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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이른 아침·달밤

박래현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이른 아침·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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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대통령상 수상 작가

제게 이 작품이 근사하게 보인 이유는 전통적인 풍속화의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역동적인 구성에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종이에 그린 수묵채색화임에도 캔버스에 그린 유화만큼 서양화 같은 현대적인 느낌을 안겨줍니다.

‘이른 아침’을 발표한 1956년에 박래현은 ‘노점’으로 국전에서도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담고 있는 ‘노점’ 역시 ‘이른 아침’ 못지않게 인상적으로 느꼈습니다. 이 두 작품의 소재가 ‘현실’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그림이 산수 또는 동식물을 포함한 전통적인 동양화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박래현의 시도에서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박래현이 동양화의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화면 구성에서 정적인 것보다 역동적인 것을 더욱 중시하고, 그 표현 방식에서 전통적인 곡선보다 서구적인 직선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동양화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려는 박래현의 실험정신이 담긴 작품들이 ‘이른 아침’과 ‘노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박래현이 선택한 소재에 관한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서 제 시선을 끈 것은 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제가 워킹맘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림을 감상하는 데 아이가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저는 저절로 시선이 고정됩니다. ‘이른 아침’을 보면, 잠들어 있는 아이와 딴 곳을 바라보는 아이에 대한 묘사가 현실감이 뛰어납니다. 박래현이 화가인 동시에 네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 아침’에 나오는 여인들은 분주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제게 박래현이라는 화가만큼이나 위로를 안겨줍니다.

하늘엔 두 개의 달

이른 아침·달밤

‘달밤’ [박상희]

박래현의 작품 가운데 제게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은 ‘달밤’입니다. 하늘엔 두 개의 달이 걸려 있습니다. 하나는 둥근 보름달이고 다른 하나는 얇은 초승달입니다. 그리고 숲 속 나무 위에는 부엉이가 앉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부엉이와 나무와 숲의 형태가 모호하게 처리돼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나무와 숲은 추상화와도 비슷합니다. 1950년대 당시 박래현은 동양화의 추상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형태와 색채에서 새로운 혁신을 모색함으로써 동양화의 현대화를 추구했습니다.

‘달밤’이 제게 인상적인 것은 그 전체적인 느낌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특히 부엉이의 세 눈은 귀엽기도 합니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 밤”으로 시작되는,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1953년의 시점에선 이러한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선 그리운 옛날, 그리운 자연의 풍경입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박래현은 남편 김기창과 함께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피란을 갔습니다. 전쟁의 와중에도 박래현은 화가로서의 고민을 이어나갔고, 그 고민은 ‘달밤’과 같은 작품을 낳았습니다.

부엉이는 인내와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를 견뎌내고 그 참화 속에서 동양화가로서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굳은 의지와 새로운 지혜가 ‘달밤’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박래현이 남긴 기록들에는 그가 남편, 네 아이와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 저런 예쁜 아이를 넷이나 키우고, 청각장애가 있던 남편을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가 되도록 내조했을까요?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것이 확실합니다.

열정적이나 무거웠던 삶

그런데 이토록 재능이 많은 박래현은 197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쉰여섯, 사망의 원인은 간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조형적 실험을 계속하고 그 결과를 작품으로 선보인 박래현 화가, 그가 조금 더 살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우리 미술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박래현의 삶은 너무나 치열하고 열정적인 아름다운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깊은 병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을까요? 저는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후자 역시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왠지 오늘 저녁만큼은 워킹맘인 제게 저만의 휴식을 선물하고 싶어집니다.

이른 아침·달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입력 2017-02-28 13: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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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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