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

밟히고 채여도 못 떠나는 아웃사이더의 고단한 삶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입력2005-10-13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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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다 보면 골목 깊숙한 곳의 전통가옥과 중국인들의 감춰진 행동철학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2002년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영화 ‘북경 자전거’는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국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자전거를 매개로 보여준다. 오늘도 도시 정착을 꿈꾸는 가난한 시골 소년이 자전거를 갖기 위해 베이징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

    자전거를 공유하게 된 동갑내기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년의 대조적인 삶을 보여주는 영화 \'북경 자전거\'.

    영화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를 찍은 베이징의 옛날 골목을 찾아가려고 베이징 사범대학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운전사가 쓱 훑어보더니 단번에 “한국인이지요?”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한국사람이 왜 한국 택시를 안 타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요즘 한국사람들은 빈 택시가 와도 타지 않고 기다렸다가 한국 차인 ‘엘란트라’ 택시만 골라 탄다고 덧붙인다. 한국인은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중국인이 배워야 할 점이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베이징시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베이징 택시를 전부 중형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그 사업에 ‘베이징 현대자동차’가 주사업자로 참여하면서 ‘엘란트라’란 이름을 단 ‘아반테XD’가 베이징 시내를 누비기 시작했다. 한국 자동차가 베이징 시내를 휩쓸고 다니자 한국 자동차에 대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중국에선 요즘 ‘마이카 붐’이 일고 있다. 마이카 붐 속에서 베이징 현대는 중국 진출 2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할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하여 중국에 먼저 진출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중국 특정 도시명을 회사 이름 앞에 붙여 쓴다. 상하이 폴크스바겐, 광둥 혼다가 그 예다. 폴크스바겐은 상하이에, 혼다는 광둥에 지사를 뒀다. 대도시 가운데 수도 베이징만 한동안 자동차 합작회사가 없었다. 이 공백을 현대자동차가 파고든 것이다. 다른 나라 자동차 회사들은 대개 자국에서 유행이 지난 낡은 모델을 중국에 가져왔지만, 현대는 한국의 최신 모델을 중국에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

    체면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중국인

    중국인은 체면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마케팅을 하거나 중국인 직원들을 관리할 때 중국인의 체면과 자존심을 존중하는 마케팅과 인사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점에서 베이징 현대의 성공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자기 나라에서 유행이 지나고 한물 간 모델을 가져다가 팔아도 된다는, 중국인을 얕보는 사고방식을 깨뜨린 것이다. 중국인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워 주면서 중국인이 세계의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중국에서 성공하는 첫째 비결이다.



    한국인과 접촉이 잦아지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기회가 늘면서 중국인의 눈썰미가 좋아졌다. 택시를 타자마자 한국인임을 알아본 그 택시기사처럼, 중국인들은 대부분 단번에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을 구별한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던 1992년 겨울, 베이징 사범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학교 옆 시장에서 달걀을 살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는 군고구마, 수박, 달걀을 모두 저울에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긴다. 달걀 한 근(500g)을 사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한국이 어느 성(省)이지?” 하고 되묻는다. 난감해하며 “남조선”이라고 고쳐 말하자 할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냉전으로 교류가 단절된 반세기 동안, 한국인에게 중국은 ‘중공’이었고, 중국인에게 한국은 ‘남조선’이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이 다시 만난 지 10년이 넘으면서 이제 중국인에게 한국은 ‘남조선’이 아닌 ‘한국’으로 또렷하게 자리잡았다. 중국인에게 남조선은 미국에 대항하여 북조선을 돕기 위해 벌였던 전쟁, 즉 중국인들이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르는, 6·25 전쟁 때의 적국이자 미국의 식민지였다. 그런데 한국이 그러한 남조선의 이미지를 탈피한 것이다. 한류(韓流)가 유행하면서 중국의 대표적 시사 주간지 가운데 하나인 ‘싼렌성훠(三聯生活)’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나타난 중국인이 본 한국 이미지는 이렇다.

