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정치·경제·사회학자 110명이 분석한 대표적 지식인 45인 이념성향

  • 박성원swpark@donga.com 육성철sixman@donga.com

    입력2005-05-10 2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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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대결에 따른 분단과 전쟁의 유산을 엄연히 안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사상과 이념의 자유로운 경쟁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이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늘 부딪히게 되는 핵심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더욱이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화해협력 기조가 지속되는 와중에 정치적·경제적 · 사회적 이념 갈등의 골은 되레 심화되는 상황인데도 지식인들조차 객관적이고 공정한 눈으로 상대방의 철학과 방법론을 평가하기 보다는 아집과 편견으로 상대방을 ‘수구‘니 ‘친북‘이니 매도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은 토론보다는 걸핏하면 정쟁 차원의 색깔공방을 일삼으며 차분하고 진지한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한 어느 사회에서나 사상적 이념적 갈등은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을 얼마나 공정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검증하느냐는 것은 한 사회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문화적 척도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한국의 지식인·정치권의 이념지도‘ 를 주제로 한 신동아 특별기획은 이같은 관점에서 마련되었다. 》

    자문위원



    ● 김근식(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 류동민(충남대 교수)

    ● 윤상철(한신대 교수)

    ● 이남주(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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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밀레니엄을 희망과 좌절 속에 맞이한 한국의 대중에게 지식인들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그들이 해석한 오늘의 한국과 그들이 제기한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은 어떠한 이념, 철학,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는가.

    ‘신동아’는 대중매체 등을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를 주제로 삼아 많은 발언을 하고 있는 대표적 지식인들을 정면으로 다뤄보기로 했다. 안팎으로 커다란 혼돈과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 관해 발언을 많이 해온 이들 지식인의 시각을 교차분석해봄으로써, 대중과 지식인 간의 거리를 좁히고 지식인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상호무관심과 독선, 편협의 벽을 허무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이번 기획에서 평가대상으로 삼은 지식인들은 정치·국제정치·경제·사회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대중매체에 많이 등장한 45명의 ‘대중적 지식인’에 한정했다. 이들이 자기 학문 분야에서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기획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며, 따라서 어디까지나 현실문제와 관련한 대중적 영향력 측면을 평가 대상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평가 대상자는 구체적으로 한국언론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신문기사 검색 사이트인 ‘KINDS’를 통해 최근 2년간 신문 기고문 및 신문기사에 그 이름이 거명되는 빈도수를 기초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선정했다.

    이들에 대한 평가·분석작업은 11월24일부터 12월14일까지 평가대상 당사자 45명을 포함, 해당 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한 대학교수와 연구소 연구위원 등 110명의 전문가그룹을 상대로 팩스나 이메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실시했다. 전문가그룹 가운데는 선배나 동료 지식인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데 따른 부담 때문에 익명을 요구하거나 일부 대상에 한해 평가를 유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동아’는 조사 과정에 분류상 편의를 위해 정통좌파, 신좌파, 급진적 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개량적 자유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정통보수주의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돼온 이념적 용어를 예시했으며 전문가그룹 대부분이 실제 이 기준에 따라 평가작업에 참여해 주었다.

    ‘신동아’가 예시한 위 분류체계는 사회체제의 구성과 변화, 분배와 효율의 관계,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한국 정치체제의 성격과 변화방향 등에 대한 지식인의 입장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념적 분류체계는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응답자들의 경우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분류할 수도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또한 ‘신동아’의 분류체계에 따르면서도 응답자마다 그 의미규정을 달리 하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러한 혼선을 보완하기 위해 각각의 분석대상 인물에 대한 평가·정리단계에 들어가서는 응답해준 전문가그룹이 설명하는 판단근거를 충분히 참작하여 응답자가 구사한 용어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예시된 이념분류 체계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통좌파는 마르크시즘의 자본주의 분석과 계급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려는 경향이다. 사회적 분배구조의 재구조화와 노동계급의 독자성 및 중심성을 강화하는 등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관심을 보이며, 현재 한국 정치경제체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의식을 견지한다.

    신좌파는 정통좌파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사회체제 분석에 있어서 더욱 현실적으로 이데올로기, 문화, 성 등 여타 사회적 균형을 중시하고, 변혁주체에 있어서도 노동계급의 역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분배정의의 실현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로 파악한다. 이들은 현실정치 개혁에 적극적이지만,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개혁을 의도할 수 없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급진적 민주주의와 유사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한다. 따라서 ‘온건개혁론’으로 볼 수 있는데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자유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상의 네 경향들은 그 동안 한국사회체제와 발전전략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그 변화를 모색해왔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개량적 자유주의는 분배의 정의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지배능력을 중시한다. 정치체제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안정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모색한다. 다만 권위주의체제의 부정적 유제들을 부분적으로 교정함으로써 체제의 효율적 작동을 시도한다.

    보수적 자유주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경향이며 분배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한다. 유신 이래 한국의 발전국가 체제에 긍정적이며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통보수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구축된 ‘한국적 가치’, 한국의 정치사회적 질서를 자유민주주의 고수 차원에서 적극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남북화해 등 기존질서가 수정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번 평가에 참여해준 전문가 그룹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강근형(제주대 정외과 교수)

    강명헌(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강석훈(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강순희(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강신준(동아대 경제학부 교수)

    강신택(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강정구(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강천(부산외대 경제학과 교수)

    고숙희(세명대 행정학과 교수)

    구갑우(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권오성(충남대 강사)

    권오윤(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전임강사)

    김경웅(통일교육원 교수)

    김근식(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김기흥(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김대영(한국정당정치연구소 연구위원)

    김동운(동의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김만흠(서울대 사회과학원연구원 특별연구원)

    김명섭(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김명수(한양대 언론정보대 교수)

    김상태(한남대 정외과 교수)

    김성건(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김성훈(중앙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영수(부경대 행정학과 교수)

    김영호(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김용직(성신여대 사회학과 교수)

    김일영(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김재일(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재홍(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재훈(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김정렬(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김진웅(경북대 사범대교수)

    김태우(국제평화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태효(신아세아연구소 외교안보연구실장)

    김현희(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김형구(부산경제연구소 소장)

    김홍기(한남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나성린(한양대 경제학과교수)

    남궁곤(동아일보 21세기평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노병일(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진철(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류동민(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문정인(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민경국(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박명광(경희대 부총장)

    박복영(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박상태(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박승길(대구 효성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박은홍(민주사회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박재창(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동(KDI 연구위원)

    박종철(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진(기획예산위 행정3팀장)

    배동인(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송홍선(예금보험공사 전문위원)

    신정완(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여현덕(에드퓨처 대표·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초청학자),

    염홍철(대전산업대 총장)

    우명동(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원용찬(전북대 경제학과 교수)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유승민(여의도연구소 소장)

    유재일(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팔무(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유한수(CBF 금융그룹 회장)

    윤건영(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윤상철(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윤정로(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이각범(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

    이강천(동우캐피탈 대표이사)

    이기훈(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이남주(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이두원(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상철(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이수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이일영(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이장영(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석(대우중공업 전무이사)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이철기(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이홍종(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이환성(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희옥(한신대 국제학과 교수)

    임정덕(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임혁백(고려대 정외과 교수)

    장하성(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전병유(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전상인(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전재호(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낙근(안민정책포럼 사무총장)

    정성기(경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순오(한남대 사회과학부 교수)

    정재호(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조명래(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영철(국회 사무처 예산분석관)

    조현연(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연구원)

    조희연(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주상영(세종대 무역학과 교수)

    최순(동아대 광고학부 교수)

    최태룡(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한남제(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한준상(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홍덕기(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황태연(동국대 정외과 교수)

    황필홍(단국대 인문과학부 교수)

    그 외 익명 답변자 2 명 포함 합계 110명

    정치 국제 분야의 대중적 지식인들에 대한 동료 지식인 집단의 평가에서는 먼저 응답자들의 태도와 시각에서 몇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 특징은 대부분의 평가가 응답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평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동일한 평가대상자라 하더라도 응답자가 상대적으로 좌파라면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인사에게 더 보수적인 평가, 즉 정통보수 혹은 극우라는 평가를 내리고, 진보성향의 인사에게는 덜 좌파적인 평가 즉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응답자가 상대적으로 우파라면 일반적으로 보수적 인사에게 덜 보수적인 평가, 즉 보수적 자유주의 혹은 정통보수주의라는 평가를 내리고, 진보적 인사에게는 더 좌파적인 평가, 즉 정통좌파 혹은 신좌파,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레벨을 붙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응답자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에 대해 동일한 평가대상자의 평가가 이례적으로 상충한다는 점이다. 즉 햇볕정책 반대성향의 응답자들은 친(親)햇볕정책 인사에게 더 좌파에 기운 평가를 내리는 반면, 햇볕정책 지지성향의 응답자들은 친햇볕정책 인사에게 덜 좌파적인 평가를, 햇볕정책 비판인사에게는 더 우파적인 평가를 내렸다.

