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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북유럽의 보석 뭉크 예술의 메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 최정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북유럽의 보석 뭉크 예술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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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나라

북유럽의 보석 뭉크 예술의 메카

뭉크 미술관. [최정표]

뭉크의 그림을 보려면 반드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가야 한다. 노르웨이는 독립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문화도 뒤처진 나라였다. 그런데 노르웨이에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지의 화가가 있다.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다.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독립하면서 겨우 미술 분야도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와서야 독창적 미술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초상화 부문에 불과했다. 이어서 풍경화 부문에서 독창적 회화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19세기 말 드디어 걸출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가 탄생한다.

뭉크는 상징주의 또는 표현주의로 분류되는 작가인데 독보적인 예술 영역을 개척한 노르웨이의 국보와 같은 화가다. 어디를 가나 어떤 형태로든 뭉크를 접할 수 있는 노르웨이는 가히 뭉크의 나라다.

관람객은 대부분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이 미술관에 들른다. 뭉크 작품이 아니면 구태여 이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어쨌든 미술관에는 뭉크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다. 그중 ‘절규(The Scream)’와 ‘마돈나(Madonna)’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그 앞에서 꼭 사진을 찍는다. 한국 관광객에게는 미술관의 포토존이다.

‘절규’는 1893년에서 1910년 사이에 4개의 버전이 만들어졌다. 두 개는 유화이고 두 개는 파스텔화다. 국립미술관 소장품은 1893년에 만들어진 유화다. 나머지 유화 1점과 파스텔화 1점은 ‘뭉크 미술관(The Munch Museum)’이 갖고 있다. 유화는 1910년에 그린 것이고 파스텔화는 1893년에 만들었다. 이 3점은 좀체 다른 곳에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슬로에 와야만 볼 수 있다.



‘자연의 절규’

북유럽의 보석 뭉크 예술의 메카

뭉크의 ‘절규’. [최정표]

나머지 한 점의 파스텔화는 1895년 작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2012년 소더비 경매에 부쳐져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무려 1억2000만 달러(1500억 원)에 낙찰돼 역대 네 번째 높은 가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그림은 낙찰된 이후 2012년 10월에서 2013년 4월까지 뉴욕 모마(MoMA)에 전시돼 일반인에게 선을 보였다.

뭉크는 1895년 ‘절규’의 석판화도 만들었다. 이 중 일부가 남아 있다. 뭉크는 이 작품에 ‘자연의 절규(Scream of Nature)’라고 독일어 제목을 붙였다. 뭉크의 ‘절규’는 아주 분노한 표정으로 절규하는 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 뒤에는 휘몰아치는 강물과 소란스러운 오렌지색 하늘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절규이고 자연의 절규다. 이미 100년 전에 뭉크는 절규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을 묘사했다. 이 그림을 현대 회화의 아이콘이자, 우리 시대의 모나리자라고 묘사한 사람도 있다. 석판화는 뭉크 사후에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마돈나’도 뭉크의 대표작이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인의 상반신 그림으로 매우 전위적인 자태다. 여기에는 여인의 절규가 있다. 1892년에서 1895년 사이에 그려진 유화로 이 그림 역시 여러 개의 버전이 있다. 국립미술관과 뭉크 미술관에 각기 한 점씩 있고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에도 한 점이 있다. 개인이 소장한 작품도 있다. 판화도 제작돼 여러 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는 더 많은 뭉크 작품이 있다. 뭉크는 표현주의 작가인데 발생지인 독일의 표현주의를 압도하는 표현주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한 화가다. 그런 만큼 국립미술관의 전시만으로는 전 세계의 관심과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따로 뭉크 전용 미술관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논의됐다.

그러던 차에 뭉크는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모두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그의 누이도 소장하고 있던 뭉크 작품을 모두 시에 기증했다. 오슬로 시는 뭉크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별도의 뭉크 미술관을 기획했다. 오슬로 시는 뭉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1963년 ‘뭉크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후 미술관은 뭉크의 판화도 대량 구입해 소장품을 보강했다. 뭉크 미술관은 뭉크가 그린 전체 회화 작품의 절반 이상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판화는 거의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림 1200여 점, 판화 1만8000여 점, 드로잉 4500여 점이다. 그 밖에도 조각, 쟁반, 서적 등을 소장하고 있다.

뭉크 사망 50주년을 맞은 1994년에는 미술관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확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미술관이 대중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오슬로 시는 바닷가에 새로운 뭉크 미술관을 짓고 있다. 2018년에 완공해 이전할 예정이다.

뭉크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죽은 후부터는 외골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가족관계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시끄럽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이런 뭉크의 성정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까지 이르렀다. 40대에 와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40년 나치가 노르웨이를 점령하고부터는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노르웨이를 넘어 세계적인 대화가로 우뚝 섰다.

뭉크의 작품은 유달리 그림 도둑들에게 시달려왔다. 1994년 2월 12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막하던 날 두 명의 도둑이 국립미술관을 침입해 뭉크의 ‘절규’를 훔쳐갔다. 이들은 “허술한 경비에 감사한다(Thanks for the poor security)”라는 쪽지를 남기면서 국가를 비웃기까지 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범인들은 같은 해 3월 작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 경찰은 특별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으며 1994년 5월 범인을 잡고 그림은 아무런 손상 없이 회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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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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