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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한중韓中 5000년

울루스부카의 아들 이성계, 조선을 개국하다

  • | 백범흠 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울루스부카의 아들 이성계, 조선을 개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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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로 말한 ‘고려 王’

고려는 결국 몽골에 항복해 쿠빌라이가 세운 원(元)에 편입됐다. 쿠빌라이는 만주 일대를 영지(領地)로 받은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 테무게 옷치긴 가문 세력을 견제하고자 남쪽의 고려를 이용했다. 충렬왕 이후 고려왕들은 원나라 공주를 정비(正妃)로 맞았으며, 원칙적으로 정비에게서 난 아들을 왕세자로 봉했다. 고려 왕들은 세자 시절 대도(베이징)에서 인질로 체류하다가 즉위했다. 고려 왕들은 몽골식 이름을 갖고, 몽골식 변발에다 몽골어를 주로 사용했다. 충렬왕의 아들 이지리부카(충선왕)는 원나라 내부 권력투쟁에도 가담했다. 몽골 지배기 고려의 왕은 제후왕으로 격이 낮아졌다. 제후왕으로 전락해 조(祖), 종(宗)을 붙여서 묘호(廟號)를 지을 수 없었다.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렬왕’ ‘충선왕’ ‘충혜왕’처럼 왕호에 ‘충(忠)’을 덧붙였다. 

원은 고려 영토 내에 쌍성총관부(함경도 일대), 동녕부(평안도 일대), 탐라총관부(제주도)를 뒀다. 원나라는 남만주 일대를 관할하는 심양왕(瀋陽王)에 고려 왕족을 임명했다. 고려 왕족을 심양왕으로 임명한 데는 남만주 주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고려인 통제에 편리했을 뿐 아니라 만주의 지배자인 테무게 가문과 고려왕을 동시에 견제하는 목적도 있었다. 고려왕과 심양왕은 수시로 대립했다. 이는 원나라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 제대로 기능했음을 말해준다.


등뼈 꺾인 壯士

홍건군의 우두머리를 그린 중국 그림.

홍건군의 우두머리를 그린 중국 그림.

원나라 지배기 고려는 등뼈를 꺾인 장사(壯士)처럼 독자성을 잃어갔다. 원나라 말 고려 신진사대부가 성리학(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수용하면서 고려와 뒤를 이은 조선의 한족 중심적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가 심화됐다. 

원나라 시기 중동-중앙아시아로부터 선진 과학기술이 도입됐다. 역학(曆學)과 수학에도 괄목할만한 발전이 이뤄졌다. 강남에서 생산된 쌀과 소금, 직물이 운하와 바다를 통해 대도로 운송됐으며, 이에 따라 조선과 항해술이 크게 발달했다. 명나라 초기 정화의 인도양 항해(航海)도 이때 발전한 조선과 항해술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쿠빌라이를 계승한 황태손 성종 이후 제위(帝位) 다툼을 둘러싼 권신(權臣)들의 발호로 인해 원나라 궁정은 음모의 소굴(巢窟)이 됐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지도부는 제대로 된 통치철학을 갖지 못했다. 몽골족은 싸우고 빼앗는 데는 천재적이었으나, 1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다스리는 데는 금방 무능을 드러냈다. 쿠빌라이 재위 기간 이미 허난과 안후이(安徽)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원나라는 재정 담당에 압둘 라흐만, 상가, 아흐마드 등 상인 기질의 중앙아시아인을 주로 기용해 입도선매(立稻先賣) 방식으로 세금을 거뒀다. 거의 착취 수준이었다. 그들은 원(元)이라는 대제국을 공공(public)이 아니라 사업(business)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았다. 한마디로 통치철학 부재였다. 

수·당(隋·唐) 이래 화이허(淮河) 이남이 경제중심지가 됐으며, 인구도 강남이 화북에 비해 월등히 많아졌다. 남·북조(南北朝), 수·당, 5대 10국, 송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의 중심이 황하 상류 시안과 뤄양에서 카이펑을 중심으로 하는 중하류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창장 하류로 옮겨온 것이다. 특히 항저우(杭州)를 수도로 한 남송은 강남을 집중 개발했으며, 이후 왕조들인 원· 명·청 등은 국가 재정을 주로 강남에 의존했다. 

1351년 황허 둑 쌓기 공사에 강제로 동원된 농민들이 백련교(白蓮敎) 주도로 허난에서 봉기했다. 원나라군은 송(宋) 휘종의 후손을 자처한 백련교 교주 한산동(韓山童)이 주도한 농민 반란군을 공격해 초기에 격멸했으며 한산동을 붙잡아 처형했다. 백련교는 조로아스터교를 개혁한 마니교(摩尼敎)의 중국 버전으로 명교(明敎)로 불렸으며, 허난과 안후이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백련교도 봉기군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하고 있어 홍건적(紅巾賊)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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