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입력2008-10-06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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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단일민족으로 이뤄진 민족주의 국가다. 대표적인 ‘멜팅포트(melting pot)’인 미국은 어떨까. 의외로 여러 연구 결과는 미국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로 분류한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혈통 민족주의’와는 다르다. 여러 민족이 공유하는 ‘시민민족주의’이자 인류보편의 가치를 위해 결집하는 속성을 띤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배경도 이런 민족주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의(?)에 반색하는 국가는 드물다. 그들의 민족주의 기저에는 ‘우리만 가능하다’는 거만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3년동안 미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했다. 주로 그들의 의견을 듣는 편이지만 가끔씩 내가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미국사회를 이야기할 때면 매우 흥미로워했다. 부정적인 의견도 의외로 쉽게 인정하는 편이어서 이것이 강대국 국민의 여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끝까지 수긍하지 않는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다. 9·11테러에 뒤이은 이라크전쟁,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정치권의 수사들이 민족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강하게 부인했다.

    “9·11테러는 민족주의의 충돌이 아니라 인류보편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라크전쟁은 세계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는 민족주의의 분출이 아닌 애국주의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뚜렷한 답을 하지는 못했다.

    민족주의를 정의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학자가 나름의 정의를 내렸지만 반론에 반론이 꼬리를 물어 어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민족주의 연구자인 어네스트 겔너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정치적 단위체와 민족적 단위체가 일치해야 한다는 하나의 정치원리”다. 그의 이러한 정의는 민족주의가 영토분쟁을 야기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금 모으기 운동’



    학자들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구분 지으려 노력했지만, 그 현상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세계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2000년 당시 자신의 국적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미국의 경우 72%였다. 이는 민족주의가 강하다고 알려진 아일랜드(74%)와 유사하다. 이에 비해 서유럽 선진국의 경우 영국이 49%, 프랑스가 40%, 네덜란드가 20%로 매우 낮았다.

    민족주의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함축한다.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마치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근대화와 함께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를 ‘상상의 공동체’ 혹은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함의를 갖는 편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버팀목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주의 덕분이라고 믿는다.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미국의 민족주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한편 “미국만 가능하다”는 예외적 성격을 띤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체험한 ‘금 모으기 운동’은 역경 속에서도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되곤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은 해외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부러운 시선만은 아니었다. 민족주의의 과열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될까 하는 염려도 적지 않았다.

    반면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민족주의란 민족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위험한 요소일 수 있다. 미국인에게 “당신은 민족주의자야”라고 말한다면 굉장한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 동일한 말을 한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자랑스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조승희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복테러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한국 언론은 온통 한국 이민자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심지어 이 범죄에 대해 한국인이 도의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 같은 한국 언론의 반응을 미국 동료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첫째로, 범인은 한국에서 온 이민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미국사회가 떠안은 영주권자이니 미국사회가 책임질 일이라는 것이었다. 둘째로, 국가와 개인은 다르며 이 범죄는 개인이 저지른 것이니 국가나 국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개인으로 국가나 인종 전체를 판단하는 나쁜 버릇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부끄러웠다. 만약 비슷한 사건이 외국인 학생에 의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그 반응은 훨씬 더 감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자성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반전운동가=반미주의자”

    그렇다면 미국에는 민족주의가 없을까? 적어도 인종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혈통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라고 하는데, 한국사회에서 관찰되는 민족주의가 이에 속한다. 쉬운 예로, 귀화한 외국인은 아무리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좀처럼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혈통민족주의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 때문에 순혈주의나 파시즘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종종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다민족 국가인 미국사회에서 혈통민족주의는 금기시될 수밖에 없는 이념이다. 사적으로 백인우월주의자라 하더라도 공공연히 그런 의견을 피력했다가는 개인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감옥에 갈 수도 있다.

