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명사에세이

평창올림픽과 ‘민속 연구’ 단상

  • 입력2018-03-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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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아이스하키 관련 뉴스를 보자니, 문득 강원도 춘성군 추곡국민학교 진병황 교장선생님이 떠오른다. 함자도 안 잊히는 그 어른의 열띤 목소리가 생생해진다. 수십 년 전이었다. 만삭의 배를 안고 무작정 어정거리다가 마주친 내게, 이분은 처음에는 운동장에 선 채로, 그 뒤에는 교장실로까지 데려가서 소중한 자료를 넘치게 주셨다. 

    우리 아이들의 겨울놀이 팽이치기가 서양 아이스하키의 원조라고, 오래전 우리 아이들의 팽이치기가 서양으로 전해져 아이스하키가 됐다고 하시며, 그 증거로 알래스카를 거쳐 북미로 이주한 서양인들의 해양 개척사 등 공감이 되기도 안 되기도 하는 견해와 주장을 열 올려 들려주셨다. 당시 나는 한국 전통 사회의 육아 방식과 유아교육(가정교육), 전통 아동놀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만난 이분의 열정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연세 높은 남녀 어르신들의 자발적 협조로, 한국 전통 사회의 여성-아동 민속을 연구할 수 있었다. 내 연구의 공로자들인 연인원 2000여분의 남녀 어르신께 두고두고 감사하며, 그분들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담배 한두 갑,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침개 몇 조각에 신이 나서 서로 더 많이 얘기하려고 다투던 분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안노인들의 한풀이 이야기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였다. 그분들에게는 토킹아웃(talking out)의 치유가 되었으리라. 

    그 당시엔 우리 온 국민, 특히 여성들이 한(恨)이라는 바윗덩이를 가슴에 안고 살았다. 이른바 한국 전통 사회의 끝자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인적이든 국가·사회적인 한이든, 전통 가치와 서구 가치의 충돌로 혼미와 수난을 겪던 시대였으리. 온갖 외우내환에도 살아남은 우리는, 덮쳐온 낯선 가치와 문화에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쓰레기’ 속에서 건져낸 귀한 배움

    그런 시대에 성장해온 나도, 뭔가 내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는 한국적인 것 가운데 세계에 알려진 것이라곤 너무도 부끄러운 코리안 타임(약속시간 안 지키기), 깡패(불안한 사회), 짚세기(짚으로 만든 신짝), 엽전(무지몽매의 상징) 등이 전부였다. 온 국민은 열등감과 불안과 패배의식에 시달렸다. 모종의 무엇이 절실히 필요했고, 우리는 스스로 부여한 사명감이었든, 국가나 역사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어지는 소명감이었든, 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열망에 시달렸다. 



    바로 그런 시기에 나는 유학을 갔고, 힘든 외국 생활이 내 나라의 민낯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다. 우리 것, 우리 문화, 그중에서도 천시돼온 여성-아동문화를 찾아, 그 가치와 타당성을 제시해 세계 열국의 다채로운 문화와 대등하게 내놓는 게 내가 하려는 작업이었다. 

    당시 내 열등감과 막연한 소명·사명 의식에 불을 지른 책은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 Sword)’이었던 듯하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이 책에서 일본인과 일본인의 육아 방식에 대해 썼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에 놀란 미국이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며 연구비를 주어 만들도록 한 보고서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책 내용이 낯설기는커녕 친근했다. 아잇적 고향 마을 여인들과 어르신들이 아이 낳아 키우던 바로 그 얘기를 보았다. 그 시시하고 촌스럽기 짝이 없다고 치부되던 쓰레기 얘기가 그 안에 있었다. 촌스럽고 무가치해 버리고 개선해야 선진화할 것이라고 여긴 바로 그 적폐 대상이 당당한 학문일 수 있다니.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따뜻했다. ‘이 정도라면’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내 스승들이 늘상 “학자는 자기만의 학문영토를 가져야지, 외국 것 가져와 전달하는 게 아니”라고 하던 것이, “누가 먼저 최신 것을 전하느냐가 학자의 학문이 아니”라고 하던 것도 생각났다. 내 깜냥으로는 그게 ‘딱’이었다. 

