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창간기획 | 뉴 밀레니엄 18년의 기억

문화의 디지털화와 한류

BTS 열풍의 원류를 찾아서

  • 입력2018-10-3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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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지키자’던 1990년대 세계화

    • 디지털로 묶인 2000년대 세계화

    • 전 지구적 이주와 문화 교류

    • 해외의 이목 끈 한류의 혼종성

    10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 무대에 선 그룹 방탄소년단. 관객 4만 명의 함성과 한국어 제창이 이곳을 뜨겁게 달궜다. 스타디움 주변은 공연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10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 무대에 선 그룹 방탄소년단. 관객 4만 명의 함성과 한국어 제창이 이곳을 뜨겁게 달궜다. 스타디움 주변은 공연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공동체의 수면 아래에는 사회적 상상이 깔려 있다. 일테면 한국인이라면 응당 ‘전 세계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위치일지’를 가늠할 상상의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 하는 상상도 대략 공유하고 있는바, 이를 사회적 상상이라고 한다. 사회적 상상 덕에 온갖 사안에 대해 비슷한 생각과 태도를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무난히 한데 어울려 산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민족 사회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한 이유다. 사회적 상상은 공동체라는 존재의 등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방탄소년단 사이

    사회적 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꼴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케이팝의 인기를 실감하며 살고 있는 현세대와 영미 팝송을 외워 따라 부르던 세대가 세계 속의 한국을 떠올리는 상상은 사뭇 다를 것이다. 이 변화를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 상상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다. 흔한 말로 세대차이라고 손쉽게 갈음해버릴 일도 아니다. 

    사회적 상상은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고, 사회의 매무새를 정하는 힘을 갖는다. 지금은 케이팝 인기로 세계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사실 김영삼 정부 때도 세계화를 정책 방향으로 정한 바 있다. 그때 뜬금없이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시 정부는 수많은 세계화 슬로건을 만들었다. ‘당신의 세계화 상대는 누구입니까’가 대표적 슬로건이었다. 공세적인 색채를 띠는 듯 보이지만 정작 속내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에 잘 대응해 쌀시장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이 슬로건과 함께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를 지배한, 세계에 대한 상상은 ‘도도한 공세 속에서 한국을 지켜야 한다’는 골격을 지녔던 것 같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내내 그런 스탠스를 유지하다 몰락하고 만다. 

    방탄소년단(BTS)이 유엔에서 전 세계를 향해 스피치를 해낸 지금, 전혀 다른 사회적 상상과 몸짓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세계를 대하는 말투가 바뀌었고, 세계를 주시하는 눈의 힘에도 차이가 생겼다. 세계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도 바뀌었다. BTS를 응원하러 미국으로 옮겨가고, 유엔 건물 앞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그를 만나 축하 박수를 쳐줄 그런 태세의 팬들이 국내외에 넘친다. 그렇게 수십 년 사이에 사회적 상상은 변했고, 손도 커졌다.

    유튜브는 정보를 무한 증식한다

    이를 만든 원천은 무엇일까. 김영삼 정부 때 세계의 상대가 누구냐고 물은 주체는 정부였고, 그를 유통시킨 것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학계였다. 반면 BTS의 연설 내용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설명하고, 그 함의를 전하고,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의 반응을 가장 성실히 전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정부의 정책 발표, 학계의 이론, 외국으로부터의 정보는 낙수처럼 대중에게 하강한다. 그 같은 정보, 담론은 경직돼 있다가도 금세 근육이 풀려 사람들에게 흩어져 퍼진다. 그 역할의 주체가 미디어다. 사회적 담론을 유포하는 곳이 사회적 상상의 한복판이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때는 신문과 방송, 잡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최근 BTS의 ‘Love Yourself’는 주로 인터넷이 실어 나른다.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 유튜브를 열어보라. 타임라인에는 한국과 세계 간 온갖 정보가 떠오른다. BTS의 유엔과 미주 지역 활약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토크쇼 출연 소식, 팬들과의 깜짝 만남, 리액션 비디오, 콘서트 티켓 서프라이즈 선물 비디오 등이 차고 넘친다. 댓글이 달리는 일은 기본이다. 만들어진 영상을 흉내 내거나 비판하거나 연계시키는 영상도 실린다. 상호작용 덕에 정보는 무한 증식한다. 국경을 넘어서는 일은 물론 유튜브에서 만난 다국적 팬들이 협력해 BTS를 풀고 즐긴다. 

