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CCTV만 달아도 해적 막을 수 있다”

해적 공격에 대한 대책 제언

  • 이오균│Hammersmith Bridge호 선장

    입력2011-05-20 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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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15일, 한국인 8명 등 21명이 승선하고 있던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으로 무사히 구출됐지만, 그 과정에서 석해균 선장 등이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4월21일에는 한진 텐진호가 피랍 위기에 처해 국민을 불안케 했다. 벌써 9번째 사건, 그렇다면 소말리아 해적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대책은 없는 걸까. 최근 인도양을 오가는 한 상선의 선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CCTV만 달아도 해적 막을 수 있다”

    지난 1월 22일 해군2함대사령부가 서해상에서 재연한 피랍 삼호주얼리호 선원구출작전에서 무장한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대원들이 해적들이 인질을 잡고 있는 조타실로 침투하고있다.

    나는 최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될 뻔했던 한진 텐진호와 같은 선종의 컨테이너 운반선(상선)에 승선 중인 경력 6년의 선장이다. 말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 남지나해의 망가이섬 부근을 몇 년째 항해하고 있고, 앞으로 약 8개월 이상 인도양을 지나 해적이 상시 출몰하는 지역인 아덴만을 한 달에 한 번 통과해야 하는 스케줄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번 한진 텐진호 관련 기사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한진 텐진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될 뻔했다는 기사를 인도양에서, 같은 선종의 조금 더 큰 컨테이너선에 승선하며 아덴만을 한발 앞서 지나온 후에 접했다. 그리고 여러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됐다. 우선 해적이 한진 텐진호를 공격할 당시 어느 시점에서 선원들이 기관을 정지하고 ‘선원대피처’로 피난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나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해적들이 승선하기 전에 선장이 대피를 명했는지, 아니면 해적들이 승선한 것을 확인한 후에 엔진을 멈추고 피난처로 대피했는지가 궁금했다.

    지금까지의 사례만으로 보면, 해적들이 선속(선박의 항해 속도) 18노트 이상의 선박을 공격해 피랍에 성공한 적은 없다. 또 건현(수면에서 상갑판 위까지 이르는 뱃전의 높이)이 8m 이상인 선박은 해적 공격을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업계의 상식이다. 한진 텐진호와 같은 중·대형선의 경우 최대속력이 24노트 이상이고 건현이 10m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적들이 공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특별한 엔진고장이나 선체의 감항성(선박이 통상의 위험을 견디고 안전한 항해를 하기 위해 필요한 인적·물적인 준비를 갖추는 것 또는 갖춘 상태)에 문제가 될 만한 큰 손상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해적들이 접근하고 위협사격을 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을 정지시키고 피신했다면,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루어 생각하면, 한진 텐진호의 경우 선속을 최대로 증가시키고 적당한 회피조선(보통 지그재그 조선)만 했어도 해적들의 승선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해적에게 쫓기는 한진 텐진호 선장의 입장에서만 보면, 공격을 받을 당시 해적의 승선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으니 판단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교의 측면(Wing Bridge)에 나가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자동소총으로 위협사격을 하기에 인명의 손상이 우려됐을 것이다), 선박의 뒷부분, 선폭 40m 선 미부 폭로갑판(비바람에 노출된 갑판)상의 공간으로 해적이 승선할 경우 적재된 컨테이너들로 인해서 해적의 승선을 확인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선장은 가장 안전한 방법, 즉 해적이 승선했다는 가정하에 기관 정지와 피난처로 대피할 것을 명령했다고 미루어 짐작은 된다.

    그럼 해적과 맞닥뜨리기 전에는 해적의 승선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정말 없을까. 사실 소속선사에서 관련 장비, 즉 CCTV나 동작 감지기 등만 선박에 설치해도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는 걸 이 업계의 관계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인 이유로 많은 선박이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안방 출입문만 단속해서야…

