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김정일도 아직 누가 조선의 어머니가 될지 모른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10-08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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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어머니’는 조선왕조의 왕후 개념이기보다는 혁명가계를 이은 후계자의 모친, 즉 ‘어머니 조국’이라는 북한식 개념이다.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J씨는 강원 원산시 갈마초대소에서 김정일(67)을 만난 적이 있다. 의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앉은 김정일을 올려봤는데 ‘조선의 어머니’란 노래가 들려왔다. 김정일 옆에는 고영희(1953~2004)가 앉았고 김옥(45)은 서 있었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부인, 김옥은 지도자의 일정을 담당하는 기술서기다.

    J씨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를 찬양하는 글을 짓는 ‘1호시인’으로 일했다. 1998년부터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 101연락소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북한을 탈출했다. 대남공작 일꾼으로 일한 터라 한국에 들어와 6개월 동안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았다. J씨는 현재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북한을 연구한다.

    조선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중국 외교부 소속의 세계지식출판사가 발행하는 ‘세계지식’은 김일성(1912~1994)이 3명의 부인을 뒀다고 전한다. 첫 부인의 이름은 한성희다. 강원도 출신으로 어릴 때 만주로 이주해 공산주의 독서모임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 김일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둘째 부인 김정숙(1917~1949)은 아들 김정일, 김만일(1944년생·47년 연못에서 익사), 딸 김경희(1946년생·노동당 경공업부장)를 낳았다. 김일성의 후계자를 낳은 그가 ‘조선의 어머니’란 노래의 주인공. 1953년 김일성과 결혼한 셋째 부인 김성애는 딸 김경진, 아들 김평일, 김영일을 뒀다.



    북한은 스스로를 ‘김일성 민족’이라고 여긴다. 양강도에 김정숙군이란 행정구역 이름을 남긴 김정숙은 ‘김일성 민족’의 어머니다. 김정일이 김성애 세력을 몰아낼 때도 힘을 발휘한 ‘조선의 어머니’는 조선왕조의 왕후 개념이기보다는 혁명가계를 이은 후계자의 모친, 즉 ‘어머니 조국’이라는 북한식 개념과 맥이 닿는다.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후계문제 전문가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은 ‘조선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성혜림(1927~2002)은 모스크바 서쪽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수북이 쌓인 낙엽은 누구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 묘를 연상케 했다”고 ‘동아일보’는 전한다.

    배우 출신인 성혜림은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김정일의 여인. 그는 경남 창녕군 출신으로 아버지를 따라 월북했다.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1970년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해 1년 뒤 아들을 낳았지만, 북한 주민은 그의 존재를 모른다. 1974년 김정일이 김영숙과 결혼한 뒤 성혜림은 러시아로 추방됐다.

    버림받은 무덤의 뒷면에 적힌 묘주의 이름이 김정남(38)이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미국으로 망명했고,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은 탈북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북한 공작원의 총을 맞고 죽었다. 북한전문가 K씨는 “남조선 출신 이혼녀인데다 언니, 조카가 탈북한 여인이 ‘조선의 어머니’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성택 이제강, 누가 더 센가

    북한 후계자론은 크게 네 갈래다.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설 ▲고영희의 아들 김정철-김정운설 ▲김일성의 장녀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설 ▲집단지도체제설이 그것이다. 지난해 김정일 중병설이 나돌 때는 김정일의 부인 혹은 동거녀로 알려진 김옥이 문고리 권력을 쥐었다는 김옥 역할설도 떠돌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경제학자가 경기를 전망하듯 후계를 예측해왔다. 경제학자의 전망이 그렇듯 북한 전문가들의 예측도 엇갈린다. 경제학자는 실물지표를 토대로 예측하지만 북한 정보는 오류와 왜곡이 많다. 정성장 실장이 김정운 설의 주창자라면,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남 설의 지지자다.

    백승주 센터장은 김정일의 동복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노동당 행정부장)이 후원하는 김정남이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본다. 그는 옛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후계자 지명 과정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방법론을 사용한다. 반면 고증과 문헌 연구를 주로 한 정성장 실장은 이제강(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후원을 받는 차남 김정철(28) 혹은 3남 김정운(26)의 집권에 무게를 실어왔다.

    두 박사는 올 2월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됐을 때도 서로 다른 논리로 후계 구도를 설명했다.

