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쿠바 아바나 골프 클럽(Club De Golf La Habana)

‘카리브海 천국’ 에서 쏘아올리는 열정의 드라이버 샷

  • 김맹녕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immr@kaltour.com

    입력2006-06-08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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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적,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인이 찾기엔 좀 부담스럽지만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순박함에 흠뻑 빠져드는 곳이 쿠바다. ‘카리브해의 천국’으로 불리는 쿠바에서 일상을 잊고 라운드를 즐기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쿠바 아바나 골프 클럽(Club De Golf La Habana)
    쿠바는 많은 것을 연상시킨다. 군복 차림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피델 카스트로,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 전세계 담배 애호가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쿠바산 시가, 야구 복싱 배구 등 못 하는 게 없는 스포츠 강국,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차차차와 살사, 아름다운 해변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1998년 쿠바를 방문한 교황 바오로 2세는 “인간의 눈으로 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고 격찬했다. 게다가 골프장까지 있으니 골퍼들에겐 그야말로 카리브해의 천국인 셈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와 골프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했지만 쿠바의 골프장은 오늘도 골퍼들로 붐빈다.

    낙천주의자들이 살고 있는, 못생긴 물고기 모양의 이 섬나라를 향해 인천공항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를 경유, 멕시코의 휴양도시 칸쿤에서 1박한 후 다시 쿠바나 국영항공기를 타고 1시간40분 만에 쿠바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996년 2월 미국 민항기 격추사건 이후 미국에서 출발하는 쿠바 직항편이 폐쇄됐다.

    공항 입국장은 공포심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무겁고 썰렁했다. 입국수속 관리들은 모두 녹색 군복 차림에 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입국심사와 세관검사는 예상보다 간단하게 끝났고, 공항 밖 거리 풍경은 아늑했다. 시민들은 공항의 삼엄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자유분방해 보였다.

    관광버스를 타니 현지 가이드가 평양 사투리로 “어서 오시라우요” 하며 인사를 한다. 아버지가 평양 주재 쿠바대사관에 근무해 평양에서 고등학교와 김일성대 철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쿠바엔 350여 명의 한인이 살고 있으며 유학생은 4명인데 모두 재즈를 전공하고 있다.



    춤, 낭만, 환락

    쿠바 아바나 골프 클럽(Club De Golf La Habana)

    못생긴 물고기 모양을 한 쿠바는 ‘카리브해의 천국’으로 불린다.

    차창을 통해 본 아바나 시가지는 스페인 통치시대 지어진 옛 건물들이 들어선 구(舊)아바나와 고층 빌딩이 즐비한 현대적인 신(新)아바나로 구분되어 대조를 이룬다.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은 옛 영화를 반영하듯 1950년대 미국산 대형 세단이 대부분이고, 구 소련제 자동차와 일본차, 유럽차, 그리고 현대 쏘나타 등 낡은 다국적 차들이 섞여 있었다.

    한 달 평균 수입 20달러로 생계를 꾸려가는 쿠바인들은 경제난 탈출구로 관광산업을 선택했고, 지금은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쿠바 인구는 1200만명). 관광객의 절반이 유럽인이고 미국인도 적지 않다. 미국인은 쿠바를 방문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징역 10년, 벌금 25만달러, 과태료 5만달러가 부과된다. 그러나 쿠바 정부는 불법으로 입국하는 미국인의 여권에 입·출국 스탬프를 찍지 않아 많은 미국인이 제3국을 통해 들어오는 형태로 쿠바 관광을 즐긴다고 한다.

    쿠바 시내를 관광하려면 미화 1달러 지폐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 관광명소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형적인 쿠바 복장에 시가를 물고 앉아 있는 남자나 화려한 머릿수건을 두르고 꽃바구니를 든 여인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기다렸다는 듯 검지를 세우고 “원 딸라”를 외친다. 거리의 악사는 원하는 곡을 즉석에서 연주해주고 떠돌이 화가는 쫓아다니면서 초상화를 그려놓고 1달러를 달라고 한다.

    쿠바 아바나 골프 클럽(Club De Golf La Habana)

    구 아바나 시가지 전경. 낡은 건물들로 인해 폐허처럼 보이지만 쿠바인들을 만나면 진한 생동감이 전해온다.

    아바나 구시가지의 관광명소로 스페인 시대의 대성당이 있는데 주위에는 인형과 공예품을 파는 노점상, 중고 서점, 기념품 가게, 쿠바의 독특한 그림을 파는 노상 화랑이 늘어서 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시내는 낡은 건물들로 인해 폐허처럼 보이지만 정열적인 재즈 음악과 춤을 즐기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있어 마른 대지 위에서 솟아나는 잡초처럼 진한 생동감을 맛볼 수 있다.

    밤이 찾아들면 아바나 신시가지는 환락의 거리로 바뀐다. 카페에서 요란한 트럼펫 소리와 색소폰, 드럼 소리가 어우러진 재즈가 연주되고 관능미를 자랑하는 18세 전후의 배꼽티 차림 아가씨들이 요염하게 몸을 흔들면서 외국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여념이 없다.