    혈통민족주의에 상반되는 개념으로는 ‘시민민족주의(civic nationalism)’가 있다. 이는 조상이나 혈통이 다르더라도 자발적 참여에 의해 한 국가의 시민이 된 사람들이 공유하는 민족적 정체성이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한국사회가 빠르게 다민족 사회로 변모하면서 혈통민족주의를 버리고 시민민족주의로 나아가자는 움직임도 있다.

    미국사회에서 포착되는 민족주의는 혈통민족주의보다는 시민민족주의에 가깝다. 시민민족주의는 소위 ‘열린 민족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까닭에 혈통민족주의의 단점을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가령, 일단 한국인으로 귀화했다면 출신 국가가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한국 민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9·11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사회의 극렬한 반응은 시민민족주의 역시 민족주의의 본질적 폐쇄성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컨트리 그룹인 ‘딕시 칙스’는 2003년 런던 공연 중 부시 대통령이 자기 고향인 텍사스 출신인 것이 창피스럽다고 발언했다가 CD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미국 전역의 라디오 방송사는 일제히 이들의 노래를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2004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상영하기로 했던 야구영화 ‘Bull Durham’은 이 영화에 출연한 수전 서랜던과 팀 로빈스가 반전운동가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상영이 취소되기도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 프랑스가 이라크전쟁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자 미국인의 20%가 프랑스 제품의 구매를 중단했다. 또 프랑스는 당시 미국인 여행객의 감소로 관광수익이 5억달러(한화 약 5000억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심지어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가들을 비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넘어 반미주의자(anti-American)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얼마 전 여성 평화운동단체인 ‘코드핑크’의 연례총회가 있던 날, 식장 밖은 몰려든 시위대로 북적였다. 이들은 ‘코드핑크’의 설립자 메데아 벤자민을 ‘반미주의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테러리즘을 지지한다는 비난을 산 것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세계 어느 곳보다도 나는 미국의 시민이고 싶다”는 문항에 대해 9·11테러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응답자의 90%가 긍정의 답변을 했으며 테러 이후에는 97%로 치솟았다.

    또한, “다른 국가의 국민이 미국 시민 같다면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답변한 사람도 테러 이전 38%에서 테러 이후 49%로 증가했다. 2002년 실시된 ‘퓨 세계 태도조사 프로젝트(Pew Global Attitude Project)’에 따르면 당시 미국 응답자의 79%가 “미국의 가치와 사상이 전세계에 퍼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답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미국의 민족주의를 지탱하는 기반은 인종이 아니라 신념(creed) 혹은 가치(value)에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자유, 인류애 등의 가치가 미국 시민의 집단의식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것. 문제는 그러한 가치들을 미국의 독점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미국 사회의 자유만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 것이다.

    이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치러낸 수많은 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베트남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또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의 군부독재정권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권이 인권을 유린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였다.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전문가들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민족주의 성향이 더 짙어졌다”고 말한다.

    심지어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후세인 정권을 지지했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술가인 사이드 아부리쉬는 ‘사담후세인 평전’에서 “1979년 이란에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미치광이보다는 망나니가 낫다’며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해 후세인 정부를 전폭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수 년 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명목으로 후세인 정권 축출에 나서자 미국의 모순된 태도에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고, 부시 행정부는 “1990년 이전에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번 일과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해온 정치학자 폴 매카트니는 미국 민족주의의 두 가지 특징에 주목했다.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예외주의(exceptionalism)가 그것이다.

    우선 미국의 민족주의는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보편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공격은 곧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한다. 앞서 9·11테러를 민족 간의 갈등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인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1년 11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라크전쟁과 관련해 “적들은 단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의하는 개방적 사고와 관용, 창조적 문화에 도전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를 위협하는 세력을 척결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 사명은 미국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예외주의적 특성도 함께 갖는다. 2002년에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라크전쟁을 ‘선제방어전쟁(preemptive war)’으로 정의한다. 선제방어전쟁이란 적의 위협이 목전에 있을 때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라크전쟁을 ‘예방전쟁(preventive war)’으로 규정한다. 예방전쟁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단지 미래에 있을지 모를 위협을 막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사례가 예방전쟁을 선제방어전쟁이라고 정당화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가안보전략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그 어떤 나라도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제방어론을 구실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선제방어는 그 이유가 분명하고 정당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외부의 시선에서 이러한 이중적 잣대는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미국인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선제방어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위협을 피하기 위한 ‘예방전쟁’이라고 비판한다.