    둘째 특징은 응답자의 정부에 대한 친소(親疎) 여부에 따라 답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친정부적 성향의 응답자들은 정부비판적 인사들에 대해 그가 좌파 입장이면 극좌파로, 우파 입장이면 극우, 수구파로 평가했다. 또한 친정부적 인사들에 대해서는 과거 보수적이었던 친정부 인사를 덜 보수적으로 평가한 반면 과거 좌파 성향의 친정부 인사를 덜 좌파적으로 평가했다. 반대로 좌파입장에서 반정부적 성향을 갖고 있는 응답자들은 과거 보수적이었던 친정부 인사를 더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과거 좌파성향의 친정부 인사에 대해 더 보수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우파 입장에서 반정부적 성향을 갖고 있는 응답자들은 과거 보수적이었던 친정부 인사에 대해 더 좌파적으로 해석하고 과거 진보적 성향의 친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더 좌파적으로 해석했다.

    결국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과 현정부에 대한 친소 여부에 따라 응답자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평가대상자의 이념적 지형을 각각 더 보수적으로, 더 좌파적으로, 덜 보수적으로, 덜 좌파적으로 평가하는 ‘정치적 자의성’을 공통적으로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현재 한국의 이념적 지형이 본래적 의미의 서구 좌우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정치성향에 의해 다분히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이념적 혼란

    평가대상이 된 지식인의 자체 특성 가운데는 현실정치와의 관련성이 평가에 크게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과거 5공화국이나 6공화국에 참여한 학자들에 대해 보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평가가, 문민정부나 김대중 정부에 참여한 지식인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 혹은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등의 비교적 개혁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와 함께 지식인의 북한문제에 대한 견해 역시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작용했다. 우익이나 보수성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북한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북에 대한 유화적 태도, 현 정부 통일정책에 대한 긍정적 시각 등이 개량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근거로 제시됐다. 설문시 예로 제시된 이념의 배열은 전통적인 개념의 좌-우를 기본 축으로 하였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북한문제는 이를 뛰어넘는 이념적 균열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적으로 중간 이념적 성격에 대한 규정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중간적 입장에 대해 개량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자유주의 등 다양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 함의는 응답자마다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경우에는 좌파적 성향과의 친화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좌파적인 경향과의 차별성이 강조됐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했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합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간적 입장이 본래 분명한 성격 규정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현실정치와 북한 문제에 의해 보수와 진보가 규정되다 보니 중간적 입장이 자리잡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가대상자의 이념적 지형 역시 상당수가 입장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무정견 혹은 사상적 궤적의 결여 등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것도 현대 한국 이념지형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 정부의 이념적 지형에 대해서도 보수파는 ‘진보진영’ 혹은 ‘좌파적 입장’으로 비판했고, 역으로 좌파진영은 ‘변절한 진보진영’ 혹은 ‘보수적, 우파적 입장’으로 비판했다. 이는 한국정치에서 김대중 정부의 총론적 이념지형 역시 아직은 명확한 이념적 색채로 단정짓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의 성장과 함께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았다. 절반의 응답자들이 그의 사상적 성향을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했으며, 나머지 응답자들의 평가는 ‘개량적 자유주의’와 ‘급진적 민주주의’로 나뉘어졌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그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참여연대가 제시하는 경제정책이나 그의 발언 등을 주목하는 이들은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했다. 자기성찰적 비판의식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적 진보성을 견지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계급의식이 약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문제에 관한 한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제’라는 전형적인 중산층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다만 이러한 평가를 내린 응답자들도 시민운동으로서 참여연대의 현실적 한계에 기인할 뿐, 그의 개인적 성향은 보다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다.

    정치수준을 중시하는 이들은 민주화 이행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과정에 그가 주도한 참여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의 국가보안법 연구가 독보적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노선을 ‘급진적 민주주의’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 지식인들은 “사회현실이나 문화 등 사회전반에 대한 이해가 충실하지 않은 운동가”라고 폄훼했다.

    이에 대해 박원순 변호사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딱 맞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좌측이 워낙 약하다. 그래서 조금만 다른 주장을 내놓아도 좌익으로 몰린다.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게임의 룰, 제도, 민주주의, 보편적 원칙이 없다. 그런 토대가 있어야 비로소 이념적 스펙트럼이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박변호사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예로 들면서 “내가 좌익이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단지 민주주의의 기본 인권에 반하는 법이라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논리가 설 땅이 좁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송복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통보수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송복 연세대 교수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정통보수주의’로 평가했다.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그의 학문적 저작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면모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이라는 점에 기인할 뿐, 개인적인 성향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그가 1970년대 이후 보여준 왕성한 대(對)언론활동에서 그의 사상적 경향을 판단하고 있다. 한 응답자는 송교수에 대해서 “보수주의보다도 완고한 수구주의 혹은 반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송교수가 기득권 세력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송교수는 “정통보수주의라는 말은 없다. 그냥 보수주의라고 해야 맞다. 정통과 보수를 함께 나열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평가한 것에 대해 “역사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다”고 답했다. 송교수의 말.

    “어느 민족이든 뿌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 삼아 키워가면서 개혁해야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유교적으로 말하면 ‘온고이지신’이다.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더라’고 말했다. 역사주의는 전통을 기반으로 해서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혁도 점진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사상적 경향에 대해서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했고, 나머지 응답자들도 ‘개량적 자유주의’ 혹은 ‘보수적 자유주의’로 분류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자유주의 범주 안에서 다양하게 나오는 이유는 그의 다채로운 지적 편력,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그리고 정력적인 저술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문체에 기인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를 접한 시점과 깊이에 따라 매우 다르게 평가하는 듯하다.

    그를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보는 이들은 그가 지식인의 자기성찰성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며, 노동과 복지문제를 다루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이러한 평가는 그의 지적편력에 대한 대단히 피상적이고 일면적인 관찰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는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자 혹은 국가주의자”라고 지적했다.

    그가 노동사회학자이면서도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더 나아가서 재벌과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의 이익과 통치능력에 경도돼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학자들 가운데는 특히 “송교수가 최근 의약분업 사태에 대한 신문칼럼에서 빈약한 논리와 경험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의사집단을 두둔했다”면서 “때와 쟁점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심하게 뒤바뀌는 등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송교수 자신은 “좌파적 성향은 없고,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다. 쟁점에 따라서는 시장적 이념과 친화력을 갖고 있으며, 시장의 폐단을 통제해야 한다는 데 더 많은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 “자유주의를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시장의 한계를 국가와 정치의 개입으로 극복해 나가려는 이념’이라고 정의했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민족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신용하 서울대 교수의 사상적 경향에 대해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보수적 자유주의’ 혹은 ‘정통보수주의’로 평가했으나, 이들을 포함,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민족주의자’에 동의했다.

    그를 ‘민족주의자’로 보는 이들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깊이있는 학문적 성찰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업적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우는 한편 일관되게 반일노선을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존경받는 급진적 민족주의자’ 혹은 ‘강성 민족주의자’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주의는 주로 일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하는 제국주의 일반으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으로 ‘비합리적 혹은 이중적 민족주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자’ 혹은 ‘정통보수주의자’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서 “북한에 대해 비우호적이고, 미국에 대해 이중적이며, 그리고 현재의 정권과 구조개혁에 대해 유보적이고 수구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그가 시민단체의 리더로서 사상적으로는 점진적 개혁을 통한 사회정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점을 들어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신교수는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중도파이며 개방적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보수적 자유주의보다는 약간 개혁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보수적 자유주의’로 평가한 점에 대해 “내가 평소 남자들이 머리에 물감 들이거나 서양 흉내를 내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통이나 서비스업을 강조하는 것에 반대하고 제조업과 실질적 부가가치를 중시한다. 이런 점들이 젊은 교수들이 볼 때 구시대적 색깔로 보였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정통보수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유석춘 연세대 교수는 기득권층의 입장을 견지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혹은 ‘정통보수주의’라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유교자본주의론’의 주장,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지역주의적 성향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유교수는 “어떻게 평가하든 신경쓰고 싶지 않다. 서구의 개념으로 보면 신자유주의가 보수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한국사회의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을 보수라고 본다면 보수주의자가 맞다. 나는 최근 누구보다도 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적이다. 그런데 내가 영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보수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유시민

    (시사평론가): 진보적 자유주의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유시민씨에 대해서는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 ‘개량적 자유주의’의 순으로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그 이유는 그가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신좌파’에서, 시민운동가로서의 ‘급진적 민주주의자’를 거쳐, 현실문제에 개입하면서 보인 개량주의적 태도에 기인하는 듯하다.

