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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의 살맛나는 경제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저속기어’ 하는 삶을 향해

  • | 김용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ykimatajou@gmail.com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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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정신’ 재확인에 14년 걸려

2017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과로사OUT공동대책위’ 주최로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시스]

2017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과로사OUT공동대책위’ 주최로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시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1주는 월~금요일이라는 기이한 행정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토요일, 일요일 각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가 허용됐다. 결국 주당 최장 노동시간이 68시간인 것처럼 편법 운영돼왔다. 이 점에서 최근 근로기준법 개정은 잘못된 행정 해석을 바로잡고 2004년의 근로기준법 정신을 재확인한 것이다. 법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07년 보고서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Working Time Around the World)’은 한국을 ‘법정 근로시간이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았다. 보통은 소득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 준수 정도가 높아지는데, 한국은 예외라는 것이다.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정해놓았지만, 주당 49~59시간 노동자가 25%에 조금 못 미치고, 60시간 이상 노동자는 25%를 웃돌았다. 2004년 기준의 통계였다. 

국제적으로는 주당 48시간 이상 노동할 경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이 1993년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여기에는 물론 연장근로도 포함돼 있다. EU의 각 회원국은 이보다 짧은 개별적 기준을 국가별로 정하고 있는데, 독일은 1995년부터,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은 이중성을 갖는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일을 통해 경제적 이득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긍정적 경험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일은 부정적인 측면도 갖는다. 과도한 업무를 부과받고 종종 회사로부터 착취당하며, 직장 상사의 경멸과 굴욕을 감내한다. 일터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요아힘 바우어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일을 통해 여러 세계와 만난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2013)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 번째 세계는 외부 환경이다. 때 묻지 않았던 곳이지만 지난 1만2000년간 인간의 문명과 만나면서 이 세계는 우리 삶의 터전으로 바뀌어왔다. 둘째로 만나는 세계는 우리 자신이다. 일이 정한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는 각자의 몸과 마음과 마주한다. 여기서 가능성과 한계를 경험한다. 우리 안에 자라는 경쟁심을 맛보고,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도 확립한다. 세 번째 세계는 타인과 주변 사회다. 이들에게 인정받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회의 일원임을 경험한다. 

바우어 교수는 또한 우리가 일을 통해 이 세 가지 세계를 파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만남은 자연 파괴, 두 번째 만남은 일 중독·번아웃·우울증이다. 세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인정받고 보다 높은 위계에 도달하기 위해 폭력적 다툼을 벌인다. 

존 드 그라프는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영화로 만드는 영화제작자이자 작가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활동가로 나서기도 하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시간이 없어(running out of time)’. 미 공영방송 PBS를 통해 1994년 방영된 이 다큐에서 그는 현대인의 ‘시간 기근’ 현상과 과로를 조명한다. 

그라프는 ‘우리가 점점 더 많은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도구(기술과 생산성 포함)를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자유로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현대인의 삶이 지닌 패러독스로 지적했다. 부모는 아이들과,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와, 성인들은 그들의 노년 부모와 함께 보낼 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노동시간을 비교하며 시간 압박의 해결책으로 일자리 나누기, 소박한 삶, 그리고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희생하는 ‘저속 기어’형 삶을 제시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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