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문익환 목사 북한에서 안기부 프락치로 몰려 화병으로 죽었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6-03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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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용소 같은 북한에서 내부 소식 누설은 혁명 같은 일 <뉴욕타임스>
    • 북한 고위급과 연결되는 소식통이 가장 큰 자산
    • 민족해방(NL)진영에서 문익환 목사 돕다 보수 우파로 돌아선 계기는…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다세대주택(서울 관악구 신림본동) 2층에서 직원 20명이 인터넷뉴스, 라디오방송을 제작한다.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얼마 전 이 사무실을 찾아 “작은 통신사가 메이저 언론도 못하는 특종을 생산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1월24일자 NYT엔 ‘한국의 발빠른 통신사가 북한에서 은밀히 정보 수집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하태경(43) 열린북한방송 대표 사진이 실린 기사 요지는 이렇다.

    “탈북자, 인권운동가로 이뤄진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북한 언론 통제를 허물고 있다. 수용소 같은 북한에서 내부 소식 누설은 혁명 같은 일이다. 한국 주류 언론도 이들의 보도를 인용한다.”

    BBC 블룸버그도 신림본동 다세대주택을 찾아와 비슷한 내용을 취재했다. 아사히신문 월스트리트저널 CNN에 적을 둔 기자들도 수시로 하 대표를 찾는다.

    북한 거주 소식통

    1월7일 오후 2시30분. 하 대표는 북한 거주 소식통과 전화로 대화했다. 소식통이 그에게 말했다.



    “5시에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가라고 해서 지금 준비 중이다.”

    열린북한방송은 북한 거주 소식통 언급을 기사로 보도했다.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북한에서 열렸다”고 조선일보가 받아썼다.

    열린북한방송 같은 북한 전문 매체가 등장하면서 국가정보원 통일부에 의존하던 북한 뉴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북한 내 정보원을 확보한 인터넷 매체가 콘텐츠 생산자로 떠오른 것. 서울에서 북한으로 전화를 걸어 정보를 획득한다. 중국 휴대전화가 북한 국경지역에서 터진다.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매체는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 좋은벗들, 열린북한통신, NK지식인연대, 자유북한방송이 있다. 지난해 11월30일 북한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데일리NK가 보도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북한에 남은 가족과 통화하다 확보한 소식을 기사화한 것. 신종인플루엔자가 북한에서 창궐한다는 소식은 좋은벗들이 처음으로 전했다.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매체들은 극찬받는 만큼 비판도 듣는다. “특종도 있지만 오보가 많다”는 것. 조선일보가 인용한 ‘김정은 탄생 기념 중앙보고대회’가 실제로 열렸다는 증거는 없다. 17년간 168회 방북해 민간 최고 북한통으로 꼽히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가 북한 현실을 호도한다”고 꼬집는다.

    “정보원 노릇하는 북한 주민이 돈을 받고자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허위 조작 과장해서 말하는 걸 북한 전문 매체가 검증하지 않고 보도합니다. 인터넷 언론의 가십성 보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요.”

    박 사장은 “주민들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화폐개혁 실패 보도는 오보(誤報)”라고 전하면서 “북한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만든 북한 전문 매체가 북한이 망하길 바라면서 왜곡된 보도를 한다”고 주장한다.(신동아 5월호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전한 북한 근황’ 제하 기사 참조)

    신동아가 실은 박 사장 인터뷰 기사를 읽은 하 대표는 “박 사장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 소식통이 돈을 벌고자 거짓 소식을 팔거나 과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크로스 체크를 통해 검증한 뒤 신뢰할 만한 정보만 기사로 보도한다”고 맞받았다.

    左翼에서 右翼으로

    하 대표는 2005년 12월 열린북한방송을 설립했다. 이 매체는 인터넷신문을 통해 북한 소식을 한국에 전하고, 단파를 이용한 라디오방송을 북한으로 송출한다.

    ▼ 열린북한방송을 듣는 북한 주민이 얼마나 될까요.

    “100만명은 넘을 겁니다.”

    ▼ 그렇게 추산하는 근거가 있나요.

    “수년 전 탈북자 상대로 샘플 조사를 했더니 12%가 열린북한방송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 탈북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바깥소식에 관심이 많았겠죠.

    “북한 인구 2000만명(북한 인구는 2300만명으로 추산된다)의 12%면 240만명입니다. 탈북자가 특수하다는 점을 고려해 반으로 줄이더라도 120만명이 들었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 북한에 단파라디오가 많은가 봅니다.

