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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8화. 조짐 혹은 참사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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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토요일이라 서둘러 편집을 끝내고 첫 교정지를 내려보내며 퇴근을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 주거래 출판사의 노 부장이었다. 

“불휴 씨, 긴급이에요. 조용히 듣고 대답만 하세요.” 

“예?” 

“사장님 지신데요, 얼른 퇴근해서 집으로 가셔야겠어요.” 

그가 등단한 첫해부터 사장을 도와 문예편집인 겸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작가 관리와 창작기획 및 홍보판촉까지 거들어와서 그런지, 그와는 동갑내긴데도 새로운 제안을 할 때는 손위 누이같이 굳은 얼굴로 지시 투가 되는 노 부장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노 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고 절박하게 들렸다. 

“안 그래도 지금 막 퇴근하려고 하는 중인데, 갑자기 서울서 남의 직장에까지 장거리 전화를 걸어 얼른 퇴근하라니요. 그것도 사장님이 직접 지시로 노 부장을 시켜….” 

“오늘 댁에 계셔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어 그래요. 아직 신문사 퇴근 전이면 집에 전화해서 사모님과 아이들부터 얼른 불러내세요. 식구대로 최소한 사나흘은 밖에서 지낼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오라 하시고.” 

그제야 그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 절로 떨려오는 목소리를 농담조에 감추며 물었다. 

“아니, 노 부장 무슨 일이요? 최소한 사나흘은 식구대로 밖에서 지내야 한다니, 누가 우리 집에다 폭격이라도 한답디까?” 

“제 얘기 심각하게 들어주세요. 그러고 보니 불휴 씨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 있겠네요. 그러지 말고 사모님께 차분하게 전화해서 아이들 데리고 시내로 나오라고 하세요. 사모님과 아이들 모두 옷가지 좀 챙기고 일용품도 급히 쓸 것은 함께 싸서 기차역이나 시외버스 정류소 부근으로. 주말 나들이 같은 것으로 둘러대, 현금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모두 들고나오게 하는 게 좋겠네요.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고. 시간 없어요. 그래서 집 밖에서 사모님과 아이들 만나거든 다시 제게 전화 주세요.” 

“이거 무슨 간첩 접선 지령이라도 받는 것 같네. 아니, 노 부장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짐작이나 좀 할 수 있게 해주시오.” 

“미안해요. 어서 신문사부터 떠나세요. 다시 말해 누구든 지금 이 시각 불휴 씨가 있을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속히 떠나라고요. 집에 거는 전화도 신문사 나간 뒤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게 좋겠고, 내게도 공중전화로 해야 이렇게 수선 떠는 까닭이라도 차분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전화를 철커덕 끊어버렸다. 

그제야 그에게도 서울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게 무슨 일인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노 부장의 말투나 지시 내용이 너무 엄중하고 위협적이라 그 원인이 될 만한 일을 떠올려볼 엄두조차 나지 않은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귓속에서 무언가가 윙 하며 울려대는 것 같은 소리까지 들으며 신문사를 나와 첫 번째 만난 공중전화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내는 전화부터 했다. 

공연히 사람 놀라게 할 수도 없어 당장은 주말 나들이를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동대구역으로 나오게 하니 아내가 좋아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은요? 어머님은 지금 섬들(島坪) 작은 외가에 갔는데요.” 

“그건 이따가 따로 전화드리지. 며칠 영동아재 댁에 머물러도 좋고, 집으로 돌아오셔서 홀로 계셔도 되고.” 

그러자 아내는 금세 밝은 어조로 돌아가 집 안에 남은 현금이 그리 많지 않은 것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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