    “CCTV만 달아도 해적 막을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 1월 23일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정부는 선원피난처에 관한 규정을 만드는 등에만 관심을 쏟고 있어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도둑이 들 것에 대비한다면 당연히 대문과 담벼락, 창문 등을 먼저 손봐야 함에도 다른 곳은 놔둔 채 안방 출입문만 단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현업에서 일하는 선장이다 보니 해적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관련기관들이 심사숙고해 현재의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비용문제 때문에 선사들이 장비 설치를 주저하는 것이기에 정부기관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제도화한다면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먼저 적외선 CCTV의 설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해적의 승선을 감지할 수 있는 동작 감지기나 해적의 승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CCTV만 제대로 구비된다면 해적의 승선 여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피난처로의 피난시기를 결정하고 기관 정지 등 대응행동을 취할 수 있는 판단기준과 최적의 타이밍도 구할 수 있다. 또한 해적들을 소탕한 뒤 사법 처리문제를 결정할 때 이들의 해적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방탄조끼나 방탄헬멧 같은 선원 보호 장비를 선교 내에 비치하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해적의 위협사격은 대부분 선교를 겨냥해 이루어지고, 이는 대부분 선교 견시자의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방탄조끼, 방탄헬멧, 방탄고글 또는 유리창에 방탄필름을 붙이는 등의 노력만으로 선원의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선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선교 견시자의 안전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선교 견시자의 감시와 견시에 도움을 주는 야간적외선 투시경, 휴대용 서치라이트 등 견시장비도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접근하는 해적선을 미리 발견할 수만 있다면 피랍 위험을 벗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이들 장비의 구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적이 승선한 이후 해적에 의한 선내 선원수색작업을 지연시키기 위해 선원 거주구역 내의 통로 및 계단, 갑판조명등, 기관실 조명등 등의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를 ‘선원피난처’ 내에 설치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원피난처와 연결된 통로와 각종 수밀구획문(Water Tight Door)에도 이중 잠금장치를 설치해 해적들이 선원피난처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되도록 늦춰야 한다. 이는 각종 선내필수계기들을 해적들의 파괴행위로부터 보호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적들은 승선 시 대부분 선원 거주구역 외부비상계단을 이용해 선교에 침입한다. 따라서 폭로갑판 상부의 거주구역 외부 현측에 2~3개의 비상계단을 격납할 수 있게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해적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유용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계단의 위, 아랫부분을 떼어내어 격납해 해적이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도록 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침입에 취약한 거주구역 외부 창문과 출입문들을 견고한 철제 재질로 강화하거나 거주구역 창문에 방탄유리나 방탄필름을 부착하는 것도 해적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적의 주요한 침투경로인 선미 양현에 GS (General Service) 펌프를 이용한 해수분무장치를 설치한다면 해적의 승선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해적의 승선 여부를 확인할 장비(CCTV나 동작 감지기 등)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적이 근거리로 접근하다가 퇴각하지 않을 경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해적이 승선했는지를 모른 채 회피조선만 하다가 선박과 같이 피랍되거나, 해적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선박을 세우고 ‘피난처’로 피신하는 것이다. 약간의 회피조선과 선속 증가로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배를 세움으로 써 해적들이 승선토록 대문을 열어주는 형국도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해적들이 자동소총으로 위협사격을 하기에 인명사고의 우려가 있고, 야간일 경우 견시에 상당한 제한을 받는 지금 상선 대부분은 이와 같은 상황에 내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사고 전 경고신호에 귀 기울여야

    “CCTV만 달아도 해적 막을 수 있다”

    지난 4월 22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국군작전본부장이 한진텐진호 구출작전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내가 타고 있는 상선의 경우, 승선 초 선주사에 요청해 해적의 승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CCTV 8대를 선미부와 양현 선미 측에 설치했고, 각 5개씩의 방탄조끼와 방탄헬멧, 각 3개씩의 야간투시경과 휴대용 서치라이트 등을 구비했으며 선원피난처를 임시로 마련한 후 자체 VHF안테나를 설치해 근거리 통신체계를 확보했다. 더불어 해적 공격에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꾸준히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송출선박 대부분은 내가 타고 있는 상선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대응방안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선박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열악할수록 선장들의 책임만 더욱 커진다.

    현재 일부 해적들은 선원피난처에 침입하기 위한 금속절단기까지 휴대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고, 선박의 피랍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항해장비나 선내계기 등을 고의로 파괴하거나 선체에 불을 지른 사례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한진 텐진호의 경우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대형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경고신호라 할 수 있는 조짐이 보인다. 이번 한진 텐진호가 바로 대형사고가 나기 전의 경고신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관기관과 해운단체들, 선박승조원들까지 모두가 힘을 모아 진지하게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해적행위와 관련된 사항들과 한국 선원들의 근로조건 향상과 관련해서도 정부 관련기관과 해운노조, 해운단체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저 선원들이 ‘해적들의 피습 또는 군사행동으로 인한’ 승선 중 부상, 사망 등 기타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사의 단체협약이나 해외취업선원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에 명시된 상병 보상규정 이외에 인적, 물적 피해를 당한 선원에 대한 추가적인 위로비, 치료비나 보상비의 지급과 관련된 규정이 선박직원법이나 선원법 등에 명문화됐으면 좋겠다. 위험지역을 통항할 때 수령하는 특별 위로금과 해적행위로 인해 피해를 본 선원에 대한 상병보상규정 등이 적용되는 해역도 지금보다 더 확대돼야 할 것이다. 해적행위가 벌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선원들의 자구행위나 정당방위로 인한 해적들의 부상, 피살과 관련 선원들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아덴만에서 대(對)해적업무에 협력하고 있는 관련 당사국들 간에 사법적인 협정이 체결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국토해양부가 추진 중인 선박 모니터링 시스템(VMS)의 적용범위도 넓어졌으면 좋겠다. ‘한국국적의 상선’에서 ‘한국선원이 단 1명이라도 승선한 타 국적 송출선박’으로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된다면 한국 선원의 인명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미화 7달러에 불과한 선원들의 식비를 인상하는 것, 선원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 혜택, 근로소득세 면제 등의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와 관련기관이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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