    유씨는 이에 대해 “나는 ‘자유주의적 좌파’ 심지어 ‘개량주의’라는 지적에 별로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유씨는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우리 헌정질서에 불만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좌파’라는 말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헌법이 명시하는 바를 실현하지 못했다. 그것을 적극 추구하는 측면에서 진보적이라는 거다. 이철승씨 같은 양반들은 우리 헌법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헌법적 합의, 즉 인권과 정의 등으로 자유주의를 확장시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적 가치에 실제로 반(反)하는 세력이다. 나는 교조주의적 좌파도 비판하지만 소위 보수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도 헌법상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기본적으로 인권·민주주의·평등·복지 등 헌법이 지향하는 바를 가로막고 있는 관행과 이데올로기를 공격하고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며,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 한다는 면에서 ‘개량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 교수는 ‘보수적 자유주의’ ‘개량적 자유주의’ ‘정통보수주의’의 순으로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그 근거로서 “생래적인 보수성향에 체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사회개혁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교수는 “이제 진보-보수의 개념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면서 “세계가 변화하고 있는 방향으로 우리가 빨리 변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진보여야 하고 그 면에서 나는 진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그러나 “세계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각에서 보는 게 전통적 보수 개념이라면 나는 ‘보수’이고 이 점에서 개량적 자유주의자”라고 덧붙였다.

    이교수는 “80년대식 진보개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보기에 내가 극보수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에 우리가 적응하고 그 속에서 정의 등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어떠한 진보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교수에 따르면 ‘세계화’는 누구의 주장이나 정책이 아니라 필연적 과정이고 현재의 방향 그 자체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우리사회의 정상화·투명화·합리화라는 것이다. 이같은 자신의 관점을 ‘보수’라고 본다면 보수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개항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날을 지샐 수 있는 때가 아니며, 어차피 하지 않을 수 없는 ‘제2의 개항’(세계화)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급진적 민주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조혜정 연세대 교수 만큼 다양한 평가를 받은 지식인도 드물 것 같다. 조교수의 사상적 경향에 대해서는 ‘급진적 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개량적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응답자들이 비슷하게 나타났고, 그 외에도 ‘극단적 여권주의자’ 혹은 ‘(문화적)자유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렇듯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온 이유는 그의 여성과 문화에 대한 지적(知的) 관심과 대중적 실천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조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은 그를 ‘급진적 민주주의자’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평가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이들은 여성과 남성간의 성차별적 대립구도를 폐지하고 진보적 평등을 추구하는 한편, 그의 저서인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담론에서 소외된 쟁점들을 포착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하려는 그의 실천적 신념에 지지를 표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중산층적 문화주의로 인해 상당수의 응답자들이 그를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된 ‘앞뒤가 엇갈리는’ 체제내적 개량주의자로 규정했다.

    조혜정 교수는 지식인들의 평가결과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신좌파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에 대한 평가는 ‘신좌파’ 혹은 ‘급진적 민주주의’로 비슷하게 나뉜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그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젊은 사회학자이자 한국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사회운동가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 역시 박원순 변호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 평가된다.

    그를 ‘신좌파’로 보는 이들은 그가 신사회운동을 강조하고 참여연대의 창립지도자로서 시민운동을 통한 사회개혁을 추구해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지식인들은 그가 제시하는 이념적 노선보다도 직접 몸으로 보여준 사회적 실천을 보면서 그를 ‘신좌파’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를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하는 이들은 그가 왜곡된 보수적 시민사회를 극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개혁을 추동해 완전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려는 데 관심을 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내면적 성향은 좌파에 가깝다는 점을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선뜻 ‘좌파’로 규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학술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보여준 실천적 유연성과 현실적응감각 때문인 듯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모나지 않게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그 결과 더 급진적인 이들은 그를 ‘절충주의자’ 혹은 ‘현실타협주의자’로, 보수적인 이들은 그가 중요한 문제를 설익은 사변으로 비껴간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조희연 교수의 말.

    “정통좌파는 노동운동을 강조하지만, 나는 시민사회의 급진적 개입을 중시한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개량적 이슈에 대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해졌다. 현실적 모순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 ‘신좌파’가 좌파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나는 그 부류에 속한다.”

    조교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운동에 대해 “진보를 위해서는 다양한 후방 진지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은 절반 정도의 응답자들에 의해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평가됐다. 나머지 응답은 ‘보수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로 비슷하게 나뉘어진다. 개량적 자유주의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하는 이들은 그가 지식인의 자기성찰적 비판능력에 의존하는 시민사회와 사회개량을 통한 개인의 자유 확대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가 최근 보여준 친(親)정부적 태도 때문에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비판 능력이 마비되지 않았는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보수적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의 ‘중민론’이 민중에 대한 사변적 수사일 뿐이며 그가 그다지 진보적인 지식인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최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으로서 보여준 행태를 들어 “자유주의가 중시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방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더 비판적인 이들은 그가 ‘겉만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폄했다.

    이에 대해 한원장은 먼저 분류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너무 쉽게 ‘딱지’를 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도를 그리겠다는 시도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좀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정확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원장은 자신의 이념적 지형에 대해 “내가 주장한 ‘중민이론’은 대립적 모델보다는 광범위한 사회연대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혁적 중도노선’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지 않지만, 자유주의 이념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완상

    (상지대 총장):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한완상 상지대 총장은 대부분의 응답자들에 의해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됐지만, 일부는 ‘개량적 자유주의’로 평가했다. 또한 학문적 역량과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역량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했다.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가 1970년대 제기한 ‘민중사회론’, 민주화 투쟁과 해직교수 이력, 그리고 통일부총리 시절 보여준 진보적 대북정책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건한 기독교 목회자이자 인간주의 부활을 부르짖는 모습도 그의 진보적 성향을 더 부각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성향은 자유주의일 뿐이며, 그의 진보성은 보수적 지배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다만 한국의 보수적인 정치체제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몇 안되는 진보인사 중 하나라는 사실 때문에 그러한 비판은 지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그를 ‘개량적 자유주의’로 보는 이들은 그가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해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한다거나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지지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그의 진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일부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강연이나 신문 칼럼을 근거로 그를 ‘신좌파’나 ‘급진적 자유주의자’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한총장은 “대체로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좌파도 우파도 나를 진보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복지적 자유주의자’나 ‘개혁적 자유주의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총장은 자신이 사회학을 전공한 지식인들로부터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평가받은 것에 대해 “냉전체제의 해체를 강력히 주장해왔고,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는 시장의 논리를 인정하되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배려해야 한다는 ‘민중사회론’을 역설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 가장 미국 적인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에 대한 평가는 ‘보수적’ ‘미국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고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경우도 정통보수 등의 보수적 특성을 강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에서는 ‘개량적’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발표한 글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보수주의’라고 지적하면서 “현실적이다” “신중한 대북관을 가졌다”는 등의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 경우도 있지만, 과거 5공화국에 참여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제한을 인정했다는 이유를 그의 보수주의적 특성과 연결시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았다.

    또한 ‘미국적’이라는 평가는 다른 평가대상자의 경우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답변이었다.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교과서적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을 든 경우도 있으나 이보다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미국의 위상과 역할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고, 한-미 관계를 외교의 기본 축으로 설정하는 입장은 다른 국제정치학자들에게서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만 유독 ‘미국적’이라는 평가가 부여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반응이다. 이는 아마 그가 위의 입장을 다른 학자들보다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불평등한 측면은 있을지 몰라도 이는 객관적인 현실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거나, 아셈(ASEM)과 같은 유럽과 아시아의 협력기구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이유로 신중함을 보이는 태도 등이 그 예일 것이다.

