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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나비부인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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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부인’은 자기희생적인 순애보를 다룬다. 나비부인은 자신의 짧은 생을 한탄하며 서러워만 했을까. 아니면 온몸을 바친 불꽃 사랑을 했기에 진정 행복했을까. 푸치니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감동을 더한다.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황승경]

타인의 사랑이나 사생활에 관한 한 한국 사람들은 좀 엄격하고, 남성 중심적이다.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홍 감독의 회고전이 열리는 프랑스 마르세유 국제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국 취재진은 생뚱맞게 감독의 사생활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홍 감독보다 더한 스캔들을 일으켜도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만큼 사생활과 공적 활동에 대한 인식이 분리돼 있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회에선 타인의 사랑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자신에 대한 잣대와 비슷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탈리아 테너 지노 시님베르기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사생활을 존중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나도 그런 상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지. 언제, 어디서 큐피드의 화살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런데 오페라 속 스캔들을 볼 때면 우리는 한없이 관대해진다. 작품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현실을 반추하며 진정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오페라 여주인공은 대개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죽고, 사랑하는 남자의 행복을 위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다.

그 대표적인 여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일 것이다. 개화기 일본 여성인 그녀는 3년 동안 기다리던 남편이 미국인 아내와 함께 돌아오자 아이와 남편의 행복을 위해 할복자살을 감행한다. 이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기로 시공간이 옮겨져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작곡가 푸치니는 1남 4녀를 건사하게 된 강인한 어머니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누이들 사이에서 크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진 소심한 아이였는데, 성년이 돼서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

27세의 젊은 푸치니는 세간의 손가락질과 가족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유부녀인 초등학교 동창 엘비라와 애정의 도피 행각을 벌이고 외아들 안토니오를 얻게 된다. 그녀는 그가 27년간 꿈꾼 이상의 여인이었다.

청초해 보이던 엘비라가 드센 본색을 드러내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푸치니의 여주인공들은 어떤 캐릭터이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종적인, 귀엽고 애교 많은 순수한 여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자신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많은 남성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어려서부터 가까이서 본 여성들의 속마음을 간파했기 때문일까. 푸치니는 이후 2년 터울로 내놓은 ‘마농 레스코’ ‘라보엠’ ‘토스카’를 화려하게 성공시키며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켰고 그야말로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부를 거머쥔 푸치니는 이제 ‘거장’이라는 명예를 안겨줄 차기작을 면밀하게 준비해야 했다.



푸치니의 간절한 뮤즈

맑게 갠 어느 날 그녀는 행복했을까

푸치니는 1900년 런던에서 연극 ‘나비부인’을 보고 영감을 얻어 오페라 ‘나비부인’을 작곡했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 재단]

푸치니는 1900년 여름 영국에서 드디어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을 선사할 미지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여성. 다만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연극 속 여주인공이었다. 그 무렵 극작가이자 제작자인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미국 신작 연극 ‘나비부인’이 그동안의 적자를 모두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푸치니로선 전작 ‘토스카’도 원래는 연극 작품이었으니 차기작도 연극 작품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벨라스코의 작품이 런던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이었고, 푸치니는 코벤트가든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협의차 런던에 머물고 있었다.

공연을 보러 간 푸치니는 막이 오르자마자 등장한 기모노 차림의 작은 여인에게 완전히 매료됐다.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2시간의 상연시간 내내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을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연극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던 푸치니는 무대 뒤로 극작가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이 연극을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제안해 허락을 받고 곧장 작품 구상에 박차를 가한다.

나비부인의 환경을 더 잘 묘사하려면 일본의 전통문화와 그들의 음악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푸치니는 일본 공사관은 물론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수소문해 일본어의 독특한 어감과 샤미센 음악, 일본 민요 등을 익히며 일본의 전통 5음 음계를 연구했다.

푸치니는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8개월 동안 병상에 있어야 했으나 이내 다시 열과 성을 다해 작품에 전념했다. ‘나비부인’을 탄생시키던 이 3년의 시간이 그에겐 흥분의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요트도 ‘초초(蝶蝶, 나비부인의 이름) 상’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나비부인’의 원작자 벨라스코는 존 루터 롱의 단편소설을 각색해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소설, 연극, 오페라 속 나비부인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푸치니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이상형의 여인, 즉 사랑에는 매우 용감하고 열정적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희생적인 순진무구한 초초를 창조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변호사이던 롱은 선교사로 나가사키에 오래 체류한 누이로부터 한 게이샤(芸者, 기생)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다 자신이 일본에 대해 가진 환상을 가미해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에선 결혼식을 올리고 떠난 핀커튼을 기다리는 나비부인 모자의 생활을 주로 다룬 반면, 푸치니는 핀커튼과 나비부인의 결혼식을 1막으로 담아 꽤 비중 있게 다뤘다.

나가사키는 1542년에 난파된 포르투갈 선박이 항구에 들어오면서부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관문이었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결합된 묘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1890년대 초반 나가사키를 비롯한 개항지는 서구 열강 남성들의 현지처가 되는 비련의 일본 여인들로 넘쳐났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본 여인이 시쳇말로 ‘쿨’하게 외국 남성과 단기 결혼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비부인은 순박하게도 자신이 미국인 장교의 조강지처라고 굳게 믿었다.



‘다른 아내’와 나타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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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고향 토페 델 라고에서 매년 열리는 푸치니 페스티벌의 ‘나비부인’ 무대. [황승경]

1막이 오르면 나오는 핀커튼과 미국 영사 샤플리스의 2중창은 핀커튼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비부인과 결혼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핀커튼은 그의 신혼집을 999년간 임차했고 계약은 언제든 마음대로 파기할 수 있다는 가사가 나온다. 뭐든 일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서구 열강의 태도가 드러나는 서글픈 대목이지만, 999년이라는 임차 기간 때문에 나비부인은 남편 핀커튼이 꼭 돌아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천진난만한 15세 나비부인은 미국인과의 국제결혼을 위해서 자신의 집안도 종교도 가족도 모두 버린다. 사무라이인 아버지가 명예를 지키려고 자결하는 바람에 결혼식 장면엔 어머니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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