    ① 가족: 한국 드라마의 가족 중시. 남성 중심② 애정: 돈,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보다 순수한 애정 중시③ 예절: 타인 배려, 겸손, 양보④ 몸: 헬스, 수영, 에어로빅을 통한 몸과 건강 중시⑤ 오락문화: 음주, 가무, 노래방, 가라오케 가요: 창조 정신과 자유 욕망 춤: 역동적⑥ 소비문화: 자가용, 휴대전화, 가전제품⑦ 음식: 불고기, 김치, 비빔밥, 냉면⑧ 패션: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화장⑨ 주택: 현대적 공간⑩ 민족성: 강인함⑪ 역사: 외세의 침략과 저항의 역사⑫ 유교: 교육, 질서, 조상숭배⑬ 한국정신: 강인성+창조력+집단성+예절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

    인딩교에서 바라본 호수. 인딩교는 길이가 10여m밖에 안 되는 작은 다리지만 베이징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어 예부터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이제 중국인들은 경제발전을 이룬 현대화된 나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나라, 민주화를 이룬 나라, 애국심과 민족 단결심이 강한 나라, 역동적이고 강인한 기질을 지닌 나라로 한국의 이미지를 그린다.

    최근 들어 한국음식이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베이징만 하더라도 ‘한라산’ 같은 대규모 한국음식점들이 평일에도 초만원이다. 한국음식 가운데 불고기, 김치, 돌솥비빔밥, 삼계탕을 특히 좋아한다. 대중음악이나 특정 연예인 위주의 한류를 넘어서 이제는 한국문화 자체가 중국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한국식 교육과 한국식 아파트, 심지어 한국식 사우나와 안마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미친 한국의 영향은 거의 전방위적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 드라마, 일본 대중가요 등 일본문화가 중국문화를 강타했다. 이른바 ‘일류(日流)’다. 하지만 일류는 드라마와 대중음악 차원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한류는 가요나 드라마 등 대중 연예산업 위주에서 이제는 문화 전반으로 폭넓게 퍼지고 있다. 그렇게 퍼지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중국문화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고, 두 나라 사이를 가깝게 하는 데 중요한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관광객 인기 끄는 ‘후퉁 투어’

    우리가 흔히 자금성이라고 부르는 ‘구궁(故宮)’은 원나라 때부터 황제가 살던 황궁으로 뒤편에 큰 호수가 있다. 황제가 베이징 서쪽에 있는 별장인 이허위안(헊和園)까지 갈 때 배를 이용했는데, 그 출발점이 이 호수다. 남부 항저우에서부터 쑤저우, 난징을 거쳐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대운하의 종착지도 바로 이 호수다. 원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인근에 있던 작은 규모의 자연 호수를 크게 개축하고, 넓게 파서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이 커다란 호수는 6개의 작은 호수로 나뉘는데 흔히 자금성 쪽에 있는 호수 세 개를 합쳐 ‘쳰하이(前海)’라고 하고, 뒤쪽에 있는 세 개의 호수를 ‘허우하이(後海)’라고 부른다. 쳰하이는 황성 안에 속하지만 허우하이는 황성 밖으로 분류된다. 허우하이에서부터 과거 저녁마다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던 구러우(鼓樓), 그리고 디안먼(地安門)에 이르는 이 일대는 옛날 베이징의 모습을 체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 신채호와 윤동주도 이 부근에 머물렀다.

    쳰하이(前海)와 허우하이(後海)는 인딩(銀淀)교라는 다리를 기점으로 나뉜다. 인딩교는 길이가 10여m밖에 안 되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예부터 베이징의 많은 문인이 이곳 호수를 즐겨 찾았다. 지방의 문인들도 과거를 보기 위해 베이징에 올 때면 호수와 멀리 보이는 자금성, 인근의 베이징 옛 전통 주택들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이 다리를 찾았다. 물론 베이징의 유명한 기생집들이 인딩교 부근에 밀집해 있어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택시에서 내려 인딩교 위에 섰다. 좌우 경치를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영락없는 관광객의 모습이었던지, 이른바 ‘후퉁(胡洞) 투어’를 하는 자전거 인력거꾼들이 몰려들어 가격을 부른다.

