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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평양 엘리트 동맹 와해”

‘北이 경제개혁 자문한’ 방찬영 키멥대 총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김정은-평양 엘리트 동맹 와해”

  • ● 덩샤오핑 길 안 걸으면 실각
    ● 김정은 영리하기에 경제가 얼마나 버틸지 알 것
    ● 체제 내 개혁으로는 北 못 이끌어
    ● 김정은 생존하려면 경제개발기금 확보해야
    ● 통치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북한의 가장 큰 체제 위협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방찬영(83) 카자흐스탄 키멥대학 총장은 사회주의 경제시스템 개혁 전문가로 통한다. 카자흐스탄 자본주의 설계자다. 1991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의 경제특별보좌관으로서 경제전문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돼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의 ‘시장경제 이행’을 이끌었다. 카자흐스탄은 급진적 개혁으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났다. 

방 총장은 1936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교수로 일했다. 냉전 시기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강연했으며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면담했다. 카자흐스탄 개혁·개방에 참여했다. 1992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공산당 간부학교 건물에 시장경제를 담당할 인력 양성을 표방한 키멥대를 세웠다. 

그는 1990년대 두 차례 방북해 북한 관료들에게 경제 발전 전략을 조언했으며 키멥대에 북한전략연구소를 설치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번영’이 그의 숙원(宿願)이다. 서울에 온 그를 7월 29일 만났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을 갖고 생존을 모색할지, 핵을 포기할지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기로에 선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계뜨락또르(트랙터) 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월 1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계뜨락또르(트랙터) 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월 1일 보도했다.

“외람된 얘기겠으나 한국을 보면 딱하다.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적 관점에서 북한의 붕괴를 마냥 기다렸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이념의 굴레에 빠져 북한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북유럽 순방 때 외국 기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는데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동문서답하더라.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복안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밝은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하고 있다. 

“밝은 미래가 어떻게 열리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 경제 발전보다 체제 보장이 평양의 관심사 아닌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미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하려 한다? 그러니 평화협정을 맺든지, 수교하든지 하자? 그것은 피상적으로 말하는 체제 보장이다. 북한의 체제 위기는 외부의 침략 위협으로 발생한 게 아니다. 북·미, 남북 간 대결 관계가 지속되는 한 핵이 있든, 없든 경제 발전을 할 수 없다.” 

- 체제 위기는 통치 이념과 현실의 괴리, 그러니까 내부 모순 때문이다? 

“정확히 봤다. 북한이 당면한 문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내적 모순 탓에 경제 발전을 할 수 없기에 발생한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은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맹목적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돈을 아무리 갖다 줘도 동태적(動態的) 경제 발전을 할 수 없다. 공산주의 체제로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는 없다.” 

-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시장사회주의다. 북한도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카자흐스탄식이든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경제개혁이 가능하다.” 

- 김정은 집권 후 제한적이긴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일관되게 개혁·개방 쪽으로 움직였다. 

“김정은은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를 39회나 언급하고 핵무기를 더는 제조하거나 실험 및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차 방북했을 때 김정은이 ‘자신의 자녀들이 평생 핵을 지니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핵을 가진 상태에서는 체제 유지가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왜곡과 부조리의 북한 경제

- 북한의 협상 행태를 보면 핵을 가진 상태에서 제재 완화를 받아내고 핵보유국 지위에서 경제 발전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안 된다. 북한이 핵을 계속 보유하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된다. 일본도 재무장에 돌입한다.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위배되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북·미 간 무력 분쟁이 발생하면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이 막대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본다. 북한의 동맹이며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확고한 반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 북한 경제의 시장화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나. 

“북한에 시장이 480개가 넘는데, 경제 현대화를 거친 개혁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난의 행군 때 자연적으로 발생해 성장한 것이다. 김정일이 시장을 막아보려고 2009년 화폐개혁도 했으나 실패했다. 시장의 확대는 개혁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를 추후에 승인한 것이다. 시장은 밥 벌어먹는 비상대책, 궁여지책이었다. 시장이 확산하면서 경제성장이 1%, 2%라도 이뤄져 살 수 있었다. 북한 경제에는 현재 엄청난 왜곡과 부조리가 존재한다. ‘돈주(자본가)’가 아파트를 지을 때 건설부터 사용권을 파는 단계까지 모조리 다 비리다. 왜? 국가가 공식적으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은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생산수단이 전(全) 인민적 국가 소유라는 헌법 규정부터 바꿔야 개혁이 가능하다.”


