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상속의 역사

근친혼은 강력한 재산 지키기 수단

  •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근친혼은 강력한 재산 지키기 수단

2/5

스페인 왕위 놓고 온 유럽이 ‘싸움질’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의 장녀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는 프로이센 왕자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바로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재위 1888~1918)였다. 빌헬름 2세가 17세였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자인 독일의 황손에게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증여한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노환으로 사망하자 빌헬름 2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영국 버크셔주 윈저궁으로 달려가 외할머니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다. 

그로부터 수년 뒤 빌헬름 2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그는 영국과 사투를 벌였으나 대영제국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채 패전의 쓴맛을 봤다. 그는 무력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다 실패해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런데 빌헬름 2세 이전의 유럽사를 살펴보면 국가 간 패권 다툼이 왕위계승 전쟁으로 표현된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이다. 이 전쟁으로 여러 왕조 또는 국가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170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외손 카를로스 2세(스페인 왕, 재위 1665~1700)가 사망했다. 그에게는 혈손이 없어 왕위가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의 외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에게 넘어갔다. 그가 곧 펠리페 5세(재위 1700~1724)다. 

이에 합스부르크 왕가는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1세(재위 1658~1705)가 스페인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유럽 나라들은 친소 관계에 따라, 혹은 국익을 저울질하며 양편으로 갈라섰다. 영국 왕실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공화국 등은 신성로마제국 측을 지원했다. 반면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연합 전선을 형성해 저항했다. 

양측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참혹하고 지루한 전쟁을 벌였다. 무려 40만 명이 전사했다. 특히 프랑스가 이 전쟁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파멸의 늪에 빠졌다. 영국을 편들던 네덜란드 공화국도 재정이 바닥났다. 1715년부터 여러 해 동안 네덜란드는 국채에 대한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막대한 이익을 본 것은 영국이었다. 해양제국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힘을 잃자 영국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제해권(制海權)을 움켜쥐었다. 바야흐로 영국의 전성기가 열릴 차례였다.


노르웨이에 조제핀의 보석이 있는 이유

때론 유럽 왕실들의 결혼 관계에 ‘기상변이’가 일어났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재위 1804~1815)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으나 그의 혈통을 계승한 왕실은 하나도 없었다. 반면 나폴레옹한테서 이혼당하고 황궁에서 쫓겨난 조제핀의 후손들은 여러 나라의 왕관을 차지했다. 

조제핀의 운명은 기구했다. 그녀는 서인도제도의 드로아질에서 태어나 16세에 파리로 건너왔다. 보아르네 자작과 결혼했는데,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남편이 처형되고 말았다. 과부가 된 그녀는 파리 사교계의 총아로 총재 정부의 실력자 바라스 장군의 정부(情婦)가 됐다. 바라스가 그녀를 나폴레옹에게 소개했고,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조제핀은 나폴레옹 황제의 황후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혼녀가 된 그녀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조제핀이 전남편 보아르네 자작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호텐스의 아들, 곧 조제핀의 외손자는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옥좌를 차지한다. 조제핀의 또 다른 딸 유진(역시 아버지가 보아르네 자작)의 아들(막시밀리안 드 보아르네)도 러시아 황녀와 결혼했다. 유진의 딸 조제핀(황후 조제핀의 외손녀)도 스웨덴 국왕 오스카 1세의 왕후가 되었다. 

조제핀 자신은 말년에 수모와 비운을 피하지 못했으나, 그 후손들은 벨기에, 덴마크, 그리스,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웨덴 및 모나코,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및 이탈리아 왕실을 점령한다. 

오늘날 유럽 각국 왕실은 막대한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상당량이 조제핀 황후의 유산이라고 알려진다. 노르웨이 왕실이 자랑하는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는 조제핀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한다. 불운의 황후 조제핀은 찬란한 보석들과 함께 화려한 광채를 여전히 내뿜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명문 귀족들도 국경을 초월해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1748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에메람성에 둥지를 마련한 ‘투른 운트 탁시스’ 선제후 가문이 그렇다. 이 집안은 본래 귀족의 후손이 아니었다. 운명의 16세기, 그들은 우편 사업에 종사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다음 맥주 공장을 세워 많은 재산을 보탰다. 

이후 곳곳에 성채를 건설해 유럽의 최상위 귀족으로 발돋움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들의 성채에 머물며, ‘두이노 비가’란 명작을 집필했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라는 소설을 자신의 후원자인 이 귀족 가문의 마리 공주에게 헌정했다. 

현재도 투른 운트 탁시스는 굴지의 부유한 귀족으로 손꼽힌다. 유럽의 상류 귀족 가문들 중에서 선대에 그들과 결혼하지 않은 집안은 거의 없다.


2/5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목록 닫기

근친혼은 강력한 재산 지키기 수단

댓글 창 닫기

2018/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