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 칙서 실종 사건

사관의 논평에는 사심이 없었을까 | 나라가 약하면 굴욕을 당한다

  •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 칙서 실종 사건

1/2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 칙서 실종 사건

조선시대 국정 기록을 전담한 사관은 임금과 신하의 대화를 기록하고 국정과 관련된 주요 문건을 인용, 발췌해 사초를 작성했다. 사건의 시말(始末), 시시비비, 인물에 대한 평가 등 사관들의 다양한 의견(史論)이 함께 실렸다. 당대에 첨예한 논란을 빚으며 사관들의 붓끝을 뜨겁게 한 사건을 2편씩 소개한다.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이 발간한 ‘사필(史筆)’에서 가져왔다.

한국고전번역원 刊 ‘사필(史筆)’  



사관의 논평에는 사심이 없었을까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반원와철(攀轅臥轍)’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한나라 때 선정을 베푼 지방관이 임기가 다 차 떠나게 되자 그 고을 백성이 수레에 매달리고 바퀴 밑에 드러누워 못 가게 막았다는, 다소 코믹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선정을 펼친 지방관을 백성이 유임하게 해달라고 청했다는 미담이 더러 전해진다. ‘성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평양부(平壤府) 백성이 글을 올려서 평안 감사 현석규를 유임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자 주상이 내관 이효지를 보내어 어의(御衣)에 술까지 하사하였고, 또 손수 글을 써서 내려 칭찬했다.〈성종실록 10년 2월 12일〉

백성이 선정을 베푼 수령의 유임을 청하자, 임금은 수령을 칭찬하고 의미 있는 상까지 내려줬다니, 이 역시 ‘반원와철’에 비길 만한 훈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에 실린 사관의 상반된 시선은 좀 뜻밖이다.


반원와철(攀轅臥轍) vs 포퓰리즘
현석규가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으려고 정원 외 아전의 수를 줄이고는 “쓸모없는 인원을 줄인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백성이 수령의 불법행위를 고소할 수 있게 하고는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백성이 모두 그가 선정을 베푼다고 생각하자 현석규는 백성을 사주하여 자기를 유임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임금에게 올리게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이를 비웃었다. <성종실록 10년 2월 12일>

사관은 평안 감사 현석규의 행위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만을 추구한 일종의 포퓰리즘(populism)이었다고 봤다. 심지어 백성을 사주해 의도적으로 유임을 청하게 했다고 평했다. 쓸모없는 아전의 수를 줄이고 백성에게 고통을 호소할 길을 열어준 것은 겉으로는 선한 정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관의 비판 어린 시선은 그 이면에 숨은 의도까지 파고들고 있다. 백성과 임금에게는 선한 수령으로 칭송받았지만, 사관에게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로 비판을 받은 평안 감사 현석규는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아보자.

현석규는 효령대군의 아들인 서원군의 사위다. 왕실 인척인 데다 업무 처리 능력 또한 뛰어나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사관도 그에 대해 “재기가 넘치며 총명하고 영민해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며 그 능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런데 그의 행적 등에 관한 사관의 비평을 살펴보면 ‘교활하다’ ‘아첨이 심하다’ 등 원색적인 비난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여비로 쓰기 위해 가져간 흑마포(黑麻布)를 30필이나 남겨 근검하다는 칭송을 받은 일에 대해서도 사관은 “명예를 사서 임금의 총애를 받으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과연 사관의 평대로 교활하고 아첨을 일삼은 간신일까. 만약 사관의 평만으로 그를 섣불리 재단한다면 평생 신뢰하고 무한한 총애를 아끼지 않았던 성종은 간신을 가까이한 용렬한 임금이 될 판이다. 따라서 사관의 평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많다.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 칙서 실종 사건

[일러스트 이부록]




성종의 승부수
그를 둘러싼 조정의 사건들을 통해 사관이 그를 비평한 단서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가 도승지로 있을 때 동부승지 홍귀달과 크게 한판 다툰 적이 있었다. 홍귀달이 도승지인 자신과 일언반구 상의하지 않고 성종에게 무고죄로 의금부에 끌려간 조식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일 때문이었다. 당시 현석규는 격노한 나머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홍귀달을 ‘너(爾)’라고 부르기까지 했는데, 둘 사이의 다툼은 승정원의 나머지 승지 네 명이 모두 홍귀달의 편에 서면서 1대 5의 싸움으로 번졌다. 조직의 위계질서를 어긴 홍귀달이나 조신(朝臣)으로서의 체통을 잃어버린 현석규나 잘못으로 따지면 ‘오십보백보’인 듯한데, 주변 동료들의 대응은 지나칠 만큼 한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성종은 여섯 승지 모두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부터 생겼다. 승지 중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던 현석규만 오히려 자급이 올라 종2품 대사헌으로 승진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간들의 비판이 잇따랐는데, 성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그를 정2품의 형조판서로 승진시키며 자신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었는지를 신료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러자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고, 급기야 지평 김언신은 현석규를 ‘음험한 소인’이라며 맹렬히 배척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소인인 줄 아느냐”는 성종의 물음에 김언신은 ‘용모가 음험하다’는 다소 뚱딴지  같은 대답을 했다. 용모가 비호감이라서 소인이라니… 이쯤 되니 슬슬 현석규를 비난하는 쪽의 진의가 살짝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조사해보니, 김언신의 배후에는 현석규의 동료였던 우승지 임사홍이 있었다. 그리고 여론의 비판을 주도한 사간 박효원과 유자광 등도 모두 한통속임이 드러났다. 이 일로 관련자들은 귀양을 갔고, 주동자인 임사홍은 성종의 미움을 사서 오랫동안 관직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리고 현석규를 배척한 임사홍과 유자광은 훗날 연산군 대에 이르러 나라를 어지럽힌 희대의 간신배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용모가 음험하다’
이쯤 되면 그가 과연 아첨을 일삼은 소인인지, 아니면 오히려 편파적인 집단 따돌림을 당한 억울한 피해자인지 판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임금에게 그토록 잘 보이려고 했던 그는 왜 동료들의 인심을 얻지 못한 것일까. 사관은 그를 두고 “남의 숨은 잘못을 들추어내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자기를 뽐내고 남을 깔보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평했다. 이 말을 곰곰이 따져 보면 결국 동료들 간에 덮어줄 수도 있는 사소한 흠까지 드러내기를 좋아해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현석규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 같았지만 성종에겐 오히려 훈구 신료들을 견제해줄 든든한 심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다시 평안 감사 시절의 뒷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성종의 명으로 현석규에게 상을 전하러 간 이효지는 임금에게 총애를 받던 환관으로 제법 권세가 있었기에 그가 평안도 본가를 오갈 때마다 지방관들의 뇌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현석규 역시 이효지를 환영하는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수많은 예물을 안겨주었는데, 그 예우가 얼마나 극진했던지 사관은 이를 두고 “마치 자식이 아버지 섬기듯 하였다”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이효지가 떠나던 날 현석규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눈물을 흘리며 주상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함께 말씀해주시오”라고 신신당부했다. 환관이지만 임금이 보낸 사절이니 극진히 대접하고 싶었던 애틋한 진심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임금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 아첨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가식적인 행동이었을까. 사관의 논평이라는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출 만큼 깨끗한 상태였을지, 그 거울에 비친 현석규의 모습은 과연 본래의 얼굴 모습 그대로였을지 궁금하다.

1/2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최두헌|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연재

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더보기
목록 닫기

평안 감사 현석규의 두 얼굴 | 칙서 실종 사건

댓글 창 닫기

2017/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