김정은-엘리트 ‘실리 동맹’에 균열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제재가 북한 통치체제의 생존을 실제로 위협하고 있다고 봤다. 

“나는 소수 동맹(Small Coali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 평양 인구 250만 명 중 엘리트 25만 명이 김정은과 실리적 동맹(Mutually Beneficial Coalition)을 맺고 있다. 체제 안위를 좌우하는 통치 기반이 인민 대중의 지지가 아니라 소수 엘리트와의 공생·공존을 통한 동맹에 기초하고 있다. 소수 엘리트 집단에는 무역을 통해 신흥 재벌로 부상한 돈주와 군, 당, 행정의 고위층 관료가 포함돼 있다. 최고지도자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삶과 특권을 향유하도록 배려해주고 그 보답으로 충성과 지지를 얻어낸다. 김정은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소수 동맹의 리더로 변전(變轉)했다. 

그러나 최고통치자와 엘리트 간 이 실리적 동맹이 강력한 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으로 첨예한 도전을 받고 있다. 유엔과 미국이 채택한 제재로 인해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이 급감했다. 노동당 39호실이 관장하는 통치자금도 고갈되고 있다. 돈주들과 소수의 엘리트들은 그간 향유해온 혜택과 특권보다 더 많이 헌납하도록 강요받는다. 그 결과 상호 공생·공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북한은 어떻게 보면 아주 무기력한 좀비 같은 체제가 돼버렸다.” 

- 그렇다면 더욱 더 핵을 쥐고 있으려 하지 않을까. 

“김정은은 용의주도하고 관찰력이 있다. 7년간 잘해왔다. 아주 영리하다. 그렇기에 체제가 유지된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가 얼마나 더 버틸지 알고 있다. 제재가 이어지면 통치자금이 바닥난다. 북한이 어떤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 30년간 경제 발전을 유보하고 간고분투(艱苦奮鬪) 끝에 핵을 개발했는데 경제 발전을 위해 이제는 핵을 포기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치하의 중국, 스탈린 체제의 소련, 베네수엘라, 쿠바를 봐라. 사회주의는 혁명의 이념이지 경제 발전의 이념이 아니다. 노동력과 물자의 투입만으로는 경제 발전에 한계가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생산성이 제고되지 않는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 발전을 하지 못한다. 내부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해 경제 발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체제를 보존할 수 없다.”


“내적·외적 통제 수단 상실”

- 핵이 있건, 없건 체제가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핵무장을 결심했을 때와 조건이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게 김정은의 딜레마다. 체제가 생존하려면 외적·내적 통제 수단이 다 있어야 한다. 외적 통제 수단은 벼랑 끝 외교로 위기를 조성하면서 확보했다. 미국이 침공하려고 하니 희생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문재인을 만남으로써 외적 통제 수단을 상실했다. 내적 통제 수단은 사상 교화와 배급이다. 국가가 식량과 달러를 나눠주지 못하며 사상 교화도 이젠 안 된다. 내적 통제 수단도 잃어버린 것이다. 총살이 늘어나는 것은 체제를 유지하려면 공포 수위라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결심할 때가 됐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 덩샤오핑(鄧小平)의 길을 갈 것이냐, 핵을 끌어안고 지리멸렬할 것이냐. 

“덩샤오핑의 길을 걷지 않으면 초읽기에 들어간다.” 

- 어떤 초읽기? 

“체제 유지가 안 된다.” 

- 김정은이 실각하거나 체제가 와해된다? 

“그렇다. 그래서 공포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안 들어오면 소수 동맹이 와해된다.” 

- 대북 소식통들은 경제 제재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게 평양의 고소득층이라고 전한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보편화했으며 정보의 확산도 빨라졌다. 김정은 처지에서도 이렇게 가면 체제 유지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체사상 구현자로는 정통성 인정 못 받아”

- ‘하노이 노딜’ 이후 다수 전문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부정적 분석을 내놓는다. 