    “김영춘은 장성택이 최고 전성기던 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이번 인사는 장성택이 좌지우지했다고 볼 수 있어 김정남이 후계에서 유리해졌다.”(백승주 센터장)

    “김영춘은 2004년 사망한 공식 부인 고영희의 우상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고영희의 친아들 정철, 정운이 후계 구도에서 유리해졌다.”(정성장 실장)

    장성택-이제강을 대립항으로 세워놓는 틀은 중국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을 김정남의 후원자로 설정하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이제강을 김정철, 김정운의 지원자로 보는 것이다. 북한에서 장성택의 역할이 강화되면 한국에서 김정남 후계설이 힘을 얻는 까닭이다.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북한 언론에 15년 만에 등장한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왼쪽에서 두 번째).

    혁명가계 vs 혁명정통

    ▲장성택설 ▲집단지도체제설은 혁명가계 승계-혁명정통 승계라는 틀로 설명된다. 혁명가계 승계는 ‘삼대(三代) 계승’을 대전제로 하는 반면, 혁명정통 승계는 정통성만 있으면 된다는 것으로 ‘가계 세습’을 저어한다. 이 틀은 2004년 봄 장성택 실각을 혁명가계 vs 혁명정통이 만든 잡음으로 본다.

    혁명가계 승계의 대상자는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이다. 혁명정통 승계 대상자는 장성택을 포함해 그 범위가 넓다. 국방위원회에서 일한다는 첩보가 나돈, 김일성 주석의 생모인 강반석 가계의 강○○(50대 장성으로 실명은 알려지지 않는다)이 정보당국의 안테나에 걸린 적도 있다.

    혁명가계 vs 혁명정통의 틀에서도 주목할 만한 여인이 등장한다. 김정일이 아끼는 자식으로 알려진, 김영숙이 낳은 맏딸 김설송. 1976년생으로 결혼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결혼했다면 남편은 누구일까. 사위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딸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이렇듯 혁명가계+혁명정통의 조합은 변수를 늘려나간다.

    김설송은 아버지와 같은 대학(김일성대), 같은 과(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다. J씨는 김설송을 긴 생머리에 군복을 입은 여자로 기억한다.

    “김정운 후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정일 사후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결국엔 김정남이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운 후계론은 해프닝이라고 봐야 한다. 조선의 어머니론은 낭설이다. 북한 주민들은 성혜림, 김정남, 김정운, 김정철이 누군지 모른다. 명분은 권력을 틀어쥔 사람이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김정운보다는 오히려 김설송이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그랬듯 신변보호와 선전선동을 맡고 있다.”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김정남 생모 성혜림의 묘

    J씨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서사시를 쓰면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인사들과 교유했으며, 김정일 최측근의 친인척과도 친분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후계자론을 들여다보는 J씨의 경험은 한국 전문가의 분석과는 결이 다르다. J씨는 중국, 현실을 중요한 변수로 보면서 김정남 설에 무게를 싣는다.

    다시 ‘조선의 어머니’로 되돌아가보자.

    고영희 우상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북한에선 고영희 우상화 조짐이 나타났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이제강과 이용철이 고영희의 측근이었다는 것은 정설로 통한다. 고영희의 아들을 후원하는 이제강과 김정남과 가까운 장성택의 다툼에서 김정일이 이제강의 손을 들어줬다는 거다.

    고영희는 재일동포 귀국자 출신으로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수로 일했다. 1976년께부터 김정일과 동거했는데, 두 아들 외에 딸 김여정도 낳았다. 김여정은 1987년생이라는 사실 외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북한식 당-국가 체제의 핵이다. 김정일도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면서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3남 후계설이 기정사실처럼 회자될 때 김정운이 조직지도부장을 맡았다거나 곧 맡으리라는 보도가 나온 까닭이다. 조직지도부는 4명의 부부장을 뒀으나 부장직은 공석이다. 김정일이 아직까지는 2인자를 만들지 않은 셈이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장성택은 2004년 2월 낙마한다. 혁명가계 vs 혁명정통 틀로 분석하면 장성택의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영희는 2004년 5월 유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영희가 죽은 뒤 우상화 움직임도 중단됐다.

    장성택은 2005년 12월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이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 전략을 사용하면서 이제강, 장성택을 관리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는 김정남의 후견인으로 알려지기도 하고, 고영희와 사이가 좋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고영희가 김경희를 찾아가 바람피우는 남편 욕을 했다거나 장성택이 실각했을 때 김경희가 오빠 김정일을 찾아가 울며불며 항의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체격 좋고 잘생긴 미남이며 똑똑한 남자다. 오죽했으면 공주님이 반했겠는가.”

