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삼성과 다툰 천지인 스토리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한다”

삼성과 900억 소송 벌인 ‘IT산업의 다윗’ 조관현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2-03-21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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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송에 도움 준 대법원 판사 삼성 임원으로 자리 옮겨
    • ‘부러진 화살’보다 ‘천지인 스토리’가 더 흥미로울 거예요
    • “조관현 씨는 삼성에 찍혀 있다”
    • 눈에 불을 켜고 기술 사려는 미국, 밑에 두고 컨트롤하려는 한국
    • 천지인보다 더 편리한 훈민자판 출시 준비 중
    “삼성과 다툰 천지인  스토리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한다”
    조관현(42) 아이디엔 대표는 혁신가다. 개발자라고 하긴 뭣하다. 스티브 잡스가 그렇듯 엔지니어 백그라운드가 없다. 그는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규정한다. ‘한국 IT산업의 다윗’으로 불린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한국인 상당수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IT기기에서 사용하는 한글 입력 시스템 ‘천지인’ 발명자. 그는 ‘한글 초성 검색’(전화번호부 검색 시 ‘홍길동’을 입력하지 않고 ‘ㅎㄱㄷ’만 적어 넣는 방식)을 비롯해 특허 15개를 갖고 있다.

    “조관현 씨는 삼성에 찍혀 있다”

    “큰 기업과 다툼을 벌이니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았어요. 대기업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다, 신상에도 나쁘다는 걸요. 대기업이 저를 테러리스트 보듯 했어요. 얼마 전 삼성 임원 한 분을 만났는데 사안을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저한테 피해의식을 갖고 있더군요.”

    그가 만난 삼성 임원은 “조관현 씨는 삼성에 찍혀 있다. 한국에서 그게 참 안 좋다. 불리하고, 힘들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조금 황당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요. 형이 영화 쪽에서 일해요. 얼마 전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천지인 스토리’가 ‘부러진 화살’보다 훨씬 재밌겠더라고요. 제 스토리를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할 겁니다. 뒷얘기가 흥미로운데다 언론사도 관련돼 있어요. 이를테면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삼성과의 소송과 관련해 촬영을 엄청나게 해간 적이 있어요. 재연 장면도 찍고 그랬는데 결국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불방 뒷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는 수줍음 타는 성격인데다 마흔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이다. 사석에서 만나면 박사과정 학생쯤으로 여길 얼굴이다.

    “글자에 집중을 못해요. 어릴 적 공부머리도 별로였고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글을 겨우 깨우쳤어요.”

    난독증 비슷한 게 있다고 했다. 책 읽는 게 서툴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식을 주로 얻는다. 신문 읽는 일도 별로 없다. 천지인을 개발한 것은 1995년 12월 14일 뉴욕대 도서관에서다.

    “기말고사 때라 도서관이 상당히 붐볐습니다. 일반 책상이 꽉 차 PC를 올려놓은 테이블에 앉았어요. 책을 올려놓을 수가 없어 삐딱하게 앉아 공부했는데, 컴퓨터 자판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ㅣ,ㆍ, ㅡ 키를 만들어서 필기 순으로 글자를 입력하면 단모음 복모음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든 거예요. ㆍ을 활용하면 정말 편리해지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튿날 도서관에서 훈민정음 관련 책을 찾아봤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을 영어로 번역한 게 있었는데, 천지인이라는 제자(制字) 원리가 담겨 있더군요. 한글 창제 시의 제자 원리인데 점(ㆍ)을 막대기로 바꿔 쓰다 보니 우리가 잊고 산 거죠.ㅣ,ㆍ,ㅡ로 모든 모음의 조합이 가능하게끔 자판을 설계해 1996년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한글은 IT 기기에서 문장을 빠른 속도로 입력하는 데 최적화한 문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는 모음에 천지인을 도입한 선조 덕분이라면서 웃었다.

    천지인을 개발한 1995년 12월 14일부터 ‘오늘’까지 그가 겪은 일은 최근 한국을 달구는 혁신, 창조력 관련 논쟁에서 뜻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정치권을 기웃거리기 전인 2011년 3월 한 언론사가 마련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나 SK, LG는 자기들한테만 납품하도록 조건을 묶어버립니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세계에서 십 몇 위 되는 시장을 가졌는데, 삼성동물원에 갇혀 있으니까 너무 작아지는 겁니다. 크지도 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

    안 원장은 이런 말도 했다.