    초고속 통신망이 없던 2000년대 이전엔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과거엔 간혹 텔레비전에서 놀랄 만한 일이라며 ‘VJ 특공대’에서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을 일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열어보는 미디어 안에서 그런 상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미디어는 대중의 참여로 가능한 것이니 당연히 대중의 상상이고 행동으로 보아 무방하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BTS 열풍 사이에 일어난 한국 미디어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회에선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획기적인 변화였기 때문이다. 1998년 ADSL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상용화한 이래 그 변화는 드라마틱하게 이뤄졌다. 2009년 6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2000년 49.8%로 시작해 2001년 63.2%, 2002년 70.2%, 2005년 74.8%, 2006년 78.4%, 2009년 80.6%로 해마다 증가했다. 2010년 한국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95%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브로드밴드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초고속 무선 인터넷 보급률은 100.6%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보급률 54.3%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같은 해 말 기준 한국 내 휴대전화 가입자는 5250만 명에 달해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었다. 유·무선을 통한 가정 내 인터넷 사용,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인터넷 사용까지 포함하면 한국 사회 전반이 인터넷에 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새 밀레니엄에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디지털화를 이룬 사회다. 그런 만큼 자신과 바깥 세계에 대한 상상을 빠르게 전환시킨 공동체이기도 하다.

    인구 이동, 문화의 경험을 바꾸다

    방탄소년단이 9월 24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방탄소년단이 9월 24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한국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데만 그친 건 아니다. 세계화를 불가역적 흐름으로 파악한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세계에 대한 상상의 근원으로 미디어를 손꼽는 동시에, 전 지구적 이주도 더불어 지목했다. 미디어에서 정보로 주고받은 세계화가 눈앞에서 인구 이동으로 구체화해 공명효과가 발생한다고 본 셈이다. 

    2018년 8월 현재 한국 체류 외국인은 210만 명에 달한다. 5년 전에 비해 50만 명이 늘어난 수치다. 도심 곳곳에서 만나는 여행객, 식당에 자리 잡은 셰프(chef), 대학 내 유학생, 교환학생, 연구원, 외국인 아이돌, 프로 스포츠 선수, 한국말 잘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 공장의 공원들. 과거에 비해 숫자도 늘었지만 체류 사유와 국적도 다양해졌다. 체류 이주민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히 사람들이 체감하는 이주민 숫자는 더 많아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명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과거와 사뭇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과거 외국인은 한국인의 낯선 시선을 받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혹은 한국인을 지켜보는 관음자의 지위를 누렸다. 이젠 이주민들이 일상 안으로 가까이 왔고, 옆자리에 무심코 앉는 존재가 됐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을 텔레비전에서 만나면 낯설 정도다. 아이돌 그룹 속 외국인은 특별히 자신이 나서서 국적을 밝히지 않으면 한국인과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BTS의 해외 활동이 좋은 예다. 해외에서 케이팝 인기는 당연히 그곳 사정을 헤아려야 제대로 된 설명이 가능하다. BTS의 인기는 디지털 연결을 첫 번째로 이야기하지 않고선 제대로 논의할 수가 없다. 팬클럽 ‘아미’의 존재, 멤버들의 지속적인 트윗 활용, 리액션 비디오를 통한 소통, 커버 그룹(특정 아이돌을 따라 하는 그룹)을 통한 바이럴 비디오의 확산 등등. 이 모든 게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는 열성 팬들을 한데 묶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열성 어린 번역과 가사 올리기 등은 인기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BTS의 인기를 논할 때 디지털로 엮인 팬들과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디아스포라 집단의 존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 안에서도 양꼬치, 바게트, 스시, 쌀국수, 나시고랭, 커리, 란, 자이로, 파에야의 향과 맛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곳 사람들이 챙겨주는 본래의 맛을 찾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정통을 가늠해보는 일도 수시로 엿보인다. 인터넷과 함께 한국의 변화한 인종적 분포(ethnoscape)가 한국인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변화시켰다. 버스킹을 하는 외국인 프로 혹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등장은 유튜브의 장르 확산에도 기여했지만, 동시에 한국의 뮤직 신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상상은 그렇게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또한 새롭게 유입되는 유동 인구 영향 아래 놓이며 급격히 변화해왔다.

    경계 흐려진 현실과 미디어

    이와 같은 변화는 뉴 밀레니엄의 일상도 바꿨다. 오랫동안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경계가 소멸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접두어 ‘탈-’을 붙여 설명해야 할 일이 뉴 밀레니엄의 곳곳에서 벌어졌다. ‘탈국경’의 일상화는 예견된 일이다. BTS가 외국에서 거둔 성과를 민족주의로 포장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금세 ‘국뽕’이란 비난에 처한다.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 라리가 축구, 메이저리그 야구 또한 일상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국 출신 선수가 뛰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실과 미디어 사이의 경계 또한 흐려진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경쟁 탓에 ‘현피’(온라인상에서 시비 붙은 사람들이 실제 만나 싸우는 것)하는 일은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이미 사이버 공간이 현실과 연결되는바, 이제 물질성·비물질성 따위로 구획 짓는 일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온라인 채팅이 오프라인 정모(정기모임)로 이어지는 일은 이제 자연스럽다. 공과 사의 엄격한 경계도 흔들린다.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결혼·출산·취업을 개인의 능력 문제로 말하던 데서 온 사회가 책임질 문제로 넘어간 지는 오래됐다. 