    “중국 게 북한에 돌아다니죠. 그 사람들도 외부 소식이 궁금하니까. 한국처럼 영토가 좁으면 단파가 필요 없어요. AM FM으로 커버하니까. 중국은 땅덩어리가 커서 단파방송이 많습니다.”

    열린북한방송은 아침 6~7시, 밤 10~11시 북한으로 단파를 송출한다. “북한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실형을 산 전력도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고(故) 문익환 목사와 함께 일했다.

    ▼ 1986년이면 수재가 물리학과에 모일 땐데 학력고사 등수 기억해요.

    “숫자가 특이해서 안 잊어버려요. 전국 100등.”

    ▼ 주사파이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에요. 그렇게 아는 분이 많은데, 잘못 알려졌죠. 운동권이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로 나뉘었는데, NL은 주사NL 비주사NL로 갈렸어요. 서울대엔 저처럼 비주사NL이 많았고요. ‘수령님 만세’ 같은 거 안 외쳤어요.”

    ▼ 대학 다닐 적엔 북한에서 한국으로 송출하는 단파방송을 들었겠네요.

    “방송을 직접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방송 내용을 필사해서 뿌린 걸 읽었죠. 운동권 70~80%가 봤을 겁니다. NL은 거의 다 봤으니까.”

    ▼ 격세지감이 듭니다.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니….

    “넓게 보면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거죠. 작게 보면 남북 간 정보 소통 운동이고요. 세계가 어떻게 돌고, 한국이 어떤지 북한 주민이 아는 건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축입니다.”

    ▼ 교도소는 왜 갔다 왔나요.

    “1989년 임수경 다음에 1991년 박성희, 성용승이 방북했습니다. 그 친구들 방북과 관련해서 잡혀갔어요.”

    ▼ 실제로 관련 있었나요.

    “관련이 없지 않았죠. 북한 인사와 팩스를 주고받았으니.”

    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했다.

    ▼ 북한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박성희, 성용승 방북이 첫 번째 계기죠. 두 친구는 임수경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서 통일운동을 계속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그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비민주적이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겁니다. 북한이 문익환 목사한테 한 행동도 계기로 작용했고요. 문 목사의 통일노선은 북한과 달랐거든요.”

    세계 언론이 주목한 북한 뉴스 생산자 하태경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김정일이 김정은(왼쪽)을 대동하고 김책제철소에 나타났다며 보도한 사진. 이 보도는 오보로 드러났다. 일본 언론이 보도하는 북한 관련 보도의 상당수가 오보다.

    ▼ 어떻게 달랐나요.

    “자세하게 설명하긴 곤란해요. 북한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프락치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북한은 늘 그런 식이죠. 저도 순진했죠. 그런 말 안 되는 상대와 통일을 논했다니. 문 목사가 그것 때문에 화병에 걸리셨어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요.”

    ▼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친북(親北)세력은 숨기려고 하죠. 친북 하는 사람들, 문 목사 존경하죠. 저 역시 지금도 문 목사 존경합니다. 저처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안기부 프락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사람들과 싸웠거든요. 주사파도 아니셨고요. 살아계셨다면 저처럼 바뀌셨을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그는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1998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린(吉林)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SK텔레콤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했다.

    “기근으로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충격이었죠. 북한에 대한 소명감 같은 게 남아 있었어요. 미국으로 유학 가 박사하고, 교수하고 그래서 될 일인가. 초심을 자문한 거죠. 중국에서 탈북자를 직접 만나 북한 실상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과정 시작하기 전 6개월 동안 옌볜(延邊)에서 중국어를 익히면서 탈북자 수백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가명으로 ‘신동아’에 기고한 적도 있어요. 박사 공부하면서도 주말마다 국경지역으로 달려갔습니다.”

    ▼ SK에선 어떤 일을 했나요.

    “구해우 상무(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밑에서 북한, 중국 관련 일을 했어요.”

    ▼ SK가 대북사업을 준비했군요.

    “기업이 하고 싶어했다기보다 정부에서 하라니까. 북한 업무가 없어지면서 SK텔레콤경제연구소로 옮겼죠.”

    진보정권 때 북한 진출을 저울질하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접은 기업이 적지 않다. 오너가 베이징으로 직접 날아가 북측 인사를 만나 의향서를 전했다가 정권이 교체되자 사업을 접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 대기업이 주는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살 걸 그랬다 싶을 때는 없나요.

    “가끔씩. 힘들 때. 적자 경영은 한 해도 없었어요. 미국 유럽에서 기부금을 받고 있어요.”