    북한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망명한 고영환씨는 장성택을 이렇게 평가한다. 김경희와 장성택은 김일성이 반대했는데도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장성택은 김일성대 정치경제학과를 다니다가 원산경제대로 전학을 갔는데, 이는 둘을 떼어놓으려는 조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이 유일한 동복 동생 김경희를 챙긴다는 것엔 이견이 별로 없다. 장성택을 놓고 ‘킹이냐, 킹메이커냐’는 말이 회자되는 것처럼 일각에선 김경희를 두고도 “퍼스트레이디, 지도자를 꿈꿀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돈다.

    6월8일 북한 언론은 김경희의 얼굴을 15년 만에 공개했다. 최근 김정일의 현지지도 수행자 명단에 ‘김경희’란 이름이 자주 오른다. 북한 언론은 김경희를 장성택보다 앞서 호명하는데, 공개활동 재개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김정운 후계 공고화에 방점을 찍은 견해와 장성택 권력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이 다툰다.

    옥이 동지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할 경우, 개인비서이자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실권을 행사하는 김옥이 김정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대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미국 정보당국은 주시한다. 김옥은 김정일의 신변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만일의 사태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김옥은 김정일의 개인 조직이나 39호실(통치자금 관리부서)에도 깊이 연관돼 북한 정권의 자산에 일정한 영향력이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정일 유고 시 후계구도에서 힘과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의 女人’으로 들여다본 북한 후계구도

    ‘사진A’ 수수한 김옥 ‘사진B’ 세련된 김옥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코퍼레이션의 켄 고스 해외지도자연구국장은 3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옥은 평양 금수중학교와 금성고등중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학교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재능 있는 학생을 선발, 육성하는 곳이다. 김옥은 경음악단에서 활약하다 1980년대 후반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김옥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일했다. 북한 관료들은 그를 ‘옥이 동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깜찍하고 애교 많은 스타일로 알려진 그가 김정일의 사실상의 부인인지, 동거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북한 관료를 지낸 한 탈북자는 “김정일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하는 여성이 한 명 있었다. 권력 위의 권력에 선 여자가 김옥”이라고 밝힌다. 그런데 이 인사의 코멘트도 진위 여부가 의심된다.

    “북한의 고위 간부가 ‘옥이 동지’가 아닌 ‘김옥 동지’라고 불렀다면 김옥의 위상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옥이 동지’는 경칭이 아니다. 기술서기로 일하면서 김정일의 일정을 관리했기 때문에 간부들이 말을 낮추지 못하고 동급으로 대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성장 실장의 이 같은 견해는 결이 다르다. 김옥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정일의 요리사로 13년간 일하다 2001년 북한을 탈출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에게서 나온 것이다. 정 실장은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후지모토를 만났다.

    “후지모토는 김정철 김정운이 김옥을 ‘옥이 이모’가 아니라 그냥 ‘옥이’라고 불렀다고 증언한다. 집안일 하는 하급자로 여긴 것이다. 언론은 김옥이 젊었을 때부터 김정일의 총애를 받으면서 정치에 눈을 떴다는 둥 권력의 화신처럼 묘사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후지모토는 김옥이 유령처럼 조용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J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2000년 이후 김정일이 가장 아낀 여자는 보천보전자악단의 가수 윤혜영이다. 김옥은 일정을 관리하는 동거녀 수준으로 봐야 한다.”

    김옥과 고영희의 관계도 오리무중이다. 고영희가 죽기 전 김옥에게 두 아들을 부탁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두 여인이 갈등을 빚어 김정일이 김옥에게 마카오 별장을 선물해 피해 있게끔 배려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마카오를 매개로 김정남과 김옥을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점입가경은,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김옥 사진을 두고도 진위 논란이 인다는 것이다. ‘사진 A’의 수수한 김옥은 깜찍, 애교와는 거리가 있다. ‘사진 B’의 세련된 김옥은 후지모토가 김옥이라고 지목한 것으로 한국에 알려진 사진이다.

    ‘사진 A’의 김옥은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과 접견할 때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 여성은 ‘김선옥’이라는 가명으로 국방위원회 과장 직함을 사용했다고 한다. ‘연합뉴스’가 이 사진 속 여인을 김옥이라고 지목해 보도했고, 그 뒤 언론들은 이 사진을 받아 썼다.

