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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 7화. 봄 같지 않은 봄의 오후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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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그날 그는 작취미성(昨醉未醒)의 흐릿한 머리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를 건성으로 들렀다가 속이 메스꺼워 하숙집에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임박한 휴교령 해제 풍문 탓인지 입초(立哨)경계가 다소 느슨해진 교문을 막 나서다가 그는 예사롭지 않은 그 벽돌 투척 광경을 보게 되었다. 교문을 나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바로 그 문제의 시멘트 벽돌이 학교 담을 넘어 날아와 아스팔트 위에 허연 먼지를 일으키며 부서지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같은 순간에 이어 대통령이 탄 리무진과 경호 차량 행렬이 지나가고, 그 뒤의 학교 봉쇄는 조용하면서도 아주 긴박하게 진행되었는데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좋지 않은 위치다. 어서 벗어나자. 그러나 뛰거나 허둥대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교정을 멀찌감치 벗어나서야 굵은 가로수에 기대 교문 쪽을 살펴보았다. 아직 교문 부근은 별 움직임이 없었지만, 교정에서 간간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그의 예감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짐작게 했다. 

그날 학교 안에서 벌어진 나머지 일은 같은 집에 하숙하는 연극반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전공이 무엇인지 끝내 기억나지 않는 그 동숙생은 그 무렵 학교 연극반에서 가을 공연으로 체호프의 ‘갈매기’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공수부대원들에게 끌려가 영문도 모르고 세 시간 가까이나 횡액을 치렀다고 한다. 학교가 봉쇄된 지 30분도 안 돼 가까운 공수부대에서 달려온 덮개 씌운 트럭 대여섯 대에서 내린 100여 명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은 아직은 휴교 중인 금요일 오후의 교정을 샅샅이 뒤져 정원 1500명 가운데 남학생 200여 명, 여학생 100여 명을 찾아내 연행한 뒤, 남학생은 교련 연병장에서 기초 유격훈련을 시키면서 ‘각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 불순분자’들을 색출하고, 여학생들은 작은 강당에 따로 몰아넣은 뒤 그 불순한 기도를 목격한 자로서의 신고 내지 자백을 강요했다. 무슨 대학 친선경기에 대비하기 위해 운동장에서 구기 연습을 하고 있던 체육과 특기생들부터, 얌전히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던 모범생들과 이런저런 가을맞이 학내행사 준비로 학교를 찾았던 서클 멤버들에, 휴강 중인 줄 알면서도 궁금한 게 많아 과별로 두엇씩 만나 함께 교정을 어정거리던 아이들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은 두 시간 넘게 반복된 그 문초와 자백 강요 뒤에 아이들을 놓아주었는데, 남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실시된 ‘쪼그려 뛰기’와 ‘오리걸음’으로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여학생들은 되풀이된 군인들의 위협적인 질문에 성깔 있는 몇몇은 앙칼진 대응으로 맞서보기도 했으나, 끝내는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후줄근히 쥐어짜인 빨래처럼 되어 비틀거리면서 저무는 교정을 나서야 했다. 

“그런데 말이요, 정말로 분한 것은 쪼그려 뛰기나 오리걸음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공수부대원들에게서 느낀 모멸감 같은 것이었소. 그들은 진범을 색출한다거나 사건의 진상을 캐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군대식 시범케이스 문화로 우리를 겁주고 길들이려 했을 뿐이요. 물리력에서의 우월을 정신적인 성취와 혼동하며, 이 어리바리한 먹물들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의 가학 성향까지 보였소.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부터는 아마도 달라질 것 같소. 주동을 하지는 못해도 나 혼자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 연극반 친구는 무슨 거창한 그리스비극 속의 대사라도 외듯 그렇게 비장하게 말했으나, 여학생들에게는 거칠고 무례한 말투 말고는 뒷날처럼 원한으로 기억할만한 위해는 달리 없었음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가 잠깐 긴하지도 않은 회상에 빠져 있는 사이에 다른 손님을 맞은 가판대 주인은 잠시 그 새로운 고객의 주문에 충실했다. 그가 의식을 가다듬으며 보니 새 고객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인데 그 역시도 방금 도착한 어떤 기차 편의 승객이었던 것 같았다. 드물게 ‘장미’ 담배를 찾더니 주인이 가판대에서 내려주자마자 값을 치르고 가까운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버렸다. 역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또 벌어질 건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머리에 먹물 든 사람들은 지금 시국을 두고 서울의 봄, 서울의 봄,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지요? 김종필 씨는 뭐, 봄 같지 않은 봄이라던가. 도대체 올해는 무슨 봄 타령이 왜 이리 요란하고 길어요? 5월도 중순을 지나 이제 여름이 다 돼가는데.”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의식했는지 가판대 주인이 다시 그쪽으로 다가오며 그렇게 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정색을 하고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프라하의 봄’ 때문에 그럴 겁니다. 10여 년 전 체코 프라하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 시기, 소련이 바르샤바 동맹군을 보내 짓밟았다고 알려져 있는 그 봄 말입니다. 김종필 씨는 한시 구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들먹였을 겁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이른바 유신 잔당을 경계한 것이겠지요.” 

그는 왠지 겸손해져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그렇게 대답해주고 기대선 가판대에서 몸을 뗐다. 가판대 주인이 입으로 떠드는 것과는 달리 정치나 시사에 그리 깊은 소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아는 대로 성의껏 대답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자리를 뜨려고 돌아서는 그에게 가판대 주인이 한마디 던진 말이 재미있었다. 

“나는 선생이 탐문을 나온 정보 형사인지, 어제 사건 이삭줍기에 나선 기자 선생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래도 기자 선생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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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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