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동물萬事

미국 ‘巨大 멧돼지’ 호그질라 탄생기

사냥 욕망이 400㎏ 괴물돼지 만들어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입력2019-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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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엔 몸무게 400㎏이 넘는 거대한 멧돼지 호그질라(hogzilla)가 있다. 돼지(hog)와 일본 SF영화에 등장하는 괴수 고질라(Godzilla)의 합성어다. 이런 괴물 돼지는 원래 미국 초원은 물론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은 1차 산업인 농업이 발달한 농업대국이기도 하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넓고 비옥한 초원에는 지금도 엄청난 수의 소와 돼지가 자란다. 가축을 먹여 살릴 옥수수나 대두 같은 사료 작물도 넉넉하다. 미국산 육류는 자국 소비를 충족하고도 남아 해외로 수출된다. 2018년 6월 기준 7345만 마리의 돼지가 미국에서 자라며 1217만t의 돈육(豚肉)을 생산하고 있다.


    ‘유럽 돼지’ 후손

    미국 돼지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숨어 있다. 유럽인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이전까지 현재의 미국 땅에 돼지라는 발굽동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2019년 현재 미국에서 자라는 집돼지(pig), 멧돼지(wild boar), 잡종돼지(hybrid boar)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이 데리고 온 돼지들의 후손이다.

    이들이 바다를 건너 유럽에서 미국으로 돼지를 데려온 이유는 간단하다. 돼지고기라는 양질의 단백질을 간절히 원하는 입맛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유럽에서 돼지고기를 즐긴 유럽계 이주민에게 돼지고기 없는 미국에서의 식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고역이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집돼지들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싣고 온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멧돼지다. 이주민들이 유럽의 산과 들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야생 멧돼지를 북아메리카 대륙에 데려온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멧돼지를 옮기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는가. 멧돼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게 된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멧돼지가 얼마나 말썽을 피우는지 잘 알 것이다. 멧돼지에 대한 피로도가 극도로 쌓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작물을 훼손하거나 도심에 출현하는 멧돼지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멧돼지 피해를 직접 당하는 농민뿐 아니라 도시민도 질리게 한다.



    멧돼지라는 동물에게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녹화(綠化)가 잘된 삼림이 제공하는 우거진 수풀 덕분에 몸을 은신할 곳이 충분하다. 나무 열매나 뿌리 등 먹을 게 지천으로 널려 있다. 금상첨화로 한국의 야생에는 멧돼지의 생존을 직접 위협할 호랑이, 늑대 같은 천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멧돼지가 야생의 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멧돼지에게 한국의 야생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주체할 수 없는 식욕

    호그질라(왼쪽)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호그질라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홈페이지]

    호그질라(왼쪽)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호그질라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홈페이지]

    한국에서 멧돼지는 과잉 번식으로 개체 수를 불려가고 있다. 늘어난 숫자 탓에 삼림에 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게 됐다. 결국 농부가 살아가는 터전인 농경지로 내려와 수시로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다.

    농사를 위해 밭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것만 골라 먹기 일쑤다. 열매가 열리면 가만히 두질 않는다. 멧돼지는 특히 좋아하는 고구마를 뿌리까지 파헤쳐 농사를 포기하게 한다. 이 피해로 인해 농부의 원성은 매년 하늘을 찌르지만, 이를 막을 대책은 달리 없는 게 현실이다.

    멧돼지라는 동물이 애당초 없던 미국에서도 최근 녀석들로 인한 피해가 빈발한다. 미국의 자연환경도 멧돼지가 살기에 적합하다. 미국엔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넓은 평야가 이어져 있다. 멧돼지 개체 수를 조절할 천적도 부족하다. 외래 침입종인 멧돼지가 미국에서 황금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육식동물 중 난폭한 멧돼지 숫자를 조절할 포식자는 늑대나 푸마 정도밖에 없다. 게다가 늑대, 푸마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아 생태계가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멧돼지가 미국 자연에 원래 없던 동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수고스럽더라도 사람이 총을 들고 사냥개와 팀을 이뤄 멧돼지를 없애는 것이다.


    박멸 나선 미국

    미국에서 멧돼지가 주는 피해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태계도 울상이다. 멧돼지도 돼지이기에 주체할 수 없는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다. 농부들이 애써 키운 농작물을 무자비하게 먹어치운다. 농사를 망치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는 기본적 피해일 뿐이다. 경작지도 들쑤셔놓는다. 멧돼지 무리가 한 번 휩쓸고 간 농경지는 황폐해지고 만다.

    멧돼지는 민첩하고 빠른 만큼 활동 범위도 넓은 편이다. 멧돼지가 전염병에 감염된 상태라면 이곳저곳에 있는 그들의 가까운 친척인 집돼지에게 병을 전파시킬 수 있다. 미국에는 7000만 마리가 넘는 집돼지가 산다. 따라서 멧돼지를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다. 축산대국에서 가축전염병의 대유행은 천문학적 손실로 이어진다.

    멧돼지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많은 피해를 일으킨 브루셀라 같은 병도 멧돼지가 사람과 집돼지에게 옮길 수 있다.

    멧돼지가 주는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멧돼지는 본능적으로 땅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땅에 둥지를 틀고 사는 작은 조류나 파충류의 생존에도 큰 위협이 된다.

