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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상황엔 ‘핵무장 하겠다’ 中에 명확히 밝혀야”

서진영 사회과학원 원장

  • 이문기|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최악 상황엔 ‘핵무장 하겠다’ 中에 명확히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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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봄날은 갔다”

한중수교 25주년 기념식이 따로 열릴 만큼 한중 관계가 경색됐습니다. 경제, 사회 영역에서 중국과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에 취해 전략적 인식 격차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8월 22일 화정평화재단 강연에서 말했듯 앞으로 한중수교사(史)를 서술할 때 사드 이전, 이후로 양분해야 할 겁니다. 사드 배치 문제가 아니라 사드로 상징되는 한중 관계 변화 양상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드 이전의 한중 관계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배경이 뭐였는지부터 살펴봅시다. 1992년 수교의 밑바탕에는 한국·미국·중국이 가진 전략적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 같은 공감대 속에 한중 관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겁니다. 현재는 그 공감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는 “공감대가 약화한 것은 개혁·개방 성공으로 중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미·중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면서 “2008년을 경계로 아시아에서 전략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2년 한중수교 전후 한국·미국·중국이 공유한 전략은 세계화 흐름을 적극 활용하면 윈-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89~1991년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탈냉전이 일어납니다. 세계화와 탈냉전은 동전의 앞뒤죠. 중국은 이 같은 격동기에 톈안먼 사태(1989년 6월 4일)를 겪습니다. 미국 조야와 학계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언급합니다. 체제 경쟁이 끝났다는 거였죠. 중국이나 북한, 쿠바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경제 제재를 통해 중국을 옥죄면 자본주의가 세계를 완전히 제압한다고 본 겁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였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게 부시는 대(對)중국 관계를 확대·발전시키는 게 미국 국익에 맞고 세계 발전에도 기여한다고 봤습니다. 여론, 의회 압력 탓에 베이징을 공격하면서도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너희들과 잘 지낼 것이다. 오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서방세계 앞잡이와 손잡다

“최악 상황엔 ‘핵무장 하겠다’ 中에 명확히 밝혀야”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 의지를 다진 후 한국과 수교를 결정했다. 그는 남순강화 때 “당의 기본 노선(개혁·개방)은 100년간 동요하지 말고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동아일보]

한국은 비슷한 시기 북방 정책에 나섭니다.
“한국에서도 논쟁이 벌어집니다. 한중수교 하려면 대만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만을 어떻게 버리느냐, 중국에 다가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과 ‘중국과 무조건 수교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뉩니다. 나는 중국과 수교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봤고요. 외교부 관리들이 미국과 서방의 대(對)중국 제재가 한창인데 한중수교에 매달리는 것은 우습지 않으냐고 할 때입니다. 외교부 관리들에게 ‘미국에 알아봐라, 오히려 좋아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워싱턴은 이해한다(understanding)는 반응을 보였죠. 노태우 정부는 중국뿐 아니라 돈을 주고서라도 소련과 수교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립니다. 소련이 붕괴하는 통에 차관으로 제공한 게 나중에 문제가 됐으나 적은 비용으로 잘 처리했다고 봐요. 북방 정책을 전략으로 삼은 것은 노태우 정부의 업적입니다. ‘베이징,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으로’가 북방 정책의 슬로건이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와 한국 북방정책, 미국 대중 정책이 맞물려 교집합을 이뤘다는 거군요.
“한중수교가 이뤄진 1992년 덩샤오핑이 걸은 길을 봅시다.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 최고책임자가 덩샤오핑 아닙니까. 자오쯔양(趙紫陽), 후야오방(胡曜邦)이 주도한 개혁의 시대는 끝났으며 중국은 보수 정권 아래에서 체제 옹호로 가리라고 서방이 내다볼 때 덩샤오핑이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섭니다.”

남순강화는 덩샤오핑이 1992년 1월 18일~2월 22일 우한·선전·광저우·상하이를 돌면서 개혁·개방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을 가리킨다.

“남순강화는 중국이 굴기하는 데 횃불을 밝힌 일대 사건이에요. 덩샤오핑이 남순강화에 나서기 이전까지 베이징은 한국을 ‘서방세계의 앞잡이’로 여겼습니다. 그런 한국과 수교를 통해 중국은 서방에 ‘앞으로 세계와 지속적으로 협력한다. 개혁·개방에 나선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중국이 세계에 편입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죠. 요컨대 1990년대 초반 한국·미국·중국 전략가들 사이에 세계화 시대에는 체제, 이념의 차이를 넘어 협력하면 윈-윈이란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수교 이후 한중 관계가 역사상 유례없이 경이적으로 발전한 까닭도 그래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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