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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5화. 他者로부터의 신호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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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시작은 무겁고 깊은 잠이었을 것이다. 전날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고부터 쓰기 시작한 새 장편 초고가 이튿날 새벽 4시를 넘기면서 한 단락이 마무리되자마자 그는 거의 혼절하듯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 잠의 끝은 가위눌림과도 같은 현란하면서도 집요한 꿈의 뒤엉킴이었다. 그는 난데없이 스핑크스를 만난 재수 없는 나그네같이 되어 끊임없는 고문같이 이어지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허겁지겁 골라대야 했다. 

처음에는 낱말 고르기 같은 것으로 시작된 것 같다. 광간(狂簡) 청광(淸狂) 견개(狷介) 생광(生光) 견경(見輕)같이 주로 기역자로 시작되는, 옛날에는 중국과 우리가 같은 말처럼 썼으나 이제는 점점 낯선 말이 되어가고 있는 단어들이 몰려와 제자리를 찾으려고 아우성이다가, 다음은 응대 수작(酬酌)에 따르는 미사여구 잇기가 되었다. 남녀가 정담을 나누거나 술꾼들이 풍류를 드러내고, 문인들이 재담이나 경구를 주고받을 때, 또는 세상에서 밀려난 자들이 눈을 허옇게 치뜨고 세상을 흘겨보거나 저희끼리 허세를 부리면서 주고받는 대구(對句)와 대련 같은 것들이 한동안 허황하게 부딪치며 북새를 떨었다. 

그가 듣기로는, 아무리 긴 꿈이라도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마지막 짧은 순간의 뇌 활동 해리(解離) 상태에서 일어나는 표상(表象)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느낌으로는 간밤 내내 그런 꿈에, 추궁과도 같은 말과 글의 홍수에 시달린 것 같았다. 동양고전적인 지식이나 정보 혹은 교훈이 저장된 위치나 대강 알아둔다는 기분으로 설읽은 시경과 초사(楚辭)에, 여기저기서 조각으로 주워 읽은 진문(秦文) 한부(漢賦), 육조 병려(騈儷)에 당송 고문(古文)이며 당시(唐詩) 송사(宋詞)가 무의식의 바닥에서 떠올라 기억으로 인출되기를 기다리며 꿈속에서 와글거렸다.
 
그런 것들로 미루어 그 아침의 꿈은 간밤 새로 시작한 그의 두 번째 장편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이미 한 권의 책을 냈고, 다시 중단편집 한 권이 연말 출간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자전적인, 혹은 지나온 지 오래지 않은 삶을 추체험하는 글쓰기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한 번 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주제를, 환상적인 리얼리티로 가공된 세계와 목적적으로 창조된 인물이 어우러져 펼쳐내는 일종의 건달소설로 세상을 만나볼 작정을 했다. 

첫 소설 ‘인간의 대지’는 남보다 등단이 늦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조급해져 먼저 중편으로 발표되었고,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600매 남짓의 경(輕)장편 형태로 자랐지만, 처음부터 장편으로 구상된 소설이었다. 그 바람에 서쪽으로는 로마로부터 동쪽으로 인더스 유역까지 액자 속 주인공의 10년에 걸친 순례기 혹은 종교적 편력 시대는 짧게 인용된 기행문 형태로 요약되거나 수백 개의 각주(脚註) 처리로 대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진진한 내용은 몇 권의 창작노트와 자료집으로, 그리고 1970년대 후반 들어 점차 활발해지는 인구어(印歐語) 원서 보급으로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정격의 장편소설이었다. 

그런데 간밤 서장을 마무리한 가제(假題) ‘백제실록’이란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은 그 무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첫 번째와 아주 달랐다. 동양의 고전적 언문(言文)과 사유로, 편집증적 과대망상에 좀 별난 서광(書狂) 기질까지 있는 구한말의 한 일탈적 지식인을 정색하고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희화화한, 의사(擬似)실록체 장회(章回)소설이었다. 망국과 피식민 시대, 그리고 해방과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아시아적 봉건국가의 황혼과 근대를 관통해 현대로 행진해 들어가는 그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고, 거친 대로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중요한 병증이 근대 유럽 원산(原産)의 이념 과잉임을 진단하는 서술 구조로 되어 있다. 

