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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칼바람 맞으며 첫사랑의 설렘 느껴

한 해의 시작 알리는 선댄스 영화제

  • 오동진|영화평론가

칼바람 맞으며 첫사랑의 설렘 느껴

2/2

첫사랑의 설렘을 안겨주는 곳

칼바람 맞으며 첫사랑의 설렘 느껴

유령 이야기’

웬만한 영화들은 일찌감치 ‘솔드 아웃’(매진)된다. ‘선댄스에서 영화 세 편을 보면 많이 보는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그만큼 영화제 자체의 인기가 절정이다. 살을 에는 눈보라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극장으로 몰려간다. 영화는 편안한 조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나누는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댄스영화제의 공간은 역설적으로 그런 ‘초심’을 확인하게 한다.

그곳에선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설렘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영화를 하다가 방향을 잃은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선댄스영화제를 찾는다. 자신이 처음 어떠한 존재였으며 지금 그것을 어떻게 망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로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베를린이나 칸으로 가고 영화를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선댄스로 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영화제 측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주기 위해 ‘이웨이트리스트(ewaitlist)’라는 앱을 개발했다. 표가 매진된 작품이라도 예약 취소 등 변수가 있기 때문에 2시간 전에 이 앱을 통해 티켓을 재판매한다. 사람들은 2시간 1분 전 혹은 2시간 3분 전부터 카운트다운되는 앱을 보고 있다가 정확히 2시간 전에 열리는 전자 판매소의 버튼을 눌러 자신이 몇 번째 관객이 되는지를 확인한다. 순번에 따라 ‘관람가(available)’ 또는 ‘관람불가(unavailable)’란 자막을 보내준다. 이에 따라 영화관으로 갈지 말지를 정하면 된다. 이 앱 하나만으로도 선댄스영화제가 얼마나 관객 중심으로 편성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우리 영화제들이 진작 벤치마킹했어야 할 기술, 아니 이미 실천하고 있어야 할 영화적 태도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생각하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다. 선댄스영화제 현장에서 상영되는 200편 안팎의 영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품마다, 이들을 만든 감독과 프로듀서마다 세상과 세계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올해의 화두는, ‘난민(Refugee)’과 ‘새로운 기후(The New Climate)’다.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페이크 다큐인 ‘착한 우체부(A Good Postman)’는 국경 접경지대에 살면서 계속해서 넘어오는 시리아 난민과 집시를 보며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구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늙은 우체부의 얘기를 다룬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성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는 지구상의 한 마을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단 몇 명이라도 난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지구 전체를 구하고 세계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의 화두는 난민과 환경

올해 선댄스에는 난민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으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극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다양하게 소개됐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중동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이곳 영화인들의 공적(公敵)임을 보여줬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몇 년 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까를 살짝 상상해봤다.

영화 미학은 사회적, 정치적 재앙을 먹고 자란다. 재난에 가까운 사건이 터진 후 10여 년이 지나면 예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들이 등장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17년 뒤 알랭 레네가 ‘히로시마 내 사랑’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9·11 테러 사태에 대해서도  언젠가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1992년 LA흑인 폭동사태를 최종 정리한 다큐멘터리도 공개됐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번 선댄스영화제가 특히 각을 잡고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한 주제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의 속편 격인 ‘불편한 진실 그다음(An Inconvenient Sequel)’은 영화뿐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도 표가 동이 났다.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산호초가 죽어가고 있다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다룬 ‘산호초를 찾아서(Chasing Coral)’는 환경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 너무나 많이 나온 해였기에 영화 하나 하나를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망자와 생자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케이시 에플렉과 루니 마라 주연의 ‘유령 이야기(A Ghost Story)’, 인스타그램에 미쳐 있는 젊은 세대의 명암을 그린 ‘서부로 간 잉그리드(Ingrid Goes West)’, 한 시대를 풍미한 미셸 파이퍼 주연으로 뉴욕 중산층 여성이 홈리스로 전락하는 얘기를 그린 ‘키라는 어디에(Where Is Kira?)’ 등은 선댄스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작품이다. 이들 영화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온통 할리우드 상업영화만 걸고 있는 국내 극장가가 이들 영화에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영화인들이 선댄스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입력 2017-02-28 13: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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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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