    “미국 예로 들면 포레스터가 생기고, 마이스페이스가 포레스터를 제치고 1위가 됐는데, 페이스북이 나오면서 1위가 바뀌었습니다. 절대강자 구글도 빙(마이크로소프트)이 위세를 떨치자 검색 알고리즘을 재정비하는 등 치열한 경쟁이거든요. 과보호석에서 그냥 편하게 1등하는 게 아니고 실력으로 1위를 유지하죠. 그게 건강한 생태계입니다. 한국에선 편하게 1등하고, 이익 챙기고, 노력 안 하고, 몇 년 지나 외부에서 들어온 적 때문에 기반이 흔들려서 나라 전체가 살기 힘들어지는 구조가 반복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안 원장의 인식이 타당하다면 조 대표는 ‘세상 물정 모르고’ 동물원 밖에서 살려고 했다. 그러면서 8년(2002~09년) 가까이 소송하면서 보냈다. 삼성과 이른바 ‘900억 소송’(휴대전화 3000만 대×1대당 사용료 3000원)을 벌인 것이다. 이 소송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들을 제외하곤 없다. 양쪽이 합의하면서 관련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해서다.

    ‘아디이엔’은 ‘한글 스마트 주소’ 특허를 바탕으로 사업하는 곳이다. 한국 방송사 콘텐츠를 IPTV 방식으로 미국에서 방영하는 NTV라는 기업도 경영한다. 포스코가 하던 사업을 인수한 것이다. 창업한 첫 회사는 1999년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만든 ‘글로벌데스크톱’이란 이름의 클라우딩 서비스 회사다. 최근 클라우딩 컴퓨팅이 각광받고 있으니 선구자적 아이디어를 가졌던 셈이다. 클라우딩은 PC 또는 개개의 서버가 대규모의 컴퓨터 집합(cloud·구름)으로 옮겨가 개인 소유 PC의 하드디스크에 소프트웨어나 자료를 담아놓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프로그램과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너무 일찍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국에도 웹하드 서비스가 없을 때거든요. ‘글로벌데스크톱코리아’라는 회사를 한국에도 세웠는데, 잘 안됐죠. 2001년엔 웹하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드라이브’를 한국에서 시작했다 접었습니다. 지금은 웹하드 사용자가 많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빨랐습니다.”

    그가 천지인을 들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LG전자다.

    “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 회사를 잠시 맡아서 경영하던 때입니다. LG 계열사 사장 한 분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분을 통해 LG전자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수차 만났습니다. 마지막 미팅이 끝나고 2주일 후 LG전자가 쓰는 방식이 천지인보다 낫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LG 입력 방식은 ‘나랏글’(현재 LG 휴대전화가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나랏글보다 훨씬 떨어지는 입력방식을 사용했는데, 자기네 방식이 낫다는 겁니다. 조금 황당했습니다. 게다가 SMS(문자메시지) 기능이 퀄컴이 만든 칩의 모듈에 들어가 있어 서비스하는 것일 뿐 시장성이 없는 구색 맞추기라는 겁니다. LG 사람들이 ‘조관현 씨, 누가 휴대전화에서 문자 기능을 쓰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두 번째로 문을 두드린 곳이 삼성전자.

    “삼성에는 인맥이 닿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가 소비자제안마당을 운영했는데 그곳에 제안서를 올렸습니다. 제안을 올리고 3주쯤 지났을 때 편지가 왔습니다. 전화카드(5000원) 한 장과 함께 도착한 편지 내용은 정말로 엉뚱했어요. ‘한글은 디자인학적으로 영어에 비해 떨어집니다. 세계화 시대엔 영어가 더 많이 쓰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제안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의 내용이 담겼거든요. 황당해서 편지에 이름이 적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천지인 방식이 참 좋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더니 ‘내가 전문가다. 오랫동안 이쪽 일을 했다’면서 ‘디자인적으로 한글은 영어보다 떨어진다’는 식으로 답하더군요. 더는 할 말이 없었죠.”