    김옥의 얼굴을 안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사들도 1992년 평양에서 발간한 ‘우리의 지도자’에 실린 ‘사진B’가 김옥이라고 말한다. 1998년 촬영한 이 사진 속 여인은 ‘수수한 김옥’과는 얼굴이 달라 보인다. J씨도 ‘사진B’가 김옥이라고 주장한다.

    김정운 vs 김정은

    국정원에 누가 진짜 김옥인지 확인을 요청해본 적이 있다. 다음은 e메일로 질문 요지를 보낸 뒤 이뤄진 국정원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

    ▼ 거의 모든 언론이 ‘사진 A’를 쓴다. ‘사진 A’와 ‘사진 B’ 중 어떤 사진을 써야 하는가.

    “확인해줄 수 없다.”

    ▼ 확인 못 해줄 사안이 아니다. 이런 것도 확인을 안 해주나.

    “A 아니면 B일 텐데…. 담당부서에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 누가 김옥인지 담당부서도 모르는 것 아닌가.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한다.”

    ‘사진A’ ‘사진B’의 인물이 동일인이거나 국정원이 두 사진 중 하나로 김옥을 특정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동안 한국 언론에 실리는 김정운의 사진은 11세 때 찍었다는 흑백사진 한 장이 유일했다. 한국에 소개되는 북한 정보의 수준이 딱 그 정도다.

    김정일의 3남 이름이 ‘김정운’이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이설(異說)도 제기됐다. 후지모토가 김정운의 한국어 발음을 착각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국정원 등 정부당국도 ‘정은’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정성장 실장은 후지모토를 만났을 때 ‘사진 A’와 ‘사진 B’ 중 누가 김옥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둘 다 김옥이다. 12년의 시차가 있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김옥의 얼굴을 안다는 한 탈북자는 “한국 언론이 왜 후지모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쓴 책의 상업성을 높이고자 과장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후계체제 논의되지 않는다”

    9월10일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명목상 수반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 시점에선 후계체제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외국 언론이 우리의 부상과 번영을 무력화하고자 그런 보도를 내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인민은 우리 공화국과 사회주의를 수호하고자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강하게 단결하고 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과 정부, 군을 정열적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성장 실장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북한의 핵심 엘리트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순진한 태도다. 북한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 당국의 후계 논의 부정이 김정운 후계체계 구축의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더욱 은밀하면서도 내실 있게 후계체제를 구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20년 넘게 북한을 들여다본 L교수는 “한국 언론, 일본 언론의 북한 보도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글로벌정치연구소 이승렬 연구위원(북한학 박사)은 “탈북한 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의 딸을 최근 만났는데, 그 여인이 ‘국가안전보위부장이던 아버지도 김정일의 아들이 몇 명인지, 딸이 몇 명인지를 몰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북한 후계문제를 다룬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최고위층도 김정일의 가계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3대 승계는 어렵다고 본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김정일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해석 권한을 독점해 후계자로서 정당성을 확보했다. 김정운이 후계자가 되려면 선군사상의 해석권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운은 개인적 능력과 정당성, 조직 기반을 키우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가 후계자가 맞다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후계 수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김일성과 권력을 나눠 가졌던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리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나눠준 적이 없다. 아버지의 권력을 뺏을 때의 학습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아들에게 권력을 나눠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거론된 게 사실이라면, 그건 어린 아들을 앞에 내세우고 자신이 더 오래 집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김정일도 모른다”

    숫자가 나열된 정보를 토대로 이뤄지는 경제학자의 경기 전망도 틀리는 예가 많다. 대북 소식통에 의존하는 북한 정보는 경제학자의 그것보다 오류, 왜곡이 더욱 많다. 반론·정정보도 요구가 없기에 설익은 정보가 기사화되기도 한다.

    다시 ‘조선의 어머니’로 돌아가보자.

    죽은 성혜림 고영희, 살아 있는 김경희 김옥 중 누가 입김이 가장 셀까? 누가 ‘조선의 어머니’ 자리를 차지할까?

    한반도를 통틀어 정답을 아는 사람은 김정일 외엔 없을지도 모른다. 북한전문가 K씨는 “김정일의 스타일을 볼 때 살아 있을 때 권력을 나눠줄 사람이 아니다. 김정일도 조선의 어머니가 누가 될지 아직 모를 것이다”라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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