    ‘후퉁’은 ‘우물’이라는 뜻의 몽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후퉁 투어’는 가옥 대부분이 목조건물이던 시절, 골목마다 방화에 대비해 우물을 팠던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베이징은 바둑판 모양의 도시다. 그 사각형 내부를 골목길인 후퉁이 관통한다. 베이징에 후퉁이 발달하게 된 것은 원나라 때 대규모 도시 정비가 이루어지면서부터다. 예전에는 베이징에 7000여 개의 후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900개 정도가 남아 있다. 그것도 대규모 도시 개발 때문에 최근에는 1년에 약 600개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서 베이징의 옛 골목들과 호수 주위, 그리고 쓰허위안(四合院)이라고 부르는 베이징 전통 주택을 돌아보는 후퉁 투어가 시작된 것이 1994년. 갈수록 인기다. 특히 베이징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후퉁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가 생겨났고, 외화벌이가 좋아 ‘후퉁 경제’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베이징시 당국도 후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인딩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 먼저 보증금 300위안(한화 3만9000원)을 맡겨야 한다. 2인용 자전거는 보증금이 500위안(6만5000원)이다. 자전거 이용료는 한 시간에 10위안(1300원). 30분이 지나면 한 시간으로 계산한다. 그간 경험으로 보면, 자전거를 타고 단순히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호수 근처에 있는 골목을 구경하면 한 시간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 호숫가에 늘어선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러 차나 맥주를 한 잔 한다든지, 예전에 북을 쳐 시간을 알려주던 구러우 부근까지 나간다면 족히 3시간은 걸린다.

    중국인의 세계관 ‘天圓地方’

    보증금 영수증을 단단히 챙겨 넣고 호수 주변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나아간다. 한쪽으론 호수가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엔 카페가 길게 늘어서 있다. 베이징은 비가 귀한 지역이다. 그런데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어찌 된 일인지 중국 중부지방까지 올라온 태풍의 영향으로 사흘 연속 비가 내렸다. 덕분에 뿌옇게 찌푸려 있던 베이징 시내의 경관이 환해졌다. 더군다나 해가 서쪽으로 막 떨어질 무렵이니 자전거를 타고 호수 주위와 골목길을 누비기에 안성맞춤이다. 우선 호수를 따라 호수 앞쪽인 쳰하이로 방향을 잡았다. 거기에 가면 중국 전통 건물에 중국식으로 실내장식을 한 미국산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있다. 전세계 스타벅스 체인점 가운데 아마도 가장 멋들어진 곳일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 할 참이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자전거를 타고 본격적으로 후퉁 투어에 나선다. 영화 ‘북경 자전거’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전거를 타고 누빈 바로 그 골목을 무작정 드나든다.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후퉁 안의 집들은 모두 베이징의 전통 주택 양식인 쓰허위안이다. 성냥갑처럼 사각형으로 지어진 집이다. 베이징은 영락없는 바둑판이다. 사각형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

    호숫가에 늘어선 카페들. 중국식 가옥과 홍등, 영어 간판과 한문 간판이 어우러진 모습에서 중국사회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중국 사람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톈탄(天壇)의 탑이 바로 그 원리에 따라 세워졌다. 탑의 둥근 외형은 하늘의 원리를 상징하고 탑 안의 네모난 돌은 땅의 원리를 상징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생각을 그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하던 시대의 낡은 사고로 치부하면 큰 오산이다. 여기에는 중국인의 세계관과 삶의 철학이 들어 있다.

    중국인은 그 원리를 세계관이자 삶의 철학으로 삼아 모든 일상생활에 적용했다. ‘천원지방’의 원리에 따라 천하는 ‘回’자형으로 이뤄졌고, 문명은 중심에서 네 주변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며 중심에서 주변으로 갈수록 문명의 등급이 낮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땅의 원리인 네모를 따라 도시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라고 하는 황제가 사는 자금성을 지을 때도 네모의 원리를 따랐다. 민간의 전통 주택 양식인 쓰허위안 역시 그러하다. 베이징의 길과 건축물 하나하나에는 옛 중국인의 철학이 배어 있다.

    ‘천원지방’은 중국인의 행동 철학에서 ‘내방외원(內方外圓)’으로 나타난다. 자기를 가다듬고 규율하는 데는 네모의 원리에 따라 반듯하고 곧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생활에서는 늘 남들과 조화를 이루며 둥글둥글하고 원만해야 한다는 행동철학이다. 중국인들은 ‘안으로 네모나고 밖으로 둥근’ 사람을 최고로 친다. 땅의 네모 원리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동그라미 원리에 따라야 하지만 모순되어 보이는 네모의 원리와 동그라미 원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함께한다. 베이징시가 2008년 올림픽에 대비해 간선도로를 확장하면서 2환(環)부터 8환까지 원형의 순환도로를 만들어 네모로 이루어진 도심을 감싸는 방식으로 도로를 내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중국 식당에 가서 사각형 테이블 위에 돌아가는 둥근 원의 회전판을 볼 때면 ‘천원지방’ 속에 담긴 네모와 동그라미의 원리를 생각해볼 일이다. 중국만의 원리가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삶의 원리로서 네모와 동그라미의 원리를!

