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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이른 아침·달밤

박래현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이른 아침·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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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달밤

‘이른 아침’ [박상희]

저는 워킹맘(working mom·직장인엄마)입니다. 말 그대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지요.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44% 정도라고 하니 이제 우리 사회에서 워킹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게 인식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워킹맘의 일상은 정말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워킹맘의 한 예로 저의 최근 하루 일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일 전 전학한 아들을 새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저는 집 안을 치우고 난 후 연구소 관련 일 처리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4시쯤 시작되는 방송을 위해 관련 기사를 정리한 다음 방송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했는지 방송국 주차장에서 작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생방송을 해야 하는 저는 담당 프로그램 피디(PD)에게 사고 처리를 부탁하고 스튜디오로 들어갔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남자 패널들은 담배를 피우겠다고 밖으로 나갔지만 제게는 급한 2라운드 일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후다닥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가 찌그러진 차를 확인하고, 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 간사가 퇴근하기 전에 전화를 걸어 중요한 몇 가지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워킹맘에게 힘이 되는 화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일은 아들의 하교였습니다. 낯선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혼자 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는지 전화하니 아들은 강아지가 다쳐서 동물병원에 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니 2kg도 안 되는 작은 강아지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수의사는 강아지 엉덩이뼈가 부러져서 가능한 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수술 날짜를 잡겠다고 말하고 아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데 찌그러진 차에서는 끽끽 소리가 났습니다.

아들과 강아지를 문 앞에 내려주고 나니 저녁 8시, 이제부터 바쁜 며느리를 대신해 살림을 해주시는 어머니를 위한 약과 내일 필요한 먹거리, 아이의 학용품을 사러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9시가 넘어서야 귀가해 늦게까지 자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춘기 아들과 씨름하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간신히 화장만 지운 채 잠이 들었는데, 잠이 들면서도 ‘이틀 후면 원고 마감인데 어떻게 하지’ 걱정했습니다.

이 기획에서 저는 여성 작가를 거의 다루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성이기에 여성 화가에게 마음이 더 가지만 현실에서 여성 화가는 남성 화가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여서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저와 같은 워킹맘들에게 힘이 돼줄 여성 화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1920~1976)이 그 주인공입니다.

미술을 전공한 이들에게 박래현은 유명한 화가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닙니다. 도리어 박래현의 남편이 아주 유명한 화가이지요.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양화가인 운보 김기창입니다.

박래현은 남편 김기창의 그늘 탓에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박래현은 과소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박래현은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鮮展)에 여인이 화장하는 모습을 담은 ‘장(粧)’을 출품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습니다. 또 1956년에는 대한미술협회전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國展)에서 모두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수상 경력은 그의 작품들이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남편 김기창보다 더 실험적

박래현은 동양화가지만 전통 동양화의 재현을 넘어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한 화가였습니다. 김기창 역시 동양화의 현대화를 모색했지만, 박래현은 김기창보다 더욱 과감한 실험을 추구했습니다. 김기창이 국내에서 그림 공부를 한 것에 반해 박래현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여자미술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한 만큼 당시 서양화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56년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이른 아침’은 박래현의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때는 6·25전쟁이 막 끝난 1950년대 중반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게 폐허로 바뀐 시절에 그려진 이 작품은 절망을 딛고 새로운 삶과 사회를 열고자 했던 희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집 두 채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갈색의 여인들이 시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맨 앞 여인은 닭과 게를 들고 있고, 두 번째 여인은 과일 광주리를 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여인 역시 광주리를 인 채 손에는 달걀을 들고 있고, 마지막 여인은 보따리를 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한 아이는 등에 업고 다른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두 번째 여인입니다. 아이들 표정이 재밌습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고, 손을 잡은 아이는 억지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풍속화가들처럼 박래현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삶을 생생히 재현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팔러 시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이웃들이겠지요.

사는 게 고달프더라도 이들이 좌절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네 여인의 눈빛입니다. 두 여인의 눈빛은 다소 무섭고, 한 여인의 눈빛은 선해 보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인의 눈빛은 다소 지쳐 보이지만 그렇다고 슬픈 눈빛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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