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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은 神과 같다

  • 정재민 | 판사, 소설가

국민의 뜻은 神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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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은 神과 같다

[동아일보]

시국이 엄혹하니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로 형사재판에 대해서 말하는 이 글도 민주주의와 헌법 이야기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근대 형사재판제도도 민주주의라는 아버지의 씨를 받아 헌법이라는 어머니가 잉태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단연 최고 규범이다. 모든 법에 효력을 부여한다.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의 권한뿐만 아니라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과 같은 거대 권력도 헌법이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막강한 헌법의 효력은 누가 부여한 것일까.

헌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을 헌법제정권력이라 한다. 프랑스혁명 때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라는 정치가가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헌법학계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헌법제정권력은 자연 상태에서 조직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것들을 ‘조직하는 권력’이다. 그 권력은 ‘조직된 권력’에 앞선다. 시에예스는 헌법제정권력이 국민에게 속한다고 보았다. 지금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군주국은 군주가, 국가주의 국가는 국가 자체가 헌법제정권력을 가진다고 봤다.

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 헌법제정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헌법제정권력은 헌법을 만든 권력이므로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에 앞선다. 헌법제정권력은 곧 국민의 뜻이다. 따라서 국민의 뜻이 모든 권력에 앞선다. 헌법 제1조 제2항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기 전부터 이미 국민의 뜻이 모든 권력에 앞선다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뜻이 모든 권력이 갖춰야 할 정당성의 원천이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의 뜻은 신(神)과 같다.

국민의 뜻이 늘 분명한 것은 아니다. 혁명이나 개헌과 같이 결정적 순간에 초인처럼 홀연히 나타나서 국가 존립에 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만 이내 사라진다. 분열됐던 국민의 뜻이 하나로 결집됐을 때에도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곧 사라진다. 평소에는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국민의 뜻은 신과 같다.

신도들이 경전을 토대로 신의 뜻을 가늠하며 일상을 살아가듯 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을 토대로 국민의 뜻을 가늠하며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헌법만 보아서는 국민의 뜻이 불분명하다. 사안에 따라 국민의 뜻은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이에 헌법은 국민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놓았다. 그것이 대의제다. 국민이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국민의 뜻을 수렴해서 법을 만드는 제도다.

법질서 없이는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나라가 몸이라면 법은 뼈와 살이다. 뼈와 살은 피와 숨이 빚어낸다. 피와 숨은 개개 국민의 뜻이다. 피와 숨을 온몸에 순환시키는 메커니즘이 정치다.

피와 숨은 윤곽이 없다. 그 자체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부단히 결집해서 뼈대를 세우고 살집을 빚어야 몸의 틀이 잡히고 힘을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뜻은 조직화되고 법으로 완성될 때 힘을 제대로 발휘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권력이 법을 통해서 실효적으로 발동하기 때문이다.

권력분립

국민의 뜻은 神과 같다

법대 위의 법전과 그 법전의 최상위법으로서 헌법을 만드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고 규정한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동아일보]

법치주의란 법이 정한 그대로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다. 권력자가 제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며 사유화하지 않는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법에 정한 것 이상으로 권력을 행사하면 직권남용이 되고 법에 정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된다.

사실 법치주의 자체는 그 법이 누구 손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법은 국민이 만들 수도 있고, 왕이나 귀족이 만들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도 법치주의를 채택할 수는 있다.

민주주의 국가란 법치의 전제인 법을 국민이 만드는 국가다. 왕이나 특권층이 법을 만드는 국가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에 법치주의가 결합되면 비로소 국민에 의한 통치가 완성된다. 법을 따라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국민의 뜻이 지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때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주로 부패 때문이다. 부패한 정치는 정당성 없는 권력을 낳고 부당한 권력은 불의한 법질서를 구축한다. 썩은 피와 탁한 숨이 장기를 곪게 하고 뼈를 기형으로 뒤트는 것과 같다. 권력이 이웃하고 있으면 나라 전체가 부패에 취약해진다.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은 재래시장이 화재에 취약한 것과 같다.

이런 부패의 도미노를 막으려고 헌법은 권력을 분립해 놓았다. 한 권력이 썩어 넘어져도 다른 권력들은 반듯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설계해놓은 것이다. 대표적인 제도가 사법부 독립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냉정하게 감시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권력과 분리된 별도의 사법기관에 감시를 맡기는 것이다. 정치가 어지러울수록 사법기관이 부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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