    김원장은 이와 같은 평가에 대해 “나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평가에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미국의 비중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며 그 자체가 객관적 평가인데 이를 두고 보수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프랑스의 레이몽 아롱에 사상적으로 심취했던 김원장은 “기본적으로 ‘회의주의’가 나의 학문적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교조주의에 반대하며 항상 자신이 뭘 모른다는 의심을 갖는다는 얘기다. “난 뭔가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다”고 김원장은 덧붙였다.

    그는 대신 ‘역사사회학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역사적 사회적 자료를 토대로 있는, 그대로의 변화과정을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정리해보자는 것이다.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정통좌파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응답자의 다수는 김세균 서울대 교수의 이념적 지형을 ‘정통좌파’로 분류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노동계급의 입장을 고수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변화를 주장한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자본주의 입장과 노동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노동계급이 이익을 고수해야 한다는 김교수를 한국 정치학자들은 정통좌파로 분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김교수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을 가진 신좌파’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입장과 이미 낡은 것으로 판명된 마르크시즘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구극좌파’ 혹은 ‘민중중심의 극좌파’라는 평가도 있었다. 일부 응답자는 그를 가리켜 “낡은 것을 뛰어넘는 부지런함과 재능이 결여돼 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렇게 엇갈리는 평가는 그가 ‘국립서울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이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취하고 있는 독특한 현실적 기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안정적인 서울대 교수라는 그의 제도권내 기반이 ‘사민주의적 신좌파’ 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 반면, 노동계급 중심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일관된 주장은 그를 “시대변화에 유연하지 못한 구시대적 극좌파”로 분류하게 만든 것이다.

    김교수 자신은 이에 “굳이 구분하자면 나는 ‘정통좌파’와 ‘급진적 민주주의’의 중간쯤”이라고 말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제기를 수용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많은 현실적 문제해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개혁’과 관련해서도 자신은 우리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진보적 개혁을 학문적으로 추구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나종일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나종일 경희대 교수에 대해 가장 많은 답변은 ‘보수적 자유주의’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정치학자들이 나교수의 이념을 평가하는 데 김대중 정부에 참여한 사실을 가장 많이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그의 사상적 경향은 보수적 국제정치관에 익숙한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였고 정권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과 국가정보원 차장을 지내면서 대북 햇볕정책의 지지자로 각인됐던 점이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평가를 내리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나교수의 이념적 지형은 사상적 스펙트럼의 특정 부분을 차지한다기보다 국민의 정부에 깊숙이 참여한 지식인으로 평가된 셈이고, 바로 이런 점에서 보수적 자유주의 외에도 그에게 개량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중도 우파라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또한 나교수에 대해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평가와 “이념적 색깔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 밖의 흥미로운 의견으로는 보수적 경향과 지역주의적 성향이 혼재한다는 점에서 ‘권위적 보수주의’라는 평가가 있었고, ‘민주적 자유주의’라는 특이한 분석도 있었다. 또한 나교수에 대해 ‘정통보수주의’라는 소수의견도 제기됐는데 이는 아마도 햇볕정책을 지지하지만 나교수의 이미지가 보수적 위치에 친숙한 국정원 차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나교수 자신은 이에 대해 “나는 자유주의자(Liberalist)로서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더 관심을 둬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보수적 자유주의 내지 신자유주의와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의 창의성(initiative)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능력이 모자라는 부분은 복지 등으로 커버해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교수는 자신을 굳이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했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문정인 연세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주로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대북문제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며 냉전적 남북관계의 변화를 믿고 있다는 점에 근거했다.

    동일하게 햇볕정책의 권위자인 이종석 박사가 ‘진보적 자유주의’로 평가되는 반면, 문정인 교수가 ‘개량적 자유주의’로 평가된 것은 과거 그의 국제정치적 해석과 접근이 다소 보수 경향을 갖고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 그의 보수적 국제정치관을 기억하고 있는 정치학자들은 소수의견으로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하고, 그를 최근 햇볕정책의 지지자로 인식하고 있는 보수 성향의 정치학자들은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평했다.

    문교수는 자신을 가리켜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에 대해 “개량적이란 말은 영어에는 없는 표현이며 굳이 말하자면 ‘개혁적(reformed)’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자신은 이상주의적인 ‘그냥 자유주의’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대북문제와 관련, 그는 “과거에는 나도 보수적이었으나 남북관계에는 자유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교수는 “정치사상 일반에서 볼 때 나를 보수라 볼 수 있으나 한국적 상황에서 기득권보다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문교수는 “그러나 나는 최장집 교수나 임혁백 교수에게서 언뜻언뜻 보이는 사민주의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숙명여대 정외과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박재창 숙명여대교수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는 현실정치에 대한 발언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전공, 학문적 방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의회민주주의를 전공했고 제도, 절차 등을 중시한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한편에서는 안정을 강조하고, 혹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주의’로 평가되지만 한편으로 의회민주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교수 자신도 이와 관련, “이념적 성향으로 본다면 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 관심을 두고 얘기해온 게 의회민주주의와 제도 절차 등이다 보니까 ‘보수적 자유주의’ 소리를 듣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박교수는 실제 경실련 초기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환경단체와 공선협 등 시민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혁명을 외치는 좌파와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 사회적 가치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박교수는 “정치적으로는 내가 의회주의 다원주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인 게 맞지만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나는 적어도 경제적으로 절대 보수주의가 아니며 ‘책임있는 진보주의’로 살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진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서진영 고려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많았다. 우선 그의 학문적인 경향도 기존 보수적인 부문에서 중시했던 것보다는 과거의 시각에서 누락된 새로운 영역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개량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그가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한때 참여했던 것을 근거로 그에게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를 내린 이도 많았다.

    서교수는 이에 대해 “내 스스로는 ‘개혁자유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개량적 자유주의’는 좌파적 성향에 선 사람들이 일정한 부류를 자기들과 구별짓기 위해 쓰는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교수는 “그러나 개량자유주의든 개혁자유주의든 기존 보수가 중시하던 특정 영역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와 영역을 찾아나간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현 미국 UCLA 교환교수): 신좌파와 급진적 민주주의의 동거.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좌파적 견해를 강하게 대변해온 대표적 지식인이다. 따라서 그를 ‘좌파’라고 평가하는 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를 ‘정통좌파’라고 평가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좌파적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좌파’와 구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좌파적 시각을 한국화하려는 그의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응답 중에는 그의 이념적 성향을 ‘급진적 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등으로 규정하며 좌파와는 구별하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를 ‘개량적 자유주의’ 심지어 ‘온건민주주의’라고 분류한 응답도 나온 것은 의외다. 이는 그의 견해가 사회로 전달되는 통로와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응답자는 손교수에 대해 “매우 부지런한 학자”라고 평했는데 그는 좌파 경향이 강한 매체의 발간에 직접 참여하고 이들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요 언론 매체를 통해 부지런히 정치상황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다. 따라서 학자들은 어느 매체를 통해 손교수를 접하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현 정부에 대한 그의 평가도 학술지를 통해 전달될 경우에는 현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 현 정치체제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이 부각되며 그에게서 좌파적 성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언론 매체를 통해 손 교수를 접했을 경우에는 비교적 온건한 지식인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가 현실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경우 특정한 이념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비교적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도 이와 같은 평가가 나온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손교수 자신은 “착취와 (지역적·성적)차별과 배제 등을 비판하고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두 좌파”라면서 “그런 면에서 나는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손교수는 “그러나 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경직되지 않고 신좌파든 구좌파든 긍정적인 면을 종합하고자 애써왔다”고 말했다. 나쁘게 말하면 ‘절충주의’로 비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각도의 장점들을 한국적 상황에 종합해보고자 노력해왔다는 얘기다. 그는 “물론 그런 노력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으며 때로는 상호모순되고 서로 부딪치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안병준

    (연세대 정외과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안병준 연세대 교수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다수였다. 그가 정통 국제정치 이론에 입각해 있고 대외공조와 미국을 중시하고 기존 관행과 틀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보수주의적 성향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가 보수주의 국제정치관을 고수하지만 서양의 합리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고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총론적으로는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정통보수주의’로 간주되기보다는 ‘보수적 자유주의’로 분석된 듯하다. 물론 소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학자들은 그를 ‘정통보수주의’ 혹은 “냉전논리와 남북대결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극우 직전의 초(超)보수주의자”로 응답했다.