    식욕과 번식력이 왕성한 멧돼지는 영역에 대해 강한 소유욕이 있다. 따라서 멧돼지와 비슷한 먹이를 찾는 동물에게 덩치 크고 난폭한 멧돼지는 이기기 힘든 치명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멧돼지가 이렇듯 많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서 미국 정부는 멧돼지 박멸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멧돼지와 관련해 몇 가지 행동을 취하고 있다.

    첫째, 외국 멧돼지의 국내 유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멧돼지 관련 피해의 시작은 독일 등 유럽에서 온 멧돼지 때문이다.

    둘째, 사람이 멧돼지를 번식시켜서는 안 된다. 자칫 이들이 울타리를 넘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멧돼지 고기의 거래도 금지된다.

    셋째, 멧돼지를 숲이나 공원에 방사해서도 안 된다. 소수의 멧돼지라도 수 년 후 엄청난 숫자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멧돼지를 미국으로 들여왔을까.


    사냥하려고 수입

    미국은 총기 소유에 관대하다. 이런 시각은 낚싯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스포츠인 낚시와 총을 사용해 야생동물을 잡는 사냥을 본질적으로 같은 스포츠로 해석하게 한다. 미국에서 낚시 용품을 판매하는 상점 대부분은 사냥총을 포함한 다양한 사냥 도구도 함께 진열해놓는다. 배스 낚시도구 상점으로 유명한 곳에서 멧돼지 사냥총을 판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

    한국은 3면이 바다고, 한국인은 생선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낚시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 스포츠로 인식된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이런 흐름을 읽고 ‘도시어부’ 같은 낚시 전문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기리에 방송한다.

    반면 미국 TV채널에선 사냥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방송한다. 총을 맞고 쓰러진 사냥감도 모자이크 처리 후 보여준다. 미국의 사냥철은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에 시작된다. 동네 주유소에선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은 사냥꾼들이 픽업트럭을 몰고 와 연료를 채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인의 눈에는 신기한 광경이지만 미국에선 이런 사냥꾼이 너무 많아 일상의 한 광경으로 지나치게 된다.

    사냥꾼 일행 중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꽤 있다. 미국 아빠들은 아이가 어릴 때 사냥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아빠 못지않은 실력을 가진 사냥꾼이 될 것이다. 미국 사냥 전문잡지에서는 사냥한 오리들의 목을 엮은 줄을 든 채 아빠와 아이가 즐겁게 촬영한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멧돼지를 미국에 가져온 것은 고기를 얻을 목적이 아니었다. 멧돼지 고기는 질기고 기름이 적다. 멧돼지 고기를 찾는 사람은 집돼지 고기를 찾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멧돼지의 미국 수입은 사냥을 대중 스포츠로 생각하는 미국 문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 사냥꾼이 가장 선호하는 사냥감은 사슴이지만 거친 야성을 가진 일부 사냥꾼에게 사슴은 도전적이지 않은 밋밋한 사냥감에 불과하다. 덩치 크고 저돌적이고 빠른 동물을 잡으려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거친 사냥감을 좋아하는 사냥꾼에게 멧돼지는 최적의 대상이었다.

    미국에는 거친 사냥꾼들의 수렵 욕망을 만족시킬 만한 야생 멧돼지가 없었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유럽에서 멧돼지를 수입한 것이다.

    멧돼지가 미국에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에야 멧돼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1890년 미국 뉴햄프셔의 한 목장주는 사냥을 목적으로 자신의 목장에 독일산 야생 멧돼지를 들여왔다. 이 멧돼지가 미국 멧돼지 역사의 시작이다.

    멧돼지는 강한 야성이 있어서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사람이 만든 울타리에 순응하는 집돼지와는 전혀 다른 동물이다. 나중에 모두 포획됐지만, 뉴햄프셔 목장주가 독일에서 수입한 멧돼지 중 일부도 자연으로 탈출했다. 이후 미국 곳곳에서 사냥 용도로 멧돼지를 수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멧돼지가 목장의 울타리를 넘어 미국의 넓은 들판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이들 중 일부는 집돼지와 교합해 잡종돼지를 만들어냈다. 이 잡종돼지는 미국 초원의 새로운 야생동물이 됐다.


    몸집이 커진 멧돼지

    미국 식민지 시대의 사냥 모습. [FCIT]

    미국 식민지 시대의 사냥 모습. [FCIT]

    미국 초원에서 서식하는 멧돼지의 대부분은 순종 멧돼지가 아니다.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몸집이 유럽 순종 멧돼지보다 훨씬 커졌다. 멧돼지와 집돼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돼지의 후손은 순종 멧돼지로부터 난폭함과 강한 생존력을 물려받았고 집돼지의 유전자까지 이어받았다. 

    이런 가운데 앨라배마주에선 11세 소년에 의해 무게 477kg 길이 2.85m의 초거대 멧돼지가 사살됐다. 이 동물은 권총 8발을 맞은 뒤에야 쓰러졌다. 300~400㎏에 달하는 호그질라(hogzilla)가 마침내 미국 대륙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괴물을 뜻하는 몬스터(monster)로 불리기도 한다. 거친 동물을 사냥하고자 한 인간의 욕심이 이런 괴물 돼지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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