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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게 듣는다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정치지도자는 정파 아닌 국익 위한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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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는 자서전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토로하며 한국인들이 유의해볼 만한 3가지 포인트를 꼽았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독일 통합의 경험을 통해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데 참조하라, ‘어젠다 2010’의 사례를 국가적 개혁과제 처리의 벤치마킹 사례로 삼으라, 탈원전 문제와 같은 갈등 현안에 대한 사회적 타협을 끌어내는 과정에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와 슈뢰더 정부의 유사점 때문에 이번 방한이 더 주목받고 있지 않나 싶다. 당신이 문재인 정부의 멘토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좌우를 망라하고 은연중에 잠재돼 있다는 걸 느끼는지.
“나는 외부인에 불과하다.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곤 해도 가끔씩 방문하는 것인데 이 정도를 가지고 내가 한국을 좀 아니까 조언하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 기조에 대해선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 특히나 노조가 한편에 있고, 사용자가 한편에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노조와 사용자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간에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총리 재임 시절 한때 500만 명대에 이르렀던 독일 실업자가 ‘어젠다 2010’ 채택 이후 현재는 200만 명대로 내려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이 산업경쟁력을 제고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이 중소·중견기업의 육성을 더 강화함으로써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는 방향은 분명 옳다고 본다. 특히 4차 산업혁명(독일에선 이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한다)에서 중요한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신속성과 민첩성이다. 미래에는 큰 기업이 아니라 급속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날씬한 기업이 유리하다.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기업가적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인드, 혁신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더 빛을 발할 것이란 소리다. 그렇다고 한국 대기업이 경쟁력이 없으니 망하게 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에 좋은 대기업이 많고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경쟁력은 그 결대로 키워주면 된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대화밖에 없다”

이번 방한 기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 중소기업 육성을 모토로 삼은 ‘월드 클래스 300’ 협회 초청 조찬강연도 펼친다고 들었다.
“독일 경제가 탄탄한 것은 ‘히든 챔피언스’라 하는 중소기업(Mittelstand)이 많아서다. 가족 경영으로 굴러갈 정도로 작은 기업이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 많다. ‘월드 클래스 30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이런 중소기업이 더욱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정부가 세제 지원뿐 아니라 투자 유치와 기술혁신을 적극 도와줘야 한다. 이런 기업이 가업 승계가 이뤄져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도 필요하다.”

슈뢰더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에서 미국과 동맹을 중시하지만 전쟁에는 반대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탄력적이면서도 능동적 대처로 독일의 위상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동맹인 미국 편에 서서 반테러 공동전선에 참여했다. 그래서 테러를 사주한 오사마 빈 라덴의 근거지를 제공한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해방전쟁에 독일군 파병을 감행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을 겨냥한 이라크전에 대해선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이라크전 반대 전선을 구축했다. 훗날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이라크에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역풍을 맞은 반면 슈뢰더의 혜안은 빛을 발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서 독일과 유럽연합(EU)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상찬까지 받고 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정계 은퇴 후인 2006년부터 독일과 러시아 합작회사인 에너지 기업 노르트스트림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의 핵 진공상태가 26년 만에 깨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런 도발에 대해 전쟁 불사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다.
“(단호한 표정으로) 대화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화 정책이었다. 1970년대 초 광범위한 긴장 완화 정책을 채택한 이후 독일은 이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체제 간 경계를 넘어선 대화라는 게 힘들고 벅찬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시도한 것이 결국 독일의 평화통일을 가져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상황이 현재 심각하고 평화적으로 풀어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대화 상대가 돼야 할 북한이 책임감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런 북한을 대화의 장에 끌어내도록 압박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과 공조가 긴요한데 미국은 중국에 대해선 경제적 압박을, 러시아에 대해선 고립 정책을 펴고 있어 사태 해결이 난망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정책 기조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군사적인 해결책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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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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