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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양산을 든 여인 카미유의 임종

클로드 모네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양산을 든 여인 카미유의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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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을 든 여인 카미유의 임종

‘양산을 든 여인’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성경 말씀은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라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내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어도 나를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많이 사랑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곤 했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이렇듯 제게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에 참으로 어려운 단어가 됐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든 생각은, 굉장히 희생적이거나 놀랄 만큼 선한 행동을 해야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에선 그 대상이 다소 힘겹거나 지루하더라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있어주는, 그런 일상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랑을 이렇게 본다면, 사랑에 대한 제 정의가 너무 소극적인 것일까요.

가난한 날의 사랑과 행복 

많은 화가가 사랑을 작품 주제로 삼았습니다. 어떤 화가는 아내 사랑을, 어떤 화가는 자식 사랑을, 또 어떤 화가는 부모 사랑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가족이 누구보다 먼저 일차적인 대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들 가운데 특히 제 마음을 두드린 그림은 인상파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양산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 1875)입니다.

환하게 빛나는 햇살을 마음껏 느끼게 하는 그림입니다. 한 여인과 한 아이가 싱그러운 자연 속을 산책하고 있습니다. 녹색 벌판 위에 핀 노란 꽃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춤추는 듯한 구름은 모네가 왜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인지 깨닫게 합니다. 실내에선 이런 화사한 작품을 그리기 어렵습니다. 밖에서 직접 그릴 때 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생생함을 감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모네는 많은 작품을 야외에서 그렸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풍경이든 사람이든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양산을 든 여인’을 자세히 보면 모네는 자연의 모습과 사람의 표정을 정밀하게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빠르고 다소 거친 붓의 터치를 대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순간의 포착입니다. 빛이 만들어낸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물의 생동감이라는 효과에 주목했지요. 그 결과 이 작품은 앞선 시대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감상에 더해, 모네가 화폭에 담은 이들이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작품의 사랑스러움은 한층 배가됩니다. 무명 화가에 가깝던 모네는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모델 카미유 동시외와 결혼했고 카미유는 아들 장을 낳았습니다. 모네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환한 사랑과 따뜻한 평화가 넘쳐흐르는 듯합니다.

화가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시리즈에서 맨 처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다룰 때 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고흐에게도 가족은 무척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물며 결혼한 모네에게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게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모네는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아르장튀유에서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화풍에 몰두할 때였죠. ‘양산을 든 여인’은 가난한 날 모네의 사랑과 행복을 담은 작품인 셈입니다.

감각의 해방 

‘인상파’란 이름은 ‘양산을 든 여인’에 앞서 그린 ‘인상, 해돋이’(Impression : Sunrise, 1873)라는 작품에서 비롯됐습니다. 모네는 이 작품을 1874년 국가가 주도하는 살롱전에 맞서 개최된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습니다. 이때 한 평론가가 ‘인상, 해돋이’가 붓질을 마구 한 스케치에 불과하고 인상적이라는,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함으로써 전시회에 참여한 모네와 그의 동료들인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등은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 됐습니다.

전시회는 실패했지만 모네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빛의 효과와 색채의 감각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빛이 만들어내는 시시각각의 변화를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담긴 밝은 색채를 빠른 붓질로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중시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각이고, 그가 표현한 것은 이성의 구속에서 벗어난 감각의 해방입니다.

이러한 자기만의 예술을 추구했기에 모네는 경제적으로 곤궁했음에도 ‘양산을 든 여인’과 같은 밝고 사랑스러운 작품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 담긴 경쾌한 화사함은 인상파에 앞선 시대를 장식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적 엄격함, 외젠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적 화려함과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근대적 감각입니다.

현대인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유독 좋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작품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만 회화를 감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빛과 색채의 새로운 감각을 기반으로 해 자연과 사람을 자유롭게 재현하려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현대인들은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모네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미적 공감과 정서적 편안함을 안겨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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