    열린북한방송은 민주주의진흥재단(NED), 국경없는기자회(RSF)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

    ▼ 북한 소식을 전하는 정보원이 대략 얼마나 되나요.

    “10명 이상입니다.”

    뉴스 출고량을 고려할 때 생각보다 취재원 수가 적었다. 주류 언론에서 북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북한 거주 정보원을 갖고 있지만 익명의 소식통이 전한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보도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 소스는 어떻게 관리해요.

    “둘로 나뉘어요. 스트링거(stringer·비상근 통신원)에겐 활동비를 줍니다. 취재원은 그런 게 없죠. 전화 통화하거나 중국 출장 가서 만납니다. 김정일이 뇌졸중 걸린 뒤 엘리트층이 흔들렸어요. 미래가 불안하니까 안전판을 만들려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한국 사람을 사귀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거죠. 그런데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증명하는 방법이 정보를 말해주는 거죠. 정보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 정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게 확인되는 거죠. 북한 고위층과 연결되는 인사들이 우리의 자산입니다. 특정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단순 소식통에서 신뢰할 만한 소식통으로 바뀝니다. 지난해 봄 한 소식통이 ‘북한이 개성공단 임금 4배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상식적으로 4배 인상은 과하다 싶어 보도를 자제하다가 정황이 일리가 있어 고심 끝에 보도했어요. 빠르고 정확했죠.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서해함대를 찾아 보복을 지시했다는 보도도 믿을 만한 소스로부터 나온 것이고요.”

    ▼ 정보원이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신경을 많이 써요. 보위부가 날뛸 때는 연락을 자제하죠. 예전엔 국경지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걸리면 벌금 내고 풀려났는데 지난해 말, 올 초엔 ‘시범껨’이라고 총살한 적도 있어요. 공개 총살은 대부분 시범껨입니다.”

    ▼ 북한 전문 매체들은 북한 거주 소식통 전언을 근거로 ‘화폐개혁 이후 경제 난맥’을 전했습니다. 이를 중앙언론이 인용보도하면서 화폐개혁으로 인한 북한 경제 난맥은 기정사실화했죠. 그런데 북한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박상권 사장은 “화폐개혁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분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없어요.”

    ▼ 직접 듣고, 봤다는 겁니다.

    “환율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월급은 그대로인데 화폐개혁으로 돈의 가치가 100배 높아졌으니 주민이 좋아한다는 겁니다. 박 사장 말대로 1달러 100원이 공식환율이긴 하죠. 그런데 은행이나 외환교환소에 붙은 환율은 주민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실제 환율은 달라요. 3월8일 1달러 3000원을 기록했고, 그 이후 하락해 4월 말엔 900원대로 떨어졌습니다. 박 사장은 외국인이니까 달러로 물건을 구입한 것 아닙니까.”

    ▼ 북한 돈으로 구입했습니다.

    “어느 시장에서 샀는지, 알려달라고 해보세요.”

    ▼ 보통강상점이라고 말하더군요.

    “….”

    서로 다른 진실

    박상권의 진실과 하태경의 진실은 다르다. 박 사장은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고 단언한다. 하 대표는 “북한 전문 매체들이 다 같이 잘못된 정보를 입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을 확보한 배경에는 남한 내 탈북자 증가와 북한 내 휴대전화 보급이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도 국경 지역에서 평양 근처로, 일반 주민에서 고위급 간부에 선이 닿는 이로 확대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진실에 가까울까? 평양의 진실, 지방의 진실이 다를 수도 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같은 이는 개성을 군사적으로 틀어쥐고 지방을 지배한 고려처럼, 북한 정권을 평양을 틀어쥔 군사정권으로 본다.

    ▼ 평양의 진실이 지방의 진실과 다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북한을 틀어쥔 곳이 평양이니….

    “그렇죠. 평양은 일종의 성(城)이에요. 성.”

    ▼ 박상권 사장은 북한 전문 매체가 북한이 붕괴하기를 바라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기사를 쓴다고 말하더군요.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화폐개혁 직후 북한 민심이 좋아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돈의 가치가 높아져 주민들이 냉장고도 사고 그랬습니다. 소득이 100배 오른 셈이었거든요. 그런데 1월1일부터 장마당을 통제하고 달러·위안화 사용을 막으면서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물가가 오르면서 민심이 이반한 거죠. 화폐개혁으로 경제가 만신창이가 됐다는 건 오보예요. 특이한 게 북한 정권이 격앙한 민심에 대응했다는 겁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어요. 민심이 나빠지자 시장 통제를 풀었습니다. 최근엔 식량 배급률이 80%를 넘어섰습니다. 주민에게 군량미까지 풀면서 경제가 안정세를 보입니다. 일시적 현상일 소지가 크지만요.”

