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함박눈 벚꽃잎 群舞에 茶香은 더 짙어가고…

  • 글·사진: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입력2005-05-26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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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차의 역사가 시작된 지리산 자락 화개골에는 사방천지가 차밭이다. 4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 이어지는 차 재배 시기에는 새벽이슬 머금은 차를 따려는 농민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근래 들어 더 넓고 깊어진 차의 효용성과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차 수확이 한창인 화개골을 찾았다.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옛말이 있다. ‘빈 산에 인적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해남 일지암에 은거하던 초의선사에게 써준 글귀로도 유명하다. 지리산 자락의 하동 화개골을 찾을 적마다 이 말이 생각난다. 화개골이야말로 사시사철 맑은 계류(溪流)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갖가지 꽃들이 철 따라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화개’하면 흔히 ‘십리 벚꽃길’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영산(靈山)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화개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찻길 양쪽에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춘흥(春興)을 못 이긴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부리를 펼치는 4월 초순이 되면, 이 벚꽃길은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함박눈 같은 꽃잎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로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도 곧잘 눈에 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을 ‘혼례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개골에서는 한겨울에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 계곡 양쪽의 가파른 산비탈이 온통 야생 차나무로 뒤덮여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리산의 생령(生靈)들이 겨울채비를 시작하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선 12월 사이에 하얀 차꽃이 연이어 피고 진다.

    순백의 꽃잎과 황금빛 꽃술을 가진 차꽃은 무성한 잎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가지를 살며시 들추면, 정갈하고 단아한 자태의 차꽃이 소담스레 핀 광경을 볼 수 있다. 차꽃 향기도 차향(茶香) 못지않게 그윽하고 은은하다.

    4m가 넘는 차나무



    하동 쌍계사 부근의 화개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차 생산지다. 전남 보성이나 제주도의 차밭은 대부분 20세기에 들어와 대대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반면 화개골 일대에는 약 1300년의 세월 동안 산비탈의 바위틈에서 스스로 번식하고 성장한 야생 차나무가 적지 않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차나무도 있다. 높이가 4m15cm나 되는 이 나무의 수령은 자그마치 10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화개골 일대에 야생 차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들어와서 사람의 손으로 심고 가꿔진 인공 차밭도 많아졌다.

    화개면의 차 재배농가는 2004년 기준으로 685가구에 이른다. 재배면적은 370ha, 생산량은 325t이다. 생잎 수매가를 기준으로 한 연소득만도 216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정식 허가를 받은 녹차 가공업체는 60여 개다. 그러나 차 재배농가에서 대부분 가내수공업 형태로 고급 수제차를 직접 만들어 팔기 때문에 실제 녹차 가공업체는 수백 군데를 헤아린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차 생산지는 전남 보성군이다. 화개골을 포함한 하동의 차 재배면적은 보성에 뒤지지만, 그 역사는 가장 길다. 천년고찰 쌍계사의 동구인 석문마을에는 오늘날까지도 차의 시배지(始培地)가 남아 있어 화개골의 차 재배 역사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도입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 도당(渡唐) 유학생들에 의해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828)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12월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김대렴이 갖고 들어온 차의 종자를 흥덕왕이 쌍계사 주변의 지리산 자락에다 파종하도록 명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얼마 뒤인 문성왕 2년(840)에도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가져온 차의 종자를 쌍계사 주변에 심고 옥천사(지금의 쌍계사)를 대가람으로 중창했다고 전한다.

    고려 때에 이규보(1168∼1241)가 쓴 ‘동국이상국집’에도 화개 차에 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즉 이 골짜기에서 생산되는 찻잎을 따기 위해 장정이나 노약자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주민이 동원됐고, 험준한 산속에서 간신히 따 모은 차는 주민들에게 등짐을 지워 개경까지 운반토록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에도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5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차밭이 이곳보다 더 넓은 곳은 없다고 생각된다. 화개동 골짜기 안에는 옥부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칠불선원(오늘날의 칠불사)이 있다. 선원에서 좌선하는 승려들은 항상 찻잎을 채취해서 달여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화개골의 가파른 산비탈에 들어선 차밭에서 이른 아침부터 찻잎을 따는 사람들. 찻잎은 동틀 무렵부터 따기 시작해서 오전 중 작업을 끝낸다.

