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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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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잔하면서도 수려한 시칠리아의 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갈등이 거칠고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열정적인 음악은 관객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로마 초연 포스터와 2015년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공연. [REX]

지난해 말 우리나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으로 시끄러울 때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의 젊은 미남 총리 마테오 렌치(42)는 국민투표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지난 70년간 마치 연중행사처럼 63개 정부가 들어섰다. 이에 렌치 총리는 막강한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져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표심은 실익 계산을 뒷전으로 미루고 현 정부 불신임으로 몰렸다. 선거를 앞둔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종종 어린아이들처럼 시민 앞에서 양 손가락을 펴서 V자로 만든다. 이는 동심을 자극하는 친근한 승리의 표시가 아니다. 바로 ‘투표(Vota)’와 ‘복수(Vendetta)’의 두 V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해엔 선거 당일이 ‘V’로 시작하는 이탈리아 욕설과 ‘복수(Vendetta)’를 상징하는 ‘V데이’로 불렸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56%에 달하는 시칠리아 섬은 유권자 72.2%가 개헌 반대표를 던졌다. 이렇듯 이탈리아 남부, 특히 시칠리아인은 렌치 총리 정부가 몰락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셈이다. 

바로 이곳 시칠리아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 시칠리아계 콜리오네 마피아들은 마음먹은 복수는 기필코 하고야 만다.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개봉된 1972년, 미국의 시칠리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폭력적이고 잔악하게 묘사돼 명예가 훼손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어설픈 복수극

하지만 영화에 내재된 시칠리아 특유의 친근한 요소들이 그들의 분노를 잠재웠다. 더구나 영화 곳곳에는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섬 시칠리아의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 특히 3편에서 조직의 대부 마이클(알 파치노 분)의 외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문의 뿌리인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다. 그때 공연되는 오페라가 바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극 중 배경이 시칠리아인 이 오페라는 살인으로 마무리되는 어설픈 치정 복수극이다. 격한 감정으로 점철된 복수의 결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애잔하면서도 수려한 시칠리아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지독한 사랑이 그려진다. 우아하거나 고상하기보다는 사랑의 다양한 갈등이 거칠고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열정적인 음악은 관객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시칠리아의 건축에는 그리스, 로마, 바이킹, 이슬람, 고딕, 바로크, 낭만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여러 양식이 종합적으로 서려 있다. 이유가 있다. 사실 시칠리아는 한순간도 자유를 누리지 못한 애처롭고 애달픈 땅이다. 열강의 침략으로 피폐된 땅의 약한 사람들을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지켜야만 했다. 시칠리아에는 여성이나 아이들이 심각한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자의 친족이 가해자를 살해해도 이를 묵인하는 사회 관습이 있었다. 그렇게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는 국가의 규범보다 가족 삶의 윤리가 더 상위에 있었다.

패밀리를 위해서라면…

베리즈모(진실주의) 사조의 꽃 시칠리아인들의 지독한 사랑 노래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동아DB]

아마도 오페라에서 살인을 저지른 알피오가 현실에서 그랬다 해도 면죄부를 받았을 것이다. 가족 보호 차원에서 저지른 악행을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것은 외세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만들어진 시칠리아만의 규칙이자 법칙이었다. 영화 ‘대부’에서 ‘패밀리(family)’의 적이라는 명목으로 악랄하게 복수하는 범죄 장면이 많은데, 바로 시칠리아 사람들의 이와 같은 가족 중심적 생활습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 마피아 중에서도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잔혹한 보복범죄로 악명이 높다.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한 수사검사는 물론 그 가족까지 암살하는 무자비하고 잔악무도한 악행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낭만주의가 저물던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는 실증주의 사상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Realism)가 대두했다. 사실주의 작가들은 억지로 미화하거나 꾸미지 않은 진솔한 일상의 평범함을 소재로 담았다. 이후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Naturalism)가 등장한다. 우리는 자연주의라면 자연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움, 혹은 노장사상을 떠올리지만 예술사조는 정반대다. 대부분 어두운 사회 단면과 인간 본성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적이고 처절하게 묘사한다. 다만 자연주의는 문학과 연극 장르에서 꽃피우지만 음악 특히 오페라에서는 전무하다 할 정도로 대표적인 예술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 반도는 조각조각 나뉘어 열강의 지배에 신음하고 있었다. 물론 상류층과 열강의 조력자들은 오페라 극장에서 문화적 혜택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변변한 낭만 문학작품조차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메마른 현실이었다.

그러던 1827년,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역사소설 ‘약혼자들’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전 이탈리아 반도를 뒤흔든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인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만초니의 작품에 이탈리아 지성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1400년 동안 각기 다른 도시국가로 나뉘어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비로소 독립이라는 희망의 불꽃을 마음속에 불태우기 시작했다. 1871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는 북부 사보이왕가의 주도로 드디어 통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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