    인구 1400만명, 자전거 1000만대

    넋 놓고 골목을 한참 돌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도대체 분간이 되지 않는다. 구불구불 연결된 골목을 돌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마침 양고기꼬치를 굽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징 사람들은 해가 지면 다들 의자를 하나씩 들고 골목으로 나온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작도 하고, 장기도 두고, 포커도 한다. 그러다가 하나에 1위안(130원) 하는 양고기꼬치에 맥주나 얼궈터우(二鍋頭酒)를 마시는 것이 하루를 정리하는 최고의 낙이다. 길을 물어본 대가로 숯불에 구운 양고기꼬치 다섯 개를 사서 쭈그리고 앉아 먹었다. 이런 데서 먹는 양고기꼬치가 번듯한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세 배는 맛있다.

    알다시피 중국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가 많다. 중국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04년말 현재 중국 인구는 약 12억9900만명이다. 그런데 자전거는 6억대를 보유하고 있으니 두 사람당 한 대꼴이다. 베이징시는 상주인구가 약 1400만인데, 자전거 수는 1000만대다. 그야말로 ‘자전거 왕국’인 셈이다.

    중국으로 연수나 유학을 떠나려면 중국어보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중국, 특히 베이징에서 생활할 때 자전거는 필수품이다. 물론 광저우(廣州) 같은 곳에서는 자동차에 밀려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10명 중 1명꼴로 줄어들었다지만 베이징에서는 아직도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베이징은 언덕길이 없는 평지여서 자전거 타기가 수월하다. 차가 늘어나고, 어떤 곳은 자동차로와 자전거 전용로 사이에 있던 차단막이나 둔덕을 없애버려 자전거 타기가 예전보다 위험해졌지만 그래도 답답한 시내버스를 타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물론 딱지를 떼이지 않기 위해선 자전거 관련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역주행을 해서는 안 되고,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뒤에 태워서도 안 된다. 자전거 주차비도 있다. 방향을 틀 때는 미리 나아가는 방향 쪽으로 왼손이나 오른손을 뻗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갑작스럽게 회전을 했다가 추돌사고라도 나면 앞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전거를 사면 경찰서에 가서 세금을 내고 등록하고 번호판을 받아야 한다. 번호판이 없으면 불법 자전거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징의 경우 매년 한 대당 4위안(520원)씩 자전거세를 징수해오다 2004년에 폐지했다.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기 이전인 마오쩌둥 시대에는 자전거, 재봉틀, 손목시계가 부유한 생활을 상징하는 3대 가정용품이었을 정도로 자전거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분배 정책의 일환으로 자전거를 가진 사람에게 일종의 특별소비세 같은 세금을 부과하여 매년 자전거세를 징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소득이 늘어나 자전거 한 대 사는 것쯤은 쉬운 일이 되어 특별소비세 같은 것을 부과할 필요가 없어졌다. 몇 푼 되지 않는 세금을 걷으려고 괜히 품만 많이 든다는 것이 베이징시가 자전거세를 폐지한 이유다. 또한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확충되고, 마이카 붐이 일면서 중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자전거의 비중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부터 둘로 갈린 국민

    북경 자전거(十七歲的單車)

    영화 ‘북경 자전거’는 도시에서 이용만 당하고 끝내 밀려나는 농민공의 비극적인 처지를 담고 있다.

    ‘북경 자전거’의 주인공 구웨이는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베이징에 온 농민 노동자, 즉 ‘농민공(農民工)’이다. 영화는 이 소년 농민공이 베이징에서 뿌리내리고 성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가 베이징에 와서 성공을 꿈꾸는 수단이 바로 자전거다. 이 영화는 자전거에 관한 영화, 자전거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인들의 삶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에서 두 소년이 자전거 하나를 놓고 싸우는 것은 중국사회 내 가장 큰 대립이라 할 수 있는 농촌과 도시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농민공이다. 베이징도 예외는 아니다. ‘후커우(戶口)’라고 하는 신분증을 가진 명실상부한 베이징 시민은 2004년 말 현재 1162만명이다. 그런데 신분증이 없는 사람이 대략 330만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해마다 30만명가량씩 늘어나는 추세다.