    나는 가장 고루해 전통문화 유지와 전수를 목숨 걸어 지키는 고장에서 자랐다. 그러니 더욱 자신감이 생겼을 테다. 태국 중국 등 동남아 여러 나라의 아동양육과 가정교육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이자들은 왜 5000년 문화민족 한국 것은 연구하지 않았지’ 생각했다. ‘중국이나 일본 것과 동일하다고 치부했나’ 하는 생각도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그런 단순 유치한 생각과 귀신 들린 듯한 의욕에 불타 귀국 때까지 애써 입을 다스렸다. 행여 누가 이 연구를 선수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그 바쁜 공부 중에도 시와 그 연구의 관련성을 엮곤 했다. 쓰레기더미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게, 아니 쓰레기를 시(詩)로 승화하는 게 시인 아닌가. 그렇다면 쓰레기로 취급되던 우리 엄마들이 아이 낳아 키운 풍속과 어른들 잔소리에 쫓겨나 막종이로 딱지 만들어 놀던 딱지치기, 골목길 돌조각 주워 땅바닥에 금 그어 놀던 농경시대적 발상의 땅따먹기와 사방치기, 나무토막 다듬어 냇가 얼음에서 놀던 팽이치기, 높이 멀리 꿈을 날려 보내는 연 만들어 날리기 등 친숙하게 보고 자란 그 모든 것 또한 예사로 보면 안 되지 않겠나. 

    그런 놀이와 놀잇감 만들기가 아이들의 손재주와, 손의 미세 근육 발달에 어떻게 작용해, 콩자반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을 수 있게 만들었는지를 찾아보자. 그 창의성과 직감과 통찰력 등이, 일상에 인용되던 속담과 명언과 어록이 아동의 성격 인지 정서 창의성 도덕성의 초기 발달에 미치는 영향 등등으로 생각이 무진장 갈림길을 트며 뻗어갔다.

    팽이치기가 아이스하키의 원조다?

    ‘그래, 나는 쓰레기 전문가다’라고 생각했다, 시 쓰기에서도 학문에서도. 똑똑한 이들이 버리고 흘리고 놓친 쓰레기를 보물로 둔갑시키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한 ‘장인이 버린 돌이 주춧돌이 된다’는 것이겠지. 혼자서 흥분하고 열 올리며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야말로 공짜 유학한 내게 내 나라가 요구하는 소명이고, 스스로 부여한 사명일 거라고. 

    참으로 고마운 것은 나의 연구계획서가 매우 어설펐을 텐데 한국사회과학학회가 손 글씨로 써서 응모한 내게 연구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후에는 학술진흥원의 연구비도 지원받아 근 30년간 우리의 여성-아동 민속 연구 결과를 ‘한국전통아동심리요법’ ‘한국전통사회의 육아방식’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 ‘전통아동놀이’ 등의 연구서와, ‘한국여성 우리는 누구인가 상·하’ 등 일반 도서를 통해 알렸다. 민속시집 ‘알고(考)’, 속요집 ‘딸아딸아 연지딸아’ 등을 펴내고 10여 편의 한국 전통 육아 관련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도 발표했다. 연인원 2000여 분의 어르신이 모두 그지없이 고마운 자원인사(resource person)들이었지만, 아이스하키 소식 덕에 특별히 진병황 교장선생님이 다시 기억된다. 서양 아이스하키의 원조가 우리의 팽이치기라고 하던 분. 억지 주장이라고 치부하는 이가 있다 해도, 이분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나는 루스 베네딕트처럼 한국인을 키운 여성-아동 민속에서 한국인의 특성까지 도출해내진 못했다. 내 능력 밖이었고, 진득 느긋하다던 우리 성격도 ‘우물에서 숭늉 찾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안진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 1965~67년 ‘현대문학’ 3회 추천으로 등단
    ● 서울대 사범대 및 동 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박사
    ●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등 수상
    ● 現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회원, 한국시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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