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끽~ 속도위반 벌금이 3억5000만 원

보행자 천국의 교통법규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끽~ 속도위반 벌금이 3억5000만 원

1/2
  • 스위스 운전자들은 교통규칙을 잘 지키고 매너 있게 운전하기로 유명하다.
  • 본성이 착해서도 아니고 준법정신이 높아서도 아니다.
  • 무엇보다도 강력한 법과 무시무시한 처벌 규정이 있기 때문.
끽~ 속도위반 벌금이 3억5000만 원

스위스 소도시의 전형적인 도로 풍경.

횡단보도 없는 거리에서 길을 건너려고 양쪽을 살핀다. 멀리서 자동차가 달려오고 있다. 당연히 자동차가 먼저 지나간 다음에 길을 건널 생각으로 멈춰 기다린다. 자동차가 내 앞에서 정지한다. 나는 아직 자동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그때 운전자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게 먼저 지나가라며 손짓한다. 예상치 못한 운전자의 매너에 살짝 당황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스위스에 처음 왔을 때 자주 겪은 일이다. ‘사람보다 차가 먼저’인 서울에서와 달리 보행자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곳에 오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운전자에게 굳이 인사하며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다른 스위스인들은 자동차가 달려오고 있어도 당연히 자동차가 알아서 멈출 것을 예상하고 도도하게 길을 건넌다. 사람이 차를 피해 다니는 게 아니라 차가 사람을 피해 다닌다.

안전에 목숨 건 운전자들

스위스 운전자들은 교통규칙을 잘 지키고 매너 있게 운전하기로 유명하다. 특별히 안전에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속도제한과 신호를 잘 따르며 고속도로에서는 추월차선을 철저히 지킨다. 양보운전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독할 정도로 안전에 목을 매는 게 스위스 사람들이다. 웬만한 시내 중심가는 대부분 자동차 통행이 금지돼 있고, 어린이들은 눈에 잘 띄는 형광색 띠를 목에 걸고 등하교를 한다. 운전자들끼리 차창 사이로 언성을 높이거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버스기사가 다른 차에 방해를 받을 때 욕설을 내뱉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 역시 보행자이자 운전자로서 다른 운전자들을 신뢰하게 되고 양보운전을 일상화하게 됐다.

스위스인들은 왜 이렇게 교통규칙을 잘 지키는 걸까. 본성이 착해서? 준법정신이 강해서? 물론 남들이 양보운전하면 나도 따라 하게 되고, 준법정신이 강한 곳에선 나 역시 법을 잘 따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스위스에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법과 무시무시한 처벌 규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안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답답하다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거나, 아기를 카시트 없이 어른이 안고 타거나,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며 음주운전을 한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그렇게 하면 막대한 벌금을 무는 건 물론 면허정지, 면허취소를 각오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규칙을 잘 지켜가며 조심조심 운전하는 스타일이어서, 시원스럽게 운전하는 사람들한텐 소심하다며 놀림을 받았는데 스위스에 와서는 더욱 더 조심조심 운전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교통법규도 꼼꼼히 지킨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사람도 무조건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 낮에도 전조등을 켜야 하고, 경적을 울리는 건 금지되며, 도로에서는 무조건 버스에 우선권을 줘야 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너무 많아 혹시 내가 모르는 규칙이 또 있을까봐 늘 긴장하게 된다.

아, 어린이 카시트!

프랑스 파리에 사는 전 직장 선배가 몇 달 전 여덟 살, 세 살 된 두 아이와 함께 스위스에 놀러왔다. 나는 이들과 함께 하이디 마을이 있는 마이엔펠트까지 한 시간 거리를 자동차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행 전날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스위스의 이 무수한 교통규칙 속에서 내가 모르는 규칙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뭘까, 이 찜찜한 기분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그것은…, 아, 어린이 카시트!’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린이 카시트 의무 규칙이 있었다. 나는 아이가 없으니 아직 카시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만 12세 미만에 키가 150cm 미만인 어린이는 무조건 어린이(유아) 카시트에 앉혀야 하며 이를 어기다 적발될 경우 벌금 60스위스프랑(약 7만 원)을 내야 한다. 처음엔 ‘설마 적발되겠어?’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과연 스위스인다운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적발될 경우 벌금을 내는 게 문제가 아니야. 만에 하나 작은 사고라도 났을 경우 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히지 않았으니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무엇보다도 카시트 장착이 의무라는 건 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히지 않을 경우 위험하다는 뜻인데, 아이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한밤중에 갑자기 카시트 두 개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기차를 타고 또 한참을 기다려 버스로 갈아타며 느릿느릿 하이디마을로 향했다.

스위스에서 운전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바로 제한속도다. 당연히 제한속도를 꼬박꼬박 지키지만, 나도 모르게 시속 몇 km 빠르게 운전하는 순간이 있다. 이때 말 그대로 ‘재수 없이’ 걸리면 초월한 시속에 따라 최소 40스위스프랑(4만7000원)부터 보통 수십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50km인 도로에서 시속 66km로 달렸다가 적발되면 벌금 250스위스프랑(29만 원)을 내야 한다. 초과속도에 따라 경찰 및 법원의 행정비용이 부과되거나 형사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아차’ 하는 사이 신호위반을 하면 벌금 250스위스프랑(29만 원)이 날아온다.

속도위반도 일수벌금제

2010년 스위스 장크트갈렌 칸톤에서 한 스위스인이 속도위반으로 법원에서 무려 29만9000스위스프랑(3억50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는 페라리 테스타로사를 타고 제한속도 50km인 마을 도로에서 시속 100km로, 제한속도 80km인 외곽도로에서 시속 140km로 달리는 모험을 저질렀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는 건 스위스에서 피고인의 소득에 따른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위반의 정도가 심각할 경우 단순히 정해진 벌금을 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재판을 받게 되는데, 피고인의 소득을 1일치로 환산해 벌금을 정하고 이를 재판에서 선고된 처벌 일수에 곱해 총 벌금이 정해진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소득이 높을수록 많은 범칙금을 내는 것이다. 이 최고 벌금의 주인공은 고급차 다섯 대를 소유한 부자인데, 1일당 벌금 2300스위스프랑에 130일을 선고받아 총 벌금 29만9000스위스프랑을 내게 된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딴 뒤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운전해왔다. 쭉 서울에서 살았으니 골치 아픈 도심 운전에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스위스에 와서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다시 초보 운전자가 된 것처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수로 규칙을 어길 경우 물게 될 범칙금도 무섭지만, 무엇보다 한국과는 다른 지리적 특성이 생소했다.

산이 많은 스위스에는 당연히 좁고 구불구불한 커브 길이 많다. 이런 산속 도로에서 제한속도가 80km나 된다는 게 놀라웠다. 산속의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서 커브에도 아랑곳없이 시속 80km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 맞은편 차선의 차량이 내게로 돌진해오는 것만 같아 진땀이 났다. 안전 제일이라는 스위스에서 어떻게 이런 도로를 시속 80km로 달리게 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또 자정이 넘도록 환한 서울의 도로에 익숙하다가 스위스에서 밤에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 국도나 시골길을 운전할 때면 다른 운전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들 달리나 당최 신기하기만 하다. 스위스 전역에 철도가 촘촘하게 깔려 있어 운전할 때 기차가 지나가진 않는지 항상 주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물론 기차가 오기 전에 빨간 신호가 켜지고 차단봉이 내려온다.)

1/2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목록 닫기

끽~ 속도위반 벌금이 3억5000만 원

댓글 창 닫기

2017/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