    ▼ 특종도 있지만 오보가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보가 많다는 표현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보도의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도 똑같아요. 고위급 정보는 우리가 경쟁력을 갖췄다고 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톈진(天津)을 들를 거라고 우리가 보도했는데 연합뉴스에서 이렇게 받아씁디다. 일부 언론에서 톈진에 먼저 간다고 보도하지만 그럴 소지는 거의 없다고. 수 시간 후 김 위원장이 톈진에 도착합니다. 북한 뉴스 시장에서 연합뉴스는 일종의 권력이었어요. 과거엔 연합뉴스가 받아야 중앙언론이 받았습니다. 연합뉴스가 박남기 전 북한 재정부장 총살설을 보도했는데, 우리는 총살이 아니라 지방으로 유배 됐다고 보도했어요. 박 전 부장이 화폐교환 일정을 측근들에게 알려줘 금으로 바꾸게 했다는 겁니다. 연합뉴스에서 당연히 안 받았죠.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어요. 외신, 내신이 연합뉴스를 안 거치고 바로 받습니다. 간부 교양 때 천안함은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가르쳤다는 보도는 동아·조선·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후 연합뉴스가 따라오더군요.”

    그는 구글(www.google.com)에 접속해 열린북한방송 기사를 직접 인용한 외신보도들을 보여줬다.

    ▼ 북한 뉴스가 과잉 상태라고 보지 않나요.

    “외신에서 다루는 한반도 기사 열에 아홉이 북한입니다. 한국은 1이고요.”

    일본 언론에서 김정일은 셀레브리티(celebrity)다. 타블로이드 신문이 할리우드 스타 다루듯 보도한다. 로열패밀리 동선을 추적하는 기자를 따로 둘 만큼 호들갑을 떤다. 일본 언론이 돈을 주고 취재원을 관리하면서 북한 정보를 획득한 건 오래된 일.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김정은의 장성한 모습이라면서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는데, 오보로 드러났다. 한국도 일본을 닮아간다. 인터넷 뉴스가 만연하면서 “김정일이 대소변을 중국에 버리지 않고 북한으로 가져갔다”는 식의 확인하지 않은, 그럼에도 흥미로운 보도가 이어진다. 그 중심에 북한 전문 매체가 서 있다. 열린북한방송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찬호 통일부 정세분석국 총괄과장은 “북한 관련 정보는 대북정책의 중요 요소다. 주변국도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면 불안정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일링 시스템을 통해 날마다 받는 북한 내부 정보는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개중엔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소식도 적지 않다. 북한이 상식으로 이해되는 국가는 아니지만. 하 대표도 C씨를 비롯한 특정 인사 2명과 복수의 특정 매체를 거론하면서 “신뢰할 수 없다” “저널리즘 트레이닝이 안 돼 있다”고 꼬집는다. 문제는 첩보 수준이 활자화하면서 사실로 둔갑해버린다는 점. 확인하지 않은 보도를 토대로 논문을 쓰거나 정부가 발주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학자도 있다.

    언론인, 이념가

    하 대표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하는 이로 보였다. 돈벌이가 되지는 않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한다.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외부 실상을 알리는 일이 그렇다.

    ▼ 통일은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합니까.

    “하나의 헌법, 2개 체제가 바람직합니다. 중국-홍콩식이 옳아요. 홍콩은 중국 헌법 아래에 존재합니다. 2국 연방제가 아닌 흡수형 연방제가 바람직합니다. 아니 흡수형 연합제라고 적어주세요. 연방제라고 하면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같은 분이 (친북이라면서) 문제 삼을 수도. 그분은 저널리스트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 이념가가 돼버렸어요.”

    북한 전문 매체는 저널리스트라기보다 이념가가 운영하는 곳이 많다. 하 대표도 이념가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자건 학자건 북한을 알려면 내부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리스크가 동반하죠. 그래서 못하는 겁니다. 기성 언론은 능력도 안 되고 용기도 없습니다. 주민 의식을 바꿔야만 무능한 정권을 몰아낼 수 있어요.”

    ▼ 북한 민주화를 달성하고 통일을 이루면 할 일이 없어지겠습니다.

    “북한에 가서 방송권 얻어야죠. 동유럽 민주화 때 그런 사례가 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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