    안교수는 이에 대해 “보수적 자유주의니 뭐니 하는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다”면서 “나는 낙관론도 비관론도 아닌 현실주의자”라고 말했다. 주어진 현실속에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교수는 “보수나 진보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면서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국제관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키 어려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재단이사장):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다가 최근에 세종재단으로 자리를 옮긴 오기평 전 서강대 교수에게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로 응답한 정치학자도 적지 않았다. 이 둘의 평가 모두 과거 서강대 교수 시절 국제정치와 관련된 그의 연구와 주장이 보수적 국제정치관에 입각했고,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대북 햇볕정책을 정책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의견으로는 “대북관계 개선을 평화적으로 이끄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이론적, 정책적 자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합리적 자유주의’로 평가한 것과 정치적 신조보다 학자의 신조를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는 평가였다.

    오이사장 자신은 “과거 통일논의 등 비현질적 논의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보수로 비쳤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보수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이사장은 “보수는 이미 정립돼 있고 우리 사회에 두터운 기반을 갖고 있다”면서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의 논리가 더 필요하며 나는 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오이사장은 “그런 의미에서 ‘개량적 자유주의’ 내지 ‘합리적 자유주의’라는 평가는 비교적 정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상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정통보수

    이상우 서강대 교수에 대한 압도적인 평가는 단연 ‘정통보수주의’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달리 이교수에 대해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이 ‘정통보수’라는 일치된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그의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분명하고 그의 언행 역시 일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온건정책인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북한의 위협에 맞서 국가안보를 주장하는 것을 지금 한국의 다수 정치학자들은 ‘정통보수’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소수의 응답자들은 이교수의 분명한 움직임에 대해 “정통보수의 도를 넘어선 위험한 극우보수 혹은 수구적 보수”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즉 냉전적 인식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국가안보를 내세워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정통보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한 응답자는 이교수에 대해 “과거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동조한 전력이 전혀 없고 한나라당의 보수성도 성에 안 찬다고 혹평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주의자”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 밖의 소수 의견으로는 정통보수지만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평가와 “합리적 자유주의와 보수적 자유주의가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들의 평가는 아마도 이교수의 보수적 가치에 대한 긍정적 동조를 전제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이교수 자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원칙이고 이 원칙을 지키려는 나는 분명 정통보수”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북한도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자는 진보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절대성을 나는 일관되게 고수해왔다”고 덧붙였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과교수):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이장희 외대교수에게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평소 국가보안법 철폐와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및 남북화해를 적극지지하고 그 관철을 위해 시민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점이 이와 같은 평가의 주요인인 듯하다.

    본래 법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특정한 정치사상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주요 이슈에 대해 재야 및 시민단체와 함께 다소 급진적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교수에게는 ‘진보적 자유주의’ 외에도 소수의견으로 ‘신좌파’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평가와 ‘개량적 자유주의’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서로 엇갈리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이교수 자신은 “나는 진보적 자유주의 같은 성향이 없다”면서 “그저 환경 노동 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자유로운 연구를 하자는 게 내 소신”이라고 말했다. 이적성 논란을 불러왔던 초등학생용 통일교육도서 ‘나는야 통일 1세대’를 썼다가 이적표현물 제작혐의로 97년 12월 불구속 기소됐고 지난해 2월 공소취소 처분을 받은 이교수는 “우리나라는 이념적 지평이 너무 좁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교수는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지난번 사건처럼 소모적 갈등에 아직도 잡혀있다는 게 안타깝다”면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거기에서 진실을 검증받는 풍토가 하루 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교수는 “자유민주주의는 항상 열린 자세를 잃지 않아야 생명력이 있다”면서 “지식인이 약자의 목소리를 내주는 것을 색깔과 용공으로 몰아붙이는 경직된 사회라면 그것은 사회주의나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이종석 박사에 대한 평가 중 다수를 차지한 것은 ‘진보적 자유주의’였다. 대다수의 정치학자들은 이박사를 평가하는 근거를 햇볕정책과 대북문제에서 찾았다. 초기 연구에서 ‘김일성 가짜론’을 논박하고 북한의 객관적 실체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던 이종석 박사는 ‘국민의 정부’ 들어 햇볕정책의 대표적 이론가로 떠올랐다. 그런 이박사에 대한 평가를 볼 때 한국 정치학자들은 대북 온건정책과 북한에 대한 실사구시적 분석을 강조하는 그를 ‘진보적 자유주의’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종석 박사에 대한 이런 평가가 가지는 의미는 한국사회에서 특정인사에 대한 이념적 평가가 평소의 계급적 입장이나 정치사상적 궤적과 상관없이 북한에 대한 관점과 주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냉전적 대결시기를 거쳤던 한국의 지적(知的) 환경에서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대결만능이 아닌 화해 위주의 대북관점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보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그 밖의 의견으로 이종석 박사를 ‘개량적 자유주의’와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평가도 있는데 이는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박사의 이념 지평을 달리 해석한 데서 연유한다. 즉 대북정책에서 보수적 입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그를 급진적 민주주의로, 과거 오랫동안 좌파 성향을 견지하던 학자들은 그를 개량적 자유주의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특이한 응답으로는 ‘주사파적 색채를 내포한 햇볕론자’라는 평가와 “학문적 깊이가 오래 되지 않았다”는 평가,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점에서 ‘개혁적 자유주의’라는 평가와 아예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규정한 평가도 있었다.

    이박사는 이에 대해 “내 스스로 진보적 자유주의에 근접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가능하다면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한 자유주의를 넘어 평등과 복지의 문제가 고려되는 자유주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진보적’이라는 용어보다는 ‘전향적’이라는 말이 적실하다”면서 “중요한 것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본 뒤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접근법을 ‘내재적·비판적 접근론’이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비판의 잣대만 들이대서는 진실이 보이지 않으며 일단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평가한 뒤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개량적 또는 개혁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 개량적 자유주의, 합리적 자유주의, 개혁적 자유주의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와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설문대상 중 자유주의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형성돼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이론적·실천적 풍토가 척박한 한국에 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공급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평가가 상당 부분 연구활동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임교수는 “개혁적 자유주의라는 표현은 맞지만 ‘개량적’이라는 표현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량적’이라는 말에는 현실타협적 또는 보수적이라는 뉘앙스가 있으며 자신은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면서 사회정의나 불평등 해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혁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 급진적 민주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평가대상자 중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경우다. 이는 현재 분류 가능한 이념지도 내에서 그의 위치에 대해 비교적 강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에 대한 평가도 매우 복잡함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그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이념지도상의 위치가 비교적 온건한 개혁론과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원래 그는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강조하며 계급적인 관점보다는 시민사회의 발전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좌파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은 단지 시장의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배 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해결과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장주의자와는 구별된다. 그리고 그의 이론들이 과거 한국사회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민주주의 앞에 ‘진보적’ 혹은 ‘급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비교적 좌파 성향에 가까운 인물로 보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정통좌파라고 규정한 이도 있었다. 이는 그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 지적된 것은 최교수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해석 문제다. 이는 당연히 99년 6·25전쟁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사상논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현대사 혹은 북한과 관련한 이데올로기 문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교수는 “남들이 뭐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지만 내 스스로 무슨 주의자로 붙일 생각은 없다”면서 논평을 거부했다.

    최교수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최교수를 잘 아는 인사들은 99년 자신의 한국 현대사 해석을 놓고 벌어졌던 ‘색깔론의 악몽’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교수 자신은 국가와 시민사회 등 보편적 민주주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자신의 견해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여기에 ‘급진적’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덧칠하는 데 대해 몹시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념의 자유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돼있지 못한 한국의 현재시점에서 자신을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다루려 하는 자체가 정당치 못하다는 얘기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경직돼 있다는 게 최교수가 경험으로 체득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자유주의적 분파가 한국에서는 ‘과격하다’ ‘급진적이다’고 매도될 만큼 워낙 보수적 토양이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이번 설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이다. 이는 평가 대상의 보수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비교적 뚜렷한 정치성향을 갖지 않은 보수주의’라는 의미로도 사용됐다.