    이처럼 차에 관한 역사가 유구한 화개골인데도, 차가 주민의 주요 수입원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마을 주변의 산비탈과 논밭이 죄다 차밭으로 뒤덮인 화개면 용강리에 사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찻잎을 따서 목돈을 만진 지는 기껏해야 20년도 안 될 겁니다. 그전에도 찻잎을 따서 차로 끓여 먹고, 절 주변에서 팔기는 했지요. 그러나 그때는 차라는 것이 별로 돈이 안 될 때라 그냥 한 됫박 퍼주고 쌀이나 보리쌀로 바꿔다 먹고 그랬어요. 요즘 같으면 아마도 몇십만원 어치는 족히 되겠지만, 그때는 차가 그렇게 비싼 건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차의 상품성을 모르던 시절에도 차의 효능만은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곳 주민들은 몸이 아플 적마다 커다란 솥이나 주전자에 찻잎·결명자·인동·돌배를 함께 넣고 푹 고아낸 물을 한 사발씩 들이켜곤 했다. 특히 감기 기운이 있거나 배앓이를 할 때에 그 물을 한 사발쯤 마신 뒤 푹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해졌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고다(苦茶·작설차)의 성품은 조금 차갑지만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없다. 기를 내리고 뱃속에 오래 쌓여 있던 음식을 소화시킨다. 또한 머리를 맑게 하고 오줌을 통하게 하며 소갈(당뇨병)을 낫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화개골 주민의 경험방(經驗方)이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이다.

    찻잎을 따서 팔게 된 뒤로 차밭을 가진 화개골 주민들의 소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특히 근래에 불어닥친 ‘참살이(웰빙) 열풍’을 타고 차 수요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 덕택에 차 재배면적뿐 아니라 제다공장, 찻집, 다기점, 도예업체 같은 차와 관련된 업소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늘푸른떨기나무(常綠灌木)’에 속하는 차나무는 습기가 많고 무덥지만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고, 아침에는 햇볕이 잘 들고 낮에는 그늘이 지는 골짜기와 산비탈에서 잘 자라는 습성을 지녔다. 찻잎도 그늘과 햇살이 조화를 이루는 산골에서 채취한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낮에는 섬진강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그늘을 드리우고, 밤에는 지리산의 서늘한 기운이 엄습하는 화개골은 좋은 차가 생산될 만한 자연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밤이슬 머금은 찻잎이 최고

    하지만 화개골의 산비탈에서 스스로 나고 자란 야생차라고 해서 모두 최상품의 차가 되는 건 아니다. 차는 제조법, 잎의 크기와 모양, 채취 시기에 따라 품질과 이름이 아주 다양하다.

    먼저 제조법에 따라 크게 완전발효차인 홍차와 황차, 반발효차인 청차, 불발효차인 녹차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찻잎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참새 혓바닥처럼 가늘고 여린 작설차(雀舌茶), 매의 발톱처럼 억세고 야무진 모양의 응조차(鷹爪茶)로 나뉜다. 작설차는 다시 잎의 채취시기와 크기를 따져 세작(細雀)·중작(中雀)·대작(大雀)으로 구분된다. 채취 시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라져 청명차(4월5일경), 우전차(곡우 전), 곡우차(4월20일경), 입하차(5월6일경), 소만차(5월21일경), 망종차(6월6일경)로 부르기도 한다.

    화개골에서는 대략 4월 중순∼5월 하순까지 40∼50일 동안 찻잎을 채취한다. 찻잎은 밤이슬을 흠뻑 머금은 것을 최고로 치기 때문에 동틀 무렵부터 따기 시작해서 오전 중에 작업을 끝내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에 날씨가 아주 흐리거나 비가 올 때는 따지 않는다.

    찻잎 따기는 대략 곡우(양력 4월20일, 또는 21일) 사흘 전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무렵에 딴 찻잎이 최상품으로 대접받는 우전(雨前)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작·중작·대작을 각각 7∼10일 동안 채취하는데, 이동안 찻잎의 값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진다. 즉 세작의 생잎은 1㎏당 4만∼5만원 가량을 받기도 하지만, 대작의 값은 1kg당 5000원 안팎에 불과하다. 생잎을 제다공장에 파는 값이 그렇다는 말이다. 집에서 전통방식으로 직접 차를 만들어 팔면 공장에 넘기는 것보다 곱절 이상이나 더 이문이 남는다고 한다.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해인산방(055-883-6256)의 김동관씨(44)가 가족과 함께 찻잎을 덖고 비비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제대로 된 차 한 통을 만들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과 정성이 실로 대단했다.

    먼저 꼭두새벽부터 차밭에 나가 따온 찻잎 가운데 차 맛을 해치는 큰 잎이나 해묵은 잎, 줄기와 부스러기 등을 골라낸다. 그런 다음 미리 불을 피워 뜨겁게 달궈놓은 가마솥에 적당한 양의 찻잎을 넣고 계속 뒤적거리면서 빠른 시간 내에 덖는다.