20대 후반 세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시 문학으로 패퇴한 직후부터 시작된 그 구상은 늦은 군복무 시절에 이미 대강의 얼개를 갖추었지만, 구체적인 착수는 근래까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동양의 고전적인 언문과 사유로 서술해간다는 것은 의고적 문틀과 어휘로, 남만의 왜가리 소리를 내는 무리(南蠻 鴃舌之·許子의 무리, 여기서는 되지도 않는 말과 논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외국인)처럼 밀려드는 서양오랑캐(西夷)의 언설과 논리를 지운다는 것이니, 예상되는 그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그는 언해류(諺解類)를 참고로 한 우리말 의고문체(擬古文體)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어(死語)가 되어가고 있는 한자 어원의 고전적 문어들, 그리고 흔히 인용되는 전고(典故)와 사적(史蹟) 요약에다 아직도 우리말의 일부처럼 사용되는 고사성어, 그리고 의고문에서 인용하기 좋은 명문 가절(佳節) 따위를 나름으로 분류해 창작자료 노트란 이름으로 모아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새벽꿈의 마지막을 그렇게도 요란하게 닫은 것은 어젯밤 집필이 시작되면서 의식 속에서 펼쳐지게 된 그 노트가 그 새벽 꿈속에서 일제히 들고일어나 무의식에 잠겨 있는 자기 존재를 주장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한참이나 더 그 요란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말과 글의 충돌을, 힘들여 모았으나 그토록 순서 없이 한꺼번에 인출할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한 언술(言述)과 기록의 난동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도나 인과관계의 고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서열도 우선순위도 없는 돌출과 우발의 무질서한 충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깨어날 때쯤 인상적인 기억처럼 떠올린 단어들에 더해 어절이나 단문이 몇 개 더 떠올랐는데, 그중 하나가 ‘광휼(狂憰)과 화사(華士)의 노래’였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광휼과 화사라면 주공단(周公旦)이 제왕(齊王)으로 봉한 태공망에게 죽은 고전적인 아나키스트 형제의 이름이다. 마르크시스트를 처리할 때 쓰기 위해 ‘맹자’ 속 고전적 공산주의자 허자를 그 노트에 올려두었던 것처럼, 서구 근대의 아나키스트를 처리하기 위해 ‘한비자’ 속에서 찾아두었던 주나라 초기의 고전적 자유인 또는 자주인(自主人) 형제….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내처 잠자기를 포기하고 눈을 떴다. 새벽 4시가 넘어 든 잠자리라 점심 때까지 푹 자둘 생각이었으나, 꿈을 기억해내는 동안에 활성화된 뇌가 더는 평온한 수면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다시 거실의 벽시계가 느린 소리로 한동안 딩딩거렸다. 차분하게 헤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열 번은 넘은 듯했다. 그제야 간밤 잠들기 전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잔 것을 상기한 그는 일어나는 대로 창문 커튼부터 젖혔다. 어깨에 걸린 창틀 너머로 내다보니 벌써 정오에 가까운 듯한 늦가을 햇살에 눈부신 이웃집 정원이 성큼 다가왔다. 

그는 미련 없이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책상머리로 갔다. 그리고 새 소설을 시작하면서 책상머리 책꽂이로 뽑아 올려둔 ‘백제실록’ 창작노트 둘째 권에서 그 두 사람의 출처가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편이란 것을 알아내고, 다시 ‘한비자’ 국역판을 들췄다. 그러나 ‘광휼과 화사의 노래’ 같은 것은 없고 태공망이 제왕으로 봉해져 산동으로 내려갔을 무렵 동해 바닷가에 살며 현자로 칭송받던 그 두 형제의 자부심에 찬 논의 한 구절만 나왔다. 

‘우리는 천자의 신하도 아니고/ 제후의 벗도 아니다./스스로 밭 갈아 먹고 살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며/ 아무것도 다른 이에게 빌고자 하지 않는다./위로부터 받은 명예도 없고/임금으로부터 받는 봉록도 없다./벼슬할 뜻 없이 스스로 일해 살아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고전적 국가주의자 혹은 절대왕권론자인 태공망이 왜 그들 형제를 잡아 죽였는지 설명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주공단이 제나라로 사람을 보내 현자를 죽인 까닭을 묻자 태공망은 답한다. 

‘그들은 천자의 신하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로 쓸 수도 없고, 제후의 벗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제가 부릴 수도 없습니다. 또 스스로 밭 갈아 먹고, 스스로 우물을 파 마시며 다른 이에게 바라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상을 주어 권하거나 벌을 내려 못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또 위로부터 내려지는 명예를 원하지 않으니, 비록 슬기롭다 해도 쓰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임금이 내리는 녹봉을 받지 않으려 하니 또한 어질다 해도 공 세우기를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벼슬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스려지지 않겠다는 것이고, 일을 맡지 않겠다는 것은 충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외저설의 장구를 더듬어가고 있을 때 그가 깨어난 기척을 느낀 아내가 조용히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났네요. 날이 희붐할 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았는데. 아침상 차려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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