    그가 1996년 출원한 천지인 특허는 우여곡절 끝에 2011년 국가표준이 된다. 나중에 표준이 될 특허를 들고 대기업을 찾았다 무시당한 사연을 들으면서 구글을 다룬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현 구글 부사장)이 나중에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 표준이 되는 OS(운영체제)를 들고 2004년 삼성전자를 찾아왔을 때의 일화가 ‘플렉스에서(in the plex)’라는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에 서술된 루빈의 기억이다.

    “내 돈으로 항공권을 끊어 한국에 갔다. 청바지를 입고 동료와 함께 삼성의 아주 큰 회의실로 갔다. 감색 정장을 입은 사람 20명이 서 있었다. 부문장(Division head)이 회의실에 들어오자 간부들이 자리에 앉았다. 부문장은 프레젠테이션을 듣더니 ‘8명이 일하는군요. 우리는 2000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웃었다. 가격에 대한 얘기가 오가기도 전에 협상이 결렬됐다.”

    루빈은 이듬해 5000만 달러를 받고 안드로이드를 구글에 팔았다. 천지인 얘기로 되돌아가보자.

    그가 LG전자, 삼성전자에 천지인을 팔려다 실패한 직후 정부가 전화기에서쓰는 한글 입력 시스템의 국가표준을 정하겠다고 나섰다(휴대전화 제조업체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국가표준은 2011년이 돼서야 확정된다). 그는 천지인을 표준 후보로 제안한 후 아버지 건강 탓에 중단한 학업을 마치고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997년 말 한국에 돌아왔더니 느닷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삼성전자 쪽에서 천지인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온 것이다.

    “삼성전자 상품기획부에서 당시 국가표준으로 제안된 한글 입력 방식 중 천지인이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삼성 측에서 ‘8개월 동안 당신을 수소문했다. 미국 출장까지 가려고 했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3년간 비독점으로 천지인을 사용하는 대가로 2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외환위기 탓에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3년 후에는 대가를 훨씬 잘 쳐주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회사에 비싸게 팔게끔 도와주겠다’ ‘국가표준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당근도 제시했습니다. 나이가 어려 순진할 때라 삼성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삼성 쪽에서 책임자 결재가 나지 않는 겁니다. 두 달쯤 지난 후 결재가 났다면서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처음 보는 과장이 ‘우리도 비슷한 게 있지 않아?’라는 식으로 동료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책임자가 안 계시니 나중에 도장 받은 계약서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1998년 3월의 일입니다. 그 계약서를 ‘오늘’까지 보내주지 않고 있어요. 계약서가 오지 않아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 전화했더니 천지인과 유사한 특허를 삼성이 먼저 획득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 특허가 1995년, 천지인이 1996년입니다. 삼성이 8개월인가 빨라요. 사정이 이런데 왜 날 찾아 헤맸다는 건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았죠. 삼성 특허를 봤더니 제 거랑 비슷하긴 했습니다.”

    특허가 두 개인 ‘이상한’ 상황

    1995년 삼성이 획득한 특허 명칭은 ‘문자입력코드 발생장치 및 방법’, 그가 받은 특허 이름은 ‘콤팩트 한글 키보드’다. 1998년 말 그는 LG전자와 다시 접촉했다.

    “깍두기 전화기라고 기억하세요. 폴더형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사이즈가 작은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1998년 10월께 삼성전자가 천지인이 장착된 ‘깍두기 전화기’를 내놓습니다. 지인을 통해 이번엔 LG정보통신(2000년 LG전자에 합병된다)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삼성 휴대전화가 채택한 한글 입력 시스템이 우리 것보다 낫더라. 왜 LG에는 제안을 안 했느냐’고 말씀하더군요. ‘사실은 LG에 먼저 제안했습니다’라고 답했더니 누구한테 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연구소장 이름 대기가 뭣해서 사원 이름을 댔습니다. 사장이 곧바로 연구소에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이튿날 연구소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구석에 앉고 가운데 소장이 앉았습니다. 연구원 예닐곱 명이 배석했고요. 한 연구원이 소장에게 휴대전화 한 대를 가져다주더군요. 삼성 깍두기 전화기였습니다. 소장이 ‘작기는 작네’라고 말하더군요.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삼성 휴대전화 처음 보세요’라고 물으니 ‘우리가 왜 봐요’라고 답하면서 저를 째려보는 겁니다.”