    아마 후자의 경우에 가장 들어맞는 케이스가 하영선 교수에 대한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평가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주로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학문적 발언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신중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서 뚜렷한 성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혹은 “여러 문제를 보는 인식적 스펙트럼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동시에 하교수에 대해 ‘개량적 자유주의’, 혹은 ‘현실주의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는 글을 통해서 나타난 그의 주장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용미론’이라는 표현을 통해 감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잘 따져서 미국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동시에 대북정책에서도 단순한 ‘포용론’과 ‘봉쇄론’이 아닌 ‘선택적 포용정책’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매우 소수지만 그의 보수성을 강조하거나 설문 대상 중 가장 우(右)에 있는 사람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주로 하교수가 표현은 신중하지만 북의 현 체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특히 통일방안을 비판하고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교수는 “80년대식 도식적 잣대에 불과한 보수-진보가 과연 정확한 표현인지 의문”이라면서 “현재를 긍정하는 게 보수고 개선하자는 쪽이 진보라고 한다면 요즘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긍정하는 게 진보인지 보수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래 기준에서 보면 ‘보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인식과 햇볕정책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대북정책을 긍정하는 게 보수인지 진보인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교수는 “남북관계에선 보수나 진보 개념보다는 ‘신중론’과 ‘적극론’으로 구분하게 좋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교수는 이와 관련 “나는 굳이 말하라면 ‘현실주의적 이상론’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하교수는 “21세기는 훨씬 다양하고 진취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시기”라면서 “가령 ‘지구적 민족주의’ 같은 복합 개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나는 ‘복합주의’를 방법론으로 내세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승주

    (고려대 정외과 교수·전 외무부 장관): 현실주의적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한승주 고려대 교수에 대해서는 ‘보수주의’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에게서 ‘자유주의’ ‘현실주의’ ‘개량적’이라는 이미지를 느낀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종종 매우 개혁적인 이미지를 주는 다른 경우와 달리 그는 ‘보수주의에 가까운 개량적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교수에게 ‘개량적’ ‘현실주의적’ ‘열린 사고의 소유자’라는 등의 평가가 내려지는 데는 그가 문민정부 시절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북포용 정책을 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핵 위기 등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긴장으로 치닫던 상황에 핵문제를 협상으로 타결지었던 것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대북관이 일시적 상황논리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한교수는 그러면서 미국 등 세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은 최근 발간된 한교수의 칼럼집 ‘남과 북 그리고 세계’ 서문에서 한교수를 가리켜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리얼리티(reality)를 기계적으로 도식화하기를 거부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스타일이라고 묘사했다.

    한교수는 “(김영삼정부 시절) 장관으로 일할 때는 북한에 대해 너무 온건하다, 너무 진보적이다고 보수파쪽에서 비판을 많이 했다”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강압이 아니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햇별정책의 기조는 사실 그때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그러나 지금 햇볕정책이 본격화된 상황에 내가 ‘정책실현은 좀더 현실적이어야 한다’면서 ‘냉철’을 자꾸 강조하니까 날보고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함재봉

    (연세대 정외과 교수): 정통보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함재봉 연세대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유교적 가치’, 혹은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주장 때문인지 ‘정통 보수주의’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가 보수라는 평가를 얻은 것은 다른 사람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에, 혹은 북한에 대한 태도로 얻었던 보수성과는 좀 다른 의미라고 하겠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그의 성향을 좌-우라는 축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답도 있었다. 그리고 그를 ‘정통 보수’라는 성향과 함께 “미국적 가치를 가진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함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가 과거부터 중시해온 학연 혈연 지연 등의 가치가 부정적 측면이 있다 해서 완전히 갈아엎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그런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에 맞게 접목, 활용해보자는 나의 방법론을 보수라고 한다면 보수라 불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함교수는 현재 같은 생각을 가진 지식인 그룹과 함께 만드는 동인지 ‘전통과 현대’ 편집주간도 맡고 있다.

    황태연

    (동국대 정외과 교수): 신좌파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황태연 동국대 교수에 대한 평가에서 다수 응답은 ‘신좌파’였으나, 흥미로운 것은 다른 평가대상 인사와 달리 그에 대해서는 다양한 답변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황교수를 ‘신좌파’로 보는 시각은 독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전공했고 귀국 후에 주로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이론적 관점에서 학문적 연구를 진행했던 과거 ‘행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황교수는 ‘국민의 정부’ 탄생에 깊숙이 개입했고 정권교체 이후에도 현 정부의 독보적인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면서 과거 좌파적 입장이 상당히 변화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의 이념적 지형에 대해 ‘좌파’라는 견해와 함께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 ‘개량적 민주주의’라는 소수 평가가 적잖은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응답자는 “황교수가 과거에 이론적으로 정통마르크시즘을 주장했지만 최근에는 현실정치의 논리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를 들어 “정통 좌파에서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그 입장이 선회했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정치학자는 ‘신좌파’와 ‘정통 보수주의’를 같이 응답하기도 했다. 과거 좌파적 시각의 연구업적과 현재 친정부적 정치 활동이 겹치면서 정치학자들의 평가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특이한 의견으로는 지역문제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황교수가 ‘소외지역 연합론’과 ‘저항적 지역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황교수는 자신에 대해 “마르크스뿐 아니라 칸트와 헤겔, 베버와 하버마스 등 서양 정치사상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적 자유주의’로 평가했고 실제 몇몇 정치학자들도 황교수를 ‘개혁적 자유주의’로 분석하기도 했다.

    황교수는 무엇보다 자신을 ‘신좌파’로 보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마르쿠제 등의 신좌파를 실패한 개념으로 규정하고 그 극단적 좌익들을 일관되게 비판해왔다는 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나를 공격하기 위한 소리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황교수는 “극좌나 극우 양 극단을 제외하면 한 사회에서 서로 공존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면서 “국가가 완전한 시장경제 질서 회복을 위해 독점규제 등 일정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독일식 ‘질서자유주의’가 내가 취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분야에서는 주로 정부개입과 시장원리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재벌개혁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IMF나 국제금융자본으로 상징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가 하는 점들이 해당 학자나 지식인의 이념적 방법론적 기반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에 대해 경제학자 또는 경제전문가들 스스로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관찰된 매우 희망적이고도 흥미로운 현상은 답변자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학술활동이 충실하거나 합리적인 논리를 갖춘 인물에 대해 전반적으로 일치되는 평가가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분석대상자의 선정 자체가 언론노출도에 큰 비중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지만,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만은 단순한 유명세나 대중적 인지도보다는 주장의 학문적·논리적 설득력에 비중을 두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제시됐다. 그 밖에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일부 있었으며 ‘신좌파’, ‘정통좌파’라는 답변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응답자들이 제시한 판단 이유는, “강교수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원리와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인물로서, 제도적 개혁을 통해 재벌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관치 경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또한 ‘시장의 힘을 이해하고 있으나 정부개입을 필요 이상으로 주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편 진보적 지식인들은 강교수에 대해 “기본적으로 중산층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보수적 중산층 자유주의자’이며 필요에 따라 정부 및 재벌과 연대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강교수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대체로 ‘개량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일치된 의견을 나타낸 것은 강교수가 꾸준히 활동해온 무대가 비교적 온건하고 체제내적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성실하고 일관된 학문적 활동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강교수 자신은 이에 대해 “내가 무슨 주의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 “다만 나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관치경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강교수는 “정부는 시장의 틀을 형성하는 수준에서만 개입해야 한다”면서 “한국사회는 정부의 개입이 많다 보니까 이익단체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이 시민이며 시민세력은 정부에 대해 시장경제의 룰을 정확하게 적용하도록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병호

    (인티즌 대표):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공병호 인티즌 대표는 매우 정력적인 인물로 지금은 벤처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했지만, 지난 몇 년간 재벌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논쟁의 핵심 멤버였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의 주장이 잘 알려진 만큼, 공대표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 또한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한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보다는 다소 빈도가 떨어지지만 ‘정통보수주의’라 평가한 답변도 적지 않았다. ‘진보적 자유주의’ 및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답변도 한 건씩 있었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다소 일탈된 평가로 보인다.

    공대표의 구체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없다거나, 재벌의 행위를 대부분 정당화하는 데 급급한 ‘사이비 자유주의자’ 또는 ‘수구적 재벌자유주의자’라는 등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반면, 소수지만 보수성향의 응답자로부터는 ‘확신에 찬 열정주의자’이며 “우리 사회에 이러한 주장이 널리 퍼져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흥미로운 답변으로는 “그가 사회적 발언을 가장 활발하게 했던 것은 자유기업센터소장 시절의 일이므로 그것이 그의 개인적 소신을 얼마나 반영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벤처기업으로 진출한 이후 정체성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대표가 주도해서 창설하다시피 한 자유기업센터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재정지원을 받는 기관이며, 정력적인 매스컴 활동을 통해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을 널리 펼쳐왔다는 점에서 반재벌적인 입장에 있는 응답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공대표는 친기업 성향의 답변자 중에서도 “자유주의 논리로 보수적 결과를 옹호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이것은 언론활동에 비해 그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공대표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공대표는 자신의 저서를 인용하며 이념적 지향점을 설명했다. “나는 그동안 네 권의 책을 썼다.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와 그 적들’, ‘기업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등이다. 여기에는 보수주의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항상 체제를 시장논리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강조하는 ‘작은 정부’, ‘개인적 선택과 책임’, ‘기업 자유주의’ 등이 보수적 이미지로 비친 것 같다. 좌파들은 내가 강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통해 보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면 나를 보통사람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좌파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영국 런던대학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인물로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다. 이 때문인지 ‘신좌파’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에 못지 않은 빈도로 ‘정통좌파’라는 답변이 나왔다. 소수의견으로는 ‘급진적 민주주의’나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있었다.

