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위철환 신임 대한변호사협회장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3-02-22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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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非서울, 非판·검사 출신 첫 직선제 회장
    • ‘무전유죄 유전무죄’ 없어야 건강한 사회
    • 사법시험은 소외계층 위한 마지막 비상구
    • 심리불속행제도 개선, 민사사건 국선변호 확대해야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1952년 창립된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첫 직선제 회장을 배출했다. 당선인은 수원에서 변호사 활동을 해온 위철환(55) 변호사. 결선투표까지 이어진 선거에서 위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현(57) 변호사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제47대 변협 회장에 올랐다.

    첫 직선제 회장이라는 점 말고도 위 회장의 당선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우선 위 회장은 그간 변협을 좌지우지해온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가 아니다. 판·검사 출신이 아닌 변협 회장이란 점도 기록이라면 기록. 전남 장흥이 고향인 그는 서울 중동고(야간)와 서울교대, 성균관대 법대(야간)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최근까지 변협 회장을 지낸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의 당선이 왜 특별한지 알 수 있다. 전임자인 신영무 회장(2011년 2월~2013년 2월)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쳐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를 지낸 법조계 원로다. 2009년부터 2년간 변협 회장을 지낸 김평우 변호사도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변호사다. 2007년부터 2년간 변협 회장을 맡은 고려대 법대 출신의 이진강 변호사는 검사(성남지청장)를 거쳤다. 모두 서울변호사회 소속이었다.

    위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보통 변호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왔다. 변호사의 권익향상을 골자로 한 공약들은 법조계에서 화제가 됐다. 2월 25일 취임을 앞둔 위 회장과의 인터뷰는 2월 6일 서울 역삼동 변협회관에서 진행됐다.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선거 기간 내내 ‘보통 변호사’ 시대를 강조했는데….



    “그렇습니다. 보통 변호사는 딱 저 같은 변호사입니다. 누구나 공감하고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변호사, 권위적이지 않고 내세울 것도 없는 변호사. 이제 그런 사람이 변호사를 대표할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서 출마했고, 회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보통 변호사”

    ▼ 첫 직선제 회장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과거 회장들과는 무게감이 다르죠. 엄격한 의미로 보면, 그동안 변협 회장 선거에선 보통선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직선으로 선출된 서울변호사회장이 대의원의 3분의 2를 지명하고, 나머지 대의원을 지방에서 채워서 간접선거로 회장을 뽑았죠. 당연히 서울변호사회의 뜻대로 선거가 움직였습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었죠. 이번 선거는 지방까지 선거권이 보장된 첫 선거입니다. 진짜 보통 변호사의 시대가 온 거죠.”

    이번 선거에는 4명이 출마했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지낸 오욱환·김현 변호사, 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화우 양삼승 대표변호사, 그리고 위 변호사였다. 위 변호사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 이번 선거에는 쟁쟁한 이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출마했습니다. 어려운 선거를 치렀는데요.

    “저는 신념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말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당장 집사람부터 말렸죠(웃음). 경쟁한 후보들 중에도 ‘이번엔 양보하고 다음에 하라’며 단일화를 제안한 분들이 있었어요.”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

    ▼ 거절했습니까.

    “거절 안 했어요. 좋다고 했죠. 다만 ‘여러모로 볼 때 내가 더 적합한 인물이니 내가 단일후보가 되겠다’고 했죠(웃음).”

    위 회장은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정릉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5년 동안 낮에는 학교 선생, 밤에는 야간대 학생으로 살았다.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 교사를 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법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사법시험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장기결석을 하길래 부모를 불러서 물어보니 ‘소송에서 억울하게 져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졌다고. 그래서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누군가 계속 같은 억울함을 토로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 시험에 붙을 거란 자신이 있었나요.

    “다들 비웃더군요. 서울대 법대 나오고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야간대학에서 깔짝거린 걸 가지고 무슨 사법시험에 붙겠느냐고. 학교 선생 하면서 그냥 편하게 살라고. 사람들이 내 뒤에서 비웃는 게 다 들리더라고요. 그래도 난 도전하고 싶었어요.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고요. 하여간 죽기 살기로 공부했어요.”

    ▼ 선거도, 사법시험도,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네요.

    “누구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눈앞에 유리천장이 하나씩 있는 겁니다. 전 그런 게 싫었어요. 4년 전 경기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가 가장 심했죠. 서울 법대 나온 엘리트도 아니고, 판·검사 출신도 아닌 제가 변호사회 회장을 한다니까 다들 나보고 ‘웃긴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난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면서 밀어붙였어요.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뛰어들었는데, 보란 듯이 성공했죠.”

    ▼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죠. 전남 장흥의 시골 중학교에서 1, 2등을 다퉜는데 광주제일고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 저와 전교 1등을 다투던 친구도 같이 시험 봤다 떨어졌는데, 이후 나는 서울로 가서 신문배달을 시작했고, 그 친구는 부산으로 가서 약방 점원이 됐어요. 나중에 그 친구는 검정고시를 봐서 부산 수산대에 수석으로 합격했어요. 당시 최고 인기가 있던 잡지 ‘선데이서울’에 그 친구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죠. 약국 점원이 수석 합격했다고.”