“핵은 미국에 대한 신빙성 있는 억지력이면서 정권의 정통성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은 핵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통치 체제가 이룩한 위업으로 간주한다. 핵은 북한보다 45배가 넘는 경제력을 가진 한국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리비아의 카다피 사례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김정은 통치 체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변수로 등장했다. 국가의 공식 지도 이념과 사회·경제적 현실에 내재하는 타협할 수 없는 괴리로 인해 통치 체제의 존립 기반이 침식되고 있다. 소수 동맹이 도전받고 있으며 통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김정은이 일관되게 경제 복지를 강조해온 것도 핵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신빙성 있는 방증이다.” 

- 비핵화를 결심했다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핵 없이 살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해줘야 한다. 핵 포기의 조건을 북한에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를 조성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비핵화가 이뤄진다? 그것은 정책이 아니다. 핵을 포기하면 뭘 줄 건지 얘기해야 한다.” 

- 정치개혁이 없으면 경제개혁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앞서 말했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나라다. 사상의 강국을 자임한다. 정치개혁이 가능할까. 

“경제개혁의 폭과 성과는 정치개혁의 폭과 성과에 달려 있다. 사회주의의 핵심 목표는 인민이 먹고살고 쓰는 것을 골고루 평준화해 착취가 없는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성공한 나라가 없다. 주체사상이 뭔가.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발전시켰다며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혁명적 수령관(觀)을 정립한 것이다. 북한은 현재 이념과 사회가 일치하지 않는다. 주체사상의 구현자로서 김정은의 정통성이 보장되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다. 북한 체제를 향한 가장 큰 위협은 앞서 말했듯 내부 모순과 부조리다. 북한이 존속하려면 체제의 기본 성격을 바꿔야 한다.” 

- 그건 체제 보전이 아니라 체제 파괴다. 

“체제의 기본 성격이 바뀌지 않으면 핵을 포기하고 북한이 존속할 수 없다. 생산수단의 사유화, 경제활동 자유화, 노동시장 자율화가 이뤄져야 경제 현대화가 가능한데, 통치 이념이 바뀌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창시자로 남기면 된다. 중국에서도 마오쩌둥을 역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 인민을 위해 기존의 체제를 뒤집은 독재자는 없다. 

“소련에 고르바초프가 있고, 중국과 베트남도 비슷하다. 사회주의가 북한을 말아먹은 것 아닌가. 살아남으려면 정통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체사상으로는 그게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게 김정은의 고민이다.” 

- 중국공산당처럼 경제 발전에서 정통성을 확보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왜 경제를 거듭 강조했겠나. 인민의 복지 향상을 통해 정통성을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려면 매년 10% 넘게 성장해 체제 개혁과 개방으로 야기되는 불안정 요인을 억제해야 한다.”


북한판 마셜 플랜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김정은이 결심했다고 보는 건가. 

“나는 그렇게 본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이념적으로 부담이 작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경제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효율적, 기형적 경제체제를 전수받았을 뿐이다. 체제 내 개혁만으로는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거듭 강조했듯 지금의 체제로는 경제 발전을 이뤄내지 못한다. 주체사상 구현자로서의 정통성은 벌써부터 상실한 상황에서 경제 현대화를 이룩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기를 원할 것이다. 비핵화를 촉진하려면 핵을 포기했을 때 열리는 밝은 미래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 

- 북한판 마셜 플랜이 필요하다? 

“핵을 포기한 상황에서는 고도의 경제 발전을 하지 못하면 체제가 붕괴한다. 개혁·개방을 단행해 경제 현대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최단 10년이 걸린다. 그 10년간 연평균 10% 넘는 실질 성장률을 거둬야 한다. 그러려면 연 300억 달러(약 36조 원), 10년간 3000억 달러의 경제개발기금이 필요하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5자 관여국이 마련할 경제개발기금은 핵 폐기 협약 준수에 따라 10년에 걸쳐 분할 제공되도록 계획돼야 한다. 경제개발기금이 인프라 건설에 투입되면 투자 금액의 대부분은 인프라 건설에 참여한 기업들의 소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연 300억 달러는 북한 체제가 붕괴했을 때 소요되는 자금과 비교하면 작은 액수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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