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명사에세이

새해, 전자방(田子方)을 그리며

  •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새해, 전자방(田子方)을 그리며

1/2
20대 초반. 내가 국역연수원(현재의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한국고전번역교육원)에 막 입학해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할 때에 경험한 일이다. 1974년 5월의 어느 날 ‘통감절요(通鑑節要)’ 시간에 맛본 감동은 칠순을 앞둔 지금도 생생하다. 

위나라 태자 위격(魏擊)이 외출하다가 노상에서 아버지의 스승인 전자방(田子方)을 만났다. 즉시 수레에서 내려 예를 갖춰 인사했으나 자방은 답례하지 않았다. 위격이 노하여 전자방에게 물었다. 

“부귀한 자가 거만하게 굴 수 있습니까, 아니면 빈천한 자가 거만하게 굴 수 있습니까.” 

전자방이 답했다. 

“오직 빈천한 사람만이 거만하게 굴 수 있지요. 부귀한 사람이 어떻게 감히 거만하게 굴겠습니까. 나라의 임금이 거만을 떨면 나라를 잃게 되고, 대부가 거만을 떨면 봉지(封地)를 잃게 됩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이 임금으로 대접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봉지를 잃은 대부가 대부로 대접받았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선비는 빈천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행함이 임금과 맞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떠날 뿐입니다. 어디 간들 빈천한 신분이야 못 얻겠습니까(安往而不得貧賤哉).” 

그제야 위격이 사과했다. 

‘통감절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간추려 엮은 역사서다. 한문을 배우는 이들이 문리(文理)를 터득하기 위해 거치는 기초 교재의 하나다. 끝까지 배우는 경우는 별로 없고 두 권을 떼면 대체로 기초적 문리는 얻는다. 나는 방은(放隱) 성락훈(成樂薰) 선생에게 이 책을 배웠다. 대부분 한기(漢紀)에서 끝내는 수업을 당기(唐紀)까지 한 것을 보면, 선생이 한문 교육에서 통감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부귀한 사람이 어찌 감히 거만하게 굴겠는가”

전자방은 중국 전국시대 초기 위(魏)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에게 배웠다. 높은 도덕과 학문으로 제후들에게 명성을 날렸다. 전국 초기 맹주인 위문후(魏文侯)는 그를 스승으로 삼아 국정을 자문했다. 그에게서 처신상의 구차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선비의 한 전형을 본다. 

‘설원(說苑)’에는 전자방에 관한 이런 일화도 전한다. 

한번은 전자방이 위문후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태자 위격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문후를 뵈었다. 빈객과 대신들이 모두 일어나 예를 표했으나, 전자방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문후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고, 태자도 같았다. 전자방이 말했다. 

“태자를 위해서 좌석에서 일어나자니 예에 맞지 않고, 태자를 위해 일어나지 않으니 죄를 지은 꼴이 되었네요. 참고로 초공왕(楚恭王)이 태자 시절에 있었던 일을 하나 말씀드리지요.” 

이는 다음과 같다. 태자가 길에서 대부 공윤(工尹)을 만났고, 공윤은 공경의 의미에서 종종걸음질로 길가의 남의 집 문안으로 피하니, 태자가 수레에서 내려 그 집 문 안으로 들어가 그를 찾아서는 이렇게 말했다.


1/2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목록 닫기

새해, 전자방(田子方)을 그리며

댓글 창 닫기

2018/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