    시장 수요에 맞게 변호사 늘려야

    ▼ 왜 검정고시를 안 보고 야간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까.

    위 회장은 또래들보다 2년 늦게 서울 중동고 야간부에 들어갔다.

    “난 정통 과정을 좀 중시하는 사람입니다(웃음). 꼴찌를 하더라도 정규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신문보급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학력 인정을 안 해주던 전수학교 같은 곳에 다니거나 상고 야간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 야간고등학교가 ‘정통 과정’은 아닌데….

    “야간이지만 인문계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중동고가 야간에선 최고였어요. 먹고살기 힘들어도 꿈은 원대하게 가져라, 그런 생각이었죠(웃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배울 게 있는 곳으로 간 거죠.”

    ▼ 신문보급소에서 기거했습니까.

    “고등학교 내내 그랬어요. 원효로 1가쯤에 있는 보급손데, 20명 정도가 한 방에 자면서 살았어요.”

    이번 선거에서 위 회장이 내놓은 공약들은 상당히 화제가 됐다. 민감한 내용의 공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 변호사 수 감축, 사법시험 존치, 민사사건에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이 화제가 됐다.

    ▼ 변호사 수 감축이나 사법시험 존치 같은 공약은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 수를 무조건 줄이자는 건 아닙니다. 일자리만 확보된다면, 입법보좌관이나 사법보좌관, 기업의 준법감시인 등이 수용되어 법률 수요가 늘어난다면 변호사를 오히려 늘려야겠죠.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면 고민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능력 있는 청년 변호사들이 일거리가 없어 길거리를 방황하게 해선 안 됩니다. 법률 수요에 맞게 변호사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 로스쿨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많은데요.

    “그것도 법률 수요와 관련된 일입니다. 변호사 수 증가세가 너무 가팔라요. 로스쿨이 생기기 전만 해도 변호사 수가 1만 명이 안 됐어요. 그런데 갑자기 연간 2500명씩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봐요. 법률 수요가 그렇게 늘지는 않죠.”

    ▼ 법률시장 확대를 위해 변협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나요.

    “정부나 자치단체가 법률담당관을 늘리고 기업도 법률 수요를 늘리도록 해야죠. 필요하면 국회를 설득해 법 개정에도 나설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게 마치 변호사의 밥그릇 챙기기로 보일까봐 걱정입니다. 법률시장이 확대되는 건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 사법시험 존치를 강력하게 주장해왔는데.

    “사법시험은 소외계층에게 꿈과 기회를 주는 사다리 기능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연간 학비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이건 문제입니다. 돈 없는 사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상고를 나와서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좋은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국가와 사회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 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도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죠.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물론 로스쿨도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죠.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거나 아니면 일본처럼 예비시험 제도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위 회장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돈이 없어 소송을 포기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민사사건에도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법률 구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를 ‘민사사건에서의 변호사 강제주의’라고 표현했다.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 국선변호인 제도를 민사사건까지 확대하자는 거죠.

    “돈이 없어서 재판에 지는 일은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겁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없어야 한다는 거죠. 청년 변호사들을 활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일자리 창출, 서민에 대한 폭넓은 법률서비스 제공,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어요. 1석 3조라고 할 수 있죠.”

    검찰의 정치적 중립 시급

    ▼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는데요.

    “솔직히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변호사를 위해 생각해낸 제도가 아닙니다. 소외계층에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죠. 저는 이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2년 임기 동안 다른 일은 안 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변협 회장은 대법원장, 검찰총장과 함께 법조 3륜(輪)을 이룬다. 대법관과 특별검사 추천 권한까지 갖는 막강한 자리다. 검찰과 법원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위 회장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검찰 개혁, 법원 개혁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사회적 이슈가 된 검찰 개혁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건 정치적 중립입니다. 요즘 대검 중수부 폐지 문제로 시끄러운데, 사실 정치적 중립만 보장된다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입니다. 정치 수사가 문제이지 중수부의 존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중수부가 가진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고요. 각 지검 특수부가 처리하기 어려운 대형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이잖아요. 저는 결국 모든 게 인사 문제라고 봅니다.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히느냐의 문제죠. 제도가 아무리 좋으면 뭐 합니까.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항상 사람인데. 검사장을 선거로 선출하는 나라도 있던데, 그런 것도 생각해볼 문제죠.”

    위 회장은 법원 개혁에 대해서도 선거기간부터 여러 가지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특히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심리불속행제도의 폐지다. 심리불속행제도는 형사사건을 제외한 대법원 상고 사건 중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대법관이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대법원 상고를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많다. 위 회장은 이를 지적했다.

    “국민의 원성이 높아요. 대법관을 증원하든지, 고등법원에 상고심사부를 만들어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대법관들이 매일 평균 10건 이상을 봐요.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된 법적 판단이 이뤄질 수가 없죠.”

    ▼ 새 정부에도 그런 생각들을 전하셨나요.

    “여러 창구를 통해 우리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당선인께 직접 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모두 우리의 법률서비스 시장을 선진화하자는 취지로 구상한 것인 만큼 잘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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