    LG는 천지인을 채택하지 않았다.

    “LG는 지금은 KT로 소유권이 넘어간 나랏글을 선택했습니다. LG가 삼성 따라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더라고요. 천지인을 채택하기 전 삼성은 미국 기업이 개발한 T9 방식을 라이선스해서 썼습니다. 천지인 이전 삼성 것 역시 상당히 불편했죠. T9 쪽에서 천지인에 관심이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T9 쪽과 제휴하는 형태로 산요 휴대전화에 적용했죠.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이었는데 돈을 벌지는 못했어요. 산요 휴대전화가 한국에서 거의 안 팔렸거든요.”

    천지인이라는 같은 이름의 방식을 두고 두 개의 특허가 존재하고, 두 군데서 특허권을 행사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삼성전자 특허가 공개되기 전에 제가 특허를 출원했더군요. 삼성 친구들은 PDA 등의 문자인식 벡터를 연구하면서 개발한 거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지금껏 휴대전화에서 사용해온 것은 제가 등록한 것과 같고요. 물론 천지인이라는 명칭을 처음 쓴 것도 접니다. 삼성 특허는 ㆍ이 아니라 →를 사용합니다. 게다가 미완성 발명이었습니다. 그 알고리즘대로는 글자가 온전하게 구현이 안 됩니다. 또 하나 이상했던 게 특허 바꿔치기를 의심해볼 만한 정황이 있었어요. 나중에 특정 사항을 특허에 추가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우리 변리사가 그런 식으로 바꿔치기하는 게 당시엔 어렵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본인도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허를 추가한 의혹과 관련해선 증거불충분으로 삼성이 이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만….”

    그는 2002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삼성전자는 그의 특허를 무효화하고자 했다. 손배소송과 별도로 특허 관련 소송이 진행됐다. 특허심판원에서 삼성이 이겼다. 특허무효 소송은 특허심판원(1심), 특허법원(2심), 대법원(3심) 경로로 다툰다. 손배소송 1심도 당연히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노무현 대통령 쪽하고 가깝던 법무법인 덕수가 저를 대리했는데, 덕수에는 특허팀이 없었습니다. 김형태라고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분이 이른바 ‘900억 소송’을 질러버렸습니다. 김○○이란 분이 삼성전자 고위인사를 만나서 원만하게 합의할 수 있다고도 했고요. 소송을 정치적으로 풀겠다고 하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삼성이 제 특허를 무효화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덕수 쪽에서 특허는 우리가 잘 모르니 알아서 대처하라고 하더군요.”

    “영화 같은 반전”

    특허법원(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패소하고 난 후 지인이 판사 한 분을 소개해줬습니다. K 판사님이라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셨는데 특허가 전문인 분이었습니다. 식사하면서 삼성 특허랑 제 특허를 보여드렸습니다. 쭉 읽어보더니 덮어버리시더군요. 대법원에 올라오면 당신 관할이래요. K 판사님이 특허재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네 명밖에 없다고 말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허 쪽 판사로 일하다 변호사 개업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K 판사님이 그중 한 분을 소개해주시더군요. 그분을 찾아갔더니 우리가 삼성 소송을 맡은 게 있어서 못한다고 답하셨어요. 한국에서 삼성과 소송하는 게 어려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앤장·태평양에도 문의한 적이 있는데 삼성 일을 하는 터라 제 소송을 맡을 수 없다고 했거든요. K 판사님이 다른 변호사를 한 분 또 소개해주셨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로 K 판사님 선배였는데, 작은 로펌이었습니다. 그분이 특허법원에서 사건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우리 쪽도 삼성특허 무효화에 나섰습니다. 삼성전자 특허가 미완성 발명이란 이유로 우리가 낸 무효소송 1심(특허심판원)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제 특허는 삼성이 낸 소송 2심에서 되살아났고요. 삼성 특허가 죽고 제 특허가 되살아났으니 한마디로 삼성이 ‘완패’한 거였죠. K 판사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저한테는 은인 같은 분이죠. 그런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특허소송에서 반전을 이룬 뒤 변호사와 그는 환호했다.