    내밀한 내용이 밖에 공개될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등 커뮤니케이션의 버릇이 바뀐 예도 허다하다. 사진은 과거 증명사진을 제외하곤 지극히 사적인 사물이었다. 사진첩은 새로운 배우자가 방문할 즈음해서나 가족의 일생을 소개하기 위해 보여주는 귀한 대외비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사진이나 사진 모음을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사진이야말로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사물이고, 은밀한 내용의 사진을 공개하는 건 공적 공간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사건이 됐다. 

    공론장에 대한 규정도 흔들리고 있다. 그간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격식을 차려가며 공적인 논의를 하는 것을 공론장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공론장의 안팎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취미 생활 사이트에 붙는 댓글, 패러디 등을 격식 갖추지 않은 취향 놀이로만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 그것은 새로운 정치 토론 방식으로까지 대접받는다. 

    주류와 비주류, 지배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 정상적인 것 비정상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간 구획이 유동적으로 변했다. 뉴 밀레니엄의 디지털 세계에서 모든 것이 균질적인 정보로 대접받고 있다. 가짜 뉴스조차 (나쁘지만) 정보 대접을 받는다. 이런 현실을 활용할 요량으로 삐딱선을 타는 모든 것이 디지털 속으로 뛰어든다. 반대편에서는 과거의 경계를 더 지키겠다는 고집으로 맞선다. 디지털 신기술이 독점적으로 전유되는 것에 저항하는 제스처도 늘고 있다. 디지털과 케이팝의 궁합에 도전하듯, 디지털에 품바 가수를 버무린 작업도 등장해 신드롬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그 또한 의미 있는 정보 생산 작업으로 대접받는다. 

    이주민의 유입을 세계화와 연결 짓는 대신 편협한 민족주의 상상으로 좁혀 버리는 노력도 등장한다. 한국 사회의 순수성을 내세워 반대하거나 일자리 소멸, 범죄 증가와 연결하는 견해가 그에 해당한다. 디지털과 이주가 사회적 상상을 늘 새롭게만 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상상이 의견의 양극화, 상상의 양극화로 끝 간 데 없는 소모적 소란으로 치닫기도 한다.

    한류는 보편과 특수의 이중주

    BTS의 인기 비결은 수용되는 곳과 궁합이 맞았다는 점에 있다. 수용 지역의 특성을 BTS가 잘 헤아려 연행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류는 다른 여러 지역에서 수용할 수 있는 보편성과 타 지역 대중문화와는 다른 특수성을 동시에 지녔다. 이를 두고 한류의 혼종성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대중문화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식민지·전쟁·군사독재 같은 역사의 굴절을 겪은 한국의 경험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주장이다. 

    멜로드라마 속 신파성이 대표적인 예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여 한없이 눈물짓는 멜로 속 신파성은 한국 드라마가 지닌 특수성이다. 일제의 잔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피식민·전쟁·급격한 산업화 등의 사건으로 옮겨 가며 전혀 새로운 장르 형식으로 변형됐기에 특수성으로 남았다. 해외의 드라마 팬들은 한국 드라마 속에서 찾아낸 보편 속 특수에 관심 갖는다. 보편과 특수는 마찰과 갈등의 지위에 있다. 하지만 버무려내기에 따라선 이목을 끌만한 조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2000년 이후 한국의 문화적 변화는 디지털화, 급격한 이주로 인한 세계화라는 보편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극히 짧은 시간과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벌어졌으며,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의 기반을 갖지 못한 조건에서 이뤄졌다. 이제 그 특수성이 보편성 속에 자리 잡지 못한 채 전전하고 있다. 여론이 양극화돼 다투기 일쑤고, 극단으로 치달아 좀체 합의를 챙겨내지 못한다. 오히려 폭력적 혐오로 향하는 일이 허다하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회적 상상의 충돌을 관리할 지혜가 시급해졌다. 억지로 둘을 꿰맞춰 동일하게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충돌을 생산적으로 관리해내지 않고선 사회적 상상을 뼈대로 한 원만한 공동체라는 미래는 쉽게 오질 않을 태세다. 한류의 인기가 보편과 특수의 조화로운 이중주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지혜를 길어오면 어떨까.

    원용진
    ● 1957년 출생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학·석사
    ●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박사
    ● 문화연대 공동대표, 문화사회연구소 이사장,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 現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저서: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국 언론민주화의 진단’ ‘텔레비전 비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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