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고용 없는 성장에 해법’ vs ‘공공부문 이미 너무 크다’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논란

  • 김용기|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7-04-10 1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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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이 일자리 못 만들면 정부가 나서야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 1990년대부터 제조업 일자리 크게 감소
    • 청년 취업자 6명 중 1명만 좋은 일자리
    일자리 문제가 2017년 대통령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 대선에서도 일자리가 중요 이슈로 부각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공공부문 일자리 문제가 논쟁이 되기는 처음이다. 이에 대해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 여지가 많은 만큼 우선 이쪽부터 일자리를 늘려가는 것이 올바르다는 공공부문 선도적 역할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저성장의 고통은 일자리 악화로 나타난다. 게다가 동일한 성장을 해도 이전에 비해 고용이 덜 유발되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심하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 경제체제일 뿐 아니라, 특히 주력상품인 휴대전화와 자동차 공장시설의 해외 이전이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제조업에서 창출하는 일자리 개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초반 전체 일자리 중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30%였다. 제조업에서 1300만 개의 일자리가 있었고, 제조업 이외 분야에서 3000만 개가 있었다. 그런데 2016년 현재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1200만 개인 반면, 제조업 이외 분야 일자리가 1억3300만 개다. 전체 일자리 중 제조업 비중이 8%대 초반으로 낮아진 것이다.

    대부분의 고용이 제조업 이외 서비스 부문 등에서 발생했다. 제조업 생산성이 향상되기도 했고, 생산성 향상에 실패한 일부 제조업은 독일(1960∼70년대), 일본(1970∼80년대), 한국(1980∼90년대), 중국(2000년대 이후)의 거센 도전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법인세 해외 납부 크게 늘어나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1950년대 이후 오랫동안 계속된 현상이라면 한국에선 유사한 경향이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의 도전도 있었지만,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보다는 임금이 낮은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 임금경쟁력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2015년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납부한 법인세가 4조6928억 원으로 2011년 1조6424억 원보다 2.9배나 증가했다는 점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세청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이들 대부분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말하자면 재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대기업의 주요 해외생산기지는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이다. 미국과 중국은 거대 시장을 겨냥해 현지에 생산기지를 설치한 것이고, 베트남은 특히 삼성이 세계시장을 겨냥해 최대의 휴대전화 생산기지를 건설한 곳이다. 상대적으로 물류비용이 적게 든다는 특성상 해외에 생산기지 건설을 주된 전략으로 채택한 결과이고,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전체 완성차 물량 중 국내 공장 생산비율은 35%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국 기업 경영진은 생리적으로 일자리와 관련해 적대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자리가 소중한 것을 느끼게 해야 노조 활동도 막을 수 있고 직원들의 맹목적 충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최고경영진이 자국의 소중한 인적자원을 경시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엄청난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신입사원 채용을 꺼림으로써 청년실업 상황과 내수시장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무너지면 어떻게 기업이 존립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이 대목에서 제기된다.


    보육 등 공공성 강화

    둘째, 민간에 위탁된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공공부문 일자리를 증가시킴과 동시에 대국민 서비스 질의 향상을 꾀하는 방식이다. 이미 정부 예산(사회보험 포함)이 대규모로 지원되고 있지만 민간에 위탁 관리되고 있는 보육, 요양 등 사회 서비스 분야와 의료 분야가 그 대상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함께 국민의 서비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일자리도 주로 이 분야에서 생겨나고 있는데 그 질이 낮다.

    보육의 경우 2015년 한 해에만 중앙과 지방정부를 통틀어 무려 13조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민간의 영리 추구에 따라 정부보조금이 종사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음으로써 종사자의 직업 안정성과 처우는 좋지 않고, 결과적으로 대국민 서비스의 질 또한 개선되지 않고 있다.이런 분야에서 (가칭)사회서비스 공단 설립을 통해 공공부문 종사자, 혹은 일부 민간부문을 공공부문에서 흡수한다면, 종사자의 신분과 처우가 개선되고 보육 수요자가 느끼는 서비스의 수준 또한 나아질 것이다.

