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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밭갈이는 종에게 길쌈은 여종에게 묻는다

무신 김세적의 승지 임명

  •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밭갈이는 종에게 길쌈은 여종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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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의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승정원 일기.[동아DB]

왕명의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승정원 일기.[동아DB]

문(文)과 무(武)는 일체이니, 문에만 힘을 쏟으면 외적을 물리칠 수 없고 무에만 힘을 쏟으면 내정을 다스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내가 즉위한 이래 문관과 무관을 번갈아 등용한 것이다. <성종실록 11년 9월 15일>

성종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육조의 주요 직책과 승지 자리에 무신들을 꾸준히 등용했다. 김세적을 승지로 임명한 것 또한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직책에 임명된 무신들이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에 사헌부와 사간원을 필두로 한 문신들의 반대가 잇따랐다. 하지만 성종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세적은 꽤 오랫동안 승지 자리를 지켰다. 사관의 쓴소리도 지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성종 14년(1483) 10월 12일, 성종은 송나라 왕우칭(王禹偁)의 글 ‘대루원기(待漏院記)’를 승정원 벽에 걸어두고 보면서 반성의 계기로 삼으라는 전교를 내렸다. 이어서 좌승지로 있던 김세적에게 따로 당부한다.

그대는 분명 이 글을 모를 것이다. 이 글을 공부하도록 하라. 내가 나중에 글에 있는 말을 뽑아서 물어보겠다. <성종실록 14년 10월 12일>

대루원은 아침에 조정으로 출근하는 관원이 궐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머물던 장소다. 왕우칭이 대루원에 앉아 관원들이 나라와 임금과 백성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일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글로 정리한 것이 ‘대루원기’다. 왕이 김세적에게 이 글을 공부하라고 당부한 것을 보면, 김세적은 승지가 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조정의 여론을 돌릴 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고, 그런데도 성종은 김세적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성종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관은 또다시 독설을 날렸다.

김세적은 늘 활이나 쏘고 말이나 탔지 글공부를 하지 않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승지로 발탁되더니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영리를 추구하고 청탁하는 일뿐이고, 친하게 지내며 어울리는 자들은 모두 저속한 공인(工人)이나 장사치들뿐이었다. 왕명을 출납하는 직무에는 장님이나 귀머거리와 마찬가지이니, 〈대루원기〉를 백번 읽어본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성종실록 14년 10월 12일>

인신공격에 가까울 만큼 혹독한 비판이다. 표면적으로는 김세적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김세적을 승지로 임명한 성종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신들을 조정의 주요 관직에 등용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김세적이나 성종이 이 논평을 보았다면 상당히 언짢았겠지만 사관들의 비판에도 그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성종은 무신도 요직에 등용해야 한다는 원칙만 내세울 뿐 적임자를 발탁하지 못했고, 김세적은 직책에 부합하는 능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성종실록’에 보이는 성종과 김세적과 사관의 삼각관계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성종의 원칙과 현실적인 여건이 조화를 이루게 할 방안은 없었을까? 김세적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았을까? 사관의 비판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다. 

대통령이 지명한 주요 공직자들이 여론의 압박에 밀려 줄줄이 낙마하는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쓰는 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1 왕명(王命)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 국왕 직속 기관.
2 同副承旨. 승정원에 속한 정삼품 벼슬.
3 사간원에 속한 종삼품 벼슬.
4 司憲府. 정사(政事)를 논의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관리의 비행을 조사해 그 책임
을 규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5 司諫院. 왕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입력 2017-11-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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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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