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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농업혁명에 견줄 ‘제1의 물결’

인스턴트커피의 등장

  • 박영순|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농업혁명에 견줄 ‘제1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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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승패를 가르다

커피의 위력은 1861년부터 4년간 치러진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에서 더욱 돋보인다. 북군을 이끈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를 봉쇄했다. 이로 인해 남군은 전쟁 내내 커피를 공급받지 못했다. 커피에 굶주린 남군은 고구마나 사탕무를 커피처럼 진하게 볶아 물에 끓여 마시기도 했지만 카페인의 위대한 효과(?)를 누리지 못해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담배 생산지를 끼고 있던 남군은 휴전이 이어질 때면 담배와 커피를 맞바꾸자고 북군에 매달리기도 했다. 남군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들꽃과 허브를 채취해 끓여 마시는 것으로 달랬는데, 이 덕분에 미국이 허브차 강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실제 커피가 남북전쟁의 승패를 갈랐다는 견해도 있다. 북군을 이끈 벤저민 버틀러 대장은 북군이 승리한 이유 중 하나로 커피를 꼽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물통에 커피를 담아 수시로 마시게 하면서 각성 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공격을 지시하는 기법으로 전투의 승기를 잡아나갔다.

그가 다른 부대 대장들에게 “병사들이 이른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커피 음용을 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북군은 노예제도를 없애려 남군과 전쟁을 치렀는데, 이길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준 것이 브라질 커피농장으로 잡혀간 아프리카 노예들이 재배한 커피였다는 사실은 남북전쟁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에게 커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스미스소니언국립미국사박물관에 보관된 한 병사의 일기에서 엿볼 수 있다. 북군의 기습부대 요원 에베네저 넬슨 질핀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은 1865년 4월의 일기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긴장감을 견딜 수 없을 정도다. 보급품이 전보다 4분의 1로 줄었으며 커피 보급 자체가 끊겼다. 커피 없이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북군은 전투 교범에 “커피는 강인함과 에너지의 원천이다”라고 천명하고, 병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커피를 공급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은 병사 한 명이 하루 평균 1.8L의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병사 한 명당 제공된 커피는 1년에 16kg에 달했다. 그들의 커피 사랑은 지극했다.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커피 원두를 재빨리 갈아 마시려고 아예 소총의 밑동, 일명 ‘개머리판’에 그라인더를 장착했다. 그라인더를 탑재한 당시의 소총이 전시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아머리국립사적지엔 이를 보려는 커피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개머리판의 커피 그라인더

전쟁이 끝난 뒤, 미국 사람들로선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소총 개머리판에 달린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가는 병사의 모습은 떠올릴수록 아찔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재빨리 끓여 마실 수 있는 커피’를 화두로 풀어낸 게 인스턴트커피다.

1901년 뉴욕 버펄로에서 열린 ‘범미국박람회(Pan American Exposition)’에서 일본계 미국 화학자 사토리 가토는 분말 형태의 인스턴트커피를 처음 선보였다. 그는 앞서 차를 가루로 만들어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법을 개발했는데, 이를 커피에 적용한 것이다. 남북전쟁 이후, 긴박한 상황에서 빨리 커피를 마시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대체로 커피를 진하게 추출한 후 갖고 다니며 물에 타 마시는 방식이 있었지만, 이는 미리 추출해둔 원두커피일 뿐이지 인스턴트커피는 아니었다. 인스턴트커피는 커피 원두를 갈아 뜨거운 물로 성분을 추출한 뒤 물을 다시 날려 보낸 가루를 뜻한다. 커피 원두는 70%가량이 물에 녹지 않기에 원두가루를 물에 넣으면 절반 이상이 찌꺼기로 남는다.

이 때문에 커피를 추출해도 필터로 찌꺼기를 걸러 내거나 가만히 가라앉혔다가 액체만 살짝 따라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토는 물에 녹아내리는 성분만 가려내기 위해 커피를 추출한 뒤 물만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가용성 가루만 정제해냈다. 따라서 가토의 인스턴트커피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찌꺼기 없이 가루를 모두 녹여 간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가토가 이를 대량생산하지 않고 특허도 내지 않는 사이 미국 초대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조지 워싱턴이 기술특허를 받고 1910년 ‘조지 워싱턴 커피’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다. 가토의 인스턴트커피는 끓인 커피를 분무 건조해 가루로 만드는 방식이어서 향이 거의 날아가는 바람에 맛이 떨어졌다.

반면 조지 워싱턴 커피는 수율이 떨어지더라도 낮은 온도에서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향미를 붙잡았다. 그는 브루클린에 공장을 차린 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회를 잡았다. 5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미군 보급품으로 제공된 인스턴트커피를 조지 워싱턴 커피가 독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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