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9회. 언젠가는 가야 할 그날

  • 이문열

둔주곡 80년대

2/9
2. 

지난 4월 중순 좀 늦은 사내 붕어낚시 시조회(始釣會) 때였다. 한 보름 전부터 그해따라 유난히 요란한 참가 독촉이 있어서였던지, 출발 전날 최종 점검에서 기자는 거의 전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편집국 쪽 참가 희망자만 50명에 가까웠다. 그 바람에 그 시조회는 신문사가 버스 두 대를 전세 내어 모두가 함께 떠나는 거창하고 호기로운 행사가 되었다. 

그사이에도 두어 번 사내(社內) 시조회 또는 납회(納會) 같은 게 있었으나, 입사 뒤 첫 두 해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 낚시를 나가지 않을 때라 참석하지 못했고, 전해인 1979년은 늦깎이 등단의 분주함 탓에 그런 사내 행사에 참가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봄 시조회는 달랐다. 그는 편집국에 공고문이 나붙을 때부터 참여를 다짐하고, 오래 싸말아두어 못쓰게 된 낚시도구까지 그 무렵 쏟아지는 신형으로 개비해두었다.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으면 나는 야유회와도 같은 이런 사내 행사에 한 번도 끼어보지 못하고 이 신문사를 떠나는 꼴이 날 수도 있다. 나서 처음으로 유적(流謫)의 느낌 없이, 그리고 그동안 잠깐씩 스쳐갔던 학교나 병영에서와는 달리, 푸근한 소속감에 자못 안주까지 하며 3년이나 몸담았던 곳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난데없는 감상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그때 이미 그는 어떤 막연한 예감 이상으로 작별 의식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입사 후 처음으로 함께 야외로 나가는 셈인 그는 원래 그저 모든 것 훌훌 털고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그날 하루 무고한 붕어 입이나 째고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때 이미 그해 신춘 시조회는 편집부 솜씨로 ‘새봄맞이 애먼 붕어 입 째기 모임’으로 명칭이 교정되고, 그 행사에 대한 기대도 거기 어울리는 유쾌한 집단 야유회 같은 것으로 확정되어갔다. 

하지만 그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그의 몸과 마음은 그런 유쾌한 야유회에 어울리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선 그 주일 마감해야 되는 원고가 있어, 그걸 다 쓰고 봉함한 원고봉투를 서울 잡지사에 등기 속달로 부치라고 아내에게 맡기고 집을 나선 시간부터가 그랬다. 그때가 벌써 아침 6시, 고스란히 날밤을 새운 몸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 아침 물가에서 으스스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기보다는 따뜻한 이부자리에 들어 밤새 혹사당한 몸과 마음부터 쉬게 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그 아침의 심사도 밤샘으로 지친 몸 못지않게 처져 내려 애초부터 유쾌한 붕어 입 째기 행사는 글러버린 일이 되어 있었다. 전날 초저녁 출판사에서 온 갑작스러운 통보 때문이었다. 

“지난 연말에 낸 중단편집에서 단편 하나 빠지고 3월에 새로 발표하신 단편 하나가 대신하게 되었어요.” 

저녁상을 물리고 담배 한 대를 느긋하게 피울 여유가 없어, 담배를 문 채 아직도 최소한 서른 매 이상은 더 써야 하는 연재 원고를 막 시작하려는데 서울의 출판사 편집부 고참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 그렇게 알려왔다. 

“아니, 무슨 일이오? 이 밤에 집으로. 또 무슨 검열 같은 것에 걸리기라도 했어요?” 

그녀의 말이 너무 난데없어 그가 되는 대로 그렇게 묻자, 평소에도 굳은 얼굴인 그녀가 자신의 표정처럼이나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간님은 거기 들어간 단편 ‘사과와 다섯 병정(兵丁)’을 빼고 지난달 월간 ‘자유문학’에 발표한 ‘알 수 없는 일들’을 대신 넣었으면 하더군요.” 

“아니, ‘사과와 다섯 병정’이 뭐 어떻다고, 그게 왜….” 

그가 그렇게 반문하다 제풀에 질려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 그거다. 맞아, 그걸 거야…. 그러는데 그 편집부원이 여전히 억양 없는 말투로 툭툭 내던지듯 말을 이었다. 

“국군이 어떻게 국군을 죽일 수 있나? 또는 국군이 어떻게 국군에게 죽을 수 있나? 대한민국 소설에서. 뭐 그러는 것 같던데요.” 

그랬다. ‘사과와 다섯 병정’에서 죽은 다섯 병사는 국군이었고, 6·25 때 치열한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돼 밤마다 거세지는 북한군의 마지막 공세를 피투성이 진지전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엔군의 공습 때문에 북한군의 공세가 뜸한 낮 시간에 잠시 전선을 빠져나와 진지 부근 과수원으로 내려갔다. 부실한 보급에 배가 고팠거나 입대 전의 장난기가 발동해 풋사과 서리를 나왔거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풋사과를 실컷 따 먹고 남은 것은 전투복 주머니와 알철모 가득 담아 과수원을 나오는데, 때마침 독전(督戰) 임무로 전선 후방을 순찰 중인 헌병 분조(分曹)에 적발돼 과수원 앞 강변 아카시아 숲속에서 전선이탈과 민폐(전시약탈)의 죄목으로 즉결처분되었다. 곧 또 다른 대한민국 국군인 헌병에게 죽었다…. 그가 후회라기보다는 무언가 엄청난 낭패를 당한 심경으로 그렇게 작품의 도입부를 떠올리고 있는데, 이제는 느긋하게까지 들리는 느린 목소리로 그 편집부 여직원이 말을 이었다. 

“계엄사 검열 쪽 지적이라는데요. 그 작품 빼지 않으면 그게 실린 선생님 중단편집 1쇄 3판은 납본 필증을 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나요.”


2/9
이문열
목록 닫기

둔주곡 80년대

댓글 창 닫기

2018/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