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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부동산 폭망론’이 富者 탄생 막는다”

아파트 투자 귀재 박정수 PJS컨설팅 대표

  • 김진수 기자|jockey@donga.com

“‘부동산 폭망론’이 富者 탄생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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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이혼, 암 판정

슬슬 끼가 발동한 건 2003년. 박 대표는 소위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 KTX를 멀쩡하게 잘 다니던 중 사표를 덜컥 냈다. 미국계 P보험사로 옮겨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

왜 이직을 택했나.
“성격 탓이랄까. 내가 남 돕는 걸 되게 좋아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그런 끼를 한껏 펼쳐보고 싶었다. 또한 P보험사가 ‘우린 남을 도와줘야 하는 직업이다’라는 미션을 가진 대표적 회사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셋째는 남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공기업이라는 안정된 직장에서 평생 살아간다면 도전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P보험사 입사 이후 2년간 보험설계사 영업실적 꼴찌. 급기야 2001년 결혼한 아내와 전혀 의도치 않은 일로 인해 이혼까지 하게 됐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고객의 인정을 받아 2006년 지점 내 영업실적 1등을 하기에 이른다.

기쁨도 잠시. 박 대표는 2007년 청천벽력과도 같은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게 됐다. 그런 와중에서도 3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고, 미친 듯 일에 몰두해 항암 투병 중임에도 2008년엔 지점 내 1등, P보험사 전체 보험설계사 1600명 중 9등의 영업실적을 거둔다.

하지만 다시 시련이 밀어닥쳤다. 2009년 아버지의 췌장암 발병과 별세, P보험사에서의 예상치 못한 일(동료 보험설계사의 위장계약서 건에 대한 본사의 특별감사)에 휘말린 데 따른 해고 조치였다. 박 대표가 소형 아파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때부터다. “인생은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은 것.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도 컸다.

많은 부동산 종류 중 하필 소형 아파트에 눈 돌린 까닭은.
“당시 언론보도와 인터넷의 부동산 정보를 살피다보니 앞으론 소형 아파트가 뜰 것이라는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 게다가 부동산 투자는 하고 싶은데 상가·토지 등 다른 것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아는 정보도 거의 없고, 시간을 많이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거기에 그냥 집중했다.”



소형 아파트 100채 달성

“‘부동산 폭망론’이  富者 탄생 막는다”

박정수 PJS컨설팅 대표는 “진정한 부자란 자유를 확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지호영기자]

P보험사에선 해고됐지만, 박 대표는 고객의 성원에 힘입어 P보험사 계열사인 P&P에 입사할 수 있었다. 초보 부동산 투자자로서 통장 잔고 2000만 원을 종자돈 삼아 소형 아파트 투자를 시작하면서 P&P에서도 고군분투해 입사 1년 만인 2010년 영업실적 1등을 차지했다.

P보험사 해고 당시 사람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걸 절감한 박 대표는 소형 아파트 100채 소유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오기로 똘똘 뭉쳐 전국을 이 잡듯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시행착오와 실패도 적잖이 겪었고, ‘수업료’도 톡톡히 치렀다. 그러던 중 전남 광주에 아파트 2000여 채를 소유한 남성 신모 씨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 박 대표는 그를 만나려 한 달 보름간 집 앞에서 기다리고 우편함에 수십 차례 편지를 남긴 끝에 마침내 대면에 성공한다. 하지만 조언을 듣지 못한 채 돌아온 박 대표는 이후 광주에서 신씨와 우연히 재회했고, 결국 부동산 투자에 관한 핵심 힌트를 얻는다. 그의 조언대로 실천하며 ‘정주행’한 끝에 박 대표는 마침내 2011년 12월 본인 명의 아파트 100채를 갖게 됐다. 엄청난 부동산 자산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또 날벼락. 그사이 P&P는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갑자기 청산됐다. 동료들은 모두 P보험사로 고용승계됐지만, 박 대표는 예전 P보험사에서의 해고 전력 탓에 다시 해촉되는 아픔을 겪었다.

아파트 100채를 소유했을 당시 기분은.
“와~ 진짜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펑펑 울었다. 야, 내가 기어이 이뤄냈구나 하는 성취감. 지금껏 살면서 그렇게 기뻤던 때는 없었다. KTX 입사 때보다도 기쁨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버지의 소개로 만나 재혼한 두 번째 부인에게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부 사이가 소원해졌다. 결국 2012년 협의이혼을 하면서 박 대표는 당시 본인 명의 아파트 50채를 위자료조로 내줘야 했다.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는 다시 아파트 100채 구입에 도전해 가열찬 노력 끝에 2013년 새롭게 목표를 달성한다. 이후론 눈덩이가 굴러가며 커지듯 순식간에 100채에서 200채, 2016년엔 300채로 보유 아파트 수가 급속도로 늘어 거부(巨富) 반열에 올랐다.

300채를 소유했을 때의 느낌은.
“100채 때와는 비교가 안 됐다. 감흥이 크지 않았다. 100채까지 불려간 과정은 온전히 내 땀으로 이룬 거지만, 그 이후 300채를 마련하기까지는 땀만으로 된 게 아니니까. 돈이 돈을 부른다고,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가능했기에 그다지 큰 쾌감을 느끼진 못했다.”

P&P에서 해촉된 박 대표는 2014년 종합재무컨설팅기업 (주)리치앤코에 들어가 재무설계사와 마케팅 상무를 거쳤다. 거기서 만난 여성 동료(재무설계사)와 이듬해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위암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소유한 아파트가 300채를 넘자 아파트 수를 늘리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여긴 박 대표는 더는 아파트 구입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성공과 실패 스토리를 담은 첫 저서 ‘왕초보도 100% 성공하는 부동산 투자 100문 100답’(평단 펴냄, 2016)을 내면서 자신만의 성공 노하우를 전격 공개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현재 33쇄를 돌파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변신한 셈이다. 두 번째 책 ‘나는 갭 투자로 300채 집 주인이 되었다’(매경출판, 2016)와 세 번째 책 ‘부동산&금융 100문 100답’(공저, 평단, 2016) 등도 인기다. 올해 3월엔 자전적 실화소설 ‘바보 부자’(평단)도 출간했다. ‘바보 부자’라는 제목은 그가 자신의 부동산 투자 노하우를 공유하겠다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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