    “변호사님도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받고 그랬었죠. 서초동에서 우리 소송이 큰 관심거리였거든요.”

    삼성 특허가 미완성 발명으로 ‘죽고’, 그의 특허가 ‘되살아나면서’ 손해배상 소송 2심은 보상 액수 중심으로 재판이 이어졌다.

    “특허소송에서 우리가 이긴 뒤 얼마나 손해를 입었느냐를 두고 민사재판에서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삼성은 ‘조관현 특허가 맞다 치자, 그렇더라도 10억 원도 안 되는 가치’라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오래전에 비독점 조건으로 2억 원을 받고 3년간 쓰겠다는 제안에 제가 동의한 것을 제 특허의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의 근거 중 하나로 내세웠고요. 손해액이 깎이고 또 깎여서 400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선에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제가 입은 손해 액수가 정리돼가고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젠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님과 제 주변은 ‘잘됐다’ ‘그간 고생했다’는 분위기였죠.”

    그는 ‘영화 같은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과 다툰 천지인  스토리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한다”

    스마트폰용으로 제작된 훈민자판

    “K 판사님이 삼성으로 직장을 옮긴 겁니다. 우리 변호사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변호사님이 삼성으로 가신 판사님께 혹시 천지인 때문에 갔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다’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K 판사님이 병 주고 약 주고 하신 셈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죠. 여하튼 이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K 판사님을 저한테 소개해준 지인이 느닷없이 연락해서 20억~30억 원에 합의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기각할 때와 다르게 파기환송하는 경우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데 저 같은 경우는 통상보다 대법원 판결이 빨리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민사소송 2심 손해배상 액수가 거의 정리되고 판결만 남아 있을 때 대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면서 보통의 경우처럼 법리만 살펴본 게 아니라 이례적으로 알고리즘은 어떻고 하는 식으로 사실을 다뤘습니다. 이건 곁가지지만, 삼성 특허는 휴대전화에서 지금 쓰이는 천지인과는 다른 스트로크 방식인데 그걸 개발한 삼성 직원들이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다면서 소송을 낸 적이 있습니다. 직무 발명이라 그 사람들이 이기기 어려운 소송인데 삼성이 상당히 많은 돈을 주고 합의해준 것으로 압니다. 제 처지에선 그것도 의심스럽죠. 그 사람들이 뭔가 비밀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제 건은 특허 소송치곤 사건이 너무 커졌습니다. 삼성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10원을 보상하든 1000억 원을 보상하든 삼성 처지에선 똑같대요. 자존심, 이미지에 관련한 것이어서 그렇답니다. 얼마 전 만난 삼성 전무님도 제가 ‘알박기’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더군요. 내용을 잘 모르는 삼성 사람들은 저를 나쁜 놈으로 여기는 거예요, 지금도.”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을 보좌하는 직위다. 대법관이 고등법원에서 올라온 재판기록을 일일이 검토할 수 없으므로 재판연구관의 도움을 받는다. 재판연구관의 법리 해석 등은 대법원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에서 특허를 다루던 재판연구관이 직무와 관계가 있는 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것은 비판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K 전 판사는 대법원을 나온 뒤 삼성으로 곧바로 옮긴 게 아니라 1년의 공백기를 거쳤다.

    K 전 판사는(현 삼성전자 전무)는 조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을 때 지인이 조 씨를 만나달라고 부탁해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조 씨가 보여준 관련 서류를 보고 승소하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라고 얘기해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 씨가 대리인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특허를 잘 하는 변호사 3~4명을 한 차례 추천해준 적이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소개해준 기억은 없습니다. ‘대법원에 올라오면 내 관할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2006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 직을 그만두고 사표를 내 변호사로 개업했습니다. 1년 후인 2007년 3월 삼성에서 특허사건이 크게 증가하면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옮겼습니다. 당시 조 씨의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연락을 해서 천지인 사건에 관해 물어보기에 천지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변해준 적이 있습니다. 또 제가 나서서 조 씨의 변호사나 지인에게 합의를 부탁하거나 회사의 견해를 전달한 적도 없습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스트로크 방식 특허를 개발한 삼성 직원의 소송 및 합의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당시 해당 직원과 서로 비밀유지 약정을 맺었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그는 삼성과 합의했다. 2009년 삼성과 그는 각각 소를 취하했다.