    이미 주된 인건비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추가 부담으로 공공부문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물론 경쟁력을 지닌 좋은 민간 육아시설은 그대로 존치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으로 지원되는 의료 분야에서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


    셋째 공공부문에 산재하는 비정규직 내지 간접고용업무 종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이 중소기업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공공부문과 대기업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공공부문의 34%가 비정규직이다. 재벌(28개 대기업집단)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74만6000명에 달해 재벌 전체 고용의 40.7%를 차지한다.

    가령 인천공항공사는 전체 업무 중 압도적 비율의 업무를 외주화해 정규직은 1099명에 불과하고 외주화 간접고용 근로자가 6831명이나 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86.1%가 외주 인력으로 매우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갖고 있다. 추후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하면 외주화 인력이 3000명 이상 늘어나, 정규직 인력은 10%에 불과하게 된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만 순이익이 7000억 원에 달했지만, 일부 정규직을 제외한 비정규직의 처우는 좋지 않다. 따라서 간접고용 근로자들을 자회사 설치 등의 형태를 통해 정규직화할 경우 동일한 비용으로도 근로자 처우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근로자 224만 명

    하지만 공공부문 일자리의 필요성과 관련해 한국의 공공부문 비중이 이미 너무 높고 보수도 너무 많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공부문 근로자 수만 이미 비정규직을 포함해 224만4000명이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정부, 2015’에 의하면 한국의 공공부문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 대비 7.6%이다. OECD 평균이 21.3%이고 공공부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34.9%)다. 한국에서 덴마크처럼 34.9%가 공공부문이라면 종사자가 914만 명에 달하게 된다. 지금보다 공공부문에서 700만 명이 추가로 증원돼야 가능한 수치다. 즉 덴마크 사회가 돌아가는 데 많은 분야에서 민간보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유럽에서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잘 알려진 스위스의 공공부문이 취업자 대비 18%로 2009년 대비 3%포인트 증가했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공공부문 비중을 높여온 결과인데,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보육, 요양, 의료 서비스가 증가했고 환경보호 필요성이 늘어 거기에 맞춰 공공부문의 비중을 높였다.

    한국의 공공부문 보수에 대한 지출을 보자. 일각에서는 일반정부지출 중 공공부문에 대한 보수지출 비중이 21%나 돼 OECD 평균(23%)에 근접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GDP 대비 일반정부지출의 규모 자체가 31.8%로 OECD 평균(45.3%)과 비교하면 3분의 2에 불과하다.

    또한 일반정부지출의 구성요소 중 가장 큰 사회보장지출의 비중이 25.6%(OECD 평균 40%)에 불과해 또 다른 구성요소인 공공부문 보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게 된다. A국의 공공부문 보수가 100만 원이고 사회지출이 200만 원이면 일반정부지출 중 공공부문 보수가 33.3%로 집계된다. 그런데 B국의 공공부문 보수가 200만 원이라도 사회지출이 600만 원이면 공공부문 보수가 일반정부지출 중 25%로 계산되는 원리와 같다.



    ‘최대 고용과 생산, 정부 책임’

    공공부문의 규모 확대는 생애 위험 대비 및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공공에 대한 수요가 커지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근거 논리가 있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소규모 개방경제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사회적 안전망(복지)을 확대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는 수출 부진과 세계경제의 저성장 등 외부적 충격에 따라 국내 가계가 직면한 소득과 소비감소 리스크에 대응하는 성격을 지닌다.

    ‘최후의 고용주(Employer of Last Resort)’라는 논리도 흥미롭다. 금융기관이 무너질 때 중앙은행이 나서서 문제를 수습한다는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의 비유적 표현이다. 경기불황기 민간과 공공부문의 대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간부문은 경기 불황기에 축소 지향적 대응을 하게 된다. 오히려 채용을 줄이고 그에 따라 가계는 소비를 더욱 줄이기 때문에 상황은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이때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부문이 경기 역행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경기 사이클 변동의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사회 전체의 고용창출과 유지능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1946년 제정된 고용법을 통해 “일할 능력이 있고, 의지가 있으며,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 고용을 보장하고, 또 최대 고용과 생산, 구매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연방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법은 1978년 완전고용과 균형성장법을 통해 “(1946년 고용법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정부가 직접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으로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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