    한가지 특징은 보수적인 성향의 답변자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분석대상으로 제시된 학자들 중에서 ‘이론적으로 정립된 유일한 인물’이라거나 ‘세속적 성공보다는 학문적 성취를 추구’하는 ‘학구파’라는 답변들이 그러하다. 김교수를 ‘신좌파’ 또는 ‘정통좌파’라고 규정한 이유로는 학문적 배경이 마르크스경제학이라는 사실이 제시되었고,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도사’이며 ‘아직 사회주의에 미련을 못 버린 인물’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현실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교수가 한국전쟁 이후 사실상 국내에서 최초로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 제1세대라는 점 때문에 ‘좌파’라는 답변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노동자의 경영참가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제도 확충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학문적 성취도가 탁월하다는 점 등이 호의적인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교수는 지식인들의 평가 결과에 대해 “일정이 너무 바빠서 답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김태동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진보적 자유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김태동 정책기획위원장은 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등용된 바 있는 개혁적 이미지의 경제학자이다.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전형적인 미국식 경제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임에도, 토지공개념을 주장한다든가 소득분배 및 재벌문제 등에서 매우 개혁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김위원장에 대해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그와 거의 비슷한 빈도로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답변도 제시됐다. 일부에서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신좌파’라는 답변도 나왔다.

    김위원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백면서생에 그치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더 나았을 사람”, “애매모호한 DJ가신”, “우월감과 열등의식이 혼재된 독불장군형”, “이성보다 열정이 더 강한 사람” 등 거의 독설에 가까운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 정반대의 방향에서 “기성 정치권에 완전히 포섭돼 수구적 통치이데올로기화 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김위원장의 학문적 성장배경이나 현 정부 등장 이전까지의 학술활동 등을 감안하면, 그를 ‘좌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대부분 개인적 특성과 관련된 비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와 같은 부정적 평가들이 대세를 이룬 것은 김위원장으로 상징되는 DJ정부의 정책난맥상과 실정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어찌 보면 설문조사 시점 자체가 그에게는 불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분류방식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굳이 나눈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와 개량적 자유주의자 중간쯤에 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자신이 존경하는 경제학자는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과 2차대전 중 독일의 기민당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시켜 시장의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의도연구소장):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응답자가 일관되게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답변했다. 보수적인 응답자들로부터는 “지적 능력, 개인적 성품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진보적 성향의 응답자들도 유소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재벌을 옹호하는 편이지만 시장경제에 일정한 원칙을 지닌 세련된 자유주의자” “연구원 발행 학술지에서나마 꾸준히 자신의 주장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임” 등의 답변이 그러하다.

    이에 대해 유소장은 “납득이 잘 안된다. 예시된 방식으로 나눈다면 보수적 자유주의가 맞을 것 같지만, 그보다는 실용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소장은 경제 지식인들이 자신을 ‘보수적 자유주의자’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나는 재벌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급진적인 재벌해체에 반대한다.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다. 또한 나는 관치금융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규제철폐를 주장한다. 그렇게 보면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고 답했다.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 전 전경련 전무):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정통보수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에 못지 않게 ‘정통보수주의’라는 답변도 많았다. 그가 포스코경영 연구소장 출신으로 특히 IMF 위기 국면을 맞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맡으면서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친(親)기업적인 주장을 정력적으로 펼쳐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답변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이념 지형에서 공병호 대표와 유사한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긍정적인 평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냉철한 시각으로 경제문제를 봄” “상황인식이 약간 보수적이기는 하나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다” “도중하차로 기업경제 발전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는 평가 등이 그것이다.

    반면 소수의견으로 “재벌옹호 논리가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특히 “포지션에 따라 재벌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소 기회주의적으로 변동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경련 전무라는 위치 자체가 상징하는 것처럼, 재벌친화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반(反)재벌론자들로부터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한수 회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유회장은 “나는 정통보수주의는 아니고 보수적 자유주의에 가까울 듯하다. 나는 그렇게 완고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회장은 스스로 개량주의에 가깝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사회의 가치, 제도 중에는 장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급진적 변화에 반대한다. 재벌도 문제가 있지만, 단점을 고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TV토론에 나가서 기존의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 보수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논리 자체가 보수적이지는 않다. 반동도 아니고 수구도 아니다. 나는 유연하며 개량적 보수주의로 볼 수 있다.”

    이필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이필상 고려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진보적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가 그 뒤를 이었다. 이교수의 경우 얼마 전까지 비교적 온건한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을 중심으로 꾸준한 대중적 활동을 벌여 왔으나, 의외로 과격한 지식인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칙 없고 대안 없는 비판론자”, “엄밀한 논리보다는 선동적인 체제 비판” 이라는 등 인신공격성 혹평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교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 경제에 비판적이다. 낙후된 정치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경제문제에 분노하고 있다. 그런 입장을 ‘개량적 자유주의’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건전한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론자’라고 생각한다. 개량과 개혁은 어쨌든 바꿔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슷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정통보수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이한구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한나라당의 핵심 경제브레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와 ‘정통 보수주의’라는 답변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제시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재벌옹호론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의 개입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다고 평가한 응답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의원의 경제철학에 대해 “정부개입의 필연성을 전제하고 이론을 전개한다” “한국형 발전모델의 강점을 인정한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 전략에 미련을 가진 것 같다”라는 답변들도 나왔다. 이것은 경제개발기 재무부 관료 출신이라는 이의원 개인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의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주로 그가 논리적이고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측면에 집중됐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인”이라거나 “전체를 보지 못하나 부분적인 논리력은 있다”는 평가는 비판적 기조 속에서도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의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합리성과 일관성을 상실했다”거나 “과거와 최근의 성향이 다르다” “출세지향적인 이미지” 등의 답변이 이러한 평가를 반영하고 있다. 이 부분은 김태동 정책기획위원장의 경우와 유사하게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감이 일부 투영된 결과라고 판단된다.

    이에 대해 이의원은 “개인적으로 개량적 보수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념은 보수주의지만 늘 개혁을 지향한다. 내가 법질서를 존중하고 단계적 개혁을 주장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로 비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특히 자신이 보수주의자로 평가된 이유에 대해 “대북관계를 바라보는 완고한 입장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의원의 말. “나는 대북관계에 대단히 보수적이다. 나는 북한이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나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절차를 무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새로운 개혁조치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기초여건과 단계를 더 중시한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진보적 자유주의 또는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참여연대를 통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단 그에 대해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교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강력한 행동주의자이며 반재벌주의자로서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돼 있다는 점에서 보수성향을 가진 답변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예컨대 “참여연대를 통해 합법을 가장하고 있지만, 내심 원하는 것은 재벌해체인 신좌파”, “1인 1표의 정치민주주의로 1인 다수표가 가능한 자본주의에 도전하려는 모순적인 주장을 함“,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는 것을 모두 잘못이라고 보는 사람”, “시대 상황을 앞질러가는 행동주의자”라는 식의 비판적 평가가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 성향의 답변자들로부터 “중산층 소액주주의 한계”에 머물고 있다거나, “자유주의자이나 원동력은 보수적인 입지에서 나온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장교수의 주장이나 학문적 배경은 충실한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하고 있고 이른바 ‘아메리칸 스탠다드’(미국식 표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점이 보수적인 재벌옹호론자는 물론 진보적인 논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는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장교수는 “황당하다. 이렇게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좌파든 우파든 현실성이 있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 내가 시민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온 것 같다”고 답했다. 장교수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런 평가가 나온 것은 내가 자본주의 사회의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고 그런 논리를 시민운동 속에서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장교수는 이어 “내가 소액주주운동을 펼친다고 했을 때 운동단체에서는 ‘무슨 투기꾼을 보호하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우파에서는 나를 세상을 뒤집으려는 ‘빨갱이’로 몰아부쳤다”고 덧붙였다.