    “지치더군요. 앞으로 시간이 또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30대를 삼성과 다투면서 보냈습니다. 40대까지 소송을 끌고 가긴 싫었어요. 파기환송심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했고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관련 폭로를 해서 난리가 났는데, 천지인보다 훨씬 큰 건도 삼성이 그렇게 잘 다루는데 내가 되겠느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00억 소송은 결국 무승부라고 하긴 어려운 무승부로 끝났다.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바꾼 발명을 했는데도 그가 얻은 것은 많지 않았다.

    “삼성이 저한테 돈을 지불하고 천지인 특허의 통상 실시권을 받아갔습니다. 삼성도 자기네 특허를 살려야 했습니다. 1심(특허심판원)에서 우리가 무효화시켜버린 삼성 특허는 제가 소송을 취하해서 살아났습니다. 서로 소송을 취하하면서 특허 관련 파기환송심, 손해배상 2심 재판 등이 모두 열리지 않았죠. 삼성은 끝까지 천지인은 자기네만 쓰고 싶어했습니다. 합의문에 LG전자와 팬택에는 제 특허를 주지 말라는 내용을 넣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제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팬택 박병엽 부회장을 만나 함께 삼성 욕하면서 의기투합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팬택도 천지인은 안 쓰더군요. SK브로드밴드, 셀런, 방위산업체인 ○○이 저한테 사용권을 받아갔습니다.”

    “통상 실시권을 주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액수요? 공개하지 않는 게 합의 조건이에요. 얼마 못 받았어요. 대법원에서 뒤집혔는데, 많이 줄 턱이 있나요. 삼성이 제 특허를 사용하는 형식이니 저로서도 의미가 있었고, 합의문에 제가 발명한 ‘문자 다이얼링’(전화번호가 아닌 ‘홍길동’ 같은 문자로 전화를 거는 방식)을 나중에 삼성 휴대전화에 넣는 것과 관련한 내용이 반영됐습니다. 전화번호를 없애고 문자화하는 게 제 발명이에요. 아직 요구를 안 했는데, 언젠가 넣어달라고 부탁해야죠. 그런데 삼성에 찍혀 있어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 합의와 관련해선 “삼성전자가 조 대표와 합의할 당시 서로 비밀유지 약정을 맺었기 때문에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천지인, 국가표준이 되다

    2010년 중국이 소수민족 언어 표준화를 명분으로 한글 입력자판을 국제 표준화하겠다는 이른바 ‘한글공정’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한글 입력 방식 국가표준 제정에 다시 나선 것. 그는 천지인 특허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기증해버렸다. LG 휴대전화가 사용하는 나랏글 특허권자인 KT와 ‘다른 천지인’ 특허권자인 삼성전자도 보유 특허에 대한 사용권을 휴대전화 제조업체 등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3월 2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반 휴대전화의 한글자판 국가표준으로 ‘천지인’ 방식을 채택했다. 스마트폰에는 천지인·나랏글·스카이 등 복수표준이 채택됐다. 이로써 천지인은 국가표준이면서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한글입력 방식이 됐다.

    “일부 기업이 반발해 스마트폰에서는 표준이 여러 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 내비게이션 제작 업체는 천지인 입력 방식을 무료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차량용 내비게이션의 한글 입력이 불편했던 것은 제작 업체가 한글 입력 방식을 자체 개발하거나 구입해 써야 했기 때문이다. 특허 보유자들이 기술을 개방하면서 PC 자판 방식만 지원하던 아이폰 같은 기기에서도 천지인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천지인의 형제 격이라면서 ‘훈민자판’이란 이름의 한글 입력 방식 도안을 책상에서 꺼내 보여준다. 1997년 출원한 특허인데,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훈민 자판은 숫자 키(12개)와 방향 키(상, 하, 좌, 우)를 이용해 ‘두 손’으로 한글을 입력하는 것으로 한글의 초성은 항상 자음으로 시작하는 특성을 이용해 자음이 입력되면 방향키가 모음 키로 자동 전환하고 글자조합이 끝나면 다시 방향키 역할을 하도록 고안했다. 따라서 자음과 모음을 거의 동시에 입력할 수 있다. 그는 12년 전 고안한 훈민자판을 최근 스마트폰, 태블릿PC 터치스크린에 알맞게 일부 수정했다. ㄱ과 ㅋ 사이를 동시에 터치하면 ㄲ이 입력되는 방식을 비롯해 몇 가지를 추가한 것. 쌍모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입력할 수 있다.

