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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게 듣는다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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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옳은 방향
  • ● 북핵 문제는 대화 외엔 대안이 없다
  • ● 脫원전, 업계와 합의하 목표 시점 설정해야
  • ● 독일 리더십의 원천은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
“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홍중식 기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9월 8일 한국을 찾아 13일까지 머물렀다. 독일에서 2006년 발간된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문명국가로의 귀환’(메디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춘 방한이었다. 올해 73세의 노정객은 이미 예닐곱 차례 한국을 찾은 적이 있지만 이번 방한은 좀 더 의미심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슈뢰더 정부(1998~2005) 간 비상한 싱크로율 때문이다.

슈뢰더는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변호사가 된 뒤 진보 성향 정치인이 됐다. 역시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학으로 인권변호사를 거친 진보 성향의 문재인 대통령과 닮은꼴이다. 또 슈뢰더 정부는 1998년 연방총선에서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으로 탄생했다. 독일 연방정부 최초의 적록(赤綠)연정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화두인 협치(協治)와 공명한다. 그 적록연정의 주요 공약이 탈(脫)원전이었고 슈뢰더 정부는 203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국가적 합의를 2000년에 이끌어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역시 탈원전이다.

무엇보다 슈뢰더 정부는 2003년 주요 지지층이던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복지 비용을 절감하는 국가개혁안 ‘어젠다 2010’(일명 하르츠 개혁)을 도입했다. 1990년 통독의 후유증으로 실업자가 500만을 넘어서면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자 일종의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 국민은 슈뢰더 정부에 등을 돌렸다. 당연히 누려야 할 기득권을 빼앗겼다는 배신감의 표출이었다. 결국 슈뢰더는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해 1년이나 앞당겨 실시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을 내놔야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자살’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결실은 후임인 앙겔라 메르켈 정부 들어서며 보게 됐고 그에 대한 조롱은 21세기 독일 번영의 초석이 됐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한국에선 과거 노무현 정부에 대해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실제로 우회전한 정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서서히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슈뢰더의 ‘어젠다 2010’을 놓고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다’는 비아냥은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자서전을 쓴 이유

“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그의 자서전에는 7년의 총리 재임 기간 자신이 겪은 고뇌와 결단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그 책이 무려 11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된 것은 역시 슈뢰더 식 개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절실함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서가 아닐까. 이를 반영하듯 9월 11일엔 정세균 국회의장, 12일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대담을 나눴고 신문·방송과 인터뷰 및 특강이 줄을 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터전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1000만 원의 성금을 기탁하고 1980년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며 폭넓은 행보를 펼쳤다. 공식 스케줄을 시작하기 전인 10일 오후 서울 남산에 있는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정치인의 자서전이라는 게 딱딱하기 마련인데 이번 책에선 구체적 사안마다 본인이 느낀 심정을 매우 솔직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고 읽는 재미를 줬다.
“재밌게 읽어줬다니 기쁘다. 이번 책이 통상적인 자서전과 다른 점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도 원서 제목이 ‘결정(Entscheidungen)’이란 점에서 드러나듯 내가 내린 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저에 대한 평전도 발표되긴 했는데 역사학자가 쓴 것이라 너무 두껍고 학술적이라서 번역되기에 힘들 거란 생각이 든다.(웃음) 그 평전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이 자서전을 쓴 이유는 내가 재임하면서 내린 중요한 정책과 원칙 등의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저널리스트가 쓴 것만 보고 이해했는데, 이번엔 내 자신이 직접 설명해보자는 취지였다.”

기자들이 쓴 게 성에 차지 않은 듯하다(웃음).
“(눈을 찡긋하며) 더 잘 아시지 않나? 기자와 정치인 사이에는 항상 긴장감이 존재한다. 기자들은 가능한 한 많이 알고 싶어 하고, 정치인은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를 다 못 할 때가 많다. 기자가 가능하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기자 정신에 충실한 것이라 탓할 바가 못 된다. 그렇지만 정치인 또한 그걸 다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가가 기자와 이야기할 때 중요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색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치가는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혀끝에 다 옮길 수는 없다는 것만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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