    마오쩌둥 시대인 1958년부터 이후 중국사회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뉘었다. 도시와 농촌이 그 두 계급이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중국 정부는 법적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주민등록제도를 실시했다. 모든 국민은 고정된 거주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의 종류가 농업 주민등록과 비농업 주민등록, 둘로 나뉘었다. 이때부터 중국 인민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 갈렸고, 사회적 지위 역시 차별을 받았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이 주민등록 제도가 철저하게 지켜졌다. 예컨대 시골 출신이 베이징에 있는 대학을 졸업해도 2년 안에 베이징에서 직장을 잡지 못하면 다시 시골로 돌아가야 했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한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이 도입되고,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농민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농민 노동자인 이른바 농민공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들은 도시의 불법거주자들이다. 이들이 베이징 시민이 될 길은 막혀 있다. 때문에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도 없다. 물론 돈이 있으면 가능하다. 돈만 있으면 주민등록을 문제삼지 않는 사립 귀족학교에 보내거나 공립학교에 비싼 특별 기부금을 내고 입학할 수 있다.

    하지만 돈 벌기 위해 베이징에 와서 막노동을 하거나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다. 최근 통계를 보면 농민공의 월수입은 평균 600위안(7만8000원)이다. 월수입이 300위안(3만9000원)에 불과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마저 추석 같은 명절 때까지 체불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은 지난 10여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멀고도 험한 도시민의 길

    요즘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는 빌딩이나 아파트, 도로가 건설되면서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대도시를 탈바꿈시키는 공사현장의 인부 대부분이 농민공이다. 농민공의 피와 땀이 도시를 변신시키고 있지만 도시인들은 그런 사실을 간과한 채 농민공들로 인해 치안이 불안해졌다고 불평한다. 농민공의 값싼 노동력은 이용하면서 법적으로 주민등록 취득의 기회를 박탈해 도시 진입을 막는 이중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에서 농민공 구웨이는 베이징에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자전거 퀵 서비스 일을 시작한다. 배달할 때마다 10위안(1300원)을 받는데 그중 8위안(1000원)은 회사 몫이고, 그에게 돌아오는 건 나머지 2위안(260원)이다. 2위안을 차곡차곡 모아 600위안(7만8000원)이 되면 회사 소유의 자전거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회사와의 수입 분배 비율은 5:5가 된다. 하루라도 빨리 자전거를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구웨이는 베이징의 이곳저곳을 죽어라고 달린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날아간다고 해야 할 정도다.

    ‘600위안만 모으면 최고급 산악자전거가 내 것이 된다. 그러면 수입을 절반씩 나누게 되니 금방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전거가 내 꿈을 실현해줄 것이다. 자전거 페달만 열심히 밟으면 나도 베이징에서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구웨이에게 자신의 성공이 달린 자전거는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 자전거를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면서 매일 일을 마치면 번쩍번쩍 빛이 나도록 닦는다. 자신이 배달한 횟수를 ‘正’자로 기록한다. 이미 정해진 횟수를 다 채웠다고 기뻐하지만, 회사 여직원은 그를 속여 하루를 더 일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제 하루만 더 뛰면 자전거가 구웨이의 것이 된다.

    그런데 하필 그날 사건이 터진다. 분명 사우나에 있다는 장 선생이란 사람의 호출을 받고 갔지만 장 선생을 찾지 못한다. 장 선생을 찾기 위해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가 괜히 사우나만 하고 나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우나 지배인이 부른 것이었다. 서류를 건네받고 나와서보니 일이 터졌다. 베이징에서 성공할 밑천이자 그의 전부인 자전거, 오늘만 일하면 내 것이 되는 자전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구웨이는 자전거를 찾아 베이징 시내를 뒤지고 다니다 한 학생이 자기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상업고등학교 학생인 그(지안)는 구웨이가 도둑맞은 자전거를 중고 자전거 시장에서 구입했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좋은 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면 도둑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자전거 도둑이 극성이다. 2003년에 베이징시가 베이징의 모든 자전거를 일제히 재등록시켜 자전거 번호판을 새것으로 교체한 것도 자전거 절도를 예방하고 자전거 분실시 회수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전거의 새 주인이 된 지안이라는 학생은 중고 시장에서 장물을 산 것이다.

    원래 자전거 주인이던 구웨이는 자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지안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수 근처에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자전거를 빼앗아 도망친다. 이때부터 자전거 한 대를 두고 17세 동갑내기 사내아이들의 뺏고 빼앗는 일진일퇴가 거듭된다. 농촌에서 올라온 구웨이에게는 자기를 도와줄 친구가 없지만 베이징에 사는 지안에게는 도와줄 친구가 여럿 있다. 친구들이 나서 구웨이에게서 자전거를 빼앗으려 한다. 하지만 구웨이는 두들겨 맞고, 짓밟히면서도 손에서 자전거를 놓지 않는다. 지안의 친구들은 그 모습에 질려서 자전거를 가져가는 대신 돈을 내라고 한다. 처음에는 500위안을 요구했다가 300위안까지 값을 내리지만 구웨이는 응하지 않는다.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이미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자기 몸의 일부가 된 것이다.

