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한국 커피 현대사(광복~1960년대 말)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1/3
  • 우리나라에선 일제강점기 후반 들어 커피 대중화 움직임이 보였다.
  • 6·25전쟁 땐 인스턴트 커피가 물꼬를 텄고, 종전 이후엔 커피가 서민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 시대의 변곡점마다 변신을 거듭하며 생명력을 이어온 대한민국 커피 현대사.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1940년 서울 조선호텔 썬룸에서 커피를 마시던 29세의 무용가 최승희.[사진제공 · 조선호텔]

커피가 처음 한국에 전해진 것은 기록상으로 구한말이다. 이어진 일제강점기에 일부 지식인이 다방을 열어 계몽의식을 불어넣고자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하루 각박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커피는 부자나 특권층의 사치품으로 비칠 뿐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작지만 의미 있는 커피 대중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6·25전쟁 때는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물꼬를 텄다. 종전(終戰)과 함께 커피는 서민의 일상까지 깊이 파고들었으며,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지칠 줄 모르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시대의 변곡점마다 기발한 변신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한국 커피의 현대사를 되짚었다.

3·1운동 이후와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민족말살정책을 펴기 전까지 10여 년의 시대적 공간은 암흑 속에서 미약하나마 문화예술의 숨통이 트인 시기로 기록된다. 이때 한국인들은 속속 다방을 열었으며, 상인들이 커피를 팔기도 했다.

접대용 ‘인삼커피’

1926년엔 ‘위생대감(衛生大鑑)’ 증보판에 처음으로 커피의 효능을 소개하는 내용이 실렸다. 1913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종두법을 최초로 도입한 지석영과 갑신정변을 주도한 급진개화파 박영효가 서문을 썼는데, 가정 비치용 의학백과사전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이 백과사전 편찬을 통해 “지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시민의 뇌리에 깊이 새김으로써 대혁명을 이끌어낸 것처럼, 우리 지식인들도 비슷한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커피가 전해진 모든 나라에서 그러했듯, 조선 땅이 일제의 지배를 받는 와중에도 커피는 일단 발을 들여놓자 후퇴를 모르고 급속히 퍼졌다. 커피는 곧 다방을 벗어나 가정에까지 파고들었다. 미국의 외교관, 선교사 행렬에 섞여 들어온 커피 브랜드 ‘맥스웰(Maxwell)’은 1930년부터는 전단지를 만들어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 뿌리는 등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핵심 메시지는 ‘가정에서 즐기는 커피, 맥스웰’이었다. 조선인삼원은 커피를 섞은 인삼커피(Ginseng Coffee)를 선보였다. 물에 타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인삼커피라 주부들 사이에선 손님 접대용으로 인기를 누렸다.

상인들도 커피를 비즈니스에 활용했다. 프랑스 출신의 폴 안토니 푸레상은 만리동 고갯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부래상(富來祥) 상회’를 열고 남대문시장으로 가던 나무꾼들을 길목에서 채갔다. 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흥정을 유리하게 이끈 것. 그는 화살통만한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멀리 무악재까지 나가 고개를 넘어오는 나무꾼들도 사로잡는 재주를 부렸다. 이때가 1910년쯤으로, 푸레상은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휴대용 보온병을 사용해 커피를 홍보 도구로 활용한 인물로 기록됐다. 장터에서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인스턴트 커피를 파는 ‘시장 바리스타’의 원조가 푸레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욕심이 지나쳐 가짜 화장품을 만들어 팔다 붙잡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커피를 즐기기 위한 용품도 기지개를 켰는데, 1930년대 평북 정주의 유기공장들은 커피 잔과 드립용 주전자는 물론 휴대용 커피 보온병까지 만들어냈다. 내수 및 해외시장 문을 두드리다 유기로 만든 한국형 커피잔 세트를 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최승희 스타 마케팅

1940년대에 들어서면 일본의 민족말살정책 탓에 커피 문화를 추적하기 힘들다. 한동안 꽃을 피우던 지식인들의 다방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커피, 설탕 등의 수입이 막히면서 거의 폐업 상태로 빠져들었다. 다만 조선호텔이 카페를 알리려 일종의 스타 마케팅을 한 흔적이 보인다.

1940년 29세의 최승희가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내 썬룸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호텔 측 카메라에 포착됐다. 전설적 무용가로서 최신 유행의 상징이기도 하던 그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로 하여금 커피를 마셔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한몫한 듯하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종전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한국에선 근대사가 마감되고 현대사가 열렸다. 커피를 통해 본 한국사에서 광복은 곧 현대의 시작이자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1/3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목록 닫기

‘설탕 탄 탕국’ 서민 기호품 되다

댓글 창 닫기

2017/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