    “PC 자판이 본래 영어를 입력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한글을 영어용 자판에 끼워 맞춘 게 맘에 들지 않았어요. 한글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민자판은 기존 휴대전화보다 자판 크기가 큰 스마트폰, 태블릿PC에 딱 알맞습니다. 특히 장문을 입력할 때 속도가 빠릅니다. 키를 134회 누르면 애국가를 입력할 수 있어요. 컴퓨터 자판의 127회와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천지인은 202회를 터치해야 애국가를 입력할 수 있고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썩혀두긴 아까운 특허예요. 상업화해보려고요.”

    훈민자판은 상당히 편리해 보였다. 태블릿PC 등에서 긴 글을 적을 때 특히 유용할 것 같았다. IT업계 한 인사가 그를 두고 평한 대로 “단순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는 공부를 잘 못했어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잘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교육은 사람의 장점을 간질이는 것 같습니다. 칭찬을 통해 동기 부여를 해요. 그런 교육을 받아선지 생각이 자유로운 편입니다. ‘불편한데 왜 이렇게 안 되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경제 구조가 창의력 발휘를 막는 것 같아요.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작은 기업이나 개인이 탁월한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사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 했으면 부자가 됐겠다고 찔러봤다.

    “더 부자가 됐을 수도 있는데….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오다 페이스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대학 다닐 적 4학년 선배와 지금의 페이스북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공유했습니다. 아이디어를 공유한 것만 가지고 그 사람이 소송을 걸었어요. 특허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결국 페이스북이 엄청난 돈을 주고 합의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창의적인 게 나오면 대기업이 눈에 불을 켜고 사려고 해요. 우리처럼 컨트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폰 나왔을 때 대기업이 한국 출시를 막았잖아요. 소프트웨어에서 지금보다 앞서 갈 수 있었는데 대기업 탓에 늦어진 측면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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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허구한 날 싸움하면서도 대기업에 빌붙어 살고 있죠, 뭐”라고 덧붙였다.

    안철수 원장이 내놓은 ‘동물원론’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그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뉴스 같은 것을 잘 안 읽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하면서 서양 것을 받아들여 좇아가는 데 익숙했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는 시각이나 프레임이 약해요. 지금은 우리도 따라갈 만큼 따라가서 세계 최초가 아니면 안 되잖아요. 예전에는 외국 특허를 어떻게 피해서 비슷하게 흉내 낼 것인지에 연구를 집중했습니다. 카피하거나 특허를 우회하는 기술을 개발한 겁니다. 최근엔 기존에 있는 기술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데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외국 특허를 기반으로 삼은 뒤 그것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은 아직 서툴죠.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만 우리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아 한국적인 것은 수익성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우문을 던졌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결코 아니죠. 독특한 것을 개발해야 해요. 우리 것에서 나온 어떤 것을 팔아야 한다는 겁니다. 서양 흉내 내는 것은 이젠 유치한 일이에요. 서구가 모르는 것, 그들과 다른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성 검색은 다른 사람이 먼저 특허를 출원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특허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간단한 기술을 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한국만의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거죠. 기술은 외국에서 배우는 거였거든요. 한국 문화에 뿌리를 둔 기술은 개발할 생각조차 안 한 겁니다. 선진국만 좇아가면서 살기엔 우리가 너무 커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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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스마트 주소

    아이디엔의 주력 사업은 한글 ‘스마트 주소’다. PC 혹은 스마트폰 주소창에 한글로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하는 기술이다. www.donga.com, shindonga.donga. com을 입력하는 대신 ‘동아일보.신문’ ‘신동아.월간지’ 식으로 사이트를 찾는 것이다. `기업 혹은 제품 정보를 알고자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 영어로 된 주소를 일일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www.hyundai. com/kr보다 ‘현대자동차.회사’라는 주소가 편리하게 마련이다.