    정운영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신좌파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정운영 경기대 교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답변이 제시되었다. 가장 빈도가 높았던 답변은 ‘신좌파’지만, ‘급진적 민주주의’나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답변 빈도도 매우 높았다. 그 밖에 ‘정통좌파’에서부터 ‘개량적 자유주의’ ‘보수적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답변들이 제시됐다.

    정교수는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김수행 교수와 함께 전후 한국 마르크스경제학의 제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좌파라는 답변이 나온 데는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답변자는 그를 가리켜 “스스로 좌파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특히 그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서 썼던 칼럼에 나타나는 반(反)시장적, 평등주의적, 급진적 정서에 주목하는 응답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문제에 대한 입장은 “유연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근본은 좌파지만 처방은 분배주의적”이라거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적이라 보기 어렵다” “실제 성향은 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 등이 그러하다.

    정교수는 최근 TV토론 사회자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는데, 이와 관련해 의외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사회적 분위기와 입지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처신” “최근 소신은 약해지고 처세술은 능해지는 듯” “타협주의적이고 종잡을 수 없다”는 등의 평가가 그러하다. 이것은 토론프로그램 사회자의 특성상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 어렵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평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한번도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국적 지식인 풍토가 너무 경직돼 있다 보니 다소 삐딱하게 말하는 것이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사고가 유연한 사회라면 나를 좌파로 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신좌파’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전공 분야와 독서 취향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런 시각으로 한국사회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독서량이 잡다하다 보니 글을 쓸 때 좌파적 견해를 가진 사람의 주장을 넣는 경우가 많다. 주류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이 생소하다 보니 나를 좌파로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현정권 출범 이후 한국은행총재 등의 요직 제의를 줄곧 거절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고, 보다 구체적으로 개혁적, 진보적, 또는 정통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케인즈주의라는 답변도 많았다.

    일단 정교수가 경제학계 내에서는 널리 알려진 케인즈주의자인데다 스스로 ‘개혁적 케인즈주의’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프린스턴대학 출신의 전형적인 미국유학파 엘리트임에도 미국식 스탠더드나 IMF의 정책처방, 국제금융자본의 횡포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는 점, 그리고 시장원리를 견지하면서도 합리적인 정부개입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이러한 결과가 나온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정교수 개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무관하게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서 거의 모든 응답자들의 답변이 일치하였다. 그렇지만 “입지에 따른 유명세 보유자일 뿐, 진면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거나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다” “학구파는 아니지만 상아탑 고수주의자”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어찌 보면 지식인의 역할과 관련된 딜레마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판만 하고 현실참여는 왜 하지 않느냐”는 일각의 거부반응이나 ‘낭만적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 쪽으로 가고 싶은데, 개량적 자유주의로 보이는 모양이다. 분류가 자의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중간쯤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정교수는 자신이 지난 98년 언급했던 ‘개혁적 케인즈주의’에 대해 “한국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적 룰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국가가 거시적 플랜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구조조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뜻으로 쓴 용어다. 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가 개량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 중간쯤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보수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좌승희 원장은 전경련 산하 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재벌옹호론자라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연상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한 관변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경제 원리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좌원장에 대해서는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개량적 자유주의’나 ‘정통보수주의’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분석대상 인물 중에서 응답자들의 답변이 가장 좁은 범위에서 형성된 인물이다.

    전반적인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해결방안을 제시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거나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하며, 재벌의 전근대적 행태는 비판한다”는 등의 답변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개혁보다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연구원장이라는 현재의 위치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좌원장은 “나를 평가한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경제원칙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나 자신도 내가 무슨 주의자인지 잘 모른다. 보수적 자유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회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대중적 영향력이 큰 지식인들을 선정하였다. 먼저 한국사회학회 회원 명부에서 노동사회학 및 산업사회학, 정치사회학, 사회변동론 등 이념적 지향과 연관이 높다고 간주되는 분야를 자신의 전공 관심 분야로 제시한 연구자들과 현실 사회문제에 자주 개입하는 연구자 등 50인을 선정했다.

    다음으로 이들의 대중적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하여 최근 5년 간 중앙일간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당사자가 기사에 등장했던 건수를 검색했다. 여기서 집계된 검색건수를 기초로 삼되 학문이 아닌 특수한 사건이나 정치적 활동 때문에 언론에 많이 거명된 인사는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실제 뚜렷한 이론적 또는 이념적 기반을 갖고 사회문제에 대중적 발언을 많이 한 ‘활동가형 지식인’을 일부 포함시켰다.

    강명구

    (서울대 신문학과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강명구 서울대 교수에 대해서는 ‘개량적 자유주의자’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성숙한 시민사회가 국가와 자본시장을 견제하는 데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는 인지도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지만, 비교적 이념적 색채가 명확한 지식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자다. 나는 우리 사회가 너무 편향돼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도 지키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나를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판단한 근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정통좌파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서는 ‘정통좌파’라는 평가가 가장 많았으며, ‘급진적 민주주의’가 그 다음이었다. 일부 응답자들은 그를 ‘신좌파’ ‘진보적 자유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주사파’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를 정통좌파라고 평가한 응답자들은 그 근거로 그가 일관되게 반제국주의 노선을 견지해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의 반제국주의 노선이 반자본주의에 근거한다고 판단한 응답자들은 그를 ‘정통좌파’로 분류했지만, 한국 현대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판단한 응답자들은 ‘급진적 민주주의’를 포함해 다양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 응답자는 강교수가 공적 영역의 사회주의화를 추구하고 반제국주의에 입각한 노동자 중심사회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시장경제 기능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좌파’로 평가했다.

    그를 ‘정통좌파’로 보는 사람들도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제까지 그는 남한이 북한의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민족주의 관점에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지향에 대해 일부 보수적인 학자들은 ‘과도한 이상주의’ 혹은 ‘맹목적 주사파’로 비판했다. 한 응답자는 강교수의 과도한 반제국주의적 노선이 흔히 비논리를 낳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교수가 ‘흥남철수시 미군함정을 타고 온 피난민들이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됐다’고 주장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정통좌파는 아니지만 좌파는 맞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족민중민주주의자’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강교수는 “주요 관심사가 통일 문제고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나는 기본적으로 북한사회를 좋게 본다. 단지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한보다 북한이 더 민족 중심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본다. 만일 조선 사회가 외세의 개입 없이 내재적 역사발전 과정을 거쳤다면 사회주의 형태로 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통좌파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김진균 서울대 교수에 대해 대다수 응답자들은 ‘좌파’로 평가했다. 그를 ‘정통좌파’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서 그가 일관되게 노동계급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몸소 실천해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를 ‘신좌파’ ‘온건좌파’ 혹은 ‘그냥 좌파’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가 실제로는 매우 온건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통좌파가 부재한 한국적 현실’ 혹은 ‘권위주의 체제에 의한 조형’ 등에 의해 반성적으로 과격하게 표출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달리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해왔던 이력을 중시하는 이들은 그가 좌파의 식견을 가지고 있을 뿐 과거부터 일관되게 급진적 민주주의를 견지해왔다고 평가했다. 그의 최근 활동을 더 중시하는 이들 또한 그가 ‘자본논리의 차별화 경향이 빚어낸 문제에 대항하기 위해 공생적 삶의 추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했다.

    이렇듯 대비되면서도 유보적인 평가가 나온 이유는 일차적으로 응답자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교수 자신이 한국 사회과학계에서 ‘보기 드문 스승의 풍모’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단히 유연하게, 반민주적이고 반자본적인 쟁점들에 대응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보수적인 지식인들의 비판도 “정서적 판단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학자”라든가, “실천적인 대안 제시가 약하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교수는 조사 결과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박세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개량적 자유주의

    팽팽한 보수·진보 주류는 자유주의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대부분 응답자에 의해 엘리트 중심의 개혁에 관심을 두는 ‘개량적 자유주의자’로 평가됐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자주적 세계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박교수는 “대체로 맞는 분석이라 본다”면서 “전통적 서구개념으로는 시장을 강조하는 게 보수지만 한국적 조건에서는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게 되레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보수가 좀 약하다”면서 “나는 자유주의를 기초로 하되 그 한계인 개인주의의 횡포를 공동체적 윤리나 공동체적 연대로 보완하는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교수는 “개인이 공동체적 속성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이웃의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공간공동체’와 역사적으로 전통에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겠다는 ‘시간공동체’를 통해 자유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보완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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