    럼주에 설탕과 민트를 섞어서 만든 모히토, 혹은 럼주와 콕을 섞은 럼콕을 마시고, 아로스 꼰 뽀이요(닭고기밥)나 쿠바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랍스터 요리, 콩을 곁들인 쌀요리인 콩그리 등을 먹으며 쇼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댄서들과 친해져 풋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악단의 신명 나는 연주가 흘러나오면 카페 종업원들은 물론 지나가는 행인들도 엉덩이를 흔들고 허리를 실룩거리면서 이념과 역경의 굴레를 집어 던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간밤의 흥청거림은 간 곳이 없고 도시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쿠바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면 트로피카나 쇼를 들 수 있다. 1939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는데, 파리의 리도쇼만큼이나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스페인 리듬과 아프리카 리듬이 섞여 묘한 흥취를 자아내기에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간직된다.

    아바나 시내 유일한 골프장

    쿠바에는 골프장이 두 개 있다. 세계 10대 해변으로 손꼽히는 바라데로 비치 옆에 있는 바라데로 골프장은 아바나 시에서 2시간 거리. 주로 유럽의 부호들이 즐기는 곳으로 18홀이다.

    또 하나는 아바나 시 가운데에 자리잡은 ‘클럽 데 골프 라 아바나(Club De Golf La Habana)’로 쿠바 주재 외교관들이 주로 이용하는 9홀 골프장이다. 아바나 시내에 있는 유일한 골프코스여서 늘 골퍼들로 붐빈다고 한다. 공산국가인 쿠바에서 골프를 친다는 호기심에 들떠 관광 가이드와 함께 시내호텔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이 골프장을 찾았다. 1948년 영국 외교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코스로 처음엔 ‘브리티시 클럽’으로 불리다가 1959년 카스트로에 의해 친미(親美) 정권이 무너지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등록창구에서 그린피 24달러와 골프채 사용료 5달러, 캐디피 8달러를 쿠바 페소로 환전해 지불하자 캐디 한 명을 배정해준다. 큰 눈에 곱슬머리, 건강한 체격의 흑인청년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공항 직원처럼이나 표정이 없고 무뚝뚝하다.

    빌린 골프채는 1960년대 것으로 브랜드가 각기 다른 잡동사니 클럽이었다. 도색 부분은 모두 벗겨져 있고 그립은 너무 오래 사용한 탓에 반들거려 과연 라운드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스코어카드를 집어들고 코스를 살펴보니 백 티(back tee) 기준 5892야드로 국제규격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그런 대로 기준을 갖춘 골프장이었다.

    1번홀 티로 내려가 함께 라운드할 멤버들과 인사를 나눴다. 드라이버를 건네받아 힘차게 티샷을 날리니 그립이 불안해서인지 오른쪽 팜트리 방향으로 슬라이스가 났다.

    쿠바인 골퍼들은 ‘나이스 샷’을 외치는 등 친근감을 표시하며 공을 찾아주기 위해 낙하지점으로 다가왔다. 쿠바인들은 이웃마을 사람이든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이든 타인을 가족과 같이 대하는 인간미를 지녔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과 눈빛으로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골프라는 국제 언어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푸른 잔디를 가로지르는 백구를 따라 담소를 나누다 보니 금방 십년지기가 되어버렸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필드에서 만나면 사상과 이념,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모두 순박해지고 정이 오가는 모양이다.

    쿠바 아바나 골프 클럽(Club De Golf La Habana)

    아바나 골프장은 오랫동안 투자를 하지 않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잔디 상태나 시설이 좋지 않다.

    같이 라운드한 쿠바인은 호세 루리라는 변호사로 핸디캡이 18 정도였고, 또 한 사람은 무역회사 임원으로 핸디캡 24 정도였다. 그들은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얼마 전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를 통해 한국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남한과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쿠바와 북한은 44년이나 된 오랜 수교국으로 서로 대사관을 설치한 반면 한국은 지난해에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이곳에 사무실을 열었다고 알려줬다. 또한 한국의 전자제품과 한국산 자동차가 이곳 쿠바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면서 자기가 쓰고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넓고 평탄한 미국풍 코스

    6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골프장이어서 그런지 페어웨이 양편에는 한아름이 넘는 키 큰 팜트리가 일렬로 도열해 있어 이국적인 풍치를 자아내지만, 그라운드의 잔디상태는 마치 봄철 떼를 입힌 우리나라의 코스처럼 상태가 나빠 플레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린도 마찬가지로 잔디가 길고 모래가 많은 등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벙커도 모래가 충분히 채워져 있지 않아 벙커샷을 하면 클럽이 바닥 흙에 닿아 손목이 아플 정도였다.

    그렇지만 명필이 붓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버디를 두 개 잡은 덕분에 최종 스코어 82타로 체면은 유지했다. 캐디는 필자를 보고 이곳을 방문한 동양인 골퍼 중 가장 잘 치는 골퍼라고 치켜세웠다.

    캐디는 무뚝뚝하긴 해도 숲 속에 들어간 공을 열심히 잘 찾아주었고, 그린에서 브레이크도 잘 가르쳐주었다. 버디 퍼트를 하자 검은 입술 사이로 흰 치아를 드러내며 “굿!”이라고 외쳤다. 코스 전체는 넓고 평탄하여 미국이나 우리나라 코스와 비슷했지만 오랫동안 투자를 하지 않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잔디상태나 시설이 형편없었다.

    비록 스코어가 썩 좋진 않았지만, 카리브해에 떠 있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가슴을 활짝 열고 녹색 카펫을 밟으며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고, 스트레스로 찌든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사람 좋은 외국인 동반자와 더불어 운동하며 담소를 나눈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라운드를 마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그들과 우정어린 대화를 나누며 럼주를 서너 잔 마시니 금방 취기가 돌아 몸이 휘청거린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에 쿠바 음악이 더 정열적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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