    “한글 인터넷 주소는 의미가 상당해요. 수준 높기로 소문난 글자를 갖고 있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영어 주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중국은 벌써부터 자국어 주소를 사용하고 있어요. 미국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를 찾을 때 포털을 거치는 게 아니라 주소창에 nytimes.com(뉴욕타임스)이라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입력하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영어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면구스럽지만 스마트 주소는 우리나라가 이룩한 또 하나의 혁신적 발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 뿌리는 제 주 관심사이던 한글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한글의 우수성을 100% 활용하는 ‘새로운’ ‘미래의’ 주소 체계예요. ‘한글의 나라’가 한글 대신 영어로 주소를 적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가 스마트폰 주소창에 ‘소녀시대.음악’이라고 입력해보라고 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이트, 음악을 듣는 사이트가 나타났다. 특정 사업자가 ‘소녀시대.음악’이라는 인터넷 주소를 선점한 후 소녀시대 관련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라면 ‘섹스의모든것.동영상’ 식으로 주소를 등록하면 된다.

    “전화번호도 없앨 수 있습니다. 인터넷 주소도 원래는 ‘111.222.221.223’하는 식의 숫자였죠. 그것을 nytimes.com처럼 문자로 바꾼 겁니다. 스마트 시대가 열렸는데 전화번호는 100년 전 그대롭니다. 문자로 바꿀 수 있어요. 이를테면 ‘조관현.폰’을 클릭하면 바로 저한테 연결이 되는 거죠. ‘신동아.대표번호’라고 입력하면 신동아 편집실로 연결되고요.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고 전화번호부에서 초성 검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음성으로 ‘조관현.폰’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저한테 전화를 걸 수 있고요. ‘우리부동산.청담동’ ‘세일즈맨.현대자동차’식으로 등록할 수도 있겠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닉네임으로 등록할 겁니다. 별명이 싸움닭이라면 ‘싸움닭.대치동’ 하는 식으로요. 삼성과의 합의문에 들어간 스마트 다이얼링이 바로 이거예요. 시기를 봐서 삼성에 넣어달라고 부탁해봐야죠.”

    잘만 하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꿔놓을 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주소와 문자 다이얼링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존재하는 정보를 한국어 단어로 호명하는 겁니다. 스마트 주소가 인터넷 환경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우리말이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설명해도 잘 못 알아들어요. 인터넷은 영어 기반인데 한글로 되겠느냐는 투예요. SKT, KT, LGU+도 반응이 비슷합니다. 정부는 한글 주소에 형식적으로라도 관심은 있는데, 제가 특허를 갖고 있으니 도와주기도 뭣하고 손놓고 있기도 뭣한 상황인 것 같고요. 우리 회사가 망할 수는 있어도 한글 주소가 퍼져나갈 겁니다. 전화번호는 역시 문자로 대체되는 쪽으로 나아갈 거고요. 이름과 번호를 각각 입력해 매핑하는 게 요즘 시대에 안 맞거든요”

    한국을 먹여 살리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이다. 좋은 일자리 대부분을 대기업이 창출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대기업이 만든 공산품은 한국의 자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저커버그는 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인과 이따금 비교된다. “저커버그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이라는 질문이 회자된다. “한국에선 왜 잡스가 나오지 않느냐?”는 화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다.

    조 대표가 “영화로 찍기로 했다”면서 밝힌 천지인 스토리는 그가 선 곳에서, 그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사실’일 것이다. 반대편에 서서, 반대편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사실’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일하는 것은 앞으로도 힘들 것 같아요. 동등한 조건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밑에 가서 일하기도 어렵고요. 아무리 좋은 것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써주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룩한 성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다른 이가 만들어낸 아이디어에 대해선 인색한 것 같아요. 미래의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투자하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 국가로 나아가는 필요조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한국에서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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