    이외에도 미국의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 비교해 여러모로 다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3년 미국 민족주의의 특성을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뤄진다.

    가령 미국 연방법 어디에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으나 여전히 많은 학교가 이를 지키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적 행태를 법제화하려는 조짐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예를 들어 국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미 의회의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미래지향적 민족주의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당시 반전운동가들이 시위 도중 성조기를 불태우는 경우가 잦아지자 미 의회는 이를 막기 위해 ‘국기보호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20년 후 반정부 시위대가 성조기를 소각한 행위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든 국기 훼손을 막고자 지난 십수 년간 헌법을 개정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미국의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주체는 주로 미디어다. 최근 열린 미국 정치학 대회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발생한 미군들의 고문행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의 언론들은 부시 행정부의 민족주의적 수사에 기대어 “단지 몇 명의 나쁜 사람이 저지른 범죄”로 축소하고 조직적 차원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미국 CBS 방송의 유명 앵커였던 댄 레더는 미디어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일찍이 “미디어는 국기를 따라가게 마련(Media tends to follow the flag)”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민족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청률 경쟁 때문에 전쟁을 마치 대하드라마처럼 보도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민족주의가 형성되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다.

    미국 민족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민족주의가 대체로 과거의 원한이나 패배의 기억에서 출발하는 반면 미국의 민족주의는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일감정은 양국 간의 각종 분쟁이 빚어낸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 형성된 것이지만, 미국의 민족주의는 개척자 정신과 같은 긍정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다.

    따라서 미국의 민족주의는 미래지향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민족주의는 과거의 영광 혹은 굴욕에 집착하지만 미국은 현재의 영광을 통해 국민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그 영광을 미래에도 이어가려는 욕망이 민족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국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고, 각종 국제분쟁에 개입할 때는 민족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베트남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와 공산주의 척결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승리를 확신하고 전쟁에 개입했지만 베트콩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패전하고 말았다. 베트남의 민족주의는 외세로부터 자국을 지켜낸 역사적 경험을 통해 공고해졌으며, 그들이 원한 것은 미국이 우려한 것처럼 공산주의의 전파가 아니라 독립과 통일이었다.

    물정 모르는 ‘세계경찰’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악의 축’인 북한을 보듬어 안아야할 동포나 형제로 인식하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속에 담긴 혈연민족주의의 질긴 속성을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미국은 세계화에 중심에 있지만 정작 해외문화를 접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2003년 퓨 연구소가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경우 지난 5년간 해외여행의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22%에 불과했다. 캐나다의 66%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 결과 미국은 국경 밖에서 일어나는 민족주의에 대해 점점 더 이해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는 결국 미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미국이 사명감을 갖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나설수록 세계 전역의 반미주의는 강화된다. 미국이 자신의 이중적 잣대를 인정하고 변화시키지 않는 한 반미주의는 심화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그간의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최초로 외국인 체류자가 100만명을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金秀卿

    197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아일보 문화부·사회부 기자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돌파했으며 지난해 결혼한 커플 아홉 쌍에 한 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혈연적 민족주의는 과거 사회통합의 원동력이었지만 이제는 저해요인이 돼가고 있다.

    민족주의의 부작용을 우려해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할뿐더러 더 큰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다만 그 배타성과 폐쇄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폐단을 항상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 역시 타 민족을 차별하면서 자민족이 차별받는 것은 참지 못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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