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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개척자' 이종수의 독일 편지

‘억울할 땐 엉덩이를 상대방 쪽으로’

라인 지방식 분쟁해결법

  • 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억울할 땐 엉덩이를 상대방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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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빠뜨리려는 수작

“이건 비밀 고발이니 신분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 조서를 작성해 검찰에 넘길 터이니 그곳의 통지를 기다리세요.”
그 경찰관은 사진기를 가져와 파손된 흔적이 없는 내 차 뒷면을 여러 번 찍었다.

“이렇게 깨끗하니 별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염치없는 두 사람의 수작이다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았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사고는 내지 않았으니 사필귀정이겠지 자위하고 8주가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검찰로부터 편지가 한 장 와 있었다.

“타인의 차를 부딪치고 도주했으니 4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합니다. 만약 이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4주 내로 이의신청을 하기 바랍니다.”

이 통지서를 읽고 있는 동안 혈압은 올라가고 분노에 발을 동동거렸다. 즉시 변호사에게 연락해 항고하려다 숨을 깊이 쉬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런 일에 부딪히면 나는 우선 ‘무상’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지구는 그 시간에도 쉬지 않고 돌고 있고 적도에 있을 때는 지구와 같이 나도 시속 1700km의 자전 속도를 내며 달리는 셈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빠른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차 사고를 내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이 익명으로 고발해서 내가 벌금형을 받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이 많은 게 우리의 보편적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반세기 이상 살아왔고 국적도 받았지만, 남의 나라에 와 있으니 그런 일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뉴욕의 중국식당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서 자랐는데도 도저히 서울에서 살기가 어려워 1970년에 미국으로 왔어요. 우리 중국인은 한국에서 살기 너무 힘들어요.”



속도위반과 면죄부

유창한 한국말로 서울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중국식당 주인을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자라난 서울에 대한 향수에 젖을 때가 있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산물이다. 해외 동포는 강한 민족주의를 갖게 되지만, 강한 민족주의는 자연적으로 배타주의를 수반한다.

젊은 날에는 독일에서 법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즉시 변호사에게 의뢰해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 통일 전에는 본 공화국 시대이니 아직도 전승국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독일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비교적 친절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재판에서 나의 정당성을 관철하지 못한 경험이 적지 않다.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형사재판 하나가 속도위반이다. 1992년 가을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와 병원에서 일하다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갔다. 점심 도중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생겼다는 병원 전화를 받고 차를 급히 몰았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의 거리는 약 22km인데 시속 100km의 속도제한구역을 150km로 달리다 이동식 카메라에 걸렸다. 환자가 아주 위급한 때는 집에서 택시로 이동하면서 경찰에게 그 사유를 카폰으로 신고하고 시속 200km 이상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환자가 아주 위중한 상태는 아니어서 내 차로 갔다. 그럼에도 마음이 다급해져 속도위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몇 주 후 500마르크의 벌금에다 한 달간 운전면허 정지를 알리는 처벌장이 시청에서 날아왔다. 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속도위반한 것은 내 직업상 불가피한 사항 아니냐고 항고했다. 나는 교통사고 재판에 유능하다는 변호사를 소개받아 환자 치료상 속도위반이 불가피했다는 사유서를 제출했고, 증인으로 환자도 법정에 출석시켰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나는 간 이식관계로 환자에게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속도위반을 해도 전부 면죄됐다. 그런데 독일 통일 후에는 사정이 변했다. 더욱이 나를 실망케 한 것은 그 유능하다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수동적이며 조금도 내게 유리한 변호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변호하는 사람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이 교수님이 병원 환자를 살리기 전에 길 가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낼 수 있어요” 하고 나이가 젊은 여자 재판관은 최초의 형량을 확정했다. 면허정지로 운전을 하지 못하고 한 달을 보내는 고역은 무어라 형용키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위급환자를 위해서라면 속도위반을 계속 하겠다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더한 처벌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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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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