    우리 茶의 발원지를 찾아서 하동 화개 야생차

    4~6월 녹차업체에는 찻잎을 팔려는 농민의 발길이 바쁘게 이어진다. 최근 들어서는 찻잎의 효용가치가 크게 높아져 녹차냉면(왼쪽)을 만드는 데도 널리 쓰일 뿐 아니라 학생들의 체험 방문(위)도 이어지고 있다.

    이때 솥의 온도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솥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찻잎이 겉만 탄 채 설익는다고 한다. 반대로 온도가 너무 낮으면 찻잎의 푸른빛이 사라진다. 잘 만들어진 덖음차는 맛이 구수하고 향기가 좋다. 또한 잎의 수분이 제거됨으로써 오래 보관해도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덖어낸 찻잎은 돗자리나 멍석 위에 펼쳐놓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면서 비빈다. 이렇게 찻잎을 비비면 표면의 엷은 막이 벗겨짐으로써 차의 맛과 성분이 잘 우러난다고 한다. 덖고 비비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다가 맨 마지막으로 덖은 뒤에는 다른 냄새가 배지 않도록 깨끗한 방 안에 한지를 깔거나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린다. 이런 과정을 ‘구증구폭(九蒸九曝)’이라고 부른다. 즉 덖고 말리기를 각각 아홉 번씩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잎 1㎏을 가공해도 내다팔 수 있는 제품은 100g짜리 차 2통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중작이나 대작은 구증구폭의 과정을 거쳐서 덖음차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재배 농민들은 찻잎만 따서 제다공장에 팔고, 공장에서는 수매한 찻잎을 증기에 찐 증제차(蒸製茶)나 티백, 홍차 등으로 가공한다.

    1959년부터 차를 생산했다는 화개제다(055-883-2233)의 홍소술(76) 대표는 “우전이나 세작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농민들이 직접 차로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중작이나 대작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가공하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노력에 비해 차 값이 아주 헐해서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화개제다 공장을 찾아갔을 때에도 찻잎을 팔려는 농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농민은 “수매가가 많이 떨어져서 큰돈은 되지 않지만 당장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면서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찻잎을 따서 팔 생각”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찻잎의 효용가치가 크게 늘었다. 녹차냉면, 녹차국수, 녹차칼국수, 녹차수제비 같은 다양한 녹차음식이 개발된 덕택이다. 이 같은 녹차음식은 해묵은 찻잎을 주요 원료로 사용한다. 해를 넘겨서 크고 뻣뻣해진 찻잎은 녹차로 가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다. 이를 아깝게 여긴 화개골 토박이 김종관(44)씨는 여러 차례의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차의 분말과 원액이 20%나 들어가는 녹차음식을 개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찻잎이 여리고 작을수록 몸에 이로운 성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해를 넘겨서 크고 두꺼워진 잎은 엽록소나 타닌 같은 성분이 많아서 기능성 식품의 효용성은 훨씬 더 좋아요. 다만 영양보다 색·향·미가 더 중요한 녹차로 가공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따름이죠.”

    녹차식품 만들어 소득 두 배로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가공식품 제조업체인 산골제다(080-278-2377, www.sangoljeda.co.kr)를 설립한 김씨의 말이다. 그는 고향인 화개면 용강리에서 1만2000여 평의 차밭을 일구며 5대째 녹차를 재배하는 농사꾼이다. 그래서 찻잎의 이용가치와 효용성을 높일 수 있는 녹차음식의 개발에 몰두했고, 마침내 지금은 녹차음식 가공기술에 관한 특허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녹차음식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찻잎은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현재 산골제다에서는 30여 농가에서 한 해에 40t가량의 찻잎을 사들이는데, 수매가는 1㎏당 2000∼4000원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묵은 잎의 수매가치고는 의외로 높다.

    그래서 일거리가 별로 없는 겨울철에는 이마저도 이웃 농민들에게는 제법 짭짤한 수입원이 된다. 실제로 김씨가 일년 내내 찻잎을 이용할 수 있는 식품을 개발함으로써 주변 농가의 소득도 두세 배나 늘었다고 한다.

    해마다 차 수확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인 5월 중하순에는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10회째를 맞는 올해의 축제는 5월19~22일 나흘 동안 화개면 석문마을의 차 시배지 주변과 진교면 백련리의 찻사발 도요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축제가 끝나면 마침내 화사했던 봄날이 가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된다. 세월이 흐르고 계절은 바뀌어도, 화개골에는 여전히 그윽한 차향이 바람결에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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