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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고래의 전설

중국 애니 ‘나의 붉은 고래’, 일본 애니 ‘괴물의 아이’ 그리고 ‘모비 딕’

  •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고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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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정만리의 신화

하늘이 푸른 것은 햇빛의 장난이다. 햇빛에 숨어 있는 일곱 빛깔 가시광선이 대기를 통과할 때 파란색이 가장 많이 산란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푸른 이유도 비슷하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고 하늘에는 새가 산다. 그럼 그 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나의 붉은 고래’의 상상력은 이 지점에서 잉태됐음이 틀림없다. 여주인공 ‘춘(春)’은 아득한 저 바다 깊은 곳, 인간의 영혼을 관리하는 마을에 산다. 인간의 영혼은 육신이 죽고 나면 고래가 되어 바다 깊숙이 감춰진 이곳에서 영면을 취하게 된다. 그 마을 사람들은 이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열여섯이 되면 고래로 변신해 인간세계를 탐방하고 오는 성인식을 치른다. 이때 변신한 고래는 이 마을의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이와 접한 바다를 다시 헤엄쳐 인간세계를 둘러보고 오게 된다.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 속 고래는 곤이기도 하고 붕이기도 한 존재다. 인간세계는 고래가 헤엄치는 남명인 셈이고 춘의 세계는 고래가 하늘을 나는 북명인 셈이다. 북명의 푸른 바다와 남명의 푸른 하늘을 하나로 엮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설정이다. 

‘나의 붉은 고래’는 여기에 인어공주 설화를 살짝 비틀어 주입한다. 북명에 사는 춘은 고래로 변신해 남명으로 구경을 나왔다가 위기에 빠진다. 그때 남명에 사는 소년 곤이 그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은 물에 빠져 죽는다. 춘은 그 곤의 영혼을 다시 인간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인어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선다.

그 도박으로 아기고래로 환생하게 된 곤은 춘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죽마지우 추(秋)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하늘로 비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고래가 된다(물론 장자가 묘사한 곤의 크기엔 한참 못 미친다). 과연 곤은 붕이 되어 남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다에 사는 곤이 붕이 되어 수만 리 하늘을 날 꿈에 부푼 마음에 빗대 벅찬 미래에 대한 동경을 붕정만리(鵬程萬里)라고 표현한다. ‘나의 붉은 고래’가 담아낸 붕정만리에는 미래에 대한 꿈만 깃든 게 아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지극한 사랑이 함께 깃들어 있다. 추와 춘, 곤의 엇갈린 희생적 사랑이다.



만신전의 세계관

‘붉은 고래의 전설’에는 앞에도 언급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넘쳐난다. 하지만 가장 크게 공명하는 작품은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호소다 마모루의 ‘괴물의 아이’다. 2015년 일본에서 개봉해 430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린 이 작품은 그해 11월 국내에서도 개봉해 ‘호소다 마모루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도심 속을 날아다니는 거대 고래 이미지는 이 작품이 원조라 할 만하다. 주인공 렌이 일본 도쿄 시내 상공에 출몰하는 거대한 고래의 영(靈)과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종반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괴물의 아이’는 ‘나의 붉은 고래’와 세계관도 공유한다. 우선 인간세계와 마법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세계관이다. ‘나의 붉은 고래’에선 인간세계의 바다와 북명(영화에선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기자가 붙인 이름)의 하늘이 맞닿아 있다. ‘괴물의 아이’에선 고아가 된 주인공 렌은 도쿄 시부야(澁谷) 거리를 헤매다 괴물의 세계인 ‘주텐가이(澁天街)’로 들어가게 된다. 실사의 세계인 속(俗)과 만화적 상상의 세계인 성(聖)이 미묘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주텐가이에서 살아가게 되는 렌은 곰을 닮은 괴물로 엄청난 힘을 지녔지만 ‘왕따’인 구마테쓰의 유일한 제자가 돼 사실상 부자의 연을 맺게 된다. 인간의 관점에선 괴물이긴 다 똑같지만 그 괴물들에게서 다시 괴물취급을 받는 구마테쓰와 인간이지만 ‘괴물 같은 아이’ 인 렌의 교감은 춘과 곤의 교감을 닮았다. 속한 세계는 다르지만 같은 영혼의 떨림을 지녔음을 발견하고 목숨까지 바쳐가며 서로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텐가이나 북명이 만신전의 세계라는 점이다. 주텐가이의 주민은 동물의 형상을 한 인간이다. 만물에 신령이 깃든다는 일본식 애니미즘을 구현한 세계다. 북명의 주민은 인간과 요괴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동물 또는 식물의 영(靈)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주텐가이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춘의 할아버지는 오동나무의 영이 서렸고 할머니는 거기에 깃드는 봉황의 영이 서렸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춘도 할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무의 영이 깃든 존재임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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