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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작품성 + 대중성 어제보다 오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작품성 + 대중성 어제보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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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 다다른다. 마을은 꽃으로, 나지막한 집들은 덤불로 장식돼 있다.
  •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말밖엔 떠오르지 않는 이곳, 담쟁이덩굴로 덮인 2층집은 최첨단 현대미술관이다.
한인간이 한 가지 일에 한평생 열정을 쏟으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덴마크 동부 해안에 자리 잡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을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크누드 젠센(Knud W. Jensen·1916~2000)이라는 미술 애호가가 40여 년간 쏟아부은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이곳에 있다.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젠센은 사업가였지만 예술과 문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치즈 도매업으로 큰돈을 벌어 20세 때부터 독일,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지를 순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예술적, 문화적 견문도 쌓았다. 특히 미술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23세 때부터 20여 년간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42세인 1958년부터 1995년 은퇴할 때까지 40여 년간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인생을 바쳤다. 줄곧 관장을 맡았으며 미술관에 온갖 열정을 쏟아부었다.

젠센은 코펜하겐 북쪽의 바닷가에 땅을 마련한 후 풍광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곳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건축가들에게 자문했다. 이들은 젠센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미술관을 제안했다. 곧 3채의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첫걸음이다. 1958년의 일이다. 이후 확장 공사를 거쳐 1991년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다.



‘루이스’들이 살던 곳

미술관은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곳에 빌라를 지은 땅 소유자가 세 여자와 결혼했는데, 특이하게도 아내들의 이름이 모두 루이스(Louise)여서 빌라 이름을 루이지애나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새 주인이 된 젠센도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런 사연이 미술관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었다.

미술관을 처음 열었을 때는 덴마크 작품만 취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몇 년 경영하면서 젠센은 생각을 바꿨다. 취급 대상을 국제적인 작품으로 확대해갔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고, 이처럼 폭넓게 다룸으로써 덴마크의 예술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곳은 덴마크를 넘어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화가들은 이 미술관에 자기 작품이 전시되거나 소장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 3500여 점을 소장했다. 소장품의 핵심은 그림과 조각이다. 전시실도 많고 상설 전시 작품도 많다. 끊임없이 새 작품을 사들일 뿐만 아니라 특별전과 기획전도 연이어 개최한다. 소장품이 늘어 중요 작품만 상설 전시하고 나머지는 순환 전시한다. 전시 작품이 계속 바뀌는 데다 미술관의 분위기도 새로워지므로 와본 관람객도 다시 찾는다.



‘선물’이자 ‘모델’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철로변의 시골 풍경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북 방향으로 30여 분을 달리면 덴마크의 전형적인 작은 시골 마을에 다다른다. 훔레벡(Humlebaek)이라는 역이다. 마을은 온통 꽃으로 장식되고 집들은 한결같이 나지막한 덤불로 담장을 둘렀다.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말 외에 딱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은 왜 이렇게 가꿀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10여 분 걸어가니 담쟁이덩굴로 덮인 2층집이 나타났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미술관임을 알려줄 뿐 겉모습은 여느 주택이나 큰 차이가 없다. 집 앞에 놓인 몇 점의 조각품이 미술관이라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건물 입구를 거쳐 뒤편 정원으로 가자 상황이 돌변했다. 별천지였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지고 그 끝 언덕 너머로 파도가 철석거렸다. 잔디밭에는 알맞은 장소에 조각 작품들이 배치돼 있었고, 언저리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바다 건너편은 스웨덴이다.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기차역에서 이곳에 이르는 마을 길에도, 미술관 정원에도 관람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년에 7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은 세계인이 많이 찾는 미술관 목록에 들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알렉산더 칼더, 헨리 무어 등 유수의 조각가, 로이 폭스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쟁쟁한 현대 화가들은 물론 동시대 작가들 작품을 물릴 정도로 감상할 수 있는 최첨단 현대미술관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국가가 지원하는 민간 미술관이다. 국가 지원금이 예산의 4분의 1이고 나머지는 자체 수입과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미술관의 발전은 자체 수입 확보에 달렸다. 소장품을 늘려가면서 미술관의 품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돈이 끝없이 들어간다.

2012년엔 미술관 전속 웹-TV 채널, 2013년엔 음악방송도 만들었다. 2010년부터는 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세계에서 매년 문학가 40여 명이 참가하고, 관객이 1만 명 이상 모여드는 이 페스티벌은 예술·문화의 종합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술관 대부분은 그림이 핵심이고 조각은 부속물이다. 그러나 루이지애나는 조각공원에 미술관이 붙어 있는 것인지, 미술관에 조각을 전시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건물 안에 들어가려 하면 정원의 걸출한 조각들이 발목을 잡는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바깥의 조각들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실내의 작품들로 황홀해진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도,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게 한다. 특히 헨리 무어(1898~1986)와 알렉산더 칼더(1898~1976) 작품은 유혹의 힘이 거세다. 그중에서도 ‘칼더 테라스’는 관람객을 강력하게 붙잡는 곳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칼더 작품 3점이 신비롭게 배치돼 있다. 두 점은 쌍둥이 같은 작품이고, 한 점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바일이다.

이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수많은 전시실을 둘러보며 피곤해진 몸에 원기를 준다.  미술관에 카페를 열었을 때 다른 미술관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방문자들에겐 정신적 충만감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 휴식도 필요했다. 루이지애나는 대중에게는 선물이었고, 다른 미술관에는 새 모델이 됐다. 발아래 파도 소리는 남은 전시실도 마저 둘러보라고 재촉한다.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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