    자전거 한 대와 두 소년

    방법이 없자 양측은 하는 수 없이 합의를 한다. 두 사람이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하루씩 평화롭게 자전거를 번갈아 타면서 둘은 조금씩 벽을 허물고, 통성명을 한다. 그러던 중 지안에게 사건이 터진다. 원래 그 여자친구와 가까워진 계기는 멋진 자전거가 생겨서였다. 그런데 자전거를 둘이서 나눠 타게 되면서 여자친구가 그를 떠나버린다. 여자친구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여자친구는 이미 새 남자친구의 자전거 묘기에 넋이 팔려 있다. 더구나 여자친구를 빼앗아간 그 남자가 지안에게 모욕을 준다.

    지안은 그 남자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복수하기 전, 지안은 “이제 자전거가 필요없으니 네가 타라”면서 구웨이에게 자전거를 준다. 그런 뒤 여자친구를 빼앗아간 남자를 찾아가 벽돌로 머리를 찍는다. 하지만 그 남자의 친구들이 쫓아오고 자전거의 공동 주인이었던 지안과 구웨이 둘 다 그들에게 붙잡혀 얻어맞는다. 자전거 역시 형편없이 짓밟힌다. 그들 중 하나가 구웨이의 자전거를 부수자, 이번에는 구웨이가 벽돌을 들고 달려들어 그 사람의 머리를 찍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옷이 해지고 피투성이가 된 구웨이가 부서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서 천천히 베이징 거리를 걸어간다.

    영화에서 구웨이는 결국 베이징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다. 도시가 그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가 있어야 베이징에서 살 수 있고, 도시에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지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결국엔 풍비박산이 났다. 도시는 그를 이용하고 착취하기만 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도시는 “시골 출신이라면 무조건 가지고 놀려고만 한다.” 영화는 도시에 이용만 당하고 끝내 도시에서 밀려나는 농민공의 비극적인 처지를, 자전거를 매개로 동갑내기 베이징 시민 지안의 삶과 대비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두 소년에게 자전거의 의미는 대조적이다. 구웨이가 잃어버린 자전거를 중고시장에서 샀다가 구웨이와 자전거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지안은 전통 가옥인 쓰허위안에 사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 아버지는 재혼했고 배 다른 여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여동생에게만 관심이 있다. 자전거를 사준다는 약속을 매번 어기자 지안은 아버지 돈을 훔쳐 문제의 자전거를 산다. 그런 뒤 그 자전거로 친구들과 자전거 묘기를 부리는 일에 빠져 지낸다. 그리고 그 자전거로 인해 구웨이와 연결된다. 지안이 새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자 평소 그가 관심을 두고 있던 여학생이 “자전거가 멋있네”라고 말한다. 그런 뒤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자전거를 구웨이와 공동 소유하고 하루씩 번갈아 타게 되자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다. 훨씬 더 멋진 자전거 묘기를 부릴 줄 아는 남자에게로.

    온포 단계와 소강 상태

    베이징 소년 지안에게 자전거는 놀이 기구이고 자존심을 세워주고 여자 친구를 유혹하는 수단이다. 이에 비해 돈 벌러 시골에서 온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생계 도구이자 베이징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고, 베이징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이 두 소년은 각각 중국의 도시와 농촌을 상징한다. 농민공인 구웨이의 관심은 먹고 사는 것이다. 도시 시민인 지안이 추구하는 것은 먹고 사는 것을 넘어 정신적인 오락과 자존심과 허영이다. 이를 중국 정부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말하자면, 구웨이는 아직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온포(溫飽)’ 단계에 처해 있고, 지안은 그 단계를 지나 정신문명을 추구하는 ‘소강(小康)’ 상태에 있다.



    후진타오 체제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일부 지역이 이미 도달한 소강 사회를 중국 전역에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구웨이와 지안이 자전거를 하루씩 번갈아가며 타다가 둘이 통성명을 하면서 마음을 열듯이 중국에서 농촌과 도시가 평화롭게 만나 공생할 날이 언제 올 것인지, 중국이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고 영화 ‘북경 자전거’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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