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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하이디가 살던 풍경 그대로

국가의 아름다움 원천은 전통문화

  • 글·사진 신성미|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하이디가 살던 풍경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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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업과 기계 산업이 발달하고 수많은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현대적인 국가.
  • 그런 스위스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된 것은
  • 소박하고 담담하게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존재 때문이다.
하이디가 살던 풍경 그대로

고원에서 키우던 가축을 농가로 데려가는 행사인 알프압축(Alpabzug).

해질 녘 알프스 산맥 고지대의 초원에서 목동이 길이 3m가 넘는 스위스 전통 목관악기 알프호른(Alphorn)을 연주한다. 평화로운 알프호른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랫마을에 다다른다. 마을 사람들은 고요한 가운데 목동의 알프호른 소리를 들으며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마을 한가운데서 열린 농부들의 장터에서는 주민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둥글게 모여 서서 요들을 합창한다.

꽃 달고 행진하는 염소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올 법한 이런 장면은 스위스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오랜 전통을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분명 스위스의 아동소설 ‘하이디’가 쓰인 19세기 후반에는 그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살면서 나는 종종 감탄하곤 한다. 이런 풍경이 정말 21세기 현재에도 자연스럽게 눈앞에 펼쳐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금융업과 기계 산업이 발달하고 수많은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현대적인 모습과 함께 소박하고 담담하게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스위스다.

초여름이나 초가을에 스위스의 산악마을을 지나다 보면 가끔 ‘가축들을 조심하라’는 표지판과 함께 도로의 차량들이 경찰차의 지시에 따라 통행을 멈추고 5분이고 10분이고 줄지어 기다리는 광경을 마주칠 때가 있다. 혹시 스위스 여행 중에 우연히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참 운이 좋은 것이다. 이럴 땐 차의 시동을 끄고 잠깐 밖으로 나와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지 생생하게 봐야 한다. 스위스 낙농가의 오랜 전통을 직접 마주친 것이기 때문이다.

알프스 지역의 낙농가에서는 초여름에 소와 염소, 양 같은 가축을 고지대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신선한 풀을 먹이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 초가을에 다시 마을의 농가로 내려보낸다. 가축들의 피서라고나 할까. 이때 농부들과 그 자녀들은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가축들을 몰고, 가축들은 화려한 꽃장식을 머리에 달고 이날의 주인공이 돼 도로를 행진한다. 마을 농가에서 고원으로 올라가는 행사를 독일어로 알프아우프축(Alpaufzug), 고원에서 다시 마을 농가로 내려오는 행사를 알프압축(Alpabzug)이라고 한다.

지난해 가을 스위스에서도 지역적 전통이 강하기로 소문난 아펜첼에서 알프압축 행사를 보았다. 얼굴이 벌겋게 그을린 투박한 모습의 농부들이 아펜첼 전통의상을 입고 아이들은 하이디와 페터 같은 복장을 하고 자기네 농가의 가축들을 몰고 행진했다. 동물들의 꽃장식도 이들이 정성 들여 만든 것이다. 정말이지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내가 감탄한 것은 이들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 전통을 이어가고 또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펜첼 관광청에서도 이 행사를 홍보하고 이를 보러온 관광객도 꽤 되는 데다 마을 중심가에서는 축제처럼 먹을거리를 파는 지역주민들도 있었다.

600시간 들여 만든 전통 모자

하지만 상업적이고 인위적인 행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농가들이 이 행사를 치른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닌 데다(오히려 동물들을 치장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들은 관광객이 구경하든 안 하든 아랑곳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여름에 알프스 고지대에서 생산된 스위스 치즈가 맛과 품질뿐 아니라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건 부수적 이익이기도 하다.

농가의 가족들이 가축들과 정말 한가족처럼 어우러지는 이 전통 행사가 참 정겹고 아름다워서 나는 아펜첼의 화랑에 들러 알프압축 장면을 담은 그림을 구입해 집에 걸어놓았다.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아펜첼 아우서로덴 준주(準州)의 작은 마을 터이펜(Teufen)에서 본 ‘질베스터클라우젠(Silvesterchlausen)’도 350년 넘게 이어지는 유명한 풍습이다.(신동아 2017년 2월호 참조) 새해를 맞아 마을의 남자 예닐곱 명씩 한 조가 돼 독특한 분장을 하고 무거운 소 방울을 몸통에 단 채 집집마다 들러 종소리를 시끄럽게 울려대며 악귀를 쫓는 전통이다.

이를 구경하고 온 지 얼마 안 돼 스위스 공영방송 SRF에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질베스터클라우젠에 참여하는 마을 남자들을 1년간 따라다니며 촬영한 다큐멘터리였다. 이들은 각자 다양한 직업이 있는 평범한 마을 주민들인데 매년 연말과 연초에 두 번 열리는 이 행사를 위해 1년 전부터 부지런히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개성 있는 의상 제작인데 특히 모자가 훌륭했다. 마스크가 달린 모자를 각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디자인한 뒤 온전히 수공예로 제작하는데, 이 모자 제작에만 연간 60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을 하고, 좁쌀만 한 구슬을 일일이 꿰고, 모자에 장식하는 동물이나 사람 등의 모형을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들어 붙인다. 모자에는 하나의 주제를 담은 스토리를 장식으로 표현해 넣는데, 요들 합창대회 참가 장면, 질베스터클라우젠의 합창 장면 등 자신이 아끼는 추억이 앙증맞으면서도 섬세하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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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성미|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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