단길’ 신화 만든 장진우 ㈜장진우 대표

  • 송기자 기자|ehee@donga.com

“거리신화는 부동산투자 열풍이 함께 만든 결과”…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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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우 ㈜장진우의 대표는 서울 이태원 뒷골목 경리단길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일명 ‘장진우 거리’로 통하는 경리단길에서만 콘셉트와 스타일이 다른 업장을 무려 20곳이나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어디든 그의 손길이 스치면 대박이 나고 특색 있는 거리로 탄생한다.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서울 망원동에서는 ‘망리단길’, 광주 동명동에서는 ‘동리단길’, 줄줄이 그의 거리로 이름 붙여지고 있다.
“거리신화는 부동산투자 열풍이   함께 만든 결과”…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지호영 기자]

과학과 편리가 질주하는 도심의 중심에는 언제나 ‘개발’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개발’이란 말의 사촌형제쯤 되는 ‘더 높게, 더 편리하게, 더 쾌적하게, 더 안전하게’ 이런 슬로건이 초대형 주상복합빌딩·초고층 아파트·최첨단 오피스 빌딩을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 터를 잡고 부자 되기를 꿈꾼다. 다 좋은데 어딘지 인간미가 부족하다. 익숙한 도시 개발의 프레임을 깨고 훈훈한 사람 냄새와 깔깔 웃음소리가 퍼져 나오는 곳이 있다. 그곳은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었다. 인적 드물고 허름한 뒷골목, 경리단길이었다. 7월 6일 그곳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장진우(32) ㈜장진우의 대표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진우 식당의 탄생

식당은 어떻게 시작했나.
“본래 상업사진가였다. 인물 전문이었고 연예인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강남에 있었고, 당연히 스튜디오가 있는 곳도 강남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술집이 활개 치는 거리 정서가 나랑 안 맞았다. 클라이언트와 단란주점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생각한 게 술집 가지 말고 ‘차라리 밥을 해주자’였다. 살던 집은 너무 초라해서 누구를 초대할 수 없었고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5~6평 테이블 하나 있는 미팅룸 겸 서재,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주방시설을 갖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감각을 발휘해 작아도 멋지게 꾸몄다. 그런 곳에서 밥을 해줬더니 오는 사람마다 맛있다고 난리였다. 식당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떤 음식을 해줬나.
“처음에는 꽁치김치찌개부터 시작해서 전어철에는 전어회무침, 멍게철에는 멍게회덮밥, 계절에 따라 재료 되는 대로, 여건에 따라 한식·일식·중식·이탈리아식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었다. 다들 뭘 해줘도 맛있다고 했다.”

요리는 어디에서 배웠나.
“나의 큰 스승은 ‘제이미 올리버’다. 네덜란드 여행 갔을 때 도시에 반해 잠시 머물렀는데, 영어를 잘 못해 메뉴판 읽기가 힘들었다.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가 없어 100편도 넘는 제이미 올리버의 비디오를 보며 열심히 따라 했다.”

방송 본다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만의 공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자는 공간·생각하는 공간·밥 먹는 공간이 하나로 되어 있거나 혹은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다. 그러면 창의적 생각이 잘 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뭐든 하게 된다. 머릿속 생각이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따른다. 공간이 무척 중요하다.” 

언제부터 장진우 식당이 되었나.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픈한 후 1년 뒤부터였다. 함께 밥 먹은 지인들이 ‘진우 식당 가서 밥 먹자’는 말을 자주 했고, 자연스럽게 ‘장진우 식당’이 됐다. 그중에는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연예인을 불러들이면서 유명해졌다. 당시에는 공유, 공효진, 김민희, 씨엘, 크리스탈 등 빅 스타급 연예인이 매일 찾아왔다. 그때부터 일반인도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연예인들 덕분이었다.”

영감은 일상에서, 실행은 빠르게

“거리신화는 부동산투자 열풍이   함께 만든 결과”… “나 역시 디벨로퍼가 되어 있었다”

재즈 비스트로 ‘그랑블루’. <킨포크> 매거진에서 사람들이 창고 같은 곳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장진우 제공]

전문 요리사가 아닌데 힘들지 않았나.
“힘들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좋아하는 서핑이나 하며 히피처럼 살 거라고 떠났는데, 발견한 게 ‘문오리’다. 문오리는 문어와 오리를 함께 넣고 끓인 전골요리로 tvN ‘한식대첩’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김정호 명인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다. 그분과 친해져 매일 서핑하고 식당으로 가 요리를 배웠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문오리’를 차렸더니 이것도 역시 대박이 났다. 정말 뭘 해도 다 되는 시기였다.”

아무것도 아닌 곳에 톱스타가 찾아오고, 대기업 회장, 재벌2세, 해외 유명인이 예약을 하고 밥을 먹고 여흥을 즐기는 곳.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겠다고 했는데도 아이디어는 죽지 않고 새 유행을 만들어내고, 열정은 뻗치고, 감각은 살아 있고, 젊고…. 급기야 간판 없는 작은 식당은 그랑블루, 문오리, 경성스테이크, 방범포차, 프랭크, 마틸다, 스핀들마켓, 이름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줄줄이 늘어나 ‘장진우 사단’ ‘장진우 거리’를 만들었다. 

새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월세가 싸서 들어온 곳에 사람이 많이 오기 시작하니 그들에게 뭔가 다른 것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 장진우 식당 하나 보고 왔는데 밥만 먹고 가면 아쉽지 않나. 그래서 생각했던 거다. ‘빵도 사가면 좋지 않을까’ ‘케이크 살 때 꽃을 사면 좋지 않을까’ ‘그림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술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씩 늘어났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고, 영감은 어떻게 현실화되나.
“영감은 일상에서 찾고, 실행은 무척 빠르게 이루어진다. 아내가 샐러드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런데 샐러드집이 없잖아. 하나 만들게’ 이런 식이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나온 이야기가 곧바로 ‘방범포차’로 현실화되었다. 추진 속도가 빠르다.” 

브랜딩 능력도 탁월하다. 노하우가 있나.
“사람들은 뭔가 잘 안 되면 빨리 접고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 ‘사이클(cycle)’로 접근한다. 지금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쳐줄 새 브랜드를 만든다. 그러면 두 개가 회전하면서 잘